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남의 제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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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남은 지금 인생 2막을 걷고 있다 말했다. 그런 자신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고맙다’다. 배정남의 2막이 커튼을 올리는 이때, 안중근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담은 영화이자 그가 이전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한 <영웅>이 개봉한다. 이 작품은 그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그는 지금 무척 설렌다고 했다.

슬리브리스 톱과 데님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 화이트 퍼 코트는 돌체앤가바나, 벨트는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네크리스는 헤븐스도어 제품. 플립플옵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W Korea> 영화 <영웅>이 마침내 개봉한다. 2019년 12월 크랭크업했지만 팬데믹으로 3년이나 영화가 개봉을 못하고 묶여 있었다.

배정남 그런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 덕분에 후반 작업에 공을 들일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영웅>은 2009년 초연한 동명의 인기 창작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해운대>, <국제시장>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기도 해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만큼 좋은 영화니까 사람들한테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출연진이 다 모인 단톡방이 있는데 개봉이 미뤄질 때마다 하는 얘기가 ‘그래서 언제 개봉해요?’였다.

지난 11월 진행한 제작발표회 영상을 봤는데 배우들 얼굴에서 ‘뜨겁다’는 인상이 스치더라. 촬영이 끝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막 영화를 찍고 온 사람들 같았다.

아무래도 안중근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다룬 영화다 보니까. 작품에 참여하는 마음이 저절로 진중해질 수밖에 없다. 또 배우들끼리 워낙 친하기도 하다. 작년엔 감독님까지 곤지암으로 1박 2일 캠핑을 가기도 했다. (정)성화 형 아는 지인이 하는 펜션에 가서 계곡 앞에 텐트 치고, 노래 부르고.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에서 맘 편히 놀았다.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등 세대가 다른 배우가 모였는데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나 보다.

어떻게 착한 사람들만 모였다. 한 명이라도 모난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좋은 분위기가 안 난다. 조금이라도 눈치를 보고 불편했다면 지난번 캠핑 같은 자리도 안 만들어졌겠지.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더 가족이 된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선 독립군 최고 명사수 ‘조도선’을 맡았다. 어떤 인물인가?

안중근 의사와 거사를 도모한 실존 인물이다. 함경도 출신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세탁소를 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러시아어 통역 일을 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분에 대해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사망 시기도 불분명하고 사진도 두 장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재판정에서의 모습이다.

실존 인물에 독립운동가다 보니 배역에 접근하는 방식이 평소와 달랐을 것 같다.

완전히 달랐다. 한국인이라면 갖고 있는 자긍심이 있지 않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더 무게감을 갖고 촬영했다. 그리고 역사를 보면, 안중근 대신 조도선이 죽을 수도 있는 운명이었다.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조도선은 채가구역에서 대기하며 거사를 계획했다. 만일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채가구역에서 멈췄다면 조도선이 체포될 상황이었다. ‘내가 잡히고 죽을 수도 있었다’는 심정으로 연기하니까 진짜 진지해지게 되더라. 눈물이 절로 나고. 조도선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인물이 있는지 찾아 헤맸다. 안중근 의사부터 그가 의거에 사용한 권총을 준비해준 최재형 선생님까지, 정말 많은 공부를 했다.

슬리브리스 톱은 보테가 베네타, 화이트 퍼 코트는 돌체앤가바나, 네크리스는 헤븐스도어 제품.

사실 이전 출연작들에선 ‘배정남이 배정남을 연기했다’는 인상이 있었다. 영화 <보안관>에서 입만 열면 깨는 조직의 막내 ‘춘모’, <오케이 마담>에서 국정원 요원을 꿈꾸는 눈치 없는 승무원 ‘정현민’ 등 주로 코믹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이번 <영웅>을 통해 배우로서 제대로 변신을 시도한 느낌이다.

변신이라기보다는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배정남 하면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그거로 됐다. “배정남이 이것도 할 줄 아네, 되네”만 들어도 감사하다. 당장 이 작품 하나로 뭘 바라지 않는다. 모델 생활을 꾸준히 오래 했듯이 배우로서도 조금씩 단계를 만들어가는 거다.

