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가고시안'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아트 이슈 05 – 가고시안 (Gagosian)

2022-08-26T15:48:34+00:002022.08.26|FEATURE, 컬처|

가고시안 제국은 해가 지지 않고, 컬렉터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시안이 있다. 전 세계 19개 지점을 보유하고 한 해 매출이 1조원을 훌쩍 넘는 메가 갤러리 가고시안이 한국에 처음 상륙한다는 소식은 올해 프리즈 서울의 가장 큰 이슈다. 

작가는 묽은 물감을 캔버스에 부어, ‘적시고 얼룩내기’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썼다. 테라코타색 물감의 흔적 가운데 점처럼 초록색이 스친다.

HELEN FRANKENTHALER ‘ETRUSCAN WALK’(1978), ACRYLIC ON CANVAS,167 X 245.6 X 5.6 CM. © 2022 HELEN FRANKENTHALER FOUNDATION, INC./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보라색 카펫이 깔린 바닥에 초록색 벽, 심플한 공간 속에 놓인 평범한 나무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군청색 슈트 차림에 브라운색 로퍼를 신은 짧은 그레이 헤어의 남자의 시선이 그림을 보는 이와 마주치는데, 무표정한 얼굴과 두 손을 모은 자세에서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진다. 작가의 전형적인 화풍으로 표현된 초상화 속 남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딜러’로 불리는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이다. 호크니뿐 아니라, 1985년 일찌감치 바스키아가 그를 그렸고 동시대 가장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Elizabeth Peyton)의 그림 속에도 그가 있다.

루돌프 스틴젤 ‘Untitled’(2015). 127×127cm. 작가 특유의 붓놀림으로 추상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독수리를 표현했다.

RUDOLF STINGEL ‘UNTITLED’(2015), OIL ON CANVAS, 127 X 127 CM. ⓒ RUDOLF STINGEL, COURTESY OF THE ARTIST.

전 세계 총 19개(뉴욕 6개, 런던 3개, 파리 3개, 스위스 3개, LA, 로마, 아테네, 홍콩)의 갤러리를 보유하고, 한 해 매출만 1조원을 훌쩍 넘기는 메이저 중의 메가 메이저 갤러리 가고시안의 수장.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로 ‘태양이 지지 않는 가고시안 제국’을 통치하는 래리 가고시안이 청년 시절 실직 후 길거리에서 값싼 포스터를 판매하다 1980년 LA에서 첫 번째 갤러리를 연 후 지금에 이른 성공 스토리는 현대미술계의 전설처럼 여겨진다. 그는 30년 넘게 CY 톰블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별세를 지킨 딜러였고, 현재 게오르크 바젤리츠, 안젤름 키퍼, 존 커린, 마크 그로찬, 안드레아스 거스키, 데이미언 허스트 등 동시대의 거장과 함께하고 있다. 동시에 창립 초기부터 프랜시스 베이컨, 루이즈 부르주아, 알렉산더 칼더, 빌렘 데 쿠닝, 월터 드 마리아, 루초 폰타나 등 역사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루면서 단지 사립 미술관이 아닌 박물관 수준의 전시를 선보여온 것으로 명성이 높다.

이시다 데쓰야 ‘Untitled’(2000). 24.8×22.3cm. 속도를 내며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데 정체 상태인 청년. 작가에게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느낀 심리를 독특하게 표현한 작품이 많다.

TETSUYA ISHIDA ‘UNTITLED’(2000), ACRYLIC ON CANVAS, 24.8 X 22.3 CM. ⓒ TETSUYA ISHIDA, PHOTO: ELITE WONG, COURTESY ESTATE OF TETSUYA ISHIDA.

