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한복

장정진

한국 전통 생활양식의 품격을 기억하고, 전통 의례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함께 개최한 전시 <전통 한복, 일생의례>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어우러지는 한복을 익숙하고도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였다.

이혜순 디자이너의 관례, 계례복. 관례 때 입던 겉옷인 난삼과 계례 때 입던 겉옷인 원삼의 형태를 따른 디자인이다. 한복을 입을 때는 긴 겉옷인 포를 갖춰 입음으로써 예를 표할 수 있다. 풀빛 계례복은 공주나 옹주가 입던 예복인 초록 원삼의 형태로, 줄무늬가 독특한 전통 원단인 항라를 사용해 지었다.

어른이 되는 관례와 계례
조선시대 양반가 남자는 대개 20세 전후에 관례를 치렀다. 집안 어른과 덕망 높은 친지를 초대한 자리에서 상투를 틀어 갓을 쓰고, 세 종류의 어른 옷을 차례대로 갈아입으며 술 예절을 배웠다. 또 성인의 이름인 자(字)를 받았다. 여자가 치르는 건 계례다. 대개 여자가 15세 전후일 때 어머니의 주관하에 진행했는데, 길게 땋은 머리를 올려 쪽을 지고 비녀를 꽂았다. 또 어른의 옷으로 갈아입고 성인의 이름을 받았다.

일생 주기를 함께한 우리 옷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한국인의 일생 주기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는 한복과 함께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백일 잔치와 돌 잔치로 무탈하게 자라는 것을 축하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식을 올릴 때, 그리고 생을 마감하고 묻히는 상장례를 치를 때, 늘 한복을 입는다. 조선시대 때는 아이가 자라면 어른으로 인정받는 관례 및 계례를 치렀다. 태어나 겪는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예를 갖추는 의식을 ‘일생의례’라 한다. 일생의례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게 여겨진 관례, 혼례, 상례, 제례는 따로 ‘관혼상제’라 했는데, 오늘날에는 평생 치르는 의례의 다양성을 모두 담아 ‘일생의례’라 통칭한다. 시대와 가치관이 변하면서 전통 사회의 의례 절차나 형식은 물론 크게 변화했지만, 중요한 날 예를 갖추고 기념하려는 마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지난 1월 1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 <전통 한복, 일생의례>는 현대인의 일상과 어우러지는 일생의례복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김태훈)이 함께 개최한 이 전시는 점차 사라진 의례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첫걸음으로 마련되었다. 더 나아가 한복과 일상의 접점을 넓힐 가능성을 보여준 귀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 전시에서는 김인자(당초문 김인자 한복), 유현화(유현화 한복), 이춘섭(이춘섭 명인 전통복식연구소), 이혜순(담연), 조은아(조은아 한복) 등 한복 디자이너 다섯 명이 각 의례에 맞는 새로운 한복을 제작해 선보였다. 오늘날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계례, 짝을 만나는 혼례, 장수를 축하하는 수연례, 조상을 기억하는 제례복 등 총 10벌의 일생의례복. 우리의 일생과 그 흐름을 같이하는 한복이 어우러진 전시 <전통 한복, 일생의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전통 생활양식의 품격을 기억하고, 또 현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상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어 뜻깊다. 해당 전시는 다가오는 8월 한복상점(서울 코엑스D)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원형과 현대의 조화로 완성된 한복 신소재
이번 전시는 새로운 한복 소재도 함께 공개하는 자리였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한국실크연구원과 협업해 창작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길상을 상징하는 문양을 더해 개발한 소재다. 고려 말 복식 유물에서도 보이는 원단으로 여름이나 봄가을 옷감에 많이 쓰이는 ‘사’, 씨실 방향으로 규칙적인 줄무늬가 생기는 것이 특징이며 봄가을 옷감에 많이 쓰이는 ‘항라’, 모시의 까슬한 감촉과 명주의 광택을 지닌 ‘춘포’ 등 총 10여 종에 달한다. 이번 개발을 통해 전통 소재를 되살리고 한복 디자이너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수복만초문진주사(壽福蔓草文眞珠紗)
작은 마름모형 문양을 규칙적으로 배열한 순인 바탕에 길상의 상징인 덩굴풀과 복을 상징하는 박쥐가 목숨수 자를 휘감고
있는 형태의 원형 수복 문양을 넣어 전통 감각을 강조한 원단.

도류불수문사(挑榴佛手紋紗)
석류와 복숭아꽃, 부처의 손을 닮은 감귤과 식물인 불수감을 전체적으로 반복해서 짜 넣은 원단. 장수, 행복, 자손 번창을 상징하는 길상무늬로 고급 견직물에 많이 사용되었다.

명주(明紬)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견사를 씨실과 날실로 삼아 1:1로 교차하며 평직으로 무늬 없이 짠 직물.

화문오족항라(花紋五足亢羅)
사조직에 평조직을 혼합한 견직물로 씨실 방향으로 규칙적인 줄무늬가 생기는 것이 특징인 원단. 남녀 한복에 두루 쓰이는 전통 직물로 얇은 솜을 두어 옷을 짓기도 한다.

