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프리즈 뉴욕

권은경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갤러리와 작품을 중심으로 프리즈 뉴욕을 풀어본다.

해마다 돌아오고 여전히 들썩이는 뉴욕의 아트 위크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최근 프리즈 뉴욕에서 인상적이었던 작가와 풍경은 우리가 왜 미술에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지 이렇게 보여주었다.

맨해튼 파크 애비뉴 54가부터 86가를 따라 색색의 튤립이 가득 피어난 걸 본다면, 그건 뉴욕에 봄이 만개했다는 신호다. 튤립의 개화와 함께 시작되는 뉴욕의 5월은 아트페어, 경매, 전시 오프닝과 같은 다양한 예술 행사도 함께 꽃피운다.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이 도시의 아트신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 데 열을 올린다. 그중 일 순위는 물론 프리즈 뉴욕이다. 프리즈 뉴욕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트 센터인 더 셰드(The Shed)에서,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열렸다. 총 69개 갤러리가 참여해 세 개 층에 나뉘어 전시를 했다. 평균 10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하는 프리즈 런던, 아트바젤 같은 대규모 아트페어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규모일지라도 감당해야 하는 작품은 여전히 수없이 많다. 어떤 것을 중심으로 봐야 할지 길을 잃기 쉬운 페어장 안팎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갤러리와 작품을 중심으로 프리즈 뉴욕을 풀어본다.

솔로 부스들의 향연

캡슐 상하이가 선보인 리아오 웬의 솔로 부스. 꺾인 신체 형상 조각들이 기괴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LIAO WEN, STARE, 2022, HAND-COLORED LIMEWOOD, EPOXY RESIN, STAINLESS STEEL, 110 X 72 X 50 CM, 43 1/2 X 28 1/2 X 19 1/2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OF THE ARTIST AND CAPSULE SHANGHAI

캡슐 상하이가 선보인 리아오 웬의 솔로 부스. 꺾인 신체 형상 조각들이 기괴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CAPSULE SHANGHAI, PHOTO BY DANIEL TERNA

하우저앤워스는 작고 작가인 잭 휘튼의 작품을 시대별로 구성해 전시했다.
INSTALLATION VIEW, JACK WHITTEN AT HAUSER & WIRTH FRIEZE NY, NEW YORK NY, 17 – 21 MAY 2023, ©JACK WHITTEN ESTATE, COURTESY THE ESTATE AND HAUSER & WIRTH, PHOTO BY SARAH MUEHLBAUER.

데이비드 즈워너가 선보인 수잔 프레콘의 추상화는 단 5점뿐이지만 강렬하고 압도적이었다.
DAVID ZWIRNER, FRIEZE NEW YORK 2023, PHOTO BY ALEX STANILOFF_CKA.

프리즈에서는 신진 갤러리들의 솔로 전시로 구성된 ‘포커스’ 섹션을 제외하고는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갤러리들이 한 작가를 선정해 솔로 부스 방식으로 전시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난 추세다. 이번 프리즈 뉴욕에서는 무려 20여 개 갤러리가 솔로 전시로 페어를 찾았다. 데이비드 즈워너, 하우저앤워스, 가고시안, 페이스, 데이비드 코단스키 등 최정상급 갤러리뿐만 아니라 스테판 프리드먼, 제임스 코핸, 케이시 캐플런과 같은 중견 갤러리도 그 행보에 동참했다. 아트페어 기간의 솔로 전시는 며칠간만 열리는 팝업 전시와 비슷하다. 짧은 시간 동안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장치로, 이 시장 파급력은 대단하다. 가장 눈길을 끈 솔로 부스 작가는 데이비드 즈워너가 소개한 추상회화 작가 수잔 프레콘(Suzan Frecon, 1941)이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작가의 거대한 회화 단 5점만을 당당히 선보였는데, 각 작품의 아우라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작품 앞에 서면 좀체 발길을 떼지 못할 만큼 강렬해 오랫동안 구석 구석 감상했을 정도다. 기본적인 형태로 구성된 미니멀 풍경 같기도 한 페인팅은 강렬하지만 평온한 색상들의 대비로 가득하다. 감상자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 표면의 미세한 광도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점도 꽤 매력적이다. ‘당신이 보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경험하는 그림들이다’라는 작품 설명처럼 수잔 프레콘의 작품은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통해 완성된다. 하우저앤워스는 작고 작가 잭 휘튼(Jack Whitten, 1939~2018)의 그림, 조각, 드로잉으로 부스를 꾸렸는데, ‘과연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대별로 작품을 구성한 스타일이 신선했다. 갤러리의 미술사적 접근이 탁월하게 발휘된 예다. “작품들은 시기마다 서로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이자 중요한 사실은 일상의 모든 오브제가 작품의 재료가 되고, 날것의 재료로 다양한 기술적 실험을 통해 작가만의 추상적 개념을 구축해갔다는 거예요. 이런 혁신적인 접근법은 작가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죠.” 갤러리 디렉터의 말이다. 모자이크 형상의 페인팅인 ‘Physis II(Dedicated to the Memory of David Budd)’는 아크릴 물감을 활용해 작가가 직접 만든 타일 형상의 테세라(모자이크용 모난 유리나 조각들)로 구성됐는데, 어떠한 압력에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물질성은 잭 휘튼이 살아생전 끈질기게 지켜온 실험 정신을 대변하는 듯했다.
젊은 작가들의 남다른 감각도 돋보였다.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는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작가인 로런 할시(Lauren Halsey, 1987)의 디지털 콜라주 프린트와 석고 판화를 선보였다. 10월 22일까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옥상정원에서는 로런 할시의 커미션 전시도 즐길 수 있다. 작가가 고대 이집트와 LA 문화를 영감의 원천 삼아 제작한 설치물들이 다른 시공간으로 초대하는 듯한 판타지를 자아낸다. ‘포커스’ 섹션의 캡슐 상하이 갤러리는 리아오 웬(Liao Wen, 1994)의 작품으로 전시장을 채웠다. 두 팔이 절단되어 구부정하게 꺾여버린 신체 형상의 조각 작품들은 강렬했다. 특히 잉태 중인 듯한 사람 형상 조각이 힘겹게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작품 ‘Stare’가 인상적인데, 부스 벽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관객이 그 구멍으로 신체 조각을 훔쳐보도록 유도하는 식이었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관음증 문제를 환기한 듯하다. 리아오 웬은 ‘프리즈 포커스 부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떠오르는 라틴아메리카

