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앤코와 엘사 퍼레티, 영원의 동행

신지연

티파니앤코와 엘사 퍼레티의 50년 간 이어진 아름다운 여정

티파니앤코(Tiffany & Co.)는 2024년 주얼리계의 전설이자 브랜드와 함께 빛나는 역사를 쓴 엘사 퍼레티(Elsa Peretti)와의 50주년을 기념하며, ‘엘사 퍼레티™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그들의 아름다운 여정을 돌아보며, 주얼리 분야를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그녀의 삶과 그 찬란한 발자취를 들여다보았다.

20세기 주얼리 역사, 그리고 최고의 주얼리 디자이너를 이야기할 때 엘사 퍼레티를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티파니앤코와 본격적인 파트너십을 맺기 3년 전인 1971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스타다운 존재감을 드러낸 유명인이었다. 취향도 패션 센스도 남달랐던 그녀는 디자이너 홀스턴(Halston)의 타이다이 카프탄을 착용하고,안젤로 동히아(Angelo Donghia)의 장의자에 걸터앉아 삶의 철학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자신감은 아주 커야 하지만, 자기 타협은 극히 작아야 해요.”

그녀의 대답에서 엿볼 수 있듯 당차고 자신감 넘친 그녀의 삶. 로마의 대저택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는 부유하고 보수적인 가족들의 기대를 뒤로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21세에 집을 떠났다. 경제적 지원은 끊기고 직접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굴하지 않은 그녀는 예비 신부 학교에서 언어와 스키 기술을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었고, 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모델 일을 시작했다. 이맘때 바르셀로나 예술가 및 지식인들의 모임인 ‘라 고시 디빈(La Gauche Divine, 신성한 좌파)’ 그룹과 어울리기 시작했는데, 사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모임원들과 함께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2000년 난도 & 엘사 퍼레티 재단(Nando and Elsa Peretti Foundation)의 총괄 이사인 스테파노 팔룸보(Stefano Palumbo)는 그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여성이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거나, 결혼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녀는 달랐죠.”

1968년, 모델 일을 하다 뉴욕으로 진출하게 된 퍼레티.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뉴욕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델은 금발 여성이었어요. 크고 파란 눈의 어린 모델을 선호했죠. 그에 비해 저는 키가 너무 크고, 너무 까무잡잡하고, 심지어 마른 편이었어요. 모든 면에서 ‘너무’ 그 자체였죠”라고 말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홀스턴(Halston),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같은 톱 디자이너들에게 사랑받는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퍼레티의 최종 목적지는 모델이 아니었다. 당시 주얼리 디자인에 관심이 있던 그녀는 주얼리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조르지오 디 산탄젤로(Giorgio di Sant’Angelo)의 런웨이 쇼를 위해 즉흥적으로 디자인한 꽃봉오리 화병 모양의 실버 펜던트가 뜻밖의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주얼리 디자인 공부에 몰두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실버’ 주얼리였다. 당시 실버는 파인 주얼리 시장에서 품위 없는 것으로 여겨져 이를 활용한 아이템을 내세우는 건 꽤나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고 실버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화려하고 격식을 차린 보석이 마치 거들과 파티 장갑처럼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과감하게 밀어붙인 것. 자신이 만든 실버 주얼리의 장점으로 그녀는 편안함을 제시했다. 그녀의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쉽게 착용할 수 있었고, 스웨터나 머리카락에 걸릴 만한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었으며, 물을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이를 착용한 채 잠자리에 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그녀의 한마디가 더해지자 실버 주얼리는 축복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특히 엘사 퍼레티는 주얼리가 남성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여성이 본인을 위해 직접 주얼리를 구매하기를 바란다며, 자신이 디자인하는 이유는 ‘일하는 여성을 위해서’라고 자랑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동시대 여성들은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녀의 메시지에 응했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실버 주얼리를 부상시킨 퍼레티는 1971년 코티 어워드(Coty Award) 주얼리 부문을 수상했고,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내에 브랜드 공간을 마련하는 성과까지 이뤘으며,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실버 주얼리를 판매한 적이 없던 티파니가 그녀를 통해 다시 실버 주얼리를 찾게 만들었다.

퍼레티의 삶에 있어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티파니와의 만남에 결정적 가교 역할을 한 디자이너 홀스턴(Halston)이다. 모델이던 시절부터 쌓아온 우정은 그녀가 주얼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더욱 긴밀해졌다. 1970년대 초 디자이너 홀스턴 팀 ‘홀스터네트(Halstonettes)’의 일원이 된 퍼레티는 본격적으로 주얼리 세계에 발을 들였고, 열정적으로 그를 위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홀스턴이 향수 론칭을 앞두고 향수 보틀 디자인을 그녀에게 부탁했는데, 그녀가 디자인한 우아한 곡선미를 지닌 호리병 모양 향수는 당시 샤넬 넘버°5 다음으로 많이 팔린 향수로 등극했다.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방대해 다 담을 수 없지만, 그녀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홀스턴에 관한 이야기는 넷플릭스 시리즈 <홀스턴(Halston)>에서 자세하게 엿볼 수 있다. 여담으로 퍼레티 역할을 맡은 배우 레베카 다얀(Rebecca Dayan)은 그 시절 퍼레티를 연기하며 그녀를 이렇게 표현한다. ‘자신만의 무대를 끌어나갈 자격이 있는 인물’.