영화를 연출한 윤제균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20년 출연한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의 제작자인 리양필름 이한승 대표님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같은 부산 사람이니까 잘 맞을 거라고 인사하게 됐는데 첫 만남 땐 <영웅>이란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감독님께 연락이 왔다. 처음에 “정남 씨~” 하시기에 바로 “아이고 행님, 말씀 놓으세요”라고 했다(웃음). 내게 책을 보내주고 싶은데 매니저 연락처가 어떻게 되냐고 하더라. 내 입장에선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제가 근처에 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고마” 했다. 그렇게 책을 받았는데 그 상황이 안 믿겼다. 살면서 윤제균 감독님 작품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안 해봤으니까.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들면 연락을 달라는데 사실 보고 자시고가 어디 있나. 그 자리에서 바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했다.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겠다.

‘안 할 이유’도 아니지. 한두 신만 있어도 하려고 했다. 그렇게 책을 받았는데 캐릭터도 좋았다. 총을 쏘는 독립군 역할인데 심장이 막, 크. 그러다 수정본이 나왔는데 역할이 좀 더 커져 있고, 크(웃음).

하하.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지켜본 윤제균은 어떤 연출자란 생각이 들던가?

진짜 친구처럼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처음엔 워낙 명장이니까 카리스마 있고 다가가기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친구처럼 대해줘서 ‘감독 맞나?’란 생각도 들었다 (웃음). 화내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그리고 연기자를 가두는 스타일이 아니다. 배우가 ‘이런 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 무조건 ‘해보자’고 답한다. 그릇이 큰 사람이다.

유독 기억에 남는 디렉션이 있나?

이번에 좀 힘을 빼는 연기를 많이 가르쳐주신 것 같다. 또 실제로 연기를 굉장히 잘하신다. 가령 녹음으론 잡히지 않더라도 분을 못 이겨 ‘씨…’라고 작게 삼키면서 소리 내야 하는 모호한 감정이 있다면 직접 어떤 연기인지 눈앞에서 싹 보여준다. 감독님이 연기로 보여주니까 배우로선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웠다.

사람들이 <영웅>을 ‘한국판 <레미제라블>’이라 부르더라. 한국에선 드문 뮤지컬 영화인 데다 후시 녹음 대신 현장에서 직접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으로 촬영했는데, 한국 영화로는 이런 시도가 최초라 들었다.

맞다. 완전히 불가피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70%가 현장에서 녹음한 라이브 가창 버전이다. 후반 작업에서 배우들이 착용한 인이어나 마이크를 CG 작업으로 전부 지운 거로 안다. 독창 신은 가능한 한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그 노래에 실린 절절한 감정은 영화를 보면 한눈에 다 보일 거다. 특히 우리 대장, 성화 형이 딱 노래를 시작하면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재판 신에서 성화 형이 “누가 죄인인가”라고 선창하면 그 에너지가 쫙 나머지 배우들에게 전해져 흡수되는 식이었다. 그걸 옆에서 실제로 라이브로 듣고 있잖아? 소름이, 소름이.

현장 분위기가 엄숙했겠다.

아니다. ‘컷’ 하면 서로 엄청 장난치고 놀기 바빴다. 촬영 끝나면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거나. 다들 친하니까. 게다가 작품에서 동지로 나오니 작품 밖에서도 동지인 거다.

블라디보스토크 신을 위해 한 달간 라트비아에서 현지 로케 촬영을 했다 들었다. 그곳에서 보낸 일상은 어땠나?

사실 내 인생 두 번째 라트비아였다. 2013년 영화 <베를린>도 라트비아 리가에서 촬영했다. 살면서 두 번 다시 올 일이 있나 싶은 나라였는데, <영웅> 촬영으로 또 가게 됐다. 10년 만이었다. 그런데 그때 있던 한식당이 그대로 있더라. ‘설악산’이라는(웃음).

