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 그리고 10년의 서사

권은경

‘문화예술은 성평등과 포용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불균형의 지대인가?’

이런 화두로 2015년 칸 영화제에서 출범한 케어링 그룹의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여성을 지지한다는 것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더블유>는 케어링과 칸 영화제가 쌓아온 10년의 서사와 빛나는 힘을, 칸에서 확인했다.

칸 영화제를 칸 영화제답게 만드는 건 이 영화제만의 어떤 뉘앙스다. 그건 이런 특징들에서 비롯될 것이다. 영화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성향, 영화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과 여유, 프랑스 남부 휴양지의 낭만, 그래서인지 영화제 중에서도 유독 축제적인 분위기···. 특히 배우들이 ‘팔레 데 페스티벌’로 향하는 레드카펫 신이나 정박된 요트들을 배경으로 패션을 뽐내는 순간은 칸 영화제만의 시그너처 같은 이미지다. 그리고 ‘칸의 여성들’이 있다. 5월 13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제78회 칸 영화제로 향하는 길에, 그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올 초 조직위원회가 영화제와 관련해 가장 먼저 발표한 소식은 쥘리에트 비노슈가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는 뉴스였다. 작년 그레타 거윅에 이어 연달아 여성이 심사위원장을 맡는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쥘리에트 비노슈와 더불어 프랑스의 자부심을 채워주는 또 다른 배우이자 발렌시아가 앰배서더인 이자벨 위페르는 2009년 칸 영화제 때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지금까지 칸에서 영화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의 작품은 세 편이다. 2023년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 2021년 줄리아 뒤쿠르노의 <티탄>, 1993년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 영화계에서 영향력 있는 감독의 성비와 황금종려상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셋’은 아쉽지만 의미 있는 숫자다. 최근 영화제의 행보를 감안할 때도 여성을 둘러싼 희망적인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움직이고 나아가는, 재능 있는 여성들이 칸에서 연대한 순간. 왼쪽부터 | 배우 셀마 헤이엑, 감독 카를라 시몬, 가야 지지, 니니아 튀베리, 마리아나 브레난드, 배우 니콜 키드먼, 감독 섀넌 머피, 아만다 넬 유, 마이살룬 하무드, 에바 트로비슈.

바로 이 지점에서 케어링(Kering)과 칸 영화제의 ‘궁합’은 탁월하다. 생 로랑, 구찌,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부쉐론, 포멜라토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럭셔리 그룹 케어링은 여성의 권익 신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케어링의 시선이 여성에게로 향하고, 문화예술 분야에 여전히 성별에 따른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점은 패션 산업계에 큰 귀감이 된다. 매거진 에디터로서 무엇보다 놀랍고 반가운 점은 케어링의 ‘실천적 태도’다. ‘문화예술은 성평등과 포용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불균형의 지대인가?’ 이런 생각으로 케어링은 2015년, 칸 영화제에서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을 출범했다. 영화계 내, 카메라 앵글 안팎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재능을 조명하겠다는 비전. 그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의 핵심은 상을 통해 각 분야에서 영감을 주는 이들의 영향력을 조명하고, 신예 여성 예술가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2015년 이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먼 인 모션’은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 분야로 확장하며 외연을 넓혀왔다.

케어링이 실천하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톱니바퀴처럼 무언가 딱 들어맞는 쾌감이 느껴진다. ‘우먼 인 모션 토크’는 칸 영화제 기간 동안 현지에서 진행되는 대담 형식의 토크 프로그램이다. 이 기간에 칸을 방문하는 영화인과 문화예술 분야의 훌륭한 인물이 많은 만큼, 선구적인 프로페셔널들이 모여 다양한 견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올해는 총 8개의 토크 세션이 있었다. 배우 니콜 키드먼을 비롯해 <페니키안 스킴> 팀과 레드카펫을 밟기도 한 샤를로트 갱스부르, <팬텀 스레드>의 비키 크립스, 경쟁부문에 <르누아르>를 출품한 하야카와 치에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조합, 배우 다코타 존슨과 프로듀서 로 도넬리 조합 등 여러 영화인이 자리했다. ‘우먼 인 모션’ 5주년을 기념하며 론칭한 ‘우먼 인 모션 팟캐스트’는 귀한 토론의 장이다. 제작사나 배급사 관계자, 감독, 평론가 등 영화 산업을 선도하는 여성들이 자기 경험을 들려주는 자리란 누군가 ‘판’을 깔아주지 않는 한 쉽게 접하기 힘들다. ‘우먼 인 모션’은 토크와 팟캐스트를 통해 다종다양한 여성 전문가들의 담론을 끌어내는 셈이다. 개개인의 살아 있는 이야기야말로 구체적인 데이터가 된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지지한다는 비전은 바로 그 구체성이 쌓여 실현될 수 있다.

