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모금을 넘겼을때, 해질무렵의 해바라기 밭이나흥청거리는 발리섬풍경이 잡힐듯그려지지 않는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만화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이 아니니까.그리고 부족한 혀끝의 상상력을 채워줄 그림이 이미 테이블 옆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테니까. 필요한건 레스토랑 곳곳에 숨어 있는 미술품을 짚어낼 약간의 수고뿐.

VIN-GA

프랑스어로 와인을 뜻하는‘vin’과 한자의‘家’를 합성한 상호에서 벌써 와인바라는 공간의 성격이 드러난다. 3만~4만원대의 저렴한 제품부터 5백만원에 이르는 빈티지 와인까지 7백50여 종류를 보유하고 있다니 과연‘와인의 집’이라는 이름이 실속없게 들리진 않는다. 사실 뱅가는 와인뿐 아니라 맛깔스러운 메뉴로도 후한 평가를 얻는 곳이다. 퓨전 아시안 요리 정도로 그 컨셉트를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와인을 음미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지나치게 자극적인 양념은 피하고 있다. 통후추 소스를 곁들인 삼겹살찜(4만5천원)이나, 엔초비 드레싱을 얹은 닭가슴살 샐러드(2만원)도 훌륭하지만 코냑으로 맛을 낸 새우와 절인 야채(2만5천원)는 해산물이 신선한 겨울에 특히 추천할 만하다. 공간이 널찍하고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지하에 있으면서도 갑갑한 느낌은 없다. 나무와 벽돌의질감이 은근하게 살아 있는 실내는 그 자체로 규모 있는 와인 저장고를 연상시킨다. 입구부터시작되는 바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다 보면 작은 벽 하나를 가득 채운 최인선의 회화 ‘Verticalhorizontalstilllife’와 만나게 된다. 크기도 크기지만 붓 자국에 실린 힘이 굉장해서 단한 점만으로도 공간에 분명한 활기를 더한다.
영업시간은 오후6시부터 이튿날 오전2시까지고 매주 일요일은 휴무다. 신사동 자생한방병원옆골목 포도플라자 지하1층에 위치.

DUPLEX

누군가 듀플렉스를 설명하면서‘발에 채이는 게 미술품’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게 꼭 과장 섞인 화법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동기, 안창홍, 이환권, 이불 등의 작품이 테이블 위에 슬쩍 올라 있거나 바닥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놓여 있는 곳이기때문이다. 행동이 칠칠맞지 못한 이는 계단을 오르다 톡, 이동기가 그린 아토마우스의 얼굴을 발끝으로 차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지랖 넓은 걱정에도 불구하고벽에서 내려와 사람들 옆에 바짝 다가앉은 미술과 눈을 맞추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신사동에 위치했던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과2006년 8월에 공간을 합치면서 갤러리 라운지로서의 성격은 더욱 뚜렷해졌다. 전시 작품의 수는 늘었지만 메뉴는 오히려 간소해졌다. 굳이 따지자면 카페에 가까운 곳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와인 주문은 가능하다.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할 수는 없지만 7만원부터 20만원까지의 가격대에서 괜찮은 종류를 보유하고있다. 슬라이스 치즈와 살라미 소시지(3만원)나 스낵(2만5천원)을 함께 맛볼 수 있으며샌드위치를 비롯해 몇 가지 메뉴를 추가할 예정이다. 커피는 7천~8천원 선이고 곁들일만한 쿠키나 파이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하얗고 깨끗한 공간 덕분에 전시 작품의 색감이 더욱 도드라지는 느낌이다. 5층에 놓인 재미있는 의자와 테이블 역시 풍경에 표정을 더하는 요소다.
청담동 카페 홈스테드 뒤편 달링 스페이스 건물4층, 5층

