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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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고요손의 개인전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이 10월 14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된다. 고요손이 디저트에서 엿본 조형적 미감에 대해 말했다. 

<W Korea> 2021년 얼터사이드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 <미셸> 이후 두 번째 개인전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디저트를 ‘조각’으로 바라보며 매체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우선 디저트를 조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흥미로운데, 이러한 발상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고요손 우선 평소 디저트에 관심이 많았다. 디저트를 먹을 때 감각이 풍성하게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이를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린 시절 미술관에 가 만질 수 없는 조각을 볼 때면 여러 상상에 빠지곤 했다. 조각을 부순 후 조각의 단면을 본다거나, 조각의 일부를 먹었을 때 생기는 잔해와 같이 파괴적인 풍경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면서. 지금도 여전히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면 ‘이 작품에선 어떤 맛이 풍길까?’를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저트의 미각적 요소뿐 아니라 시각적 요소에 큰 매력을 느꼈다. 디저트를 한 입 맛본 후부터 전부 먹고 나서 접시에 남은 흔적을 지켜보기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디저트의 장면들은 마치 내게 ‘관람’의 감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무너미, 섬광, 수르기, 심드렁, 원형들, 토오베까지. 현재 국내 디저트 신을 주도하는 서울의 디저트 숍 6곳과 협업해 ‘디저트 페스티벌’ 형식으로 개인전을 전개한다. 우선 디저트 숍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나? 또 전형적인 화이트큐브에서 탈피해 관객이 여섯 장소 곳곳을 누비며 체험, 경험, 소비하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

맛과 조형미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실험적인 것을 시도할 준비가 된 가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사실 함께하는 여섯 가게 모두 예전부터 팬심을 갖고 자주 가던 가게들이다. 그리고 페스티벌 형식의 전시 방식은 뭐랄까, 일종의 호기심 혹은 반항심이었달까. 뭔가 실험적이고 신선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서울 어디에 살든 최대한 가깝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전시 공간의 컨디션을 조성하고 싶었다. 매일 다른 사람(파티시에)의 손에서 탄생하는 나의 조각들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 흔적이 남지 않는, 즉 쓰레기가 남지 않는 전시를 하고 싶은 소망도 있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여섯 디저트 숍과 함께 케이크 신메뉴이자 먹는 조각을 개발했다 들었다. 각각을 소개해줄 수 있나?

‘원형들’과는 꾸덕한 초콜릿을 이용해 사람이 다리를 뻗고 앉아 있는 모습의 조각을 만들었다. 사람 모양의 조각이 한 손에 생화를 들고 있고, 그 주변에 머랭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무너미’는 ‘조각을 반으로 잘랐을 때 과연 단면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오랜 궁금증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바닐라 케이크의 겉면은 은빛이 도는 딱딱한 텍스처로 처리되었지만, 이를 잘랐을 땐 섬뜩한 철근, 빛나는 광물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가득 차 있다. ‘토요베’와는 도자 찻잔 안에 아몬드 푸딩이 들어가 있고, 관객이 이를 뒤집어 찻잔에 디저트를 떨어트려야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개발했다. ‘무너미’의 디저트가 조각의 ‘단면’에 대한 작품이라면, ‘토요베’의 디저트를 통해선 조각의 ‘속’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다. 그리고 우유 푸딩을 무대로, 버터 쿠키를 배우로 바라보며 일종의 연극 무대를 상상한 ‘심드렁’과의 디저트, 흑임자 베이스의 디저트에 뜨거운 액체를 부어 조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 ‘수르기’와의 디저트, 와인잔에 진한 말차 무스를 올려 내는 ‘섬광’과의 디저트가 있다.

디저트 외의 일상적 사물 가운데, 조각가 시점에서 조형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의외의 무언가가 있다면?

평소 작업실에서 조각을 하다 문득 바닥을 보았을 때, 거기에 남겨진 묘한 형상의 잔해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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