하이라이트인 ‘우먼 인 모션상’은 영화계에 영감을 주는 상징적 인물에게, ‘떠오르는 신예상’은 신인 감독에게 안긴다. 10주년을 맞아 더욱 뜻깊은 올해 ‘우먼 인 모션상’의 주인공은 니콜 키드먼이다. 니콜이 2010년 제작사 블로섬 필름스를 설립해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지속해왔다는 점은 생각보다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듯하다. 그녀는 2017년 칸 영화제 70주년 특별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그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을 소개하며 업계 내 성 불평등을 지적하고, ‘18개월마다 여성 감독과 작업하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했다. 제작자이자 배우로서 그 약속을 여전히 실천하고 있는 니콜 키드먼이다. 신예상은 브라질 감독 마리아나 브레난드(Marianna Brennand)가 받았다. 아마존 정글을 배경으로 그동안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여성과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나스(Manas)>를 작년에 공개하고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제78회 칸 영화제의 온도가 한창 뜨거웠을 무렵인 5월 19일, 케어링과 칸 영화제는 칸 현지에서 ‘2025 우먼 인 모션’ 공식 만찬을 개최했다.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인물이 서로 연결되며 축하하는 시간이자, ‘우먼 인 모션’을 둘러싼 노력과 기대가 집결되는 자리. 이 만찬에서 올해 수상자들 시상도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 ‘우먼 인 모션’ 10주년을 통해 알게 된 재밌는 점 중 하나는, 니콜 키드먼이 처음 칸의 레드카펫을 밟게 해준 영화가 론 하워드 감독의 <파 앤드 어웨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한 1992년 당시 니콜 키드먼은 ‘키가 크고 빨강 곱슬머리를 가진 호주 출신 여배우’로 할리우드에서 막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디너에 앞서 수상 소감을 전한 니콜은 칸 영화제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법 같은 시간이 펼쳐졌어요. <파 앤드 어웨이>는 사실 영화제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작품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바로 이 칸에서 그 영화가 공개되었고, 영화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어요. 경쟁부문에 초청받든, 단순히 자신의 출연작을 보여주기 위해 참석하든, 그런 마법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칸 영화제입니다.” 이후 니콜 키드먼을 진정한 배우로 도약하게 만들어준 영화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투 다이 포>다. 니콜은 ‘야망에 불타는 기상 캐스터’ 캐릭터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했다고 평가받으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는 배우로 성장했다. 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그녀는 상업성과 작품성을 밸런스 있게 갖추며 승승장구하는 시대를 맞았다. “2017년 다시 칸에 왔을 때 ‘아, 여기서 다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기 전에 메릴 스트립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논의했거든요. 여성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에 출연하자는 것. 말로만 지지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해요. 저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죠. 18개월마다 꼭 여성 감독과 함께 작업하겠다고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 그녀의 모습은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고무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케어링이 ‘우먼 인 모션’ 10주년을 맞아 ‘2015년 이후 영화 산업 내 성평등의 변화’를 분석한 연구 결과는 살펴볼 만하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이자 다양성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스테이시 L. 스미스와 함께 진행한 연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 박스오피스 상위 100편 영화 중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은 비율은 32%에서 54%로 증가했다. 여성 주연 영화가 남성 주연 영화와 동등한 흥행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한 진전이지만, 많은 여성 캐릭터가 성 고정관념에 따라 묘사되고 있다는 점은 영화계의 여전한 과제로 남는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스크린에 등장한, 대사가 있는 배역 중 여성의 비율은 평균 32%에 불과하다. 이들 중 약 25%가 선정적인 의상을 착용했고, 또 다른 25%는 신체 일부가 드러난 모습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카메라 뒤편의 현실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이 많아진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 박스오피스 상위 100편 영화 중 여성 감독의 비율은 7.5%에서 13.6%로 증가한 수준. 주요 영화 시상식의 감독상 ‘후보’에서부터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여성 감독의 영화가 후보로 지명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
명할 여성 감독의 영화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케어링은 여성 예술인이 마주하는 여러 장벽 가운데 영화 제작을 위한 ‘자금 마련’을 주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마리아나 브레난드 감독이 받은 ‘떠오르는 신예상’을 통해 여성 창작자가 첫 장편영화를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이 상의 전통에 따라 마리아나는 작년 수상자인 말레이시아 감독 아만다 넬 유의 추천으로 선정되었으며, 차기작 제작 지원금 5만 유로를 받는다. 현재까지 총 11명이 수상자로 선정돼 23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만찬 자리에서, 케어링 회장 겸 CEO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çois-Henri Pinault)는 이렇게 스피치를 했다. “저는 한 젊은 여성 영화 제작자의 눈 속에서 빛나는 열정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사실을 그녀가 깨달았을 때죠. 오늘 이 무대처럼 무엇이 중요한지를 강조할 때 발휘되는 무대의 힘도 목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화제와 함께 여정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영화계 여성들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더욱 깊이 다짐하는 이유입니다.”

