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렐 윌리엄스의 루이 비통 맨즈 컬렉션 데뷔 쇼!

김신

2023년 6월 20일. 그 기념비적인 날의 표정은 퐁뇌프 다리 위에 선명히 새겨졌다.

모델들이 단체로 걸어 나온 쇼의 웅장한 피날레.

2024 S/S 맨즈 컬렉션의 스케줄을 보며, 모두가 직감했을것이다. 6월의 파리는 퍼렐과 루이 비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을. 고 버질 아블로의 후임으로 퍼렐 윌리엄스가 루이 비통의 맨즈 컬렉션 디렉터로 임명되었다는 놀라운 뉴스가 발표된 지 어언 6개월. 음악과 패션, 라이프 스타일 등 전방위에 걸친 왕성한 활동으로 이름 자체로 트렌드이자 신화가 된 퍼렐의 데뷔 쇼는 패션계의 역사적인 날로 예견되었는데, 마침내 지난 6월 20일 그의 데뷔 쇼가 열렸고, 더블유는 그 역사적 현장을 목도했다. 해가 유난히도 길었던 파리의 저녁 9시, 퐁뇌프 다리로 가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우리는 선착장에 모였다. 거대한 유람선은 1,800여 명의 게스트를 싣고 퐁뇌프 다리로 향했다. 황금빛 석양과 귓등을 기분 좋게 스치는 강바람을 만끽한 채.

그런데 왜 퐁뇌프 다리였을까? 루이 비통 본사가 바로 옆에 자리한 다리라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파리에서 가
장 오래된 이 다리는 퍼렐 윌리엄스의 고향인 미국 버지니아주와의 연결 고리를 은유한다고 한다. 이는 퍼렐 윌리엄스가 다닌 버지니아 해변의 프린세스 앤 고등학교 (Princess Anne High school)의 기억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퍼렐 윌리엄스가 걸어온 길을 상징하는 것. 퐁뇌프 다리에 도착하자 황금빛 의자가 놓인 런웨이가 우릴 반겼다. 파리의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다리. 그곳에서 퍼렐의 첫 맨즈 컬렉션이 펼쳐진다는 생각에 설렘과 긴장감을 품은 채 쇼에 초대된 초호화 게스트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컬렉션 노트에 적힌 ‘The Sun’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그리고 도착해서도 파리의 황홀한 석양을 만끽하던 참이라 퍼렐이 데뷔 쇼의 핵심 코드로 태양을 택했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자신의 첫 컬렉션을 위해 생명의 범지구적 원천인 태양에 주목했다고 한다. 태양은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횃불이자, 빛을 주는 존재로서 인류에게 사랑을 되돌려주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은은한 노을빛이 사라지면서 사방이 푸르러지자 비로소 쇼가 시작되었고, 퍼렐의 옷에서는 선명한 태양의 영감들이 다시 떠올랐다. 햇살을 연상시키는 그래픽, 따뜻하고 온유한 색상 팔레트, 의상과 액세서리에 입힌 다양한 금속 장식에는 하나같이 태양이 서려 있었다.

제이지와 비욘세

리한나와 에이셉 라키.

젠데이아

송중기

킴 카다시안

잭슨 황

니고

쇼장을 오가며 만난 루이 비통 스태프들은 모두 ‘LVERS’ 라는 글자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의미가 궁금해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무척 따뜻했다. LVERS는 따뜻함, 행복, 환영을 의미하는 단어의 조합이며, 이 엠블럼은 퍼렐의 고향인 버지니아주의 슬로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루이 비통 메종의 핵심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다채로운 글로벌 공동체 문화를 상징한다는 이야기. 사랑을 넣어 디자인을 한다? 경쟁이 치열한 패션계에서 보기 어려운 공존과 포용, 환대를 크게 외치는 면모에서는 글로벌 메종다운 루이 비통의 현재와 지향, 미래가 읽혔다. 지나고 보니, 쇼장으로 오는 길마저도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서 있는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해온 퍼렐이라는 하나의 시대정신이 내내 느껴졌으니까.

컬러풀한 다미에 패턴 백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델들. 칼라를 없앤 다미애 패턴의 테일러링 자카드 슈트는 이번 시즌의 대표 아이템 중 하나다.

다무플라주 패턴을 입은 귀여운 테디베어.

테일러링에 집중한 슈트 시리즈와 멀리서도 가죽의 든든한 형태와 질감의 윤기가 느껴졌던 가죽 블루종.

테일러링에 집중한 슈트 시리즈와 멀리서도 가죽의 든든한 형태와 질감의 윤기가 느껴졌던 가죽 블루종.

테일러링에 집중한 슈트 시리즈와 멀리서도 가죽의 든든한 형태와 질감의 윤기가 느껴졌던 가죽 블루종.

쌍둥이처럼 걸어 나온 그래픽 프린트 아우터 차림의 모델들.

