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 않으면 불안한가요?
늘 일정이 꽉 찬 듯 행동하고, “요즘 너무 바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일이 많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쁘게 보이려는 강박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하죠. 현대사회에서 바쁨은 능력, 열정, 생산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반대로 여유는 게으름이나 무기력으로 오해받기 쉽거든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존감의 공백이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심리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쁨’이라는 명함

바쁨이 곧 유능함이라는 인식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입니다. 2016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과 유럽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공동 연구에서는 “타인에게 자신의 바쁨을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 참여자들은 바쁜 사람이 여유 있는 사람보다 ‘더 필요하고, 더 가치 있는 존재’라고 판단했죠. 이는 과거 귀족 계층이 여유로움을 드러내며 우아함을 강조했던 것과는 정반대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여유’가 아니라 ‘분주함’이 현대 사회에서의 사회적 명함처럼 작용하는 셈이죠.
이 때문에 우리는 종종 바쁜 일정을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여유가 있어도 이를 감추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특히 직장 내에서는 “요즘 너무 바빠 죽겠다”는 말이 일종의 방어적 자기표현으로 작동하죠. ‘나는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스케줄을 과시함으로서 안도감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유로움’이 주는 불안함

반대로 일이 없을 때 불안함을 느끼는 것 역시 흔한 현상입니다.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가치를 일의 양으로 측정하려는 경향이 강하기도 하고요. 특히 성취 지향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면 ‘할 일이 없으면 쓸모 없다’는 감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1976)》에서 “현대인은 자신이 하는 일로 자아를 정의하고, 일을 멈추는 순간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지적했죠. 즉, 우리가 바쁜 상태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고요하거나 한가한 상태를 견디기 어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런 심리는, 일종의 불안 회피 전략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외로움, 정체성 혼란, 자존감 부족을 마주하기보다는 바쁜 일정 속에 자신을 묻어버리는 것이죠. ‘나는 이 집단에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여유를 갖는 법을 잊어버리는 셈입니다.
진짜 유능한 사람은 ‘여유’를 설계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과 유능하게 일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오히려 같은 일정 속에서 여유와 멈춤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버드의 경제학자 존 로빈슨(John P. Robinson)은 “계획된 여유는 오히려 업무 효율성과 삶의 만족도를 모두 높인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일과 중 15~30분의 짧은 휴식 시간을 정기적으로 확보한 사람들은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에서 평균보다 높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여유는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며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진짜 유능한 사람은 일을 많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시의적절하게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이죠. 그리고 그 시작은 ‘잠시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너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바빠”라는 말 대신, “좋아. 잘 지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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