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패션의 시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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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팝의 왕자 프린스가 보여준 남성 뮤지션의 자유분방한 차림을 기억하는가. 당대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패션 계보를 잇는 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나긴 공백기를 깨고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와 릴 나스 X(Lill Nas X)가 젠더 패션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음을 선포한다.

해리 스타일스 (Harry Styles) 

1. 2021년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서 입은 구찌 의상. 가죽 셋업에 보아 머플러, 톱 핸들백을 더했다. 

2. As It Was’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한 아르투로 오베게로의 시퀸 장식 투피스. 

3. Lights Up’ 뮤직비디오를 위해 제작한 해리스 리드의 실크 모이어 슈트. 

4. Love on Tour’ 콘서트 투어를 위해 주문 제작한 구찌의 핑크색 프린지 베스트가 인상적이었다. 

5. 2019년 메트 갈라에서 착용한 구찌 의상. 당시 유행한 ‘프리더니플 (Free the nipple)’ 흐름에 동참하듯 시어한 톱을 레이어드했다. 

릴 나스 엑스 (Lil Nas X) 

1. 2020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착용한 아틀리에 베르사체 슈트와 카우보이 모자. 

2. 2021년 메트 갈라에서 공개한 아틀리에 베르사체 앙상블 세 벌 중 금박 갑옷. 몸의 형태를 강조하는 그만의 시그너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3. 2022년 그래미 시상식 

공연에서 입은 발망의 화려한 크리스털 크롭트 티와 시퀸 팬츠. 

4. 2021VMA 시상식에 입고 나온 아틀리에 베르사체의 연보라색 슈트. 웨딩드레스에서 볼 법한 우아한 트레인을 길게 늘어뜨렸다. 

5. 2022년 그래미 시상식을 위한 진주 장식 발망 슈트. 

릴 나스 엑스(Lil Nas X)가 시상식에 발망의 현란한 진주 장식 크롭트 티를 입고 등장하거나 진주 목걸이를 한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가 핑크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더 뜨겁게 환호할 뿐! 동시에 온라인 세계에서는 여전히 완고한 젠더 패션의 현황에 대해 수백 개에 달하는 기사가 올라오며 그 열기를 이어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젠더리스 패션이 역사적으로 새로운 흐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롤링 스톤>과 <서커스>의 옛 발행물을 살펴보면, 과거의 록스타들이 힘차게 걸어온 길임을 알 수 있다.

50년 전, 전설적인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기존의 성 역할에 반항하는 본인의 초자연적인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를 세상에 공개했다. 이로부터 10년 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앨범 <1999>의 주인공 프린스(Prince)가 등장했다. 그는 지금 시대의 글래머러스한 패션 아이콘, 카다시안조차 얼굴을 붉힐 만한 획기적인 룩뿐 아니라 엉덩이를 완전히 드러낸 차림으로 레드카펫에 등장하기도 했다. 비록 지난 몇십 년간 남성 뮤지션들의 스타일은 남성적인 패션 코드를 고집해왔지만,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가 펌 헤어스타일을 뽐내고,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자신의 곡 ‘제일하우스 록(Jailhouse Rock)’의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대중 음악은 남성들이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패션을 즐겨도 괜찮았던, 즉 젠더 이분법에 저항하며 남성의 몸을 당당하게 성적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서구 문화의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로큰롤은 청춘의 음악으로 시작했고, 정체성 형성에 집착해요. 10대 청소년과 20대 젊은이들이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것이 핵심이죠.” <열풍: 로큰롤이 어떻게 미국의 ‘젠더’를 변신시켰는가>를 집필한 음악 비평가이자 에머슨 대학 교수인 팀 라일리(Tim Riley)의 말이다. “사람들은 항상 로큰롤을 통해 더 자유롭게 자신의 유별남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 할리우드가 이제야 따라잡고 있는 거죠.”

