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에 관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

이채민

래퍼 레디에 관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취하고 여자 앞에선 말도 잘 못한다. 하정우와 국밥을 먹는 게 소원이다. 그리고 “Are you Reddy!”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지겹다.

핑크색 줄무늬 티셔츠는 리버레이더스 by 하이드스토어, 베이지색 팬츠는 에르메스 제품. 목걸이는 본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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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ea> 잠을 별로 못 잤나? 어딘가 피곤해 보인다.
레디 지난주부터 중국 투어를 하고 어젯밤 한국에 들어왔다. 베이징, 상하이, 청도, 광저우 네 곳을 돌았다. 2년 전에는 G2, 팔로알토 형 등 같은 레이블인 하이라이트 식구들과 다녀왔는데, 단독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팬들이 한국말을 정말 잘하더라. 노래도 따라 부르고 후렴구 때는 떼창도 불러줬다.

거의 황치열 정도 인기인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고. 이제 막 중국에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사실 <쇼미더머니>가 끝난 지 2년이나 지나서 ‘티켓이 안 팔리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4개 도시가 다 매진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 큰 무대는 아니었고, 2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클럽이었다.

중국의 힙합 문화는 어떻던가?
현재 중국에서 하이어 브라더스라는 그룹이 대륙을 씹어먹고 있다고 들었다. 중국은 넓고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아무리 힙합이 인기가 없더라도 그 수는 대한민국 인구 정도 될 거다(웃음).

얼마 전 새 앨범이 나왔다.
그래서 홍보 활동차 이렇게 화보 촬영을 하고 있겠지(웃음)? 제목은 <Telescope>. 천체 망원경이다. 전 앨범은 <Universe>. 그것과 이어지는 연장선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주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천체 망원경이 떠올랐다. 트랙은 11개. 수란, 개코 형, 서사무엘, 팔로알토 형, 허클베리 P, 스웨이디, G2 등 다양한 뮤지션이 도와줬다.

앨범 발매에 앞서 ‘Track Suit’라는 곡을 선공개헸다. 아디다스의 트랙 슈트 라인을 염두에 둔 건가? <Universe> 앨범에 수록된 ‘Supreme’도 그렇고 뭔가 브랜드를 연상케 하는 제목을 짓는 게 독특하다.
사실 아디다스를 노리고 만든 곡은 아니다. 그냥 평소에 트레이닝복을 위아래 세트로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마침 <쇼미더머니>를 통해 그 브랜드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어 아디다스에 내가 만든 음원을 보냈다. 거기서도 마음에 들어 해서 뮤직비디오를 협업하게 됐다. 그래서 뮤직비디오 내내 아디다스 ‘풀 착장’ 차림으로 나온다(웃음).

좋은 브랜드와 협업하면 좋지만, 자칫하면 나이키를 등질 수도 있겠는데?
그래서 열심히 나이키를 입고 신고 있다(웃음). 한 가지 브랜드에 국한되는 건 싫으니까.

하지만 의류 브랜드에서 거액의 광고료를 주며 계약하자고 한다면?
그럼 1년 내내 그것만 입고 다녀야지. 아니다, 10년 계약하면 10년 동안 그것만 입을 생각도 있다(웃음).

타이틀곡이 ‘Peach’. 야하다. 가사도 그렇고.
“넌 나의 Peach, 돼줘 나의 빛이”. 후렴구가 예술이다. 마지막 부분은 ‘빛이’다, ‘Bitch’가 아니고(웃음). 무척 민감한 주제라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성에게 용기 있게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과 그 상황, 그녀의 모습을 복숭아에 비유해서 썼다. 2절은 수란 씨가 불렀다. 내 모습을 답답해하는 여자가 빨리 대시하길 바라는 속마음이 흐른다. 가사도 그렇고 파스텔 톤의 샤방샤방한 노래다.

뭔가 본인의 연애 스타일과는 정반대일 것 같은데.
아니다, 딱 내 모습이다. 이상하게 내 이미지가 여자도 많고 연애 고수, 바람둥이 이미지인데 정반대다. 여자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하고 쑥스러움이 많다. 그래서 이렇게 음원까지 발매하는 거다, 하도 억울해서!

수록곡 중에 애착이 가는 노래가 있다면?
‘Flamingo’. 피처링을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 형이 해줬다. 나는 학창 시절에도 개코 형 노래만 들을 만큼 팬이었는데 그런 우상과 같이 작업하게 될 줄이야. 형이 피처링을 승낙하고 가이드를 녹음해서 보내줬는데 정말 가슴이 터질 뻔했다. 그날 너무 좋아서 술까지 마셨다니까.