10년 동안 케어링은 칸 영화제와 아를국제사진전을 통해 16명의 여성에게 시상하는 것으로 경의를 표했다. 영화와 사진 분야에서 떠오르는 예술가 22명을 지원했다. 사진 분야 리서치 기반 프로젝트인 ‘우먼 인 모션 랩’을 마련했고, 100회 이상의 토크 및 이벤트, 38개의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녹음했다. 공식 만찬이 열리는 밤에는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조직위원장, 심사위원장은 물론, 수많은 이들이 함께하며 자리를 빛냈다.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그 일이 벌어지는 현지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더블유>는 케어링과 칸 영화제가 쌓아온 10년의 서사와 힘을, 칸에서 확인했다.

WOMEN IN MOTION TALK
with Nicole Kidman

5월 13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제78회 칸 영화제 동안, 케어링은 영화제의 중심 구역에 위치한 마제스틱 호텔에서 다양한 영화인의 값진 경험담을 듣는 토크 프로그램 8개 세션을 진행했다. 그중 올해의 ‘우먼 인 모션상’ 수상자인 니콜 키드먼과 <버라이어티>의 앤젤리크 잭슨이 나눈 토크 일부를 지면에 공유한다. 우리에게 오랜 시간 익숙한 니콜 키드먼이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그리고 이미 많은 트로피를 받아본 베테랑으로서, 영화계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들의 ‘기회’를 보호하고 격려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면 알수록 놀라울 뿐이다. 니콜 키드먼과 해리스 디킨슨이 출연한 에로틱 스릴러물, <베이비걸(Babygirl)>은 올해 안에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가치관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 니콜 키드먼.

<W Korea>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SAG, 에미, 8년 전 칸 영화제 특별상 수상까지. 이쯤 되면 당신의 트로피 캐비닛이 꽤 가득 찼을 것 같습니다.
Nicole Kidman 제가 이 영화제에 처음 온 지 어느덧 32년이 지났어요. 믿어지시나요? 그런데도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파 앤드 어웨이>로, 그다음 해에는 <투 다이 포>로 참석했죠. 아주 다른 두 작품이었고,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다양한 작품으로 이곳을 찾았어요. 이번에 ‘우먼 인 모션상’을 받아 영화 속 여성과 여성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하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2017년에는 무려 네 편의 영화로 칸 영화제에 참석하셨죠.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그해 소피아 코폴라가 <매혹당한 사람들>로 감독상을 수상했고, 저는 <킬링 디어>로 각본상을 수상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함께했어요. 좋은 한 해였죠. 이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그때 이안 감독도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고요.