미트레 갤러리가 소개한 마르쿠스 시케이라는 자연에서 얻은 흙과 안료로 작업한다. 그 회화와 초록색 부스를 인상적으로 본 미술계 관계자가 많다.
MITRE GALERIA, FRIEZE NEW YORK 2023, PHOTO BY ALEX STANILOFF_CKA.

멘데스 우드 DM은 다양한 연령대의 브라질 출신 작가들로 부스를 구성했다. 사진에 보이는 건 카스티엘 비토리누 브라질레이루의 사진과 굴리엘모 카스텔리의 회화.
MENDES WOOD DM, FRIEZE NEW YORK 2023, PHOTO BY ALEX STANILOFF_CKA.

최근 뉴욕 아트 신은 그간 예술계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남미 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휘트니 미술관, MoMA 등 주요 미술관에서는 라틴 미술 전문 큐레이터를 영입해 라틴 미술사를 연구하고 대표적인 작품 컬렉션을 유치하고자 열을 올리고 있다. 브라질, 멕시코 예술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갤러리들 역시 꾸준히 해당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그 중추 역할을 하는 브라질 갤러리 멘데스 우드 DM, 멕시코의 쿠리만주토 등은 프리즈 뉴욕에서도 힘을 드러냈다. 멘데스 우드 DM은 브라질 출신의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부스를 구성했다. 브라질 전통 이미지 요소가 돋보이는 루벤 발렌틴(Ruben Valentin, 1922~1991)의 1960년대 기하학 페인팅을 비롯해 소니아 고메스(Sonia Gomes, 1948)의 천을 활용한 신작 조각, 영 파워의 대표 주자 안토니우 오바(Antonio Obá, 1983) 등의 작품으로 브라질 현대미술의 시대적 흐름을 소개하고, 상당한 판매 성과까지 이뤘다. 갤러리의 뉴욕 지점 디렉터는 “브라질 출신 작가들은 개인의 삶을 둘러싼 자연과 문화, 전통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가 남다릅니다”라고 말한다. 전통이라 해서 결코 촌스러운 것이 아니다. 전통은 작가들에게 영감이 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그들 고유의 언어를 찾도록 이끈다. 그런 점에서, 프리즈에 처음으로 참가한 미트레 갤러리가 선보인 마르쿠스 시케이라(Marcos Siqueira)는 더욱 와닿는다. 많은 관계자들이 “혹시 그린 색 부스 봤어?” 하면서 폰을 꺼내 작품 이미지를 확인시켜 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뉴트럴 톤의 차분한 색상으로 그려진 풍경에는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순수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자연에서 얻은 흙과 안료를 사용해서인지 물감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깊이감이 인상적이다. “제 작품은 저와 자연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 나의 삶인 강. 이것은 그림일기와도 같은, 내 일상 전부입니다.” 작가의 설명이다. 한 편의 시와 같은 그의 작품은 1만 달러(한화 약 1,300만원) 내외로, 프리즈에서 거래되는 작품 중 꽤 저렴한 편에 속한다. 마르쿠스 시케이라의 작품 역시 다 솔드아웃되었다.

