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미인들을 향한 세 남자의 짧은 이야기. 파울로 코엘료, 영화감동 이해영, 뮤지션 방시혁이 더블유 코리아 앞으로 <미인 예찬>을 보내왔다.

모델의 일상

숭배의 대상으로서 셀레브리티들의 삶을 주제로 하는 책 <승자는 혼자다>를 쓰면서 나는 대중의 상상력 속에 살고 있는 여자들, 바로 화보 모델들의 일상에 대해 흥미로운 조사를 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다음은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들이다.

(가) 잠자리에 들기 전 모공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피부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크림을 몇 개씩이나 바른다. 어린 시절부터 신체가 외부 물질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 아침에 일어나면 설탕 넣지 않은 블랙커피를 한 잔 마시고, 섬유질이 가득한 과일을 먹는다. 남은 하루 동안에 먹는 음식을 장에서 재빨리 소화시키기 위해서란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몸무게를 재고 저울 바늘이 몇 그램이라도 더 많이 넘어가면 우울해한다.

(나) 이들 모두 새 얼굴, 새 유행이 나타나면 자기는 한물가고 인기가떨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캣워크 바깥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려고 절박해진다. 기획사 매니저들을 끈질기게 졸라 배우로서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할 오디션을 주선해달라고 한다. 연기는 그들이 품은 큰 꿈이니까.

(다) 모델들은 각종 물건을 협찬받는다는 전설 떠돌고는 있지만, 실은 그와는 달리 자기 비용은 자기가 낸다. 여행 경비, 호텔, 샐러드 값도 모두. 그들은 패션 디자이너의 어시스턴트들의 부름을 받고, 업계 용어로 말하면, ‘캐스팅’에 간다. 어시스턴트들은 캣워크나 화보 촬영 시 포즈를 보고 런웨이에 설 모델들을 고른다. 그 순간 모델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성격 더럽고 하잘것없는 권력이랍시고 자기 일상의 좌절들을 쏟아내는 데 쓰며 친절하거나 힘이 되는 말 따위는 한마디도 해주지 않는 사람들 앞에 서게 된다. “형편없군”이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라) 부모님들은 그처럼 순조롭게 커리어를 시작한 딸을 자랑스러워하고 과거에 모델 한다고 했을 때 말렸던 걸 후회한다. 어쨌든 딸이 돈을 벌어서 살림에 보태는 셈이니 말이다. 남자친구들은 발작적으로 질투심을 보이지만 결국엔 자제한다. 패션 모델과 사귄다는 게 자존심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이다. 동성 친구들은 그들을 남몰래 (혹은 대놓고) 시기한다.

(마) 그들은 파티에 초대받으면 꼬박꼬박 참석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허세를 부린다. 그렇지만 이는 불안감이 표출된 증상이다. 항상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다니지만 그저 남에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의 한 부분일 뿐이다. 알코올에는 체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원료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미네랄워터다(그래도, 탄산이 체중에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위 내벽에는 즉각적인 여파가 있다).

(바)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그 업계에서 가장 흔한 질병, 거식증에 대한 이야기도 듣는다. 체중과 외모에 대해 지나친 강박관념을 갖다 보니 나중에는 몸의 신진대사가 이에 길들여져서 어떤 음식이라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모델들은 자기들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첫 번째 증상이 나타나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사) 그들은 청소년기를 겪지 않고 어린 시절에서 곧장 화려하고 황홀한 세계로 진입한다.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할 말을 항상 혀끝에 준비해두고 있다. “대학에 가서 철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지금 이 일은 학자금을 벌려고 하는 것뿐이니까요.” 그들도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진학할 여유는 없다. 아침엔 오디션, 오후엔 사진 촬영, 밤에는 파티에 가서 모습을 보이고 칭찬받고 사람들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델들이 동화 속 주인공처럼 산다고 생각한다. 모델들 본인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다 어떤 호기심 많은 작가가 포기하지 않고 더 집요한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참 망설이다가 그들은 말하리라. “전 사실 배우로서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이 불쌍한 삶을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인생인 양 거짓으로 연기하며 살 수 있는 거죠.”
-파울로 코엘료(소설가)

