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바젤은 몇백만, 혹은 몇천만 달러가 예사로 거래되는 미술 백화점이자 특히 새롭고 강렬한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장이다. 올해 여름에도 스위스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어김없이 열렸던 축제의 분위기를 지면에 전한다.

1. 비에브케 지엠의 ‘Nie Ma Tego Zlego Coby Na Dobre Nie Wyszlo’.2. 양혜규의  출품작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비카타르시스 산재의 용적에 관하여’.

1. 비에브케 지엠의 ‘Nie Ma Tego Zlego Coby Na Dobre Nie Wyszlo’.
2. 양혜규의 출품작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비카타르시스 산재의 용적에 관하여’.

 

3. 아트바젤 전시장 전경. 4. 트로이카의 ‘Dark Matter’.

3. 아트바젤 전시장 전경. 4. 트로이카의 ‘Dark Matter’.

컬렉터가 우선입니다
때는 지난 6월 16일이었다. 아트바젤이 열리는 메세플라자에 도착, 우선 프레스 등록을 했다. 프레스 아이디를 수령하고 바로 취재에 들어가려 본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출입 불가란다. 정책이 바뀌었나? 이유를 묻자 오늘은 전시 준비를 위한 갤러리스트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프레스 아이디만 받으면 바로 취재에 임할 수 있었던 예년과 룰이 달라졌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부속 전시부터 관람했다. 일정에 쫓기는 몇몇 매체는 친분이 있는 갤러리스트에게 출입증을 빌려 들어가는 촌극 아닌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튿날인 6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오픈 시각에 맞춰 다시 본전시장을 찾았다. “프레스는 오후 3시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이번까지 4번째 아트바젤 방문이거늘, 이들은 항상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가 모토인가 할 정도로 취재에 어떤 제약도 걸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이날은 오로지 VVIP, 즉 슈퍼 컬렉터를 위해 전시장을 비워놨단다. 사실 아트 페어의 공식 일정은 19일부터 22일까지지만 이날 아트바젤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이른바 ‘지갑을 여는’ 컬렉터들은 아트바젤이 마련한 편의를 만끽하며 정식 개막 전 한가로이 전시장 부스를 거닐었다. 우리나라 백화점도 이런 마케팅을 한다지 않나.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특정 고객을 위해 백화점의 휴일에 그들을 초청해 여유 있게 쇼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전언이 얼핏 떠올랐다. 그러다가 퍼뜩 드는 생각. ‘아! 여기는 미술품 백화점이었지!’
스위스 북부, 프랑스와 독일 접경 지역에 위치한 인구 20만의 도시 바젤(Basel). 우리나라 경기도 이천이나 양주(2014년 6월 기준) 정도의 인구 규모인 도시가 매년 6월이 되면 전 세계 미술 컬렉터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다. 바로 이곳에서 ‘아트바젤(Art Basel)’이 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인 아트바젤은 1970년, 거대 화상이었던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지역 화상과 함께 조직한 아트 페어다. 올해로 45회를 맞은 아트바젤의 이번 매출은 약 2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금액은 19일부터 22일까지 단 4일동안 34개국의 내로라하는 285곳 갤러리가 이룩한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우리나라 2013년 화랑 및 경매사의 총매출 규모가 4800여 억원으로 추산되니, 이의 4배가 넘는 셈이다.
국내외 아트 페어를 방문해본 독자라면 막상 전시장에서는 각 대회가 갖는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갤러리 부스는 흰 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벽을 미술품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국내외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의 진부한 광경이다. 차별점은 바로 그 벽에 걸린 작품의 가치이며, 그것이 얼마에 팔리느냐, 그리고 아트 페어의 부속 프로그램에 있다. 아트바젤에 참여하는 화랑은 이른바 세계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선도적 위치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알려졌다시피 아트바젤은 참여를 희망하는 갤러리에게 그 문턱이 꽤 높은 것이 사실인데 우리나라의 국제갤러리와 PKM갤러리에게만 참여를 허락하고 있다. 그들이 참여해 진열한 아트 명품들은 자신을 선택할 컬렉터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아트바젤이 바로 그 슈퍼 컬렉터와 VVIP를 위해 기꺼이 별도의 ‘쇼핑타임’을 제공한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이번 아트바젤에서 이루어진 굵직한 거래를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보자.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바로 앤디 워홀의 초상화였다. 팝아트를 대표하는 워홀의 작품은 3200만 달러(한화 약 323억원)에 거래됐다. 유력 경제지 <블룸버그>는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VVIP만을 위해 전시장을 연 17일, 개장 15분 만에 거래가 성사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헤드라인은 “바젤에 모인 백만장자들은 미술 작품이 현금보다 나은 투자(대상)라 확신한다”라고 뽑았다. 이 밖에 아트넷을 통해 보면 영국의 젊은 작가를 일컫는 yBa의 악동 데미언 허스트의 ‘Nothing is a Problem For Me’(1992)가 600만 달러(한화 60여 억원)에 거래되었고, 얼마 전 개를 모티프로 한 조각품이 590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려 화제를 모은 팝아트 작가 제프 쿤스의 ‘Dolphin(2007~13)’은 500만 달러(한화 50여 억원)에 각각 주인을 만났다.

