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성장통의 기록, 26 SS 시몬 로샤 컬렉션

명수진

SIMONE ROCHA 2026 SS 컬렉션

대충 걸친 듯한 차림에 베개를 꽉 끌어안고, 입술을 앙다문 채 서 있는 소녀는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다. 9월 21일, 런던 패션위크 넷째 날에 공개된 시몬 로샤 2026 SS 컬렉션은 소녀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경계, 그 어색함과 설렘, 불안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시몬 로샤는 모린 프리리(Maureen Freely)의 에세이 ‘나의 드레스 리허설: 혹은 클라크 부인이 내게 바느질을 가르쳐준 방법(My Dress Rehearsal: or How Mrs Clarke Taught Me How to Sew)’과 포토북 ‘가장무도회에 들어서며: 열한 살부터 열네 살까지 소녀들(Entering the Masquerade: Girls from Eleven to Fourteen)’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어린 시절 장난삼아 입어보던 드레스, 학창 시절 첫 무도회, 그리고 서툰 사춘기의 순간들이 런웨이에 고스란히 펼쳐졌다. 쇼 노트에서는 이를 ‘도발적으로 유희적인 태도(a playful provocative stance)’이자 ‘어색한 순간(an awkward moment)’이라고 정의했다.

런웨이에 등장한 모델들은 인형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감정을 담아낸 소녀들이었다. 시몬 로샤의 시그니처인 크리놀린 스커트는 흘러내리는 브라렛 스트랩과 매치되어 불안정한 균형을 연출했고, 영국식 테일러링은 파스텔 핑크, 민트, 라임 등 사랑스러운 컬러와 어우러지며 대비를 이뤘다. 크리스털 귀고리와 티아라가 반짝였고, 아기자기한 새틴 장미 아플리케가 드레스 곳곳에 피어났다. 시스루 스커트와 그래피티 티셔츠, 영국 날씨를 상징하는 비닐 우비까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아름답게 믹스 매치됐다.

소재의 사용 또한 흥미로웠다.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샤와 오간자, 비닐 코팅 플라워 패턴, 퀼팅 패브릭 등 상반된 두께감과 무게감이 교차하며 시각적 긴장감을 유발했다. 액세서리 역시 시선을 끄는데 일조했다. 베개 모양의 실크 백은 유년기의 은밀한 안식처를 떠올리게 했고, 메리제인 슈즈와 함께 굽이 굵직한 클로그, 혹은 러프한 러버 부츠가 소녀의 ‘추구미’를 강조했다. 그 외에도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리본, 팔에 낀 과장된 플라스틱 팔찌, 길게 늘어진 초커가 룩에 한층 더 연극적인 긴장감을 부여했다. 모든 룩은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었지만, 동시에 관객을 매료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흔히 ‘성장’이라는 주제가 상투적이 되기 쉽지만, 시몬 로샤는 섬세한 디테일과 능수능란한 소재 선택,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시몬 로샤의 시그니처가 된 특유의 스타일링을 통해 그 위험을 가뿐히 피해갔다.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을 ‘성장통의 기록’이라 설명했다. 소녀 시절의 부끄러움, 자아를 찾는 어색한 몸짓,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옷으로 탐구하고자 했다고. 시몬 로샤가 풀어내는 ‘반항적 소녀’의 감성은 독보적이며, 반복해 보아도 결코 질리지 않는 힘을 가진다. 무엇보다 이번 컬렉션은 이전보다 감정적 깊이와 드라마틱한 긴장감에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사진
Courtesy of Simone Rocha, Instagram @simoneroch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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