천하장사 마돈나

MTF 트랜스젠더를 소재 삼았던 영화, <천하장사마돈나>를 만들 때였다. 소재가 소재다 보니 아무래도 취재가 적잖이 필요했고, 최대한 많은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봐야 했다. 발품깨나 팔았다. 모든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인터뷰이들을 모았다. 수소문을 해보니 세상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살고 있었고, 한 분 한 분 만나 묻고 또 듣다 보니 제각각의 사연이 너무도 파란만장 각양각색이어서 만약 묶어 엮는다면 목침 두께의 대하소설 한 질쯤 너끈히 뽑고도 남을 만한 분량의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트랜스젠더를 만나고 또 만나던 어느 순간.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중복 거의 없는, 그리도 다채로운 사연을 가진 트랜스젠더들이 그러나, 겉으론 공통적으로 유사한 특유의 외모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별 발언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균등한 생김새, 말 그대로 혈연 같은 개념의 공통 유전자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정한 어떤 외모의 기준선을 두고 그 선을 향해 제각각 최선을 다하다가 어느 순간 약속의 그 선에서 일제히 만났다는 듯한, 그런 기운이었다. 그나마의 변별점이 있다면 그 ‘공유 외모’가 세대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정도였다.

MTF들은, 선천적인 여성에 비해 훨씬 더 ‘여성성’을 골똘히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타고난 성을 거스르고 신체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성을 인력으로 만들어야 하니 ‘여성성’의 A부터 Z까지를 끝없이 고민하고 추구하기 마련인 것이다. 자동차 하나를 구입할 때도 배기량 연비 같은 굵직한 스펙뿐만 아니라 뒷좌석 컵홀더 위치와 크기, 트렁크 마감재 재질감 같은 디테일까지 뜯어 살펴보기 마련인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성’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마당에 살펴봐야 할, 따져봐야 할 다양함이란 게 오죽하겠느냔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여성성의 ‘여성’이란 신체적인 여성을 뜻한다. 몸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마음이 중요한 거라는 식의 초등학생도 신경질적으로 냉소할 이야기는 접어두자. 그들에게 목숨걸고 싸워야 하고 쟁취해야만 하는 것은 육체다. 단지 타고나지 못한 것이 몸뚱이일 뿐인 사람들이니까. ‘신체적인 여성’이란 물론 ‘아름다운 여성’을 뜻한다. 상대가 남성이건 여성이건 무관하게, 누가 보더라도 ‘예쁜’ 여성. 여성보다 더 예쁜, 절대적으로 예쁜, 막강하게 예쁜, 예쁜 그대로의 예쁜, 여하튼 무조건 예쁜. 이 집착 혹은 절실함은, 선천적 여성의 그것에 견줄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것이 하나도 없는, 무에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말이지 죽을 각오로, 투쟁의 개념으로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트랜스젠더의 대부분이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을 상기해본다면 그 ‘예쁨’이란 단순한 존재의 완성이나 자기 만족도와 같은 관념적인 개념을 웃도는, ‘돈벌이’나 ‘생존’ 과 직결된다. 그러니 ‘투쟁’이다. 그들의 ‘여성화’엔 기본적인 호르몬 치료부터 시작해서 적잖은 수술과 시술이 자연스레 동원되기 마련인데, 그들이 지향하는 ‘예쁘다’는 막연한 개념은 곧 지금 현재 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아름다움이라는 유행을 나이브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요즘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보려면 수술과 시술을 가장 최근에 마친 트랜스젠더를 보면 알 수 있다는 식이다. 물론 2012년 현재, 여성들의 몰개성이 비단 트랜스젠더만의 문제일 리는 없다. ‘예쁘다’는 기준이 미학적인 찬사가 아닌 각 부위별 묘사 가능한 스펙으로 일컬어지는 시대를 사는 죗값은 일상적으로 종종 치러야만 한다. 한 국가의 여성 군중이 공동구매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은 실로 피로한 일이니까.

