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과 슬롬의 미니시리즈

권은경, 김현지, 신지연

두 주인공의 미니시리즈

보컬리스트 수민, 프로듀서 슬롬은 함께 작업한 앨범 <미니시리즈>와 <미니시리즈 2>에서 사랑의 여정과 감정의 단면을 보여준 바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음원이 아닌 무대로 접하면 어떤 경험이 될까? 제17회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듀오로 공연하는 수민과 슬롬에게 작업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었다.

슬롬이 입은 바인딩 장식 블레이저, 셔츠, 팬츠, 앵클부츠는 맥퀸 제품. 수민이 입은 시폰 소재 톱, 블레이저, 팬츠, 플랫폼 슈즈는 맥퀸 제품.

슬롬은 작년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 자이언티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했죠? 그때 수민이 깜짝 등장해 ‘왜, 왜, 왜’를 불렀어요. 올해 서재페의 수민&슬롬 듀오 공연을 예상하면, 작년 그 무대가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슬롬 작년에 저는 DJ 세션이라는 명목으로 무대에 올라갔어요. 자이언티 형은 저와 수민이 <미니시리즈 2> 앨범 작업 중인 걸 알고 있었으니, 고맙게도 앨범 수록곡을 미리 선보일 자리를 만들어준 거죠.
수민 저는 작년 서재페 때 멜로망스에서 건반을 치는 정동환의 공연에서도 노래를 불렀어요. 저한테 디바들의 음악을 그렇게 시키더라고요(웃음). 이번에는 저희가 평소 서재페 관객으로서 공연을 즐긴 경험에 맞춰, 한 네 곡 정도는 재즈적인 요소를 주력으로 보여주게끔 준비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저희가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를 틀면서 공연한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더 유기적인 라이브 연주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슬롬은 프로듀서로서 수민을 ‘이 시대의 나미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 있죠. 수민이라는 보컬리스트에게서 디바적인 요소를 찾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슬롬 그것이 수민이니까요. 디바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한마디로 ‘성대 퍼포먼스’를 근거로 활동하는 솔로 여가수라고 저는 이해하거든요. 수민이 거기에 적합한 아티스트 중 하나지 않나 싶어요.
수민 디바의 원론적인 해석은 그게 맞지만, 이런 얘기를 듣는 저는 너무 부끄럽죠. 휘트니 휴스턴처럼 애티튜드까지 디바다워야 그렇게 불릴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저는 해당 안 되는 듯해요.

수민&슬롬의 앨범 <미니시리즈 2>가 나온 지 벌써 1년 가까이 됐네요. 2021년의 <미니시리즈>가 사랑의 설렘을 이야기했다면, <미니시리즈 2>는 이별에 초점을 맞췄죠. 그런 콘셉트가 나오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수민 사실 콘셉트를 일부러 잡고 만든 게 아니라, 삶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미니시리즈>를 낸 이후, 일단 각자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겪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슬롬 바쁘게 살면서 서로 활동은 체크하는 정도로만 지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다시 작업해보자는 얘기가 나오면서 한두 곡씩 작업하는데,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수민의 목소리가 처연하게 느껴지는 멜로디와 화성을 집어넣고 있었고요. 그쯤 되니까 ‘나는 이런 게 이렇게 느껴지더라. 이별이, 사람 마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더라’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됐어요. 어렸을 때 느낀, 불타오르고 뭔가 아쉬워서 미칠 것 같던 그 기분이 지금은 애정의 일종으로 보인다든지요.

더블브레스트 재킷, 셔츠, 타이, 팬츠는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안경은 발렌시아가 제품.

사랑의 설렘도 강렬하지만, 이별은 그보다 더 격렬한 감정이잖아요. <미니시리즈 2>는 이별을 다루는 앨범인데도 오히려 전보다 여유로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민 시간이 저희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미니시리즈>에는 저희가 반짝반짝 빛나기 위해 애쓴, 그 당시에만 할 수 있는 패기가 많이 담겨 있어요. 그게 각자 좋은 의미로 잘 마모된 후의 결과가 <미니시리즈 2>인 거죠. 사실 저희 성향이 서로 달라요. 다만 좋아하는 아이콘들이 비슷한데, 그들의 특징이 저희 앨범 서사에 잘 반영됐어요. <미니시리즈 2> 때는 뮤직비디오도 안 만들었어요. 그저 고요하고 힘 있게 콘텐츠에 집중하고 싶었던 마음이 비슷했나 봐요.

두 분이 좋아하는 아이콘들의 특징을 앨범에 반영했다면, 어떤 점을 말하나요?
수민 예를 들어 엠플로나 사카모토 류이치의 예전 앨범을 생각하면, 그 작품들의 잔상은 굳이 어떤 동적인 영상 콘텐츠가 없어도 사진 몇 장만으로 1년, 2년, 몇 년이 갈 수 있거든요. 저희 둘 다 그런 에너지를 굉장히 좋아해요. 어떻게 보면 옛날 선배들의 작법을 저희도 구현해보려 한 거죠. 별다른 말 없이도 둘 다 오케이, 오케이 하면서 진행됐고요.
슬롬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확실히 받아본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게 이런 작법이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요즘에도 동시대성이 생기는구나’ 정도의 느낌을 넘어서, ‘내가 진짜로 좋아하고 즐겨서 사람들한테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면 뭘 시도해도 되겠구나’ 같은 기분이었어요. 앞으로는 앰비언트 음악이나 아예 다른 종류의 사운드를 만들고, 그게 시장성이 없더라도 더 자신감 있게 창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카드 소재 재킷, 시스루 레이스 톱, 스커트, 슈즈는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제품.

