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가 하이패션 세계에 이름을 올린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화이트 스니커즈는 어둡고 둔탁해지기 쉬운 가을, 겨울 옷차림에 경쾌한 포인트가 되어줄 ‘진리 중의 진리’다.

1. 복고적인 분위기의 ‘엑소핏’ 스니커즈는 리복 제품. 8만9천원. 2. 투박해서 오히려 스포티한 하이톱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제품. 14만9천원. 3. 발목 부분에 초록색으로 포인트를 준 하이톱 스니커즈는 프레드 페리 제품. 18만8천원. 4. 안감에 꽃무늬를 더한 하이톱 스니커즈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제품. 5만9천원. 5. 날렵해서 다양한 하의와 매치하기 좋은 스니커즈는 페이유에 제품. 9만9천원. 6. 착용감이 편안한 에어쿠셔닝이 특징인 ‘에어조던 1 로우’ 스니커즈는 나이키 제품. 11만9천원. 7.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캔버스 소재 ‘어센틱’ 스니커즈는 반스 제품. 4만5천원. 8. 깔끔한 디자인의 플랫폼 스니커즈는 케즈 제품. 7만9천원. 9. 펀칭 로고 장식이 특징인 ‘배스킷 클래식’ 스니커즈는 푸마 제품. 9만9천원. 10. ‘R’ 펀칭이 특징인 ‘스탠스미스’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X 라프 시몬스 by 10 꼬르소 꼬모 제품. 46만원. 11. 간결한 디자인의 캔버스 소재 하이톱 스니커즈는 라코스테 by 플랫폼 제품. 12만9천원.

 

“이게 뭐야! 엄지발가락?” 이건 얼마 전, 여느 때처럼 슈페르가의 천 소재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고 집을 나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 닳고 닳도록 반년 넘게 신은 세 번째 하얀 운동화가 결국 구멍이 뚫리며 수명을 다했다. 그래서 그다음 이야기는? 즐겁게 분더숍으로 향해 에이티스(작년에 론칭한 스톡홀름 태생의 스니커즈 브랜드)의 가죽 스니커즈를 ‘네 번째 하얀 운동화’로 구입하고 말았다는, 해피 엔딩 스토리.

화이트 스니커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셀린의 2011 F/W 쇼가 열린 날. 쇼를 본 뒤 사람들은 동시대적 간결함이 담긴 새로운 룩에도 열광했지만, 피날레에 등장한 피비 파일로에 관해 한마디씩 했다. 짙은 카키색 풀오버 스웨터와 블랙 테일러드 팬츠를 입고, 여기에 50년 역사를 가진 아디다스 화이트 스탠스 미스를 신은 그녀의 룩은 최근 화제가 된 ‘놈코어’의 상징과 같았으니까. 이렇듯 피비 파일로가 잊혀진 클래식한 화이트 스니커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선구자 역할을 하자, 제퍼슨 핵을 비롯해 패션계의 유명 남성 아이콘들이 그토록 화이트 스니커즈에 열광해도 꿈쩍 안 하던 여성들이 슬슬 하얀 스니커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2014년의 가을에도 화이트 스니커즈는 트렌드일까? 정답은 망설임 없는 ‘예스’다. 2014 F/W 패션위크에서 <더블유> 카메라에 포착된 올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은 패션 피플만 해도 50명이 넘으며, 여기에 컬러가 살짝 포인트로 가미된 스니커즈를 착용한 이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두 배가 훨씬 넘으니까. 결국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4년에는 레트로 무드 때문에 화이트 스니커즈 판매가 성장할 것’이라고 내놓은 관측은 실제 거리에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여기서 잠깐. <포브스>가 얘기한 레트로 무드란 흔히 ‘복고’를 생각 했을 때 떠올리는 60, 70년대가 아니다. 아디다스, 나이키, 리복 등 전통적인 스포츠 브랜드가 언급된 이 레트로 무드는 지금 사랑받고 있는 80년대 말부터 90년 대까지의 스트리트 무드를 뜻한다. 아디다스의 슈퍼스타와 스탠스미스, 나이키의 에어포스1과 에어조던, 리복의 프리스타일과 같은 유서 깊은 스니커즈들이 놈코어 트렌드, 90년대 무드, 담백한 스포티즘의 인기를 등에 업고 디자이너들의 룩과 어우러지는 슈즈로 거듭나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피비 파일로 효과를 톡톡히 누린 아디다스의 경우 올해 초 단종된 스탠스미스를 공식적으로 재출시했으며, 얼마 전엔 라프 시몬스와 협업한 모델을 내놓았는데, 절제된 화이트 스니커즈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시사한다.

 

고전적인 화이트 스니커즈가 사랑받는 가장 큰 비결은 물론 어디든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2014년의 방법으로 소화하고 싶다면 패션 피플들의 세련된 스트리트 룩과 2014 F/W 쇼 중 자크 뮈스 런웨이에서 힌트를 얻어 테일러링이 강조된 성숙한 아이템과 믹스하는 룩을 시도할 것. 디자이너 시몽 포르트 자크 뮈스는 특히 화이트 스니커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S/S 시즌 에는 모든 룩을 천 소재 화이트 스니커즈와 매치하더니, 이번엔 아디다스 화이트 슈퍼스타를 선택했다. 또 옷의 컬러도 중요한데 테니스 선수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면 같은 화이트 계열은 피하되 화이트 스니커즈의 담백함이 강조될 수 있도록 어둡거나 화려한 색을 택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스니커즈가 관리의 불편함과 짧은 수명 때문에 쉽사리 선택하긴 망설여진다고? 그럴 땐 10년 전 ‘완벽한 화이트 스니커즈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스니커즈 브랜드 커먼 프로젝트를 론칭한 디렉터 프라탄 푸 팻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나는 화이트 스니커즈를 잘 닦지 않아요. 데님 처럼 생각하죠. 신을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멋져지니까요.” 신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밴 화이트 스니커즈. 두툼한 코트 아래로, 어두운 팬츠 아래 드러날 이 하얀 발끝은, 룩을 생동감 넘치게 완성해줄 최고의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