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을 탐구하는 작가 마티 브라운의 첫 국내 개인전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외계인 되기

2022-10-21T00:19:22+00:002022.10.21|ART + JEWELRY|

독일 출신의 작가 마티 브라운(Matti Braun)은 오랜 시간 ‘외계인’의 자장 안에 있는 작업 세계를 펼쳐왔다. 낯섦, 타자, 미래 등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 외계인을 통해 그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 너머의 바깥을 넌지시 응시한다.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한국을 찾은 작가 마티 브라운.

외계인이 있되, 외계인이 없는 전시. 다소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이는 마티 브라운의 개인전 <Ku Sol>에 대한 첫인상이다. 9월 21일부터 10월 23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개최하는 독일 출신의 예술가 마티 브라운은 오랜 시간 인도의 영화감독 사트야지트 레이의 <외계인>을 탐구하는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인도 영화를 세계 무대에 올린 감독이라 평가받은 레이는 1967년 뱅골 서부를 배경으로 한 SF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했는데, 이는 장난꾸러기 외계인이 어느 날 마을의 연꽃 호수에 불시착하고 마을 소년 하바와 만나 우정을 쌓는 이야기를 담는다. 친근한 외계인과 인간 소년의 만남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의 <외계인> 시나리오는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배우 말론 브랜도, 스티브 매퀸, 피터 셀러스가 출연하는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 제작사가 제작 의사를 철회하고 시나리오가 불가사의하게 분실되면서 <외계인>의 영화화는 아쉽게 불발되고 만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인 1982년, 레이의 <외계인>과 절묘하게도 기시감을 띠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히트작 <E.T>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어쩌면 영화 <E.T>의 위키피디아 문서 하단에 ‘레이의 <외계인> 각본과 유사성 논란이 있었음’으로 한 줄 처리되고 말 일련의 이야기는 왜인지 작가 마티 브라운을 강하게 매료시켰다. “사실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미디어에선 외계인을 적대적으로 묘사했어요. 비로소 레이가 <외계인>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익숙히 인지하는 친근한 모습의 외계인을 구체화한 거죠. 저는 <외계인>의 서사 자체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레이의 각본이 이후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에,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외계 존재의 정형화에 어떤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쳤는지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훗날 <외계인>과 골조가 매우 흡사한 <E.T>가 개봉해 이런 상상을 하게 됐죠. 만약 그 당시 스필버그가 아닌 레이의 각본으로 영화화됐다면 어땠을까? 외계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뒤바뀐 것처럼, 어쩌면 외계인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알고 인지하는 것들은 우리가 과거 겪은 일련의 사건에 의해 정해진 지각이나 의식이 아닐까?” 브라운이 말했다.

오늘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심지어 무시되기까지 했던 영화 <외계인>을 둘러싼 비화는 실은 대륙과 시대를 넘어 브라운이 추적하는 수많은 문화적 궤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1990년대 초 예술계에 등장한 브라운은 미술, 문화, 역사,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개별 서사를 열정적으로 발굴하면서 거대한 개념의 그물망을 직조해가는 작업을 펼쳐왔다. 그의 작업은 특정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두지만, 작가는 그를 둘러싼 정형화된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 여러 사실을 재결합하고 본인만의 서사를 창조한다. 일례로 그의 대표 설치작 ‘R.T/S.R/V.S.’(2003~현재)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 인도의 근대성을 보여준 세 명의 방랑 영웅을 호명한다. <외계인>의 감독 사트야지트 레이(S.R)를 비롯해 1913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T), 인도 우주 개발 프로그램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과학자 비크람 사라바이(V.S)까지. 브라운은 작품을 통해 세 인물의 개별 서사를 교차하고, 이를 통해 그간 선명하게 드러난 적 없던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간의 문화적 흐름을 다층적으로 들여다봤다. “세 사람 사이엔 아주 놀라운 커넥션이 있어요. 이들 중 비크람 사라바이는 특히나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인도 출신의 과학자였지만 르코르뷔지에, 존 케이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같은 서구 모더니즘의 선구자들과 친밀히 교류한 인물이죠. 사라바이 가문은 영국으로 치면 리버풀에 해당하는, 북인도의 역사적 수도 아마다바드에서 방직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일종의 인도판 메디치 가문에 가까웠지요. 초기 인도 사회가 발전하고 도약하는 데 거센 계몽의 바람을 일으킨 집안이었거든요. 세계 최초의 직물 박물관인 ‘칼리코 섬유 박물관’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했습니다.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도 그중 하나였고요. 한편 1901년 타고르가 설립한 교육 기관인 산티니케탄의 학생 중 한 명은 <외계인>의 레이였죠. 참으로 놀라운 연결 고리죠. 이렇듯 이들 사이, 이들 너머 얽히고설킨 사실들을 조사하며 깨달은 것은 결국 ‘그동안 내가 얼마나 조금 알고 있었는가, 결국 모든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일 정도입니다.”

2006년 런던 ‘더 쇼룸’에서 작가는 인도의 영화감독 샤트야지트 레이의 미실현 각본 <외계인>을 공연으로 시각화했다. THE ALIEN (LONDON), 2007, INKJET PRINT, 52.5X43.5X3CM.