감정은 추상적인데,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이죠. 두 분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을까요?
수민 하나로 국한할 수는 없어요. 저는 가사랑 멜로디를 거의 동시에 만들고, 심지어 편곡하면서 녹음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요. 또 제가 작업대에 앉아 있는 시간은 제가 가진 기술을 꺼내놓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예전 기억을 잘 상기하고, 그 저장 장치에서 찰나의 기억이나 분위기 같은 걸 다시 불러오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죠. 그러니까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너무 중요해요.
슬롬 저도 비슷해요. 평상시에 혼자 있을 땐 대체로 이어폰을 끼고 살아요. 그리고 유치하게 ‘야경을 보며 꼭 들어야 하는 노
래’, ‘혼자 밤에 운전할 때 듣는 노래’, ‘차 막힐 때 듣는 노래’ 등의 카테고리가 있어요(웃음). ‘하필 헤어지고 운전하면서 집에 가는 날 들었던 노래’ 뭐 이런 것들을 꺼내면서 작업한 적도 있죠. 참고로 야경을 보면서 듣는 노래로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Angela’라고, 브러시 드럼으로 스네어를 긁는 게 잘 표현된 곡인데, 그게 참 슬픕니다.

<미니시리즈>와 <미니시리즈 2>의 음악은 시대적으로도 다르다고 느껴요. 전편이 1990~2000년대에 주목했다면, 2에서는 보다 예전 음악을 연상시키거든요.
슬롬 제 변화와도 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럴 거예요. ‘보통의 이별’이라는 곡에서 저희는 어쿠스틱함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그런 느낌을 한국어 가사로 잘 활용한 음악이 1980년대와 그 이전의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자음악에 실제 악기가 혼용된 외국향의 편곡, 하지만 거기에 가사는 굉장히 한국적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어떻게 보면 좋은 의미의 진정한 ‘K’같았어요. 한국의 좋은 혼용 사례라고 생각한 거죠. 당시 사람들은 그런 노래를 들으면서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 공중전화로 갔을 거잖아요. 그리고 지금보다는 세상과 단절된 청춘이었을 테고요. 그런 요소들을 한국 대중음악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준 선배님들에게 감사했고, 거꾸로 그분들은 뭘 듣고 자랐을까를 생각하면서 찾아나가는 계기가 됐어요. 다만, 특별히 어떤 시대를 노리고 만든 건 아니에요.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엔 그 정도 시대 에 도착해 있었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수민&슬롬이 함께 만든 그 두 앨범의 큰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슬롬 수민의 목소리 차이입니다. 목소리가 낮아졌어요. 포먼트라고 하거든요. ‘개인사’라는 곡이 2020년에 녹음한 것인데, 다른 곡들이랑 비교해서 들어보면 훨씬 명랑하고 ‘깨발랄’한 이미지가 있어요. 거기서 10 정도의 포먼트를 100% 정도까지 낮추면 <미니시리즈 2>에 실린 톤이 됩니다. 자넷 잭슨의 목소리를 낮추면 마이클 잭슨이 되듯이요.
수민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였어요. 멜로디나 가사를 만들 때 인스트루멘탈의 질감이나 색채, 전체적으로 갖고 있는 높낮이를 고려하면서 보컬 프로덕션을 구사하거든요. 축축한 음악이 오니까, 보컬인 저도 축축한 걸 하는 거죠.

수민이 입은 빨간색 트렌치코트는 구찌 제품. 슬롬이 입은 회색 폴로셔츠와 아우터는 구찌, 안경은 버버리 제품.

<미니시리즈 2>와 관련된 몇 안 되는 유튜브 콘텐츠 중 하나가 ‘미니시리즈 아카이브’ 채널이었어요. 그 콘텐츠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슬롬 사실 원래 시작은 뮤직비디오를 위한 거였어요. ‘신호등’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마침 수민이 폴란드에 오랫동안 다녀올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수민에게 캠코더를 하나 주고, 저도 하나 갖고 있으면서 두 명의 다른 생활을 틈틈이 찍어보려 했죠. 남자와 여자의 멀어진 거리와 삶을 화면 분할로 보여주는 게 콘셉트였어요. 그런데 촬영본은 전부 폐기했어요. 진짜 ‘개판’이더라고요. 그러다가 ‘일본에 앨범 아트워크를 찍으러 갈 때 다시 캠코더를 가져가서 브이로그라도 찍어보자’라고 했던 게 점점 눈덩이가 커졌어요.

그 콘텐츠에 ‘<미니시리즈 3>도 만들어달라’ 하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한번 상상해볼까요? 두 사람이 다시 함께 앨범을 만든다면, 세 번째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수민 일단 큰 틀에서는 사랑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사랑의 형태가 바뀌는 느낌이죠. 사랑이라는 소재 안에서도 모순이나 어폐가 담길 수도 있고, 쓸 게 너무 많아요. 아니면 강아지나 친구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겠죠.
슬롬 미니 리퍼튼처럼, 수민의 ‘Lovin’ You’ 만들어보겠습니다. 딸한테 하는 사랑 이야기.

포토그래퍼
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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