반가운 한국 작가들

휘슬이 선보인 박민하의 신작 ‘노스토스, 나이트 레인’(2023).
MIN HA PARK, NOSTOS, NIGHT RAIN, 2023, ACRYLIC, VINYL PAINT, OIL, WAX AND MIRAVAL® ON CANVAS, 180X140CM.

이번 프리즈 뉴욕에서는 어느 때보다 한국 작가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반갑고 기뻤던 건 박민하 작가의 솔로 전시를 뉴욕에서 만났다는 것. 서울에 있는 갤러리 휘슬은 ‘포커스’ 섹션에 박민하 솔로 부스를 선보이며 성공적인 프리즈 뉴욕 데뷔를 알렸고, 박민하는 감각적인 색채와 레이어가 돋보이는 다수의 신작과 함께 작가로서는 11년 만에 뉴욕을 다시 찾았다. 티나 킴 갤러리와 프랑수아 게발리(François Ghebaly)에서 선보인 마이아 루스리(Maia Ruth Lee, 1983)의 페인팅 ‘본디지 배기지 맵 (Bondage Baggage Map)’ 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깊게 물든 색채 위로, 크고 작은 선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자유자재로 부유한다. 캔버스 화면 위에 남겨진 선들은 밧줄의 흔적인데, 이는 이민자로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구속과 자유를 상징하는 동시에 뭔지 모를 진한 여운까지 남긴다. 마이아 루스 리의 작품은 VIP 프리뷰 첫날 모두 판매되어, 두 번째 날부터는 볼 수가 없었다. 프랑수아 게발리는 조은 킴 아침(Joeun Kim Aatchim), 신디 지혜 킴(Cindy Ji Hye Kim) 등 뉴욕에서 활동하는 여러 한국 작가를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9월에 열리는 프리즈 서울에서 한국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인다고 하니 꼭 확인해야겠다.

놓칠 수 없는 외부 전시

페어가 열린 더 셰드 입구에 자리 잡은 설치작 ‘올드 트리’(2023). 2024년 가을까지 이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PHOTO BY DOOHYUN RYU.

데이비드 즈워너에서 오픈한 야요이 쿠사마 개인전 중 인피니티 미러룸 시리즈 신작.
PHOTO BY DOOHYUN RYU.

최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옥상정원에는 젊은 작가 로런 할시의 대형 설치작들이 들어섰다.
PHOTO BY DOOHYUN RYU.

허드슨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공원 하이라인을 걷다, 페어 장인 더 셰드로 들어서기 직전 마치 혈관이 터지는 듯 붉게 타오르는 대형 나무 조각이 보여 발걸음을 멈췄다. 이 붉은 나무는 스위스 작가인 파멜라 로젠크란츠(Pamela Rosenkranz)의 ‘Old Tree’다. 하이라인의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의 공공조각 커미션 프로젝트였던 ‘플린스’의 주인공이 바로 이것이다. 이 작품은 페어 기간에 맞춰 설치되었지만 2024년 가을까지 유지되니, 뉴욕을 찾는다면 작품의 힘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페어장 내 미구엘 아브레우 갤러리 부스에서는 3D 프린트로 제작한 작은 크기의 ‘Old Tree’를 소개하기도 했다.
뉴욕 갤러리들은 프리즈가 개최되는 5월과 아모리쇼 위크인 9월 중 가장 중요한 전시를 선보인다. 지금 뉴욕에서 가장 핫한 전시는 단연코 데이비즈 즈워너의 야요이 쿠사마 개인전일 것이다. 페어장에서도 루이 비통의 신상품인 쿠사마 컬렉션 백을 든 관람객을 더러 볼 수 있었다. 7월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뉴욕 데이비드 즈워너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전시로, 물결처럼 일렁이는 대형 호박 설치작부터 공간을 금방이라도 잠식할 것 같은 플라워 조각, 신작 페인팅까지 전시해 야요이 쿠사마의 원더랜드를 펼쳤다. 페어 기간 동안 갤러리가 위치한 19가를 채운 사람들의 긴 행렬에 놀랐는데, 쿠사마의 또 다른 시그너처 시리즈인 인피니티 미러룸 신작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 ‘Dreaming of Earth’s Sphericity, I Would Offer My Love(지구의 구형을 꿈꾸며, 나는 내 사랑을 바칠 것)’에선 겹겹이 쌓이고 반사되는 원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리만머핀 갤러리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헤르난 바스 (Hernan Bas)의 개인전을 열며, 첼시의 갤러리 오프닝 밤을 뜨겁게 달궜다. 뉴욕엔 첼시뿐만 아니라 어퍼이스트 사이드, 트라이베카 등 여러 지역에 갤러리가 분포되어 있다. ‘See Saw’라는 앱은 지역별 전시 정보를 볼 수 있는 아주
용이한 앱이니 미술에 관심 많은 이라면 이용해보자.

에디터
권은경
유두현(아트 어드바이저)
사진
COURTESY OF FRI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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