이제 쇼 이야기를 해야겠다. 퍼렐 쇼에 등장한 런웨이의 오프닝 모델을 보면 그가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된 자신의 데뷔 쇼 테마를 밀리터리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첫 쇼의 테마를 정하는 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고심했을까? 또 확신할 수 있었을까? ‘다무플라주 (Damouflage, 디지털 카무플라주의 줄임말)’라는 이름을 내건 퍼렐식 밀리터리 테마는 루이 비통의 헤리티지 다미에 패턴과 카무플라주 패턴의 결합으로, 두 가지의 상이한 스타일을 엮은 혼합 패턴인 동시에, 퍼렐의 오랜 파리 친구들에게 보내는 경의의 제스처라고 한다. 액세서리, 워크웨어, 인디고 데님, 파자마 실루엣, 인타르시아 기법, 자카드 테일러링을 아우르며 세 가지 색채로 구현된 다무플라주 패턴이야말로 루이 비통과 퍼렐의 독창적 스타일이 결합된 상징적 결과물인 셈이다. 컬렉션은 전반적으로 스트리트 룩으로 여겨지는 워크웨어와 댄디한 테일러링 사이를 유연하게 오갔다. 테일러링에 집중한 슈트는 날카롭게 각이 잡히면서도, 플레어로 재단해 퍼렐 특유의 유니크한 미학을 드러낸다. 또 칼라를 없앤 밴드 칼라 튜닉 셔츠와 워크웨어의 에지를 가미한 재킷, 반바지나 남성용 스커트와 매치한 슈트 시리즈, 퍼렐의 시그너처와도 같은 흰 양말과 댄디한 로퍼와의 스타일링 등등 곳곳에서 변주된 댄디함이라는 퍼렐식 새로운 정의가 흥미로웠다.

댄디함을 주제로 테일러링과 스트리트 사이를 유연하게 오간 이번 시즌의 키 룩들.

유연한 동시에 구조적인 가죽 재킷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 멀리서도 가죽의 든든한 형태와 질감의 윤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또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쇼에도 계속 변주되어 등장했고, 퍼렐이 그날 선택해 입고 나온 다미에 픽셀 패턴 슈트다. 그는 루이 비통의 고전적인 체스판 그래픽, 다미에 패턴에 원색의 색채를 부여했고, 미국의 픽셀 아티스트인 E.T 아티스트(E.T Artist)가 제작한 8비트 아타리 다미에 모티프를 통해 다미에 패턴을 디지털화했다. 다미에 패턴의 변주는 퍼렐이 메종에 합류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였다고 한다. 쇼 전반에 흐르는 8비트 다미에 패턴은 그의 확신과 동시에 성공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모두가 가장 궁금해한 가방은 어땠을까? 쇼를 보는 내내 퍼렐의 아이디어가 가방에도 집약되어 있음을 짐작했을 정도로 눈에 띄는 변화가 많았다. 캔버스 백과 가죽 백팩, 트레이너 트렁크를 덮은 다무플라주 패턴, 다양한 색상의 오버사이즈 다미에 모티프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게스트들이 퐁뇌프 다리를 올 때 타고 온 유람선을 모티프로 한 유람선 토트백.

다미에 패턴과 카무플라주 패턴이 결합된 다무플라주 백.

견고한 형태의 가죽 백팩.

루이 비통의 상징적인 에피 가죽으로 만든 에피 XL 백, 주요 발명가들의 얼굴을 그린 헨리 테일러의 작품과 E.T 아티스트가 제작한 퐁뇌프 다리의 픽셀화된 이미지를 엠브로이더링해 장식한 알마 백, 다미에 패턴에 진주 장식을 더한 검정 타이 백, 우리가 타고 온 유람선을 연상시키는 보트 형태의 백까지 그야말로 백의 향연이었다. 그중에서도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새롭게 창조한 스피디 백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스피디 백은 오랜 시간 모든 사람의 일상에 스며든 루이 비통의 대표 백으로, 그는 그 상징적인 사다리꼴 형태를 유지하면서, 가죽을 최고급 램스킨으로 바꿔 가볍고 유연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가죽 옷을 입은 스피디 백은 가방이 닿는 면에 따라 모양이 자유자재로 변형되며, 그동안 시도한 적 없는 비비드한 색감을 입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을 바꾸는 일은 가장 어렵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실험, 진심 어린 사랑이 동반되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진심의 결과물은 바로 이 스피디 백이 아닐까?

최고급 램스킨 소재로 바꿔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형할 수 있는 퍼렐식 스피디 백.

모델 안나 이버스가 입고 나와 주목을 받은 가죽 소재의 유니폼 룩. 쇼핑백을 연상시키는
백도 재치 있었다.

E.T 아티스트가 제작한 8비트 아타리 다미에 패턴 슈트와 테일러링 팬츠와 넥타이 차림에 매치한 아웃도어 재킷.

피날레를 향해 갈수록 화려해졌고, 눈을 뗄 수 없이 다채롭고 더없이 흥미진진해진 쇼는 흑인 합창단의 웅장하고 흥겨운 가스펠 합창 속에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수많은 룩이 지나간 15분 남짓한 쇼. 패션쇼인데 옷보다 그의 피날레 인사가 더 주목받은 건 이번 쇼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간결하게 옷에 집중하는 쇼가 아니라 루이 비통이라는 거대 하우스의 미래, 가치를 보여주어야 했으니까. 드라마는 마지막에 펼쳐졌다. SNS를 통해 모두가 봤을 그 장면, 피날레에 선 그는 자신과 쇼를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루이 비통 디자인팀에게 깊이 허리를 숙인 채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또 자신의 가족과 포옹하며 사랑을 표현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한걸음에 달려와준 동료, 친구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뜨거워졌고, 나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껏 경험한 수십 번, 수백 번의 피날레에서도 그런 울림은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받은 사랑을 그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전하고자 한 그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제스처를 잊을 수 없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이룬 한 뮤지션이, 거대한 하우스의 수장이 되어 자신이 받은 사랑과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모습,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한 뮤지션이 패션을 넘어 모두에게 사랑을 선사한 순간.

다시 한번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감동을 넘어서는 일조차도 퍼렐 윌리엄스 그 스스로가 해낼 것임은 분명하다.

쇼가 끝난 뒤 펼쳐진 퍼렐과 제이지의 기념비적인 공연.

SPONSORED BY LOUIS VUITTON

에디터
김신
사진
COURTESY BY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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