당대 가장 사랑받는 남성 뮤지션들의 옷장만큼 그 시대의 성 관념을 잘 담아내는 지표는 없을 것이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는 ‘Lights Up’ 뮤직비디오 의상으로 라조슈미들(Lazoschmidle)의 시어한 블라우스를, ‘As It Was’에서는 아르투로 오베게로(Arturo Obegero)의 빨강 투피스를 착용하며 젠더리스를 지향하는 디자이너를 향한 애정을 표했고, 릴 나스 엑스는 2021년 VMA 시상식을 위해 베르사체에 프린스를 오마주한 가슴이 내보이는 의상을 의뢰했으며, 숀 멘데스(Shawn Mendes) 역시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 본인의 옆집 오빠 같은 이미지와 상반되는 룩을 선보였다. 빌보드 라틴 음악 시상식에서 착용한 파우더블루 슈트부터 자크뮈스 캠페인 속 핑크 푸퍼 베스트만 입은 채 제트스키를 타는 모습까지, 뭐든 섹시하게 소화하는 배드 버니(Bad Bunny)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유로비전 대회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록 그룹 모네스킨의 프런트 맨인 다미아노 다비드(Damiano David)는 페티시 용품과 구찌 란제리를 함께 착용하는 신선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란제리에 관해서라면,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이 록스타들의 티팬티 사랑에 다시금 불을 지핀 사건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스타일리스트 가디르 라잡(Gadir Rajab)은 ‘You’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한 티팬티가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팬들의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해당 티팬티는 할리우드 길거리에서 10달러에 구매했다고 한다). 배드 버니의 스타일리스트 스톰 파블로(Storm Pablo)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패션을 보면 모든 게 예측 불가능해요. 그러다 보니 감각에만 의존해 스타일링하니까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굉장히 비정통적인 룩을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팬츠 대신 딱 달라붙는 벳시 존슨(Betsey Johnson)의 꽃무늬 레깅스를 입은 액슬 로즈(Axl Rose)의 파격적인 스타일과 차별적인 ‘DADT 정책’(‘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뜻으로 1990년대 초반 빌 클린턴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미국의 성 소수자 복무를 위한 병역법이다. 당시 미국의 복무 제도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터라 ‘적어도 자신이나 타인의 성적 지향에 대해 묻거나 말하지 않는 전제하에서는, 성 소수자도 복무할 수 있게 하자’라는 의미로 변질했다)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의 경향이 공존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레이건 대통령의 임기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1985년 티퍼 고어는 자신의 딸이 듣고 있던 노래의 가사에 충격을 받아 부모 음악 지원 센터를 설립했다. 불쾌감을 주는 노래를 선정한 ‘더러운 15(Filthy Fifteen)’라는 목록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프린스의 ‘Darling Nikki’ 외에 트위스티드 시스터, 데프 레퍼드, 머틀리 크루, 그리고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프런트맨 롭 핼퍼드가 멤버인 주다스 프리스트의 곡이 포함되었다. 목록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특히 남성의 전통적 성역할이 전복되는 사회의 흐름을 불편해했다. 그런 와중 HIV/AIDS는 남성 뮤지션들에게 엄청난 위기로 다가왔다. 그간 힘들게 일군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섹스 포지티브(Sex-Positive),그리고 젠더를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을 단번에 산산조각 냈기 때문이다.

X세대가 성인이 되고 그런지 룩의 시대가 도래했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을 포함한 많은 팝스타들은 빈티지 플란넬 셔츠와 헐렁한 청바지를 마치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고, 노토리어스 빅(Notorious B.I.G.) 같은 힙합 스타들은 오버사이즈 티셔츠와 팀버랜드 작업화를 착용했다. 이러한 급격한 스타일의 변화는 음악 장르의 이미지 변화와 동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록 장르가 불완전한 감성을 지닌 이성애자 남성을 위한 음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시기 록스타들은 JNCO의 데님 팬츠 한 벌이면 됐지, 화려한 패션이 무슨 소용이냐는 듯 옷을 입이다.

“한때는 전날에 입고 잔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듯한 후줄근한 패션 스타일이 쿨하게 느껴졌죠.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반항하는 유용한 방식이었거든요.” 로큰롤 명예의 전당 전시회 감독이었던 이벤트 프로듀서 일린 셰퍼드 갤러거(Illin Shepard Gallagher)의 말이다. “모든 것은 페르소나예요. 화려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은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바라볼지 선택해요. 그런 태도는 그들의 옷에 반영되고요.”