1974년, 그녀가 티파니 하우스에 합류한 기념비적인 해이다. 이들의 만남으로 주얼리 세계에는 거대한 혁신의 바람이 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엘사 퍼레티(Elsa PerettiⓇ) 라인을 출시했고, 첫 출시일에 모든 디자인이 완판 행렬을 이루며 본인의 입지, 명성을 더욱 견고히 했다. 퍼레티의 디자인 여정은 여느 하우스 소속 디자이너들과 달리 매우 독립적이고 개인적이었지만, 그녀가 선보인 유기적인 실루엣의 피스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클래식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그녀의 디자인은 훗날 티파니 고객들이 오늘 날에도 깊이 사랑하는 고유의 타임리스 무드의 시작점이 되었다. 팔롬보는 말한다. “엘사 퍼레티는 ‘주얼리는 패션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새 트렌드가 떠오른다고 해서, 기존 아이템을 바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죠.” 그녀의 대표작인 본 커프(Bone Cuff)가 이를 대변하는 예이다. 퍼레티가 어린 시절 방문한 이탈리아 로마의 카푸친(Capuchin) 지하 묘지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카사 밀라(Casa Mila)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커프는 손목뼈의 자연스러운 형태와 굴곡을 그대로 반영했다. 인체공학적 특징을 잘 살린 이 제품은 뛰어난 착용감과 타임리스, 즉 유행을 타지 않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주얼리의 고유함을 중시한 퍼레티. 자신의 대퇴골을 바탕으로 제작한 본 캔들스틱(Bone Candlesticks)은 지금까지도 더없이 현대적이며,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에게 영감을 받은 ‘오픈 하트(Open Heart)’ 펜던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선보인 컬렉션 이야기에 ‘다이아몬드 바이 더 야드(Diamonds by the Yard)’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름에서 드러나듯 원하는 길이(yard)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주얼리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했다. 은은한 광택이 매력적인 체인 주얼리가 주를 이루는 이 컬렉션은 그녀의 할머니가 자주 착용하던 다이아몬드 주얼리에서 영감 받았다고 한다. 이 시도는 후에 다이아몬드가 패션에서 활용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다이아몬드를 세팅하면 빛이 다르게 반사돼요. 빗방울 같기도,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해요. 아주 모던하죠.”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주얼리를 패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홈 컬렉션 영역으로 확장하며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과 도전 정신을 보여주었다.

어느덧 50년이 넘어선 시점, 퍼레티와의 오랜 우정을 기념하며 티파니가 선보인 특별한 리미티드 컬렉션에서는 기존의 클래식 아이템과 더불어 위에서 설명한 퍼레티의 아름다운 주얼리 컬렉션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이 컬렉션에는 스페인어로 양귀비를 의미하는 ‘아마폴라(Amapola)’에서 이름을 딴 다이아몬드 파베 아마폴라 브로치와 라지 사이즈의 18K 옐로 골드 하이 타이드 이어링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아이템들은 각각 블랙 실크 플라워 장식과 잔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유려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빈(Bean), 오픈 하트(Open Heart), 보틀(Bottle) 컬렉션 또한 그녀의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다시금 우리 앞에 등장했다.

뉴욕 패션 공과대학(FIT)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엘사 퍼레티 주얼리 디자인 석좌 교수직’이 신설되었고, FIT는 그녀에게 명예 미술 박사학위를 수여했으며, 티파니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 내에 위치한 그녀의 전용 주얼리 쇼케이스는 브랜드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지정되었다. 1971년 코티 주얼리 어워드, 1981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명예 펠로우, 1996년 CFDA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 2019년에는 피렌체 비엔날레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생공로상까지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인정받은 엘사 퍼레티.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 티파니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그녀의 디자인은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및 휴스턴 미술관 등이 영구 소장품으로 지정해 보관하고 있다.
2021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한 그녀. 티파니 하우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가족과도 같았던 퍼레티는 여성이 주얼리를 착용하는 방식과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고, 주얼리의 영역을 예술의 영역으로 넓힌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그녀가 남긴 유산은 앞으로도 수많은 세대에게 영감이자 원동력이 될 것이다. 찬란했던 그녀의 생애를 돌아보며 경의를 표한다.

NANCY MACDONELL
일러스트레이터
MATTHEW CRAVEN
사진
COURTESY OF ELSA PERETTI FOR TIFFANY &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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