<위플래시> 덕분에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다음 순서는 이 영화들이다.

버드맨

어쩌면 <위플래시>보다도 드럼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더 집요하게 탐색한 쪽은 <버드맨>의 사운드트랙일 거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목젖을 살살 긁는 듯한 드럼 사운드로만 영화를 채웠는데, 전체가 하나의 롱테이크나 마찬가지인 이 코미디에 치밀한 리듬과 날 선 긴장을 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팻 메시니 그룹의 일원이기도 한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의 연주는 단순한 배경 음악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며 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예정된 파국을 향해 나른하게 침몰해가는 이 치정 범죄극은 전설적인 트럼페터 마일즈 데이비스가 참여한 OST로도 유명하다. 그는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단 하룻밤 만에 모든 트랙의 녹음을 즉흥 연주로 마쳤다고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할 때마다 감독 루이 말, 그리고 배우 잔 모로와 함께 샴페인을 기울여가면서. 끓어오르는 법이 없는 서늘한 멜로디가 영화가 그리는 쓸쓸한 비극과 근사하게 어울린다.

사랑의 행로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붉은 드레스 차림의 미셸 파이퍼가 그랜드 피아노 위에 올라 서서 ‘Makin’ Whooppee’를 부르던 장면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음악을 맡은 데이브 그루신은 특유의 퓨전 재즈풍 스코어와 말끔하게 재해석한 스탠더드 넘버를 극에 골고루 안배했다. 마일즈 데이비스나 찰리 파커가 아무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 영화부터 먼저 ‘들어’ 보기를 권한다.

라운드 미드나잇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재즈 연주자와 그의 음악을 사랑한 한 파리지엔의 우정을 그린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1986년 작. 걸출한 테너 색소폰 연주자 덱스터 고든이 주인공 데일 터너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감독이 이야기를 구상하며 참고한 건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과 그의 후원자였던 프랜시스 포드라스의 인연이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

버드
우디 앨런과 더불어 유명한 재즈 애호가로 꼽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를 캐스팅해 완성한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전기 영화다. 그의 빛나는 음악적 성취와 마약 중독과 온갖 기행으로 얼룩진 짧은 삶이 161분의 러닝타임 안에 뜨겁게 담겼다. 영화의 제목인 ‘버드’는 모던 재즈의 시초라 불린 이 천재의 별명이었다.

살인의 해부
오토 플레밍거가 정교하게 연출한 이 법정 수사극의 음악은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듀크 엘링턴이 맡았다. 그는 주인공 제임스 스튜어트가 잠시 들른 클럽의 피아니스트로 카메오 출연해 극의 긴장을 흥겹게 늦추어놓기도 한다. 솔 바스의 디자인 위로 빅밴드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오프닝 크레딧은 관객의 기대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