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미학

W

절제된 건축물이 자연과 만났을 때 가장 경이롭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곳.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다. 이 걸작을 관통하며 쏟아지는 아름다운 석양 속에 루이 비통의 2023 크루즈 컬렉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낯설고 생경한 것은 언제나 사람을 강렬하게 매료시킨다.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샌디에이고의 라호야 또한 마찬가지다. 멕시코 국경과 멀지 않은 이 낯설고 기이한 이방인의 도시는 지독하게 탐미적인 동시에 경이로운 방식으로 아름답다. 윌리엄 레너드 페레이라가 집필을 하던 가이젤 도서관, 마릴린 먼로가 주연을 맡
은 <뜨거운 것이 좋아>의 촬영지인 코로나 호텔 등 미국 남부 예술이 만개한 황금 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경이로운 건축물과 공간이 호기롭게 펼쳐진 이 도시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라호야 전체를 관통하는 석양에 강렬하게 매혹됐다. 대범하게 도시를 가로지르는 건축물 위에 석양이 관통하는 굉장한 순간 속에서 그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신비롭고 중독적인 캘리포니아의 이면적 아름다움 속에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빛과 사람 사이의 어떤 접촉점을 발견했고, 그 지점에서 옷이 아름다운 방식으로 반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라호야의 태양이 이번 루이 비통 2023 크루즈 컬렉션의 시발점이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 것이다.

일몰 시간,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 한가운데로 볕이 쏟아지는 경이로운 모습.

결점 없는 회색 콘크리트로 된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건조한 벽면에 볕이 쏟아지는 순간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일몰 시간.

이처럼 태양은 루이 비통의 2023 크루즈 컬렉션을 완성한 핵심 요소다. 라호야의 지평선을 기준으로 한 여러 건축물과 그것을 아우르는 모래와 절벽 등의 자연적 요소는 이번 크루즈 컬렉션이 추구하는 유목민적 미학을 더욱 견고하게 뒷받침하는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 태양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는 회색빛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는 태양을 가장 직접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타들어가는 일몰 시간 동안 태양은 회색 콘크리트로 이뤄진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중앙에 위치한 분수의 정확한 중심축 내에 들어오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태양은 건물을 포함한 모든 것을 놀라운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마치 태양이 코앞에 온 듯 금빛으로 쏟아지는 아름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각적 절정에 이르게 만드는데, 아마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이 지점에서 라호야의 태양에 마음을 빼앗겼을 터다. 그는 이와 같은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태양볕 아래서 옷과 사람 사이의 접촉점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그리고 그 접촉 속에서 완성되는 일련의 반사가 옷과 사람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았을까.

지평선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나뉘는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모습을 닮은 절개.

구조적인 형태 외에도 몸을 타고 유려하게 흐르는 듯한 드레이핑이 주를 이루는 룩이 곳곳에서 보인다.

구조적인 형태 외에도 몸을 타고 유려하게 흐르는 듯한 드레이핑이 주를 이루는 룩이 곳곳에서 보인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구조처럼 정확하게 이분적 형태로 나뉘는 구조적 형태의 상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구조처럼 정확하게 이분적 형태로 나뉘는 구조적 형태의 상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구조처럼 정확하게 이분적 형태로 나뉘는 구조적 형태의 상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태양의 아름다움 속에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라호야의 사막과 태양이 선사하는 강인한 인상에서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간의 구조적 형태는 고스란히 유지하되 유동적이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동시에 선보였는데, 가령 수많은 드레이핑에 스냅을 더해 형태를 변형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제트스키나 바다, 모래, 항해, 험준한 절벽 등 라호야 해변에서 영감 받은 아름다운 요소를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하여 프린트로 구현, 지금의 기술력과 라호야의 자연, 지구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라호야의 태양을 형상화한 빛나는 소재가 돋보이는 가방으로 움직임에 따라 놀라운 반사를 자아낸다.

움직임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반사시키는 액세서리들.

라호야의 태양을 형상화한 빛나는 소재가 돋보이는 가방으로 움직임에 따라 놀라운 반사를 자아낸다.

움직임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반사시키는 액세서리들.

쏟아지는 라호야의 일몰 아래, 눈부시게 반사되는 금빛 팔레트가 돋보인다.

