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계의 노벨상이 선택한 올해의 주인공

전종현

영국 식민주의와 흑인에 관해 탐구한 잉그리드 폴라드가 핫셀블라드 어워드를 받았어요.

건축계의 노벨상이 프리츠커 건축상이라면, 사진계에도 비슷한 상이 있습니다. 바로 핫셀블라드 어워드(Hasselblad Award)입니다. 핫셀블라드라는 이름이 귀에 익은 분은 사진에 관심이 많은 게 틀림없어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급 중형 카메라 브랜드니까요. 스웨덴 브랜드인데도 미국 NASA의 사랑을 받아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에 동승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달 착륙 기념사진을 바로 핫셀블라드 카메라가 찍었습니다. 핫셀블라드 고유의 광학 기술을 개발한 빅토르 핫셀블라드는 준프로급 사진작가였는데요. 그는 1978년 사망할 때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공표했어요. 그 유언을 존중한 아내 에르나는 이듬해 비영리기관인 핫셀블라드재단을 세웁니다.

핫셀블라드재단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1980년 시작한 핫셀블라드 어워드입니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사진 전문가와 학자로 구성된 위원회가 여러 후보를 추천하고 그중 한 명을 선정합니다. 사진 예술 분야에 선구적으로 공헌하고, 젊은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를 남겼으며, 지속해서 발전을 멈추지 않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사진가를 뽑습니다. 리워드 또한 훌륭합니다. 상금은 200만 크로네(한화 약 2억 6000만원). 메달과 상장, 핫셀블라드 카메라(엄청 비쌉니다.)를 주고 스웨덴에서 작가 개인전도 주최해요.

핫셀블라드 어워드의 진정한 가치는 역대 수상자입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어빙 펜, 세바스티앙 살가도, 리차드 아베돈, 신디 셔먼, 히로시 스기모토, 베허 부부, 낸 골딘 등 사진 예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 인물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요즘 수상자 멘트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존경하는 사진가가 받은 그 상을 제가 받다니 믿기지 않네요”랍니다. 역사적인 거장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영예로운 순간인데요. 이런 핫셀블라드 어워드의 올해 수상자가 지난 3월 8일 발표됐습니다. 그날은 빅토르 핫셀블라드의 생일입니다. 2024년 대망의 주인공은 영국에서 활동하며 식민주의와 흑인에 대해 비판적으로 탐구한 잉그리드 폴라드(Ingrid Pollard)입니다.

잉그리드 폴라드는 영국 현대미술에서 이미 주요 인물이에요. 처음에는 사진을 통해 작업을 전개했지만, 그 후 조각, 설치, 드로잉, 영화, 사운드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폴라드는 2022년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상인 터너 프라이즈 후보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는데요. 원래 터너상은 50세 미만의 연령 제한이 있었는데 2017년부터 사라지면서 그가 가장 연장자로 후보에 올랐거든요. 수상에 실패했어도 터너 프라이즈는 후보군에 드는 것이 중요하고, 전년도 특정 작품을 기준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폴라드는 남아메리카 북부에 위치한 가이아나 태생입니다. 가이아나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1966년 독립한 나라로 스페인어 일색인 남미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쓰는 곳이에요. 그는 1972년 가족과 함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후 1980년대부터 사진으로 큰 명성을 얻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주제는 다름 아닌 ‘영국다움(Britishness)’이었어요. 언어는 자유롭게 통하지만 흑인 여성으로서 느끼는 이질감의 원인을 따라가다 영국다움, 식민주의, 인종, 섹슈얼리티 같은 사회적 구성 요소에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Pastoral Interlude’ 연작
‘Pastoral Interlude’ 연작

작품 ‘목가적인 풍경 사이(Pastoral Interlude)’가 대표적인데요. 아주 조용하고 평온한 영국 시골을 걷는 젊은 흑인을 찍고, 두려움과 취약함을 암시하는 짧고 강렬한 텍스트를 병치했어요. 너무도 영국적인 시골 풍경에 등장한 흑인의 모습에서 풍기는 기이한 이질감을 통해 도시에만 존재할 것 같은 흑인 영국인과 백인만 존재할 것 같은 영국 시골의 풍경을 엮어 문제의식을 나타냈습니다. 이런 인종, 계급, 영국다움에 대한 주제 의식은 대영제국, 식민주의, 이주, 이동, 침략, 계급, 소속감 등 역사적인 서사와 개인적인 경험을 아우르며 확장합니다.

‘Valentine Days’ 연작
‘Valentine Days’ 연작

카리브해를 휘젓던 광대한 대영제국의 역사가 사라진 현재를 조망하며 노예 제도의 씁쓸한 과거를 서정적으로 복기하거나, 19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 주민을 찍은 사진에 직접 색을 칠해 착취당하는 대상에서 이야기의 주체로 흑인의 위상을 변경하기도 했죠. 영국의 쨍한 여름 풍경 속에 서 있는 흑인 모델이 눈을 감거나 카메라를 외면한 채 꽃, 음식 등 일상적인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은 식민주의의 결과로 남미의 부와 자원이 영국으로 이동한 결과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키네틱 조각과 영국 식민주의 시절 선전 영화의 스틸컷을 대치해 위계질서와 관련한 제스처를 모호하게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Self Evident’ 연작
‘Self Evident’ 연작
‘Bow Down and Very Low 2021’

1980년대 흑인예술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그는 몇 년 전부터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2016년 영국 왕립사진협회의 명예 펠로우가 되었고, 2019년에는 발틱예술가상, 폴햄린재단상, 2020년에는 프리랜드 어워드, 작년에는 대영제국훈장(MBE)을 받았습니다. 오는 10월 11일 스웨덴 예테보리 미술관에 위치한 핫셀블라드 센터에서 열리는 전시는 작가의 첫 스웨덴 개인전인데요. 그가 느낄 감흥이 기대되네요.

사진
핫셀블라드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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