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잠들지 않는다
올해는 모빌의 창시자라 알려진 예술가 알렉산더 칼더가 타계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의 숨결을 기억하고자 세계 각지에서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그의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개관한 미술관 ‘칼더 가든스’부터 올봄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까지. 이 선구적인 조각가의 열정은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2025년 가을 미국 필라델피아에 문을 연 미술관 ‘칼더 가든스(Calder Gardens)’의 기프트 숍은 화려하지만 정제된 작은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초기 와이어 조각품을 형상화한 아트 패션 레이블 롬 페이즈 오프(Rome Pays Off)의 화려한 티셔츠가 시선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140달러짜리 책 <체스 나이트메어>도 같은 진열대 위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커피 테이블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이 책은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칼더의 체스 세트 디자인과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협업을 조명한다. 책에는 다소 외설적인 드로잉도 실려 있는데, 이를테면 엉덩이를 드러낸 나이트를 더듬는 비숍을 그린 ‘A Bishop Forgets Himself(A Loose Bishop in Duchamp’s Hand)’, 1944년 목재로 만든 칼더의 체스 세트 프로토타입 이미지가 그렇다. 과장된 형태가 인상적인 파란색과 빨간색 체스 말들은 곧 복각되어 미술관의 기프트 숍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칼더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즉 자신의 작업을 기념하는 동시에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이 상황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말 그대로 20세기 미술의 거장인 그에겐 마냥 놀라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칼더는 추상의 선구자이자 모빌의 발명가로 언급되는 인물이며, 화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였고, 1960~70년대 도시 풍경의 배경이 되었던 거대한 공공 조각을 남긴 조각가였으니까.
칼더는 작업실에서 조수 없이 혼자 일했다. 제작에 도움을 받는 것은 초대형 조각품을 만들 때뿐이었다. 그는 약 1,800점에 달하는 독창적인 주얼리 작품을 만들었지만, 자체 라인을 개발하자는 티파니나 까르띠에의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칼더 재단의 회장이자 그의 손자인 알렉산더 S.C. 로워는 말했다. “끊임없이 다양한 제안을 받으셨죠.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든 게 아니면 흥미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렇다고 칼더가 마케팅의 힘에 무지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그는 브래니프 항공기의 외관 전체를 소용돌이치는 추상 패턴으로 뒤덮었는데, 항공사는 이 프로젝트를 ‘플라잉 컬러스(Flying Colors)’라고 명명했다. 또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를 위해 레이싱카 한 대 한 대를 직접 페인팅했으며, 이후 프랭크 스텔라,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등으로 이어진 유서 깊은 ‘아트 카’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렸다. 칼더는 대부분의 인터뷰를 고사했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일도 대체로 거부했다. 그는 이미 1931년에 자신의 작업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칼더는 문화적 아이콘이었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어딘가 수수께끼같은 존재로 남았다.

1976년, 그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20세기 미국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널리 사랑받아온 이 다작 예술가의 모습이 다시금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최근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열린 주요 개관 프로젝트들, 그리고 올해 4월 파리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예정된 대형 전시는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이 칼더가 그린 역동적 형태 속에서 의미를 찾고,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초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칼더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느껴지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안에는 끊임없이 채워지는 힘이 있고, 그 힘은 칼더라는 인물을 계속해서 미래로 불러들이죠.” 베르나르 아르노의 오랜 아트 조언자이자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프로그램 개발을 돕고 있는 장 폴 클라베리의 말이다.
올해 3월까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 <하이 와이어: 칼더의 서커스 100주년(High Wire: Calder’s Circus at 100)>은 파리에서 막 자리를 잡으려 애쓰던 젊은 예술가 시절의 칼더를 조명한다. 영상 자료를 비롯해 스케치, 손으로 인쇄한 초대장, 서커스 세계 전반에 대한 그의 폭넓은 관심을 보여주는 각종 아카이브 자료가 함께 전시된다. “관객들이 이러한 자료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고 싶었어요. 칼더의 서커스를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급진적인 퍼포먼스 아트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싶었죠. 1920년대에는 퍼포먼스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칼더는 이미 동시대 예술가들과 미술계 사람들을 위해 이런 작업을 시도했죠.” 이번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인 제닌 골드스타인의 설명이다.
한편 이번 전시에 맞춰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 애덤스 보디 아줄라는 한정판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컬렉션은 미술관 기프트 숍과 그녀의 브랜드인 보디(Bode) 부티크에서 판매된다. 브로치는 칼더의 작품 속 인물인 ‘벨리 댄서 파니(Fanni, the Belly Dancer)’와 사자 조련사 공연에 등장하는 사자를 모티프로 삼았고, 앤티크 모자 장식용 꽃을 수놓은 버튼다운 셔츠와 크로셰 스커트뿐만 아니라 칼더가 이동식 서커스 모형을 담아 다니던 여행 가방에서 영감을 받은 박스들도 만나볼 수 있다. “티셔츠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미술관 기프트 숍에 빠질 수 없는 굿즈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관람 경험에서 얻은 무언가를 간직할 수 있는, 좀 더 특별한 기념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칼더를 기리는 움직임은 연초인 1월에도 포착됐다. 파리에서 열리는 클래식 자동차 전시회 <레트로모빌(Rétromobile)>에서 그의 BMW 아트 카가 제작 50주년을 맞아 전시됐고, 앞서 말했듯 4월 16일에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칼더가 1926년 여름, 28세의 나이로 뉴욕을 떠나 영국 화물선을 타고 프랑스에 도착한 지 100년이 되는 해에 맞춰 기획되었으며,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유려한 곡선의 미술관 전 공간이 약 300점에 이르는 작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지난해 타계한 게리는 건물을 설계하던 당시부터 이 공간에 칼더의 작품이 놓인 모습을 종종 상상했다고 한다. “이 공간과 웅장한 분위기가 모두 칼더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이 건축물이 칼더와 대화를 나눌 것만 같다고 농담 같은 소망을 이야기하곤 했죠.” 게리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한 장 폴 클라베리가 말한다. “하지만 그 소망이 곧 현실이 됩니다.”
루이 비통 재단은 무용수들을 초청해 미술관 안에서 칼더의 작품에 반응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칼더의 ‘서커스(Cirque)’ 역시 파리로 옮겨와 전시되며, 제2차 세계대전 중 금속이 부족하던 시기에 제작된 섬세한 목조 조각 연작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s)’을 포함해 좀처럼 공개되지 않던 작품도 다수 소개된다. 칼더의 주얼리 작품과 더불어 만 레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그의 유명한 예술가 친구들이 촬영한 사진도 전시된다. 전시의 한 섹션은 1933년이라는 특정 해에 집중한다. 1933년은 칼더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간 때로,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을 장 아르프, 페르낭 레제, 호안 미로 등 파리 시절 교류한 예술가들의 작업과 나란히 선보일 예정이다.

