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2026 FW 컬렉션
2026년, 안토니 바카렐로가 생 로랑의 지휘봉을 잡은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이 기념비적인 시점에 그는 다시 한번 하우스의 가장 강력한 유산인 르 스모킹(Le Smoking)을 꺼내 들었다.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 정원(Trocadéro Gardens)에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미니멀한 유리 상자 형태의 런웨이가 설치됐다. 여기에 오피움(Opium) 향기가 퍼지고, 프로듀서인 세바스티앙(SebastiAn)이 디렉팅한 날카로운 사운드트랙이 긴장감을 더했다.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정서는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소설 <지오반니의 방(Giovanni’s Room)>에서 영감을 받은 ‘억눌린 욕망’과 ‘밀폐된 긴장감’이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쇼 노트를 통해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 속에서 모든 것이 괜찮은 척 연기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세상의 비극을 외면하는 화려함 대신, 그는 날카롭고 단단한 테일러링이라는 갑옷을 택했다. 무대에 놓인 이브 생 로랑 자택의 흉상을 본뜬 대형 토르소는 모델들의 파워풀한 실루엣과 겹쳐지며, 인체에 대한 건축적 접근이라는 안토니 바카렐로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쇼의 문을 연 여덟 벌의 싱글 및 더블 브레스트 수트는 1966년에 탄생한 르 스모킹을 동시대적 언어로 재해석한 결과물이었다. 어깨와 라펠은 더 넓고 견고해져 특유의 강인한 실루엣을 완성했다. 빈틈없는 로우 번 헤어와 짙은 버건디 립을 한 모델들은, 1971년 영화 <맥스 프레셔(Max et les Ferrailleurs)>의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를 떠오르게 했다. 로미 슈나이더는 당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한 아이코닉한 트렌치코트를 입고 독립적이고 현대적인 여성미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바 있다.
명료한 테일러링은 혁신적인 소재와 만나 개성을 드러냈다. 전통적인 레이스에 실리콘을 코팅해 라텍스 같은 광택을 내는 신소재는 투명한 시스루 룩과 함께 노출과 절제의 미학을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지난 시즌에 선보인 나일론 트렌치는 가을의 무게를 담아 한층 묵직하게 업그레이드되었고, 80년대풍 오버사이즈 페이크 퍼 코트와 레이스 슬립의 믹스매치는 드라마틱한 볼륨감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컬러 팔레트는 블랙을 중심으로 초콜릿 브라운, 에스프레소, 토바코 등 깊고 어두운 톤의 레이어링을 통해 가을의 우울을 우아한 탐닉으로 승화시켰다.
과거 이브 생 로랑이 60년대 변혁의 시기에 르 스모킹으로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했듯, 안토니 바카렐로는 불안한 시대의 파고를 강인한 실루엣으로 정면 돌파한다. 노스탤지어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의 불안을 우아함의 동력으로 삼는 그의 방식은 지극히 생 로랑답다. 비극적인 세상 앞에서 안토니 바카렐로가 내놓은 답은 명확하다. 가장 어두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가장 날카롭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 영상
- Courtesy of Saint Laur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