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가 이야기하는 온전히 ‘나’를 보여주는 공간, 집

전여울

‘집에서의 생활’을 테마로 한 특별한 전시 <이케아+>가 펼쳐졌다

지난 2월 29일부터 3월 3일까지 파리에서는 ‘집에서의 생활’을 테마로 한 특별한 전시 <이케아+>가 펼쳐졌다. 전시 <이케아+>를 통해 이케아는 집이란 온전히 ‘나’를 보여주는 공간임을 다시금 이야기한다. 디자인, 예술, 패션, 음악, 대담, 미식을 결합해 풍성하고 입체적인 대화의 장을 펼친 그 현장을 찾았다.

애니 리버비츠가 촬영한 인물 사진 컬렉션. 각각 일본 후쿠오카에 거주하는 도예가, 베를린에 터전을 잡은 한 가족의 집 안 풍경을 담아냈다.
애니 리버비츠가 촬영한 인물 사진 컬렉션. 각각 일본 후쿠오카에 거주하는 도예가, 베를린에 터전을 잡은 한 가족의 집 안 풍경을 담아냈다.

파리 컬렉션 기간, 빅 쇼가 열리는 튀일리 콩코르드 광장의 소란에서 벗어나 그 동쪽으로 향하면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비가 반기는 바스티유에 닿는다. 꽤 이른 시간에도 러닝하러 나온 파리지앵들이 목격되는 지역. 레트로한 콜라텍과 베트남 요리점, 타투 숍들이 컬렉션의 법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평온히 줄지어 있는 곳이다. 컬렉션의 시계와는 사뭇 다른 속도로 움직이던 바스티유가 순식간에 북새통을 이룬 것은 2월 29일부터 나흘간 이케아가 디자인, 예술, 패션, 음악, 대담, 미식을 결합한 전시 <이케아+>를 개최하면서다. ‘No Invitation Required(초대장 필요 없음)’를 내건 전시장은 4일 내내 자정 가까이 불을 밝혔고, 800여 명의 인파가 몰려든 날도 있었다. 로컬 커뮤니티의 색깔이 짙은 지역에서 이벤트를 개최하고 서서히, 이내 파급적으로 거리를 점령하는 방식에선 어쩐지 ‘이케아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 세계 사람들의 48%는 미디어가 내 집에서의 생활을 반영하지 않는다.’ 이 한 줄은 어쩌면 <이케아+>의 출발점이었다. 이케아는 2014년부터 매년 전 세계 사람들의 집에서의 생활을 연구해 ‘라이프 앳 홈 보고서(Life at Home Report)’를 발표해왔다. 지난 10년간 37개국에 걸쳐 3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온 만큼, 이는 생활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구 조사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축적한 데이터 중에서도 이케아가 특히 주목한 건 2022년 보고서에 나타난 한 인사이트다. 전 세계 약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실제 집에서 보내는 자신의 생활과 미디어가 이를 표현하는 방식 사이에서 괴리를 느낀다는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영국에 거주하는 한 인물은 말했다. “저는 제 생활이 미디어에 반영된다고 전혀 느끼지 않아요. 40대 싱글 게이 남성인 저는 광고에서 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집은 ‘나’의 또 다른 인격이라 불릴 만큼 온전히 한 사람을 대변하는 공간이지만 미디어는 사회가 ‘이상적’이라 여기는 집의 형태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케아에 이런 의문점을 던졌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이케아+> 전시, 이케아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직접 찾아가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진으로 기록했다. 세트나 스타일리스트는 없고 실제 사람과 실제 생활만 있을 뿐인 현장을 담아내는 프로젝트. 여기엔 리처드 닉슨이 백악관을 뒤로한 채 쓸쓸히 사임하던 풍경, 나신의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마지막 포옹을 나눈 장면을 포착한 <롤링 스톤>의 커버 사진 등을 탄생시킨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애니 리버비츠(Annie Leibovitz)가 동행했다.

<이케아+> 전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잉카 그룹의 마르쿠스 엥만이 리버비츠와 포즈를 취했다.
멘티와 이야기를 나누는 애니 리버비츠.

이번 <이케아+> 전시장에 들어설 때마다 마주한 3개의 거대한 비디오 채널에선 애니 리버비츠가 독일, 인도, 이탈리아, 일본, 스웨덴, 영국, 미국 7개국에 사는 25명의 집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사진이 종일 상영됐다. 런던 레아 강둑에 배를 정박한 채 오프그리드(Off-Grid)적 삶을 살아가는 카자흐스탄 출신 청년 아르슬란 주누스(Arslan Zhunus), 40여 명이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스웨덴 말뫼의 공동 주택 루드비그 하브(Ludvig Haav)의 사람들, LGBTQ+ 커뮤니티 활동가로 현재 2명의 파트너와 지내며 폴리아모리를 실천 중인 스톡홀름의 칼 오레(Cal Orre) 등. 어떠한 여과 없이 포착된 사진들에선 25명이 집이라는 공간에 만들어낸 그들 저마다의 작은 문명이 엿보인다. 25명의 집들은 단 하나도 같은 꼴이 아닌데, 이렇듯 ‘집’의 표준을 재정의하는 이 프로젝트는 마치 세상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안적 생활 방식이 있음을 보여주는 듯도 했다. “25장의 사진으로 전 세계를 대표하는 것을 찾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이 사진들을 보세요. 아름다운 다양성이 깃들어 있지 않나요?” 이번 <이케아+> 전시장에서 만난 마르쿠스 엥만(Marcus Engman)이 말했다. 그는 이케아 판매 채널을 소유, 운영하는 12개 기업 중 하나인 잉카 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시 <이케아+>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온라인 음악 방송국 린스에서 선보인 공연으로 한층 분위기가 달아오른 파티 현장.
온라인 음악 방송국 린스에서 선보인 공연으로 한층 분위기가 달아오른 파티 현장.
약 800여 명의 인파가 몰린 파티장.

