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의 뷰티 브랜드와 10명의 디자이너가 만나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2015 F/W <W 뷰티 & 패션위크>. 지난 몇 달간의 수고가 런웨이에 올려져 뷰티와 패션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빛을 발하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을 담은 기록을 공개한다.

MAC X STEVE J & YONI P

‘닥터 지니어스!’ 디자이너 정혁서와 배승연에게 컬렉션의 영감을 준 원천은 바로 실험실이다. 현미경을 통해 본 세포의 모양새, 비이커와 돋보기, 스포이드 등 실험실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들이 의상의 프린트 요소가 되었다. 자칫 차갑고 무거운 데다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부벌레들로 가득한 실험실이 될 뻔했던 런웨이는 맥 프로팀 덕에 스티브 J & 요니 P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프렙+프라임 에센셜 오일’로 얼굴에 건강한 광채를 더한 뒤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생긴 다크서클을 블랙 언더 스모키로 위트 있게 표현했다. 하지만 진짜 포인트는 바로 주근깨! 레드부터 잿빛까지, 다양한 톤이 감도는 브라운 톤 계열의 립과 브로 펜슬로 인위적인 주근깨를 그려 얼굴에 재미를 더한 것. 지루하기 짝이 없는 ‘너드’도 스티브 & 요니 그리고 맥과 만나면 이렇게 유쾌 발랄해진다.

SHU UEMURA X ANDY & DEBB

지난 시즌 카프리로 떠난 여인들의 이번 여행은 공간이 아닌 시간이다. 앤디&뎁의 듀오 디자이너 김석원과 윤원정은 브랜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1960년대로 떠났다. 하지만 직관적이기보다 은유적인 요소를 이용해 60년대를 세련되게 풀어냈다. 그리고 이런 은근한 포인트는 얼굴에도 자리했다. 슈에무라 팀이 쿠레주를 떠올리게 하는, 60년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요소인 구조적인 패턴을 모델들의 얼굴에 새긴 것. 그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피부를 정돈한 뒤 ‘잉크:블랙 아이라이너’와 ‘드로잉 펜슬’을 이용해 눈꼬리에서 시작해 눈두덩까지 이어지는 기하학적인 패턴을 완성, 절제된 우아함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시대의 재해석이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BABYLISS X MAG & LOGAN

매 시즌 런웨이에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듀오 디자이너 강민조와 강나영. 2015 F/W 런웨이에 펼친 드라마의 주인공은 ‘뉴욕의 새벽 2시, 클럽에서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나와 으슥한 거리를 걷다 마주친 사진가와 사랑에 빠진 소녀’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유의 차가움과 자유로움을 즐기는 소녀를 표현하기 위해 바비리스 헤어 팀이 한껏 실력을 발휘했다. 클럽에서 한껏 즐기다 나온 듯 흐트러진 베드 헤어 스타일의 웨이브를 연출하기 위해 ‘프로 미라컬’로 거친 질감의 웨이브를 만든 것. 또 하나의 포인트는 ‘가르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라인을 그리는 가르마는 촌스럽다. 가르마의 위치를 잡은 뒤 손가락을 이용해 좌우로 흐트러트리면서 넘겨줘야 시크하다. 덕분에 런웨이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숨겨진 스타일리시한 클럽이 되었다.

SHU UEMURA X KYE

런웨이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던지고 고민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 계한희가 이번 시즌 접근한 주제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요행을 바라는 이들에 대한 풍자다. 카지노라는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풀어낸 이번 컬렉션에는 트럼프 카드에 담긴 디테일과 핏빛 레드, 화려한 메탈 장식 등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런 룩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슈에무라 팀이 나섰다. 먼저 ‘글로우 온’을 사용해 은은한 광이 나는 피부를 연출한 뒤 레드와 와인, 퍼플 컬러의 립 메이크업으로 강렬한 에지를 더한 것. 덕분에 유치하기보다 위트 넘치는 컬렉션으로 쇼의 완성도는 높아졌다. 