2017년 칸 영화제에 단순히 작품을 들고 온 것뿐 아니라, ‘여성 감독과 18개월마다 한 편씩 작업하겠다’고 선언하셨어요.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실제로 27명의 여성 감독과 작업했고요. 처음 선언하실 때,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나요?
그저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당시엔 여성 감독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았고, ‘여성이 이걸 연출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어요. 고려할 수 있는 여성 감독의 수 자체가 매우 적었죠. ‘신인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라는 말도 자주 들었네요. 저는 그냥 ‘이게 내 방식이다. 내가 선택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멘토링하고, 보호할 거다’라고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여성 감독들이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보호막이 되어주고 싶었고,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걸 걸어야 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창작은 반복적인 과정이며, 때로는 박수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박수 받지 못했다는 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과정 속에 있다는 뜻이에요. 여성의 목소리, 특히 감독과 작가들의 목소리를 키워가는 긴 여정을 우리가 함께 지지해야 합니다. 저는 제 배우 인생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있어요. 변화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그 일을 하고, 그 자리에 나아가서 ‘저 여기 있어요. 당신의 영화에 출연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예산이 400만 달러밖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해낼 겁니다. 카린 쿠사마 감독과 <디스트로이어>를 작업할 때도 우리는 LA의 뒷골목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고군분투하며 촬영했고, 결국 해냈죠. 그런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말 그대로 ‘모션’을 취하고 계시네요. 누군가와 처음으로 작업한 후, 그 영화 덕분에 감독이 다음 작품을 맡게 되는 모습을 직접 볼 때. 그런 순간을 마주하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주 감동적이죠. 기회를 얻게 된 사람이 느끼는 그 감정을 지켜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그게 이 모든 일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의 이 시점에서, 그런 목적과 헌신이 있다는 것은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해요. 물론 저는 배우로서 좋은 역할을 찾고 있지만, 동시에 실험적인 작업도 원합니다. 틀에 갇히고 싶지 않고, 안전한 선택만 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계속해서 경계를 밀어붙이고 싶어요. 젊은 영화인들이 저에게 ‘함께 실험해보자’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의 창작 환경에서는,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주 거칠게 평가받기도 하지만, 그 평가와 비판을 기꺼이 감수하며 계속 나아가는 의지가 필요해요.

특히 여성들에게는, 바로 그 점이 카메라 앞이나 뒤에서 이 사이클을 계속 반복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일 듯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혹은 이런 경우도 있어요. 20대에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큰 찬사를 받았지만 40대가 되어 후속작이 없거나 작품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나는 끝난 게 아니에요. 제발 나를 계속 믿어주세요, 저에게 투자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들. 나이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아주 젊고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는 신예들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졌는데도 어쩐지 배제되고 더는 주목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계속해서 ‘당신에게는 두 번째, 세 번째 챕터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줘야 해요. 이처럼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이 존재하고, 저는 그 모두를 지지해요. 아마 이 자리에 함께한 많은 분도 같은 이유로 오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지길 원한다, 그리고 이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라는 마음이겠죠. 조금 전에 들었는데, 이번 칸 영화제에 마샤 실린슈키(Mascha Schilinski)가 연출한 작품이 상영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멋진 영화라고 들었어요. 이번 경쟁부문에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7편이나 된다니, 얼마나 놀랍고 반가운 일인가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게 된 감독의 작품이 이곳에서 주목받고, 우리 모두가 그 사람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이 영화제의 존재 이유이고,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일이라 생각해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은 앞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매혹 당한 사람들>로 감독상을 수상한 이야기와도 연결되네요. 칸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오스카나 에미상을 받는 쪽이 더 다양한 프로젝트로 이어지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많은 수상 경험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데 어떤 방식으로 발판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생각에 결국 중요한 건 ‘세상과 얼마나 연결되고 있느냐’예요. 요즘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이 정말 다양하죠. 제 최근 작품인 <베이비걸>만 봐도 의외로 틱톡을 통해 관객과 만났어요. 사람들이 그 영화를 알게 되고, 극장에 가서 보게
만든 주된 경로가 바로 틱톡이었어요. <베이비걸>이 그런 식으로 발견될 수 있었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물론 A24가 배급을 맡았지만,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엄청난 지지를 받았거든요. 사실 영화제가 시작될 때만 해도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베니스 영화제가 놀라울 정도로 우리 작품을 밀어줬어요. 미국 개봉을 5개월 앞둔 시점이었죠. 소셜미디어와 틱톡을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지지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고, 그게 실제로 사람들을 극장으로 이끌었어요. 이제는 작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견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요. 저는 언제나 새로운 지평과 방식에 열려 있습니다. 평소라면 접하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가닿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사운드 오브 폴링> 같은 작품이 영화제를 통해 세계 무대에 알려진다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상을 받았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지금 무엇이, 어디에서 들리고 있는가’예요. 이제는 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사람들도 더 열린 마음으로 ‘그거 보고 싶다’고 반응하니까요. 저는 그 점이 정말 흥미롭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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