살아가는 이의 취향과 가치관이 그대로 반영되는 집, 이를 어떤 프레임으로도 가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이는 <이케아+>의 키워드는 ‘자기표현’일 테다. 이케아가 주목한 ‘자기표현’ 주제는 이번 전시에서 비단 애니 리버비츠와 함께한 인물 사진 컬렉션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특히 파리 패션위크가 열리는 기간인 만큼 이번 전시장에선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패션 교육 프로그램 ‘카사 93(Casa 93)’과의 협업도 소개됐다.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집’을 주제로 카사 93의 신진 디자이너 6인이 완성한 6개의 설치작은 패션과 리빙의 근사한 교집합을 보여줬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신체 경험이죠. 또 패션은 나만의 퍼스낼리티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이고요. 과거엔 사람들이 패션으로서 자기표현을 하려 했다면, 이젠 집을 통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시대가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즉, 집이 곧 그 사람의 선언(Statement)인 셈이죠. 이처럼 패션과 리빙은 흥미로운 교집합을 그립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둘의 만남을 제시하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마르쿠스 엥만의 말이다. 한편 이번 전시장에서는 파리 로컬과 스킨십해 완성한 이색적인 프로그램도 눈에 띄었다. 정제된 프랑스의 식문화에서 착안해 이케아 최초로 방문자에게 테이블 서비스를 제공한 전시장 내의 비스트로가 대표적으로, 스웨덴식 미트볼인 파손 보우르구잉논네, 플랜트독 등의 메뉴를 선보이며 이케아식으로 재해석한 프렌치 다이닝을 제시했다. 나아가 음악도 빠질 수 없는 법, 파리의 온라인 라디오 방송국 린스(Rinse)와 손잡고 전시가 진행되는 나흘 동안 아네타(Anetha), 사이러스 고버빌(Cyrus Gobervile) 등 30명의 디제이 및 뮤지션이 공연을 진행했고, 이는 고스란히 린스(rinse.fm.) 채널을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됐다.

한편 대형 창고를 연상시키는 전시장 2층, 네덜란드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로 컬러(Raw Color)’와 협업해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한 이케아의 새로운 컬렉션 ‘테삼만스’는 마치 자기표현, 재현, 다양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된 장소 특정적 작품처럼도 다가왔다. 이번 테삼만스 컬렉션의 핵심은 ‘컬러’. 로 컬러는 색상이 공간과 정서를 변화시키는 방식에 주목해 가구, 텍스타일, 장식품으로 구성된 18개 제품을 완성했다. “요즘 시대에 ‘감정’은 과소평가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늘 우리는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죠. 하지만 불꽃 같은 감정만큼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없어요. 그리고 저는 색상이 이러한 감정을 일으키는 가장 강렬한 시각적 도구라고 생각하고요. 집을 무지갯빛의 다채로운 컬러로 물들이는 것, 그를 통해 비로소 집에서 감정적으로 숨 쉬는 것. 어쩌면 테삼만스는 이를 위해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전시장에서 만난 로 컬러의 크리스토프 브라흐(Christoph Brach)가 말했다. 밝고 강렬한 톤과 뮤트 톤을 조합한 보조 테이블, 두 가지 톤의 가느다란 선을 합쳐 마치 하나의 컬러처럼 보이는 시각적 착시를 일으키는 담요, 어두운 톤에서 밝은 톤으로 이어지는 전등갓의 탁상 스탠드, 무아레 효과를 내는 촘촘한 그리드의 트롤리 등. 뜻밖의 색상 조합으로 탄생한 테삼만스 컬렉션은 단 한 점으로도 집 안 풍경에 이색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낼 것만 같다. “집에 개성을 불어넣는 방법은 다양하죠. 벽지를 도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고요. 하지만 과감한 색상의 작은 가구나 집기 한 점을 들이는 것은 단조로운 집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에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좋은 첫걸음이죠. 컬러가 가진 힘은 무궁무진한 만큼 뜻밖의 컬러의 퍼니싱으로 가장 뜻밖의, 여러분만의 개성 넘치는 집을 만들어보시길 추천해요.” 로 컬러의 다니라 테르 하르(Daniera ter Haar)가 말했다.

카사 93의 신진 디자이너들.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신진 사진 작가들.
디자인 스튜디오 로 컬러가 새로운 컬렉션 ‘테삼만스’를 소개 중이다.

다소 생경한 이웃의 집을 탐구한 사진 컬렉션을 감상하고, 이어 패션과 리빙의 뜻밖의 조우를 목격하고, 이 모든 것에 흥을 더해줄 음식과 음악을 경험한 <이케아+>. 디자인계, 패션계, 음악계를 모두 공유해 집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던지고, 그 풍부한 대화 속에서 행복한 집에서의 생활이란 무엇인가의 실마리를 건져 올리는 것이야말로 아마 <이케아+>가 열린 이유일 것이다. 집의 의미가 더욱 다변화되고 개인화되는 시대에 <이케아+>는 어쩌면 현재의 초상을 펼친 장이었다. 수많은 ‘나’와 가장 ‘나’다운 집이 모여 완성된 가장 다양한 지금. 마르쿠스 엥만은 말한다. “사람들에게 다양성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이번 전시가 열린 게 아니에요. 오늘날을 살아가면 절로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고 다양성을 띨 수밖에 없죠. 그만큼 다양성은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어요. 이번 <이케아+>를 통해 이 다채로운 세상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독특한 컬러 조합이 돋보이는 ‘테삼만스’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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