NARS X THE STUDIO K

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풀어내는 디자이너 홍혜진. 그런 그녀의 이번 시즌 탐구 대상은 ‘맛’이다. 달콤함과 씁쓸함, 차가움과 뜨거움 등 서로 이질적인 맛이 결합되었을 때를 상상한 맛의 분자 구조를 옷으로 구현한 것. 그리하여 런웨이를 수놓은 것은 그녀의 시그너처나 다름없는 구조적인 프린트가 아닌 톤 다운된 컬러 팔레트였는데, 룩이 더욱 세련되어 보이게 하는 데는 나스 팀의 공이 컸다. 덜어냄의 미학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 것. 핵심은 컬러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 먼저 ‘올 데이 루미너스 웨이트리스 파운데이션’ 한 방울로 피부를 말끔히 정리하고 ‘듀얼 인텐시티 블러쉬’로 얼굴의 윤곽을 살려준 뒤 본연의 입술 색에 최대한 가까운 누드 톤의 립스틱을 발라 메이크업을 마무리했다.

LANEIGE X JAIN SONG

디자이너 송자인의 장기가 이렇게 돋보인 적이 있었을까? 따사로운 햇살과 사각거리는 원피스처럼 여리고 섬세한 소녀를 떠올리게 했던 지난 시즌의 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테일러링에 기반한 재킷과 팬츠 등 진중한 컬렉션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무드가 고루해 보이지 않기까지에는 라네즈 팀의 공이 컸다. 눈의 여왕을 연상시키는 아이시(Icy)한 피부 표현과 눈가의 음영이 룩을 보다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완성시키는 데 단단히 한몫했으니 말이다. 이를 위해 라네즈 팀 아티스트들의 손놀림은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하고 정교했으며, 덕분에 모델들의 얼굴에는 서늘한 아름다움이 내려앉았다.

AVEDA X JAIN SONG

그런가 하면 헤어스타일에서는 그 어떤 기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베다 헤어 팀은 최대한 힘을 뺀 헤어스타일로 오히려 쇼의 완성도를 높이는 힘을 발휘했다. 모델의 얼굴형을 예쁘게 살려줄 수 있도록 두상의 정가운데서 살짝 빗겨간 위치에서 가르마를 탄 뒤 얼굴을 따라 단정하게 머리를 귀 뒤로 넘긴 것. 하지만 이런 헤어스타일이 일명 ‘청학동 스타일’처럼 볼품없어 보이지 않았던 건 ‘퓨어 어번던스 스타일 프렙’이 만들어준 은근한 볼륨 덕분이다.

ESPOIR X LOW CLASSIC

다음을 기약하며 생명이 잠든 겨울 산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런 겨울의 산도 디자이너 이명신과 만나니 한 편의 서정시로 완성되었다. 눈과 나무, 바위에서 느껴지는 색감과 질감이 삭막하기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해 풍부한 룩을 탄생시켰다. 이런 무드는 뷰티 룩에서 정점을 찍었다. 로우클래식의 백스테이지를 책임진 에스쁘아 팀은 모델의 얼굴을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은은하게 빛나는 광채가 느껴지도록 ‘누드 쿠션’으로 피부를 매만지고, 누드 베이지 톤의 아이섀도를 바른 눈두덩에 글로스를 얹었다. 서정적인 로맨스란 바로 이런 얼굴빛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훔치고 싶은 얼굴이었다.

ESTEE LAUDER X MISS GEE COLLECTION

지난 시즌 고요하고 정적인 무의식의 순간을 담아낸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지춘희가 이번 시즌에는 빛의 스펙트럼이 주는 다양한 움직임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빛과 그림자라는 명확한 대비에서 컬렉션의 해답을 찾았는데, 이는 또다시 1960년대를 연상시키는 복고적인 무드와 날카로움이 살아 있는 모던한 무드의 만남으로 해석되었다. 이런 대비의 묘미는 메이크업에서도 빠질 수 없었다. 에스티 로더의 메이크업 팀은 눈꼬리를 한껏 올린 아이라인으로 글래머러스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언더라인에는 블랙&화이트 펜슬을 이용해 ‘대비’라는 요소를 위트 있게 풀어냈다. 여기에 레드 립이 더해졌으니 룩이 한층 풍성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BENEFIT X KWAK HYUN JOO COLLECTION

패턴이 주는 즐거움을 직관적이지만 영민하게 풀어낼 줄 아는 디자이너 곽현주. 그런 그녀의 공략 대상은 곤충이었다. 곤충은 징그럽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진가 권용호가 순간 포착한 곤충 사진과 곤충연구소에서 마주한 도구들을 그녀의 장기인 그래픽으로 재해석했으니 곤충도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뷰티 룩이 화룡점정을 찍었으니 핑크 섀도를 눈두덩에 얹은 뒤 눈 밑에 핑크 타투로 대담함을 더한 것. 옷과 메이크업의 재기 발랄한 하모니는 유니크함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제대로 보여준 백스테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