이렇듯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 발생하는 흥미로운 교류, 충돌, 오해, 미끄러짐은 브라운이 오래 천착해온 주제다. 그가 레이의 미실현 영화 <외계인>에 주목한 이유도 어쩌면 <외계인>에 기술된 외계의 낯선 존재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서사가 동서양, 시공간을 넘나들며 새롭게 해석되고 타 예술 장르로 스며드는, 기묘한 문화적 흐름과 현상 때문이었다. 브라운이 사트야지트 레이와 그의 각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런던 ‘더 쇼룸’에서의 개인전 준비가 한창이던 2003년, 전시 준비차 방문한 런던 ‘타고르 센터’에서 우연히 레이의 <외계인>이 기술된 책을 접하면서다. 이에 빠르게 매료된 브라운은 2003년 <외계인> 각본에서 외계 우주선이 연꽃 호수에 불시착하는 첫 장면을 상상적으로 재구성한 설치 작품 ‘R.T/S.R/V.S.’를 공개한다. ‘몰입형 호수’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을 통해 브라운은 전시장 바닥을 온통 물로 채우고 그 위 나무를 잘라 만든 원반을 징검다리처럼 불규칙적으로 배치했는데, 관객은 익숙한 땅에서 벗어나 물 위에 서 있는 낯선 체험을 하며 잠시나마 ‘외계인 되기’에 동참하게 된다. 한편 2006년 ‘더 쇼룸’에서는 피트 몬드리안, 다니엘 뷔랑의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무대 세트를 배경으로 <외계인>을 공연으로 시각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외계인의 자장 안에서, 그는 외계인의 튀어나온 ‘눈’을 연상시키는 유리 조각, 마치 우주의 광선과 같이 신비한 광채를 머금은 실크 추상화 ‘무제’ 연작 등을 펼쳐가고 있다. “외계인은 낯섦, 타자성으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타자성은 동시에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죠. 어쩌면 일상, 자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외계인이 되는 첫 시작은 이미 항상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는 10월 23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개최되는 마티 브라운의 개인전 ‘Ku Sol’의 전시 풍경.

이번 개인전 <Ku Sol> 전시장에 당도하면 가장 먼저 눈앞에 펼쳐지는 밝은 색상의 소용돌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2008년부터 브라운이 전개하고 있는 실크 추상화 ‘무제’ 연작이다. 열대의 일몰, 혹은 아이폰 화면 보호색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감의 ‘무제’ 연작은 실크 위에 증기를 이용해 염료를 안착시키는 전통 기법으로 완성했다. 브라운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색의 스펙트럼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어쩌면 무지개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지개란 포착할 수 없는, 도달할 수 없는 존재와 같기 때문입니다. 한편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죠.” 시각적 단순함, 명쾌함으로 관객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건네는 ‘무제’ 연작은, 한편 작품의 재료인 실크 자체가 지닌 상징성에 주목할 때 비로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브라운은 고대부터 종교적, 제의적 목적으로 사용된 실크란 소재에 아주 강렬하거나 아주 절제된 색을 입힘으로써 실크를 전통적 소재의 맥락에서 분리시킨다. “실크란 굉장히 ‘서사적’인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무역이 크게 발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실크란 ‘스토리’를 지닌 재료죠. 이러한 실크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실크가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동시대 미술 언어로서 드러나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과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생각했죠.” 문화 간 교류를 환유하는 실크를 소재로 완성한 ‘무제’ 연작은 재현의 부재, 형태의 초월이라는 측면에서 ‘외계인’이라는 존재의 특성과 만나기도 한다. 외계인을 재현하지 않되 외계인을 경유하고, 모든 도상학적 참조를 지운 미니멀한 작업 형태에 대해 브라운이 말했다. “간소화는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점인 것 같아요. 우리는 간혹 어떤 감정, 이야기를 전달할 때 소통을 위해 이를 간소화합니다. 그리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순간 디테일은 사라지기 마련이죠. 그 디테일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를 겪고 실수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해를 통해 간혹 새로운, 예기치 못한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기도 한다고 믿어요. 오해를 통해 비로소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거죠. 누군가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나네요. ‘예술은 자유를 위한 리허설’이라는 것. 저는 오해야말로 하나의 방에서 나와,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독특한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이라는 행성과 그 주변을 닿을 듯 말 듯 영원히 맴도는 서사라는 위성. 어쩌면 지구의 먼 곳에서 발산된 다종다양한 개별 서사를 구도자처럼 발굴하고, 이를 통해 거대한 의미의 사슬을 만들어가는 브라운의 작업은 이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에선 실크 추상화 ‘무제’ 연작과 마찬가지로 영롱한 색을 머금은 둥그스름한 형상의 유리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색의 변화로 작동하는 외계인의 ‘눈’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작가의 시선이라는 또 다른 ‘눈’을 떠오르게도 만든다. 그렇다면 지금 또다시, 브라운의 눈이 향하는 세계는 어디일까? “최근의 여정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칸딘스키입니다. 그가 젊은 학생이던 시절,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어요. 1889년 즈음, 그는 시베리아 북동부의 코미 공화국으로 민족학 탐험을 떠났죠. 코미인들은 러시아어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그곳엔 뿌리깊은 지방 종교도 존재했어요. 칸딘스키는 한 코미인의 집에 거주하면서 화려한 색감의 내부 인테리어, 아름다운 집기들에 빠르게 매료됐죠. 훗날 칸딘스키는 자신의 추상화의 시작점이 코미인의 집이었다고도 회상합니다. 또한 죽음, 결혼과 관련된 코미인의 종교 의식에도 그는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최근엔 이런 사실들이 작업에 들어오고 있어요. 언젠가는 코미 공화국을 찾아 흥미로운 비밀을 제 눈으로 직접 발견하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