5.  전시에서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 작업. 6. 훌리오 르파르크의 ‘Continuel Mobile-Sphere Rouge’.

5. 전시에서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 작업. 6. 훌리오 르파르크의 ‘Continuel Mobile-Sphere Rouge’.

 

7. 마티아스 팔드바켄의 ‘20.000 Gun Shells’. 8. 올해 아트바젤에서 한화 약 323억 원에 거래된 앤디 워홀의 자화상.

7. 마티아스 팔드바켄의 ‘20.000 Gun Shells’. 8. 올해 아트바젤에서 한화 약 323억 원에 거래된 앤디 워홀의 자화상.

미술 백화점, 그 이상
아트바젤은 ‘어떤 작가의 어떤 작업이 얼마에 팔렸더라’가 그래도 주된 관심사고 화젯거리지만 그래도 예술의 미학적 측면을 고려하는 이들이 모인 만큼 부속 전시도 아트페어 못지않은 큰 관심거리다. 그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아트바젤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아트바젤의 백미로 꼽히는 전시는 2000년부터 열리고 있는 <Unlimited>다. 올해 70여 점이 출품된 이 전시는 2012년부터 뉴욕 출신의 지아니 예처가 큐레이팅하고 있다. 비교적 큰 조각, 페인팅, 설치, 그리고 영상과 실시간 벌어지는 퍼포먼스 등이 출품되는 전시로 지금은 아트 페어 못지않은 아트바젤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이 전시에 참여한 화랑은 부스에 따로 ‘Unlimited’ 푯말을 걸어놓을 정도다. 우리나라 작가인 양혜규의 작품은 바로 이 <Unlimted>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작업하고 있는 양혜규가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비카타르시스 산재의 용적에 관하여’라는 다소 난해한 제목의 작품이다. 전시장 입구 천장에 설치된 이 작업은 길이만 족히 10m가 넘는 규모였다.
블라인드로 제작된 이 작품은 서사(Epic)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밖에 칼 안드레의 바닥 설치작품 ‘Steel Peneplain’, 주세페 페노네의 ‘Trees’ 연작 등이 눈에 띄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얼핏 상업적인 목적과는 동떨어져 보여 혹자는 <Unlimited>를 비엔날레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큐레이터 지아니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상업성의 여부보다는 작품의 함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은 전시 공간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종의 특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비엔날레와의 차이는 큐레이터의 역할에 있다. 비엔날레는 큐레이터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하나의 주제로 작업하는 프로젝트지만 아트 페어는 전시되는 작품이 갤러리의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고 기본적으로 시장에 기반한다. 또 네트워크를 통해 생각을 공유할 장을 만들고 보다 흥미로운 작품을 전시해 한계를 넓히는 것은 현대 아트 페어가 나아갈 길이라 생각한다”며 비엔날레와의 비교에 선을 그었다. 또 다른 부속 전시 <Statements>는 비교적 연륜이 적은 신생 갤러리가 유망 작가를 내세우는 전시다. 컬렉터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인 셈. 올해는 14개 갤러리가 참여했는데, 이 전시의 특징은 출품한 작가 중 2명을 선정, 바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보험금융회사 발루아즈 그룹이 사명(社名)을 딴 상을 수여한다. 선정된 작가에게는 3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3400만원)의 상금과 출품작을 구입, 유럽의 유명 뮤지엄에 작품을 기부한다. 앞서 언급한 양혜규 작가가 2008년 이 상을 수상한 이력이있다. 올해는 영상 작업 ‘Reduit(Redoubt, 요새)’를 출품한 존 스쿠그가 단독 수상했다.
<14 Rooms>는 정말 색다른 볼거리였다. 어지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퍼포먼스는 접하기 힘든 장르임에는 분명하다. 그 퍼포먼스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이번 아트바젤에서 제공됐다. 참여한 작가는 마리나 아브라모 비치, 애드 애킨스, 도미니크 공잘레즈-포에르스테르, 데미언 허스트, 브루스 나우먼, 오노 요코, 수젠 등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 14명이 과거 행했던 퍼포먼스를 14개의 방에서 재현했다.
<Unlimited>, <Films>, <Statements>, <Parcours> 등 아트바젤의 다양한 부속 전시와 이벤트에 대해 미술계 전문가들은 “작품의 상품적 가치의 의미를 현대미술의 실험과 성장이라는 맥락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이는 실험적이거나 비상업적으로 보이는 작품이 당장에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언젠가 미술 시장의 확장에 기여할 것이며, 확장된 미술 시장은 아트바젤의 수익과 직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거시적인 행보다.