<천하장사마돈나> 시나리오 작업과 캐릭터 형성 과정에 가장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트랜스젠더는, 결국 따로 있었다. ‘김비’라는 분이었다. 그러모은 인터뷰이의 리스트가 거의 바닥났을 때쯤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한 작가였고, 아마추어 포토그래퍼였으며, 용인 소재의 한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직업을 통해 유추도 얼추되고, 책 제목에서도 일정 정도 읽어낼 수 있듯, 그녀는 ‘몰개성적으로, 그러나 어쨌건 예쁘긴 예쁜’ 여타의 트랜스젠더들과는 궤가 달랐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 좀 더 솔직하자면 주관적인 기준에서도 그녀는 ‘못생겼’었다. 그러나 그녀는 뭐랄까,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과 같은 존재였달까. 줄리앤 무어의 잡티 가득한 속살의 질감 같달까. 그런 식의 존재였다. <천하장사마돈나>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알아, 나 아주 못생긴 여자가 될 거야”라는 대사는 실은 그녀에게 8할 이상 빚지고 기대고 있었다. 미학적인 완성도라는 것은, 그것을 객관적인 기준에 맞추는 순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학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다. 보편타당해지는 순간 그만큼의 고유한 아름다움은 휘발될 수밖에 없다. 김비 씨는 스스로를 ‘못생긴 트랜스젠더’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은 나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어떤 지점에서는 느끼고 또 알고 있다고 믿는다. 본인을 아름답게 개조해서 아름다운 것은 일차적인 발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발상 자체가 미학적이지가 않다. 그런 면에서 김비 씨는 스스로 못생겼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그대로의 존재증명을 통해 아름다움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그녀 방식대로의 투쟁이다. 그래서 그녀는 본디 못생겼지만 투쟁적으로 아름답다. 공동구매적으로 아름다운 여성들과, 데칼코마니적으로 예쁜 여성들 속에서 김비 씨는, 그런 방식으로 자리매김을 했고,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다. <천하장사마돈나>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대사. “난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김비 씨는 이 영혼 없던 말에 ‘진짜’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안부 전화 건 지가 좀 됐다. 생각난 김에 밥 한 끼 먹자는 전화를 넣어야겠다.
-이해영(영화감독)

내숭, 천진난만하지만 방종한 눈빛의 매력

아무것도 모르는 듯 너무나 천진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언뜻 스치는 표정 하나를 발견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그 눈동자는 내게 얘기해준다. 이미 다 가봤고 다 해봤노라고. 지금 당신 앞에서는 첫만남에 허용되는 만큼만 보여주겠지만 내 역사는 지금 보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얘기한다. 그 표정을 읽는 순간 난 그녀를 알고 싶어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고 그 미치는 정도만큼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처음 만나는 남자 앞에서는 ‘내숭 떨기’의 규칙을 지켜나가듯 그녀는 모든 일에 자기 주장이 있다.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수업 신청을 할 때도, 미래를 계획하고 자신의 삶을 결정할 때도… 그리고 차를 고르고 남자를 고를 때도 확실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안다. 그러니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는 속담은 그녀와는 무관한 이야기. 내숭의 범주 안에서 모든 남자에게 너무나 친절하게 웃어주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녀를 얻으려면 그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좀처럼 틈을 허락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다디단 보상이 따른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감내할 가치가 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 주장이 강한 만큼 자기 세계가 확실하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혼자 걷는 법을 익힌 탓에 자기 세계를 지켜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안다. 그래서 그녀는 이기적이다. 때로는 철부지처럼 투정을 부리고 때로는 냉혹하게 합리적으로 얘기하면서 자기 세계를 지켜나가는 게 그녀의 방식. 예의 눈웃음으로 사람들을 방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지성적인 언어의 유희로 틈을 빠져나가면서 결국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하지만 그녀가 밉지 않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걸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작은 발은 그녀를 사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지언정 결코 미움의 단초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그녀의 세계는 왠지 좁을 것 같지만 또 그렇지가 않다. 가끔 수줍게 웃으면서 그려 보이는 그녀의 꿈은 때로 너무나 거대해서 누군가에겐 철없는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빠져버린 내 눈엔 그저 또 하나의 경이일 뿐…. 저 작은 머릿속 어디에서 저런 꿈들이 나오는 걸까, 그저 궁금하기만 할 뿐…. 모든 것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한없이 아름다운 그녀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을 거 같다고.

그러나….

내숭을 떨던 나의 그녀,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그녀의 찬란한 꿈은 그냥 나 혼자만의 꿈으로 끝이 난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의 눈동자는 평범한 눈동자로 변모하고 그녀에게서는 내숭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 더 이상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 그녀, 작아진 자기 세계 속에서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그녀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나의 사랑은 끝이 난다.

세상이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아픔을 주기 때문일까? 나의 ‘그녀’들은 내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세상과 맞서 싸우기를 포기해버렸다. 너무나 쉽게, 너무나 허망하게…. 꿈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로 콤플렉스와 시니컬함을 획득한 여자들, 꿈을 이루는 대가로 여성성을 바친 여자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접고 지극히 평범한 여자로 돌변한 나의 ‘그녀’들… 그 무엇도 아름답지 않다.

나는 그녀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녀들을 탓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기다린다. 남성이 꿈을 이뤄갈수록 아름다운 것처럼 여성도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나이와 무관하게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여성을 만날 날을….
-방시혁(작곡가,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