레더 블루종은 릭 오웬스, 톱은 돌테앤가바나, 팬츠는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부츠는 프라다 제품.

2019년 세 작품을 연달아 촬영했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 <오케이 마담>, <영웅>까지. 모델에서 배우로 거듭나는, 말 그대로 커리어의 전환점에 서 있다는 감각이었을 것 같다.

그보다 숙제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비슷한 캐릭터를 맡았으니까. 다른 것도 할 줄 아는데, 이런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데, 하는 갈증이 컸다.

어떤 배역에 도전하고 싶었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묵직한 역할을 맡으면 잘하겠다고 생각했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캐릭터도 좋고. 영화 <파이란>에서 최민식 선배님이 연기한 ‘강재’같이. 왜냐하면 그 감정을 내가 알거든. 어릴 때 진짜 힘들게 살았으니까. 몸으로 느껴봤다. 힘든 바닥은.

멜로는 안 되나?

멜로, 뭐 다 되지(웃음). 그런데 멜로 그 자체보다는 <남자가 사랑할 때>의 황정민 선배님처럼 ‘츤데레’ 같은 멜로 캐릭터를 더 잘할 것 같다.

처음 연기를 해보라 권한 게 배우 류승범이었다 들었다.

와, 그게 언제 적이고…. 승범이 형 덕분에 2012년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를 찍긴 했지만 진짜 연기 데뷔작은 어쩌면 뮤직비디오다. 2000년대 초반까진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뮤직비디오가 많았다. 모델로 활동하던 시기고, 사실 연기를 할 생각이 딱히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것저것 진짜 많이 찍었다. 유미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부터 렉시, 채연, 아이비…. 아, 아이비 뮤직비디오에선 통편집됐다. 그래 고생해 찍었는데(웃음). 그땐 연기가 뭔지도 모르고 찍었는데 화면에 나온 내 모습을 보니까 재미있더라.

과거 모델 활동이 지금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생각하나?

모델 생활을 거의 20년 했다. 옛날에 쇼핑몰 사업을 했던 것까지 치면 적어도 옷을 수만 번은 입어봤을 거다. 그래서 옷을 입으면 사람이 바뀐다. 자세나 태도, 말투가 달라진다. 이게 배우로서 내가 가진 자산 중 하나라 느낀 게, 영화 <보안관> 촬영 때 (이)성민 형님이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옷을 입으니까 바로 느낌이 달라진다”고. 이번 <영웅> 때도 독립군들이 입던 코트에 한 손에 총을 쥐니까 마치 조도선을 연기할 준비가 된 것처럼 느껴지더라.

코트는 김서룡 옴므, 셔츠와 팬츠, 뮬은 모두 드리스 반 노튼, 네크리스는 헤븐스도어 제품.

조도선은 세탁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마음속엔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산다. 배정남에게도 이런 게 있을까?

모델을 처음 시작했던 마음가짐으로 계속 도전하는 거?

처음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땐 절박한 마음이었나?

아니다. 처음엔 고향 부산의 옷가게에서 쭉 일하다 동대문에서 도매 사업을 하려고 했다. 그땐 온라인 쇼핑몰이 없을 때였으니까. 도매하는 형들이 드럼통에 현금다발을 넣고 다니는 걸 보면서 ‘저거다’ 싶었다. 그런데 옷가게에서 일하면 하루에 일당 2만원을 주는데 모델 일을 하니까 하루에 10만원, 20만원을 주더라. 처음엔 생계형으로 모델을 시작했다. 그러다 재미를 들였는데, 금세 열이 받는 거다. 키 큰 애들한테 밀리니까. 내가 봤을 땐 별 볼 일 없는 애들이 키가 크다고 오디션에서 뽑히고 나는 떨어지니까 한마디로 맛이 갔다. 살아온 배경 때문인지 헝그리 정신이 발동돼서 걔네들을 꺾고 싶더라고.