칼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고, 1953년 루아르 계곡의 작은 마을 사셰에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작업했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문화와 깊은 유대를 형성했다. “칼더는 프랑스인에게 매우, 아주 익숙한 존재입니다. 분명 미국인이지만,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지냈기 때문에 그의 일부는 프랑스인이었다고도 할 수 있죠.” 장 폴 클라베리의 설명이다. 칼더는 원래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예술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예술가였고, 어린 아들을 모델로 삼아 작업하곤 했다. 조부인 알렉산더 밀른 칼더 역시 조각가로, 필라델피아 시청사 꼭대기에 서 있는 윌리엄 펜 동상을 제작한 인물이다. 칼더는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처음에는 회화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의 조형 언어가 결정적으로 형성된 곳은 파리였다. 비좁은 호텔 방에서 작업하며 철사를 재료로 실험을 거듭했고, 그것을 인간의 실루엣으로, 다시 기하학적 형태로 구부리고 비틀며 조각가로서의 고유한 목소리를 확립해나갔다.
“요즘은 아이들도 철사나 유리로 뭔가를 만들지만, 칼더 이전에는 이런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알렉산더 S.C. 로워가 뉴욕 첼시에 있는 칼더 재단 본부를 거닐며 설명한다. 칼더 재단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상업용 건물의 최상층에 자리하고 있다.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을 벗어나, 칼더가 의도한 그대로 작품이 움직이는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여기뿐이다. 산들바람에 흔들리거나, 지나가던 사람이 살짝 건드린 탓에 미묘하게 흔들리는 순간들 말이다. “미술관에서는 이런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거든요.” 로워는 매달린 모빌 하나를 조심스레 밀며 말을 잇는다. “이 작품들은 진동하고, 일종의 활동성을 지니고 있어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요.”

로워는 1987년에 칼더 재단을 설립했고, 2년 뒤에는 프랑스 사셰에 있는 칼더의 옛집과 작업실을 대중에 공개했다. 이후 프랑스 문화부와 협력해 ‘아틀리에 칼더’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두 명의 예술가를 초청해, 한 번에 석 달씩 거주하며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작가들은 작업실과 집, 시골에서 새로운 작업을 완성할 수 있는 생활비를 지원받습니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사라 제, 토마스 사라세노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루이 비통 재단 전시가 8월에 막을 내린 뒤에도 칼더를 기념하는 행사는 사셰 일대를 중심으로 계속된다. 루아르 계곡 곳곳의 샤토에서 미술관 전시가 열리고, 야외 조각 작품도 설치될 예정이다. 그렇게 칼더의 50주기는 프랑스 북동부에서 마무리된다. 그의 작업에서 퍼포먼스적 요소에 초점을 맞춘 마지막 전시가 퐁피두 센터 메츠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칼더의 방대한 작업 세계에 대해 장 폴 클라베리는 이렇게 말한다. “칼더는 정말로, 아주 독보적인 예술가입니다. 엔지니어로 출발했지만, 이후 균형을 탐구하고 공간과 가벼움의 감각을 실험하는 데 자신의 삶을 바쳤죠. 미술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 글
- JAY CHESH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