쏟아지는 라호야의 일몰 아래, 눈부시게 반사되는 금빛 팔레트가 돋보인다.

반짝이는 소재를 곳곳에 더해 움직임에 따라 반사되며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

반짝이는 소재를 곳곳에 더해 움직임에 따라 반사되며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

무엇보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지배적으로 주도한 리넨 소재를 비롯하여 자카드나 실크, 가죽, 트위드 등의 소재로 일궈낸 금속 팔레트는 라호야의 석양 속에서 더욱 극적으로 흔들리며 이전에 결코 보지 못한 놀라운 반사를 만들어냈다. 웨스트 코스트 특유의 깊고 길게 떨어지는 아름다운 태양볕 속에서 이 소재로 완성된 옷들이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조우하니, 마치 석양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접착제나 열가소성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면과 실크, 양모와 같은 소재를 표현해냈다. 트위드나 시퀸, 가죽 등의 소재는 인위적 가공 없이 빛과 시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산화될 수 있도록 가공했다. 직물의 변형이야말로 대단한 진화이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원초적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접착제나 열가소성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트위드나 양모 등의 소재는 직물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접착제나 열가소성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트위드나 양모 등의 소재는 직물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하여 움직임에 따라 놀라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부츠.

트렁크에서 영감 받아 모서리에 직각 금속 장식을 더한 가방.

태양 전지판과 같은 기술력을 도입한 신발.

태양 전지판과 같은 기술력을 도입한 신발.

드레이핑에 스냅을 더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연출할 수 있도록 한다.

드레이핑에 스냅을 더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연출할 수 있도록 한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답게 여러 소재를 과감하게 섞어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풀어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답게 여러 소재를 과감하게 섞어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풀어냈다.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진화했는데,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하는 작은 태양 전지판과 같이 반사되는 밴드로 장식한 부츠가 바로 그것이다. 가방 곳곳에 루이 비통의 트렁크에서 영감을 받아 모서리 부분에 직각 금속 장식을 더했고, 모래 위에 인쇄한 것만 같은 가벼운 모노그램 엠보싱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 모든 것이 라호야의 석양빛 아래서 황홀한 금빛 색조로 물들며 지독하게 탐미적인 아름다움을 폭발적으로 쏟아내게끔 만든다.

니콜라 제르키에르와 배두나.

레아 세이두, 에바 두버네이, 젬마 찬도 쇼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는 클로이 모레츠.

프런트로를 장식한 모델 미란다 커와 배우 아나 디 아르마스, 배우 디피카 파두콘.

배우 아가트 루셀과 마리나 포이스, 스테이시 마틴도 라호야를 방문하여 크루즈 컬렉션의아름다움을 공유했다.

무엇보다 이번 2023 크루즈 컬렉션의 배경이 된 장소는 그간 패션쇼가 열린 전례가 없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소아마비를 치료하는 ‘폴리오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소크 박사의 연구소인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는 ‘파블로 피카소가 방문할 만큼 매력적인 건물을 지어달라’는 소크 박사의 요청 아래 루이스 칸이 무려 6년의 시간을 오롯이 바쳐 완성한 장소다. 그는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의 뒤를 이어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융성했던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을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에 적용했다. 이 건물의 중심에서는 라호야의 해변과 태평양이 시선에 들어오는데, 태양과 바다야말로 생명을 상징한다고 믿는 생명 공학 박사들의 믿음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고요와 성찰을 기반으로 완성된 이 건물의 철학은 루이 비통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크루즈 컬렉션이 지향하는 ‘건축적 여정’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생의학 연구소가 이번 2023 루이 비통 크루즈를 위해 처음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고 크다.

라호야의 석양빛 아래서 황홀한 금빛 색조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쏟아졌던 피날레.

라호야의 석양빛 아래서 황홀한 금빛 색조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쏟아졌던 피날레.

이처럼 놀랍고 진기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으니 이번 루이 비통 2023 크루즈 컬렉션의 스페셜 게스트는 다름 아닌 태양이라 말했던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건물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한 루이스 칸의 철학적 태도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미학적 시선 사이에 어떤 공명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컬렉션 내내 흘러나온 스파크스의 노래가 맴돈다. ‘Never turn your back on mother earth’라는 가사가 말이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선영
사진
COURTESY OF LOUIS VUITTO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