거의 매해 빠지지 않고 런웨이에 서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지난 11월엔 서울패션위크 송지오 쇼에 모델로 서기도 했다.

난 그게 행복하다. 런웨이에 서면 ‘이곳만큼은 내 자리다’라는 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요즘 친구들에게선 절실함이 안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니 롱런하는 모델도 없다. ‘내 나이 사십인데 난 아직도 열심히 준비하고 긴장하면서 이렇게 하고 있다.’ 이걸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자기관리가 대단하다.

나태해지는 게 싫다. 여태 그렇게 살아왔다. 특히 10대 시절이 정말 파란만장했으니까. 그땐 미래도 꿈도 없었다. 내 바닥이 그랬으니까, 인생이 그랬으니까 몸으로 안다. 나태해지는 순간 끝나버린다는 걸.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나태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언제 일이 떨어질지 모르니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쉴 때조차 그 시간을 잘 안 버리려고 한다. 쉬는 시간에 운동을 하든 여행을 떠나 정서적인 뭔가를 채우든 나에게 투자한다. 사실 연예인이란 직업이 일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 않나. 어릴 땐 일이 없으면 마냥 불안했는데 이젠 1, 2년 하고 끝날 게 아니란 걸 안다. 큰 목표를 위해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천천히 가는 법을 나 같은 경우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웠다. 회사에선 내가 작품을 쉬고 있으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이해해주이소.” 또 지금 안 굶을 정도로 살고 있으니까. 옛날 반지하 살고 다락방 살던 때를 생각하면 ‘이게 어디고’ 싶다. 남한테 밥 한 끼 사줄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되는 거다.

사실 지금 당장 내 몸이 편안하면 힘들었던 과거를 잊고 살아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이걸 또 알려준 게 이번에 강아지 ‘벨’이 아프면서다. 살아온 날들이 솨악 한번 둘러봐지더라. 내가 이렇게 컸고, 벨이 와서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내면적으로 강해지고 많이 배우게 됐다. ‘이제 인생 2막의 시작이구나’라고 느끼는 시기인 것 같다. 또 2022년 마흔이 됐다. ‘마흔, 오케이. 20대 때 처음 스타트하는 느낌으로 다시 가보자.’ 이 마인드가 딱 들어왔다.

주위를 돌아봤을 때 이 사람 때문에 내가 ‘괜찮은 마흔’이 됐구나 싶은 사람이 있나?

성민이 형이지. 성민이 형밖에 없다. 영화 <보안관> 인연으로 만나 <미스터 주: 사라진 VIP>까지 두 작품을 함께했다. 선후배 사이를 떠나 이젠 가족 같은 형님이다. 아버지 장례식 때도 맨 뒤 혼자 서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줬다. 분명 다음 날 촬영이 있다고 했는데 새벽까지 있다가 숙소에서 두세 시간 쪽잠을 잔 사람이다. 그러다 간 줄 알았는데 화장터까지 혼자 오셨다. 나에겐 가족이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성민 같은 배우’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인격을 떠나 배우로서도 형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연기의 폭이 너무 넓지 않나. 이번에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온 걸 봐라. 크, 역시 우리 행님. 행님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웃음) 와, 극을 다 끌어가는데, 최고인 것 같다.

요즘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나?

‘고맙다.’ 최근 벨이 아프면서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이 시간 없이 나중에 어떤 큰 산을 만났더라면 많이 무너졌을 것 같다. 배우는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 얘가 나한테 시간을 계속 벌어주고 있다. 하루하루. 벨이 아픈 7월 이후로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시간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온 길을 다시 한번 보게 뵀고. 이런 시간이 내 삶에 있었나 생각하면 없었던 것 같다. 온갖 센 건 다 겪고 육체적으로 힘들어봤어도 마음적으로 이렇게 무너진 건 처음이었다. 임마가 나한테 주는 선물인 것 같다. 여태껏 긍정적으로 살았는데 더 바뀌게 됐다. 더 긍정적으로.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신선혜
스타일리스트
김선영, 김지수(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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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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