빨강숲

청담동 숍이 장식 없이 날렵한 블랙 스틸레토 같다면, 홍대 앞 카페는 정성스레 흙을묻혀 구겨 신은 스니커즈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삼청동의 작은 레스토랑들은?발이 편하고 어디에나 어울리는 플랫 슈즈 정도가 아닐까. 빈틈없이 세련되거나 유난히 들뜬 공기가 흐르지는 않더라도 시간을 두고 꾸준히 찾게 될 장소라는 뜻이다. 빨강숲 역시 삼청동 거리에 꼭 맞는 조각 같은, 그런 레스토랑이다. 붉은 비드 장식을 몇 군데늘어뜨린 것 외에는 평범한 테이블과 의자가 정직하게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실내가 넓지 않다 보니 테이블 간 거리도 다소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적절하게 분리된 창가 좌석을 택하면어느 정도 각자의 공간이 확보된다. 빨강숲은 정기적으로 미술 전시를 유치하고 있는데, 덕분에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내벽에 표정이 생겼다. 2007년 1월 9일까지는 서울 프린트 클럽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또 구입할 수 있다(작품 가격은 1백만원 이하 정도). 10만원이하의 저가 와인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어 부담이 적은 곳이기도 하다. 시간대에 따라 메뉴가격이 달라지는 점은 미리 참고할 만하다. 점심 무렵 찾으면 가격이 좀 더 저렴하다. 궁중떡볶이의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small 1만5천원, large 2만원) 파스타도 괜찮다. 버섯 크림소스 스파게티(1만3천원)는 느끼하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고소한 맛이다.
영업시간은 오전11시부터 자정까지. 삼청 파출소 맞은편에 있으며, 괄호안가격은 저녁 시간 기준이다.

아름다운 공간 SOHO

곳곳에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는 뉴욕 소호가를 떠올리게 할 만한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건‘所好’라는 한자 표기니 그저 좋은 곳이라는 담백한 의미의간판인 셈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공간 소호를 미술품이 있는 풍경과 연결 지을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건물 안에서 유명 화가의 진품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탓이다. 필운동 소호에 이어 문을 연 청담점은 아예4층을 작은 갤러리로 꾸며놓았다. 3층에는 해당 작가의 작품으로 꾸민 샤갈, 미로, 피카소의 방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좋아하는 그림을 느긋하게 감상하면서 식사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세 명화가의 이름을 딴 세트 메뉴를 제공하며, 피카소 세트의 경우 구성에 따라 다시 두종류로 나뉘는데, 점심이 4만9천원과 5만9천원, 저녁은 10만원과 13만원대이다. 그 외에는 흔한 접시 대신3백 년 된 기왓장 위에 얹어 내는 매실 소스 안심 스테이크(4만7천원)가 훌륭하다. 오래된 한옥을 허물며 얻은 기와를 재활용한 상차림이다. 알뜰하고독창적인 발상일 뿐 아니라 장식적인 효과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복층 구조로 천장이시원하게 높기 때문에 탁 트인 공간을 선호한다면 마티스의 작품이 있는 1층 홀에 자리를잡는 편이 좋겠다.
영업시간은 정오부터 자정까지. 청담동 루이 까또즈 매장 뒤편에 위치.

GALLERY YOU

고풍스러운 기와 지붕 아래 새것같이 말끔한 인테리어를 감추고 있는 곳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이라면 그 안에 적당히 낡은 공간을 품는 게 잘 어울린다. 보기 좋을 만큼만 손때 묻어 있는 갤러리유의 실내가 특히 편안하게 느껴지는이유다. 중앙부의 작은 홀은 한옥 구조의 마당 격인데, 유리로 천장을 만들어 떨어지는 빗소리를 머리 위에서 듣거나 눈이 차분하게 쌓이는 모습을 올려다볼 수도 있다.홀 옆으로는 기와 지붕을 얹은 분리된 공간이 있다. 길가로 면한 벽 전체를 유리 문으로 만들어 시야를 확보하고 그 안에 장식 없는 테이블을 배치했다. 중앙 홀의 한쪽 벽에는 연탄재를 쌓아둔 구조물이 눈에 띈다. 미술 작가 강홍석의 설치 작품이다. 사이사이 홈을 파고 휴대전화를 박아두었는데, 지정된 번호를 입력하면 실제로 신호가 울린다. 잘라낸 전화번호부 페이지로 내벽과 소품을 감싸놓은 작은 방 역시 강 작가의 작업.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스가 독특한 석류 스테이크(3만3천원)나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카프레제 샐러드(2만5천원)를 주문하고 와인을 곁들이면 꽤 색다른 식사가 된다. 작가의 작업대가 홀 한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어, 저녁 시간에 가게를 찾으면 제작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가능하다.
오전11시부터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영업하고 매주 일요일은 휴무다. 삼청동 초입 란 사진관 뒷길로 들어서자마자 간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