술을 잘 못 마신다고 들었다.
그날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특별히 마셨다, 맥주 한 잔(웃음).

만취했겠다. 그런데 노래 제목이 왜 ‘Flamingo’ 인가?
의외로 내가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 술을 못 마시니 술자리에도 잘 안 간다. 뭐랄까, <쇼미더머니>가 끝나고 <Universe>앨범을 내고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어떤 무리에도 섞이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래퍼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긴 하지만 사석에서 따로 보지 않는 그런 사이. 마치 하얀 백조들 사이에 핑크색 플라밍고가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외로운 남자의 모습이 녹아 있다.

피치 톤의 벨벳 톱과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피치 톤의 벨벳 톱과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앨범을 만들 때마다 나이를 먹고 당시에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라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매달 잡지를 만드는 사람도 그때그때의 느낌이 다르거든. 첫 앨범 <Hi-Life> 부터 지금까지 앨범을 낼 때마다 들었던 감정은?
처음에는 ‘멋있게 랩 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니 벽에 부딪치더라. <Imaginary Foundation>이라는 앨범을 내고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아니, 그때는 우울증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이랑 말하는 것도 싫고 작업도 안 되고 가사도 나오지 않았다. <쇼미더머니>를 준비하면서 조금씩 극복한 듯하다. 지난 <Universe> 앨범에는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다. 음악에만 집중해서 만든 첫 앨범이고 한동안 잘 풀려서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쇼미더머니> 이후에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고, 내가 변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심할 때였다. 화도 나고 속상한 감정. 그런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앨범이다. 이번 앨범은 그런 감정을 배제하고 그냥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캐주얼한 느낌으로 작업했다.

2013년에 첫 앨범을 발매했으니 음악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어떤가? 이 바닥을 좀 알 것 같나?
2, 3년 동안은 음악을 아예 모른 채 겉멋만 잔뜩 들었던 것 같다. 이제야 조금 ‘아, 음악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바닥’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을 소비하는 평균 나잇대가 점점 어려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10대가 좋아해주면 이슈가 되지만, 그만큼 유행을 좆는 것 같아서 아쉽다.

어떻게 보면 20~30대가 치열하게 사느라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CD, LP, 테이프를 들었던 세대에는 음악이 문화의 중심이었다. 테이프 늘어질 때까지 듣고 그랬으니까. 요즘은 출퇴근하면서 듣는 게 전부다. 집에서 따로 음악을 듣는 사람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요즘도 <쇼미더머니>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나?
엄청 많다. 지겨울 법도 한데 그때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대중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요즘 <고등 래퍼>가 그렇게 재미있더라.
오, 나도 꾸준히 챙겨 보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 정말 잘해서 가끔은 소름이 돋는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랩 하는 친구도 많더라.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잘하겠지. 한 우물만 꾸준히 파면 잘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음악이라는 게 희로애락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잖나.
하긴 그렇다. 내가 그동안 편집숍에서 일한 경험,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그림을 그린 것,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그런 것들이 거름이 되어서 가사를 쓰고 있으니까.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요즘 ‘먹방’에 빠져 있던데.
사람들이 내가 맛있게 먹는다고 해서 몇 번 찍어봤는데 내가 봐도 정말 맛있게 먹더라. 하정우 형님과 나란히 앉아서 국밥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다. <황해>처럼 김도 싸서 입에 욱여넣고(웃음).

마지막으로 ‘레디’라는 사람에 대해서 해명하고 싶은 게 있다면 속 시원하게 털어버리자.
‘Peach’라는 곡처럼 나는 여자도 잘 모르고 클럽도 가지 않는다. 요즘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제발 놀아라. 놀자. 제발 나와. 오늘은 네 날이야!”다. 요즘은 덜하지만 “레디는 멋만 부려. 옷만 좋아해. 근데 음악은 잘 못해.” 이런 인식도 심했다. 그건 음악으로 보여주면 차차 나아지겠지. 지금은 ‘일만 해야지’라는 생각에 작업실에서 살고 있다. 난 바쁘게 사는 게 좋다. 쉬고 싶지 않다.

더 많은 화보 컷은 더블유 5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패션 에디터
정환욱
포토그래퍼
조기석
박한빛누리
헤어&메이크업
구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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