2000년대 초반, 음악 차트 상위 40위에 오른 남성 뮤지션의 스타일은 그야말로 암울했다. 니켈백(Nickelback)은 빌보드의 대중 록 차트에서 무려 1위 히트곡을 8개나 냈지만, 기억에 남는 의상은 단 하나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 시대의 존엄성 정치는 맞춤 양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와 제이 지(Jay-Z)가 2013년에 발매한 ‘Suit & Tie’를 통해 메트로 섹슈얼에 대한 예찬으로 이어졌다.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록스타들이 시트콤 <30 Rock> 속 인물 잭 도나기의 양복과 같은 드레스 코드를 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은 우리에게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한편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제 우리는 다시금 화려하게 빛나는 시퀸과 주름 장식의 세계로 복귀했다. 새로운 세대는 과거 록스타들의 무대의상을 참고해 스타일을 재정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해리 스타일스는 영국 음악의 헤리티지에 기반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구찌의 가죽 블레이저에 초록색 보아 머플러로 마무리한 2021년 그래미 시상식 무대 의상은 글램 록의 개척자였던 밴드 티렉스 소속의 마크 볼란(Marc Bolan)에 대한 의도적인 오마주였다. 같은 날 배드 버니가 입은 버버리 스커트 드레스는 믹 재거의 마이클 피시(Michael Fish) 맨 드레스를 떠오르게 했다. 옷 입기에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을 것 같은 릴 나스 엑스의 룩 역시 프린스와 힙합계 선구자 팹 파이브 프레디(Fab 5 Freddy)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이전 세대는 혼합된 젠더, 즉 앤드로지니의 애매모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피해왔다. 데이비드 보위의 곡 ‘Rebel, Rebel’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너희 엄마가 당황하고 계셔. 너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시겠대.” 10년 후 프린스 또한 “난 여자가 아냐. 난 남자도 아냐. 난 너네가 이해하지 못할 존재야”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2022년의 대중에게 이러한 간접적인 메시지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명료성과 진정성을 요구한다. LGBTQ+ 커뮤니티가 그간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십 년의 세월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릴 나스 엑스와 트로이 시반, 올리 알렉산더, 그리고 영국 음악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한 이어즈&이어즈는 퀴어임을 밝힌 대표적인 뮤지션들이다.

본인의 콘서트에서 무지개색 프라이드 플래그를 흔드는 해리 스타일스,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살해당한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티셔츠를 입은 배드 버니 역시 LGBTQ+의 물결에 동참했다. 하지만 일부 냉소적인 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단순한 스타일 경쟁이라 치부한다.

“몇몇 사람들은 배드 버니가 그냥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는 목적을 갖고 행동해요”. 그의 스타일리스트 파블로의 말이다. 스타일리스트 라잡은 영화처럼 프로젝트성 작업을 하는 할리우드 스타와 온전히 내 이야기를 전하는 뮤지션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뮤지션의 패션 스타일은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본인의 삶과 연결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들의 패션이 가진 진정한 영향력은 팬들에게 전해지는 파급 효과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갤러거는 관객이 무대 위 존경하는 록스타가 입은 의상을 보면, 오히려 더 자유롭게 그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한다. 라잡 역시 트로이 시반 팬들의 반응에 이렇게 말했다. “팬들 역시 이제 본인을 표현하고 자신감을 갖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를 구매할 수는 없으니까 빈티지 숍에서 찾은 아이템으로 본인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거죠”.

라일리는 엘튼 존(Elton John)과 릴 나스 엑스 사이에는 명백한 연결고리가 보이지만, 그 뒤를 다음 세대는 어떠한 양상을 띨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반짝거리는 전신 점프슈트를 입은 남성 패션 스타일도 새로운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돌고 도는 패션 사이클 속 룰렛 바늘이 다시금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로 향할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미래의 어느 순간부터 패션을 젠더로 구분한다는 개념 자체를 구식의 것으로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로큰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성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고, 퀴어 해방과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개념을 주류 문화에 편입시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의 젊은 뮤지션들은 성 정체성을 감춰야 하는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롤링 스톤즈로 대표되는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와는 다르게 앤드로지니의 애매한 개념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성별을 다루는 이분법적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 라일리는 “‘난 누구지?’와 같이 정체성 형성과 관련된 질문이 대중문화를 이끄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앞으로 성별 외에 또 어떤 새로운 정체성이 대중문화를 견인할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에디터
KYLE MUNZENRIEDER
일러스트레이터
HELEN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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