연화문직은주(蓮花紋織銀紬)
날실로 생사를 쓰고 씨실로는 정련사와 금속처럼 반짝이는 은사를 1:1로 배열한 견직물. 고급스러운 광택이 돋보이는 원단으로 조선 초기 출토 복식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연꽃 덩굴 문양을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수복문주(壽福紋紬) 수복문채문주(壽福紋彩文紬)
현대 직기를 활용해 줄무늬 바탕에 복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을 넣은 오간자, 즉 생사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평직으로 짠 직물. 불규칙적으로 꽃 문양을 배치해 화사함을 더했다.

화문(花紋)
견직물의 장점인 유연성과 풍부한 광택, 매끄러운 감촉을 강조하기 위해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조직점이 적은 주자직으로 바탕을 설계한 원단.

매병학문직금단(梅甁鶴紋織金緞)
매병 문양에 금사로 학 모양을 더한 직금단으로 바탕과 문양의 조직 차이로 인해 빛 방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명암이 생기며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광택이 많고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특징.

신춘포(新春布)
서로 다른 소재인 모시실과 명주실을 섞어 짠 교직물인 춘포의 단점인 촉감을 부드럽게 보완한 원단. 표면 질감과 광택을 강화하고 춘포의 최대 단점인 낮은 견뢰도를 보완했다.

이화적문금단(李花翟紋錦緞)
자카드 직기로 짠 직물로 궁중 예복인 영친왕비의 적의에서 영감을 얻어 이화 문양과 친애와 해로를 상징하는 꿩 문양을 넣었다.

유현화 디자이너의 혼례복. 신부의 예복은 푸른 고름과 끝동 배색으로 포인트를 준 초록 저고리, 여기에 꽃분홍 치마로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속치마와 5겹 무지기 치마를 받쳐 입어 겉치마가 넓고 풍성하게 퍼진다. 신랑의 예복은 조선시대 왕의 예복인 구장복에서 영감을 얻은 포의 형태로 제작했다.

부부의 연을 맺는 혼례
혼례는 일생의례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의례였다. 조선 후기의 혼례는 남자 집에서 여자 집으로 사주를 보내면서 시작되는데, 이후 신부 쪽은 혼삿날을 정하고 신랑 쪽은 함을 보냈다. 혼례 당일 신랑은 말을 타고 나무 기러기를 든 기럭아비를 앞세워 신부 집으로 향한다.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처음 만난 신랑 신부는 맞절과 서약을 하고 술잔을 나눠 마시며 백년가약을 맺었다. 혼례날에는 일반 백성도 양반의 옷을 입을 수 있어, 신랑은 단령을 입고 사모를 썼으며 신부는 활옷과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썼다.

이춘섭 디자이너의 수연례복. 남성용 예복은 장수, 행복 등을 상징하는 길상무늬가 돋보이는 가벼운 견직물로 바지와 저고리를 지었다. 여성용 예복은 생사를 부분 정련해 새로운 질감을 구현한 명주로 치마와 저고리를 지었다.

어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수연례
전통 사회에서는 십간십이지를 기준으로 하는 60년 주기에 큰 의미를 둔 데다, 당시 60세 이상은 장수를 뜻했다. 부모님이 만 60세 생일을 맞으면 자손은 일가 친척과 친지를 초대해 큰 잔치를 베푸는 수연례로 효심을 표현했다.

김인자 디자이너의 제례복. 남성용은 왕의 예복인 구장복에도 남아 있는 순인 바탕의 얇은 견직물을 사용해 양복 위에 덧입을 수 있는 두루마기로 디자인했다. 여성용은 삼년상을 치르는 백일 동안 입던 제복인 ‘천담복’의 전통을 따라 옅은 옥색 직물을 사용해 제작했다.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고 추모하는 제례
제사는 크게 설, 한식, 추석 같은 명절에 지내는 차례와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로 나뉜다. 차례는 차를 올리면서 드리는 예로, 조상에게 계절이나 해가 바뀌었음을 알리며 새로 나온 음식을 올린다. 설 차례는 새해에 처음으로 올린다는 의미다. 추석 차례 때는 그해 농사로 수확한 것을 처음 올리며 조상을 기린다. 전통 사회에서는 제사 때 남녀 모두 평상복과 구별되는 의례복을 입어 경건함을 갖췄다. 남자는 흰색 도포나 두루마기에 갓이나 유건을 썼고, 여자는 천담복의 색인 옥색 계열의 치마와 저고리로 예를 표했다.

조은아 디자이너의 혼례복.
전통 한복에서 가장 화려한 대례복은 일생의례 중 ‘인륜지대사’라고 부르는 혼례 때 입은 예복이다. 신부의 예복은 연꽃 문양이 이어지는 은빛 치마 저고리에 조선 왕실 여성이 혼례 때 입던 원삼을 덧입은 형태로 제작했다. 원삼은 해로의 상징인 꿩 문양을 넣은 금단으로 지었고, 소매 끝에 황색 색동을 배치하고 가슴에는 오조룡보를 달았다.

프리랜스 에디터
장정진
기획&진행
한국공예 · 디자인문화진흥원(KCDF) 한복산업팀
현장 스케치 촬영
남기용(플래시큐브)
스튜디오 촬영
김잔듸(516 스튜디오)
스타일링 에이전시
고쇼, 최다희
모델
서윤, 정인우, 이태훈,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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