9. 아트바젤 전시장 내에 자리를 잡은 갤리러 부스들.

9. 아트바젤 전시장 내에 자리를 잡은 갤리러 부스들.

 

10.  전시에서 소개된 브루스 나우먼의 퍼포먼스. 11.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La Giuria’.

10. 전시에서 소개된 브루스 나우먼의 퍼포먼스. 11.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La Giuria’.

 

12. 헤이모 조베리느그의 ‘Untitled’ 앞에 선 관람객. 13. 앨리스 채너의 ‘High Tide’.

12. 헤이모 조베리느그의 ‘Untitled’ 앞에 선 관람객. 13. 앨리스 채너의 ‘High Tide’.

아트바젤 밖의 축제
전시 기간 내 바젤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바이엘러 미술관에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5.18~9.7)이 열리고 있었다. 1932년생인 리히터 역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수년간 작품 가격으로 수위권을 놓지 않았던 작가다. 그의 60년 화업을 되돌아보는 회고전 형식의 이 전시는 12개의 방으로 구성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샤울라거 미술관은 로렌츠 재단의 지원으로 설립된 수장고 성격이 강한 미술관이다. 이름 자체가 ‘보는 창고’라는 의미이듯 전시 기능보다는 작품의 보관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연구가 목적인 미술관이다. 그래서 미술 연구자들에게는 꿈의 미술관, 전 세계 미술관 수장고 운영의 교과서로 불리는 곳이다. 흙을 개어서 벽체를 마감한 듯한 이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2012년 도쿠멘타 13에 출품한 홍콩 출신의 미국 작가 폴 챈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은 아트바젤 기간 동안에는 특별히 연장 운영된다. 바젤이 낳은 저명한 작가로 장 탱글리(1925~1991)가 있다. 다다에 기반한 키네틱아트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그는 이곳 바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를 기념하는 전시장 탱글리 뮤지엄도 아트바젤 기간 동안 특별 운영에 돌입하고, 상설전과 동시에 체코 작가 크리슈토프 킨테라의 <I’m Not You>(6.11~9.28)를 선보였다.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과연 이게 움직일까?”라는 의구심을 낳는 그의 작품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성체를 보는 듯했다. 이 밖에도 시내 곳곳에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각종 전시가 열리고 있어, 아트바젤에 오는 재미를 더했다.
아트바젤의 성공은 그리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오랜 시간 공들여 각종 마케팅 기법을 제대로 도입한 아트바젤 조직위원회가 그 중심에 있겠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도시에서 예술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만족감을 제공한 시정부, 그리고 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의 노력도 예사로워 보이진 않는다. 마치 잘 관리된 기계가 돌아가듯 말이다.
글 | 황석권(<월간미술>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