가고시안이 가장 최근에 연 갤러리는 지난 2월 최고급 스키 리조트가 모여 있는 스위스 크슈타드(Gstaad) 지점이다. 지난해 10월에는 파리에 첫 번째 갤러리를 낸 지 10년 만에 방돔 광장 근처에 두 번째 지점을 내기도 했다. 이처럼 컬렉터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시안이 있다. 당연히, 9월 서울에도 가고시안이 빠질 수 없다. “프리즈 서울에 대한 기대가 정말 큽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미술 시장을 꾸준히 지켜봤습니다. 한국의 컬렉터들은 매우 섬세한 커뮤니티를 생성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때문에 올 9월 서울은 세계적인 미술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 확신해요. 우리 갤러리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들의 강력한 라인업이 우리 무기입니다.” 가고시안 아시아의 수석 이사인 닉 시무노비치(Nick Simunovic)의 말처럼 타고난 안목을 바탕으로 ‘Go Go’라는 별명에 걸맞은 진취적인 돌파력과 기획력으로 톱 클래스 아티스트 군단을 보유한 가고시안의 대표 작품이 이번에 총출동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게오르크 바젤리츠, 애슐리 비커튼, 크리스토 자바체프, 존 커린, 에드먼드 드 왈, 우르스 피셔, 헬렌 프랑켄탈러, 데이미언 허스트, 도널드 저드, 다카시 무라카미, 리처드 프린스 등 기라성 같은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근 홍콩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연 루이즈 보네(Louise Bonnet)를 비롯해 마크 그로찬(Mark Grotjahn), 알베르트 욀렌(Albert Oehlen), 낸시 루빈스(Nancy Rubins),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제니 새빌(Jenny Saville) 등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다. 가고시안 본사에서 <더블유>를 위해 프리즈 서울 관련 아 직 구체적인 실체가 베일에 가려진 슈퍼 아티스트의 작품을 살짝 귀띔해준 바에 의하면, 몇 년 사이 작품 가격이 무려 10배 가까이 오르며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조나스 우드의 신작 ‘Vanda Orchid’(2022)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작품명을 통해 그가 최근 천착하고 있는 ‘난초’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조나스 우드가 발표한 꽃 연작을 보면 열대난초 꽃잎부터 뿌리까지 꽃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으며, 평평한 검은 바탕에 대담한 색, 패턴, 선을 강조한다. 앞서 설명했듯 뮤지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미술사의 위대한 작가의 작품도 가고시안의 이름으로 한국에 상륙한다. 그중 미국 제2세대 추상표현주의 화가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의 깊고도 아름다운 작품 ‘Etruscan Walk’(1978)가 눈에 띈다. 테라코타색 아크릴 물감의 흔적이 캔버스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아주 작은 점처럼 초록색이 스친다. “캔버스 표면은 평평하지만 공간은 몇 마일까지 확장되죠. 이건 굉장한 거짓말이고 속임수예요. 이런 점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 자체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갤러리 측에서 전해준 작가의 생전 코멘트다. 남성 위주의 추상화가 시류 가운데서 ‘적시고 얼룩내기(Soak-Stain)’라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기법으로 존재감을 강렬하게 남긴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 아일리 ‘Boccioniin The Wind’(2022). 100×93×4.5cm. 중국 출신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가 미래학자인 움베르토 보초니에게 헌정하는 작품. 격동적이며 긴장감이 흐른다.

JIA AILI ‘BOCCIONI IN THE WIND’(2022), OIL ON LINEN, 100 X 93 X 4.5 CM. ⓒ JIA AILI, PHOTO: YANG HAO,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가고시안이 전속 작가로 선보이는 동시대 아티스트의 작품도 살펴보자. 루돌프 스틴젤(Rudolf Stingel)의 ‘Untitled’(2015)는 회색 톤의 독수리를 작가 특유의 붓놀림으로 추상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중국 출신의 신세대 작가 자 아일리(Jia Aili)가 이탈리아의 미래학자 움베르토 보초니에게 헌정한 ‘Boccioni In The Wind’(2022)의 역동적인 그림에는 기울어진 형상, 말과 기수, 해골, 문어 같은 생명체 등이 표현된다. 색채의 쪽붙임 활용과 형상적 모티프들이 묘한 긴장감과 동시에 격동적인 공간을 구성한다. 이시다 데쓰야(Tetsuya Ishida)의 그림 속에서는 자동차 경주복을 입은 무표정의 젊은이가 보도 구멍에 앉아 핸들을 잡고 있다. 1973년생으로 이른 나이에 사망한 그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일본의 사회에서 성장한 심리를 초현실주의적으로 묘사한 화가다. ‘Untitled’(2000)에서 느낄 수 있는 속도와 정체성의 괴리는 작가가 마주한 이 세대의 사회 경제적 불안을 극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릭 로우 ‘Untitled #06102022’(2022). 152.4×121.9cm. 휴스턴에 기반을 둔 작가는 ‘도미노 게임’을 둘러싼 문화와 도미노가 펼쳐지는 형태 등에서 영감을 받는다.

RICK LOWE ‘UNTITLED #06102022’(2022), ACRYLIC AND PAPER COLLAGE ON CANVAS 152.4 X 121.9 CM. ⓒ RICK LOWE, PHOTO: THOMAS DUBROCK,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가고시안이 단지 상업적 미술 작품을 취급하는 갤러리가 아니라는 점은 이들의 웹사이트(gagosian.com)에 들어가보면 단숨에 알 수 있다. 현재 전시와 곧 열릴 전시 등에 대한 기본 정보뿐 아니라 이들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매거진 <Gagosian Quarterly>와 영상 콘텐츠 ‘Premieres’ 웹사이트에 올라온 콘텐츠를 유영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전설적 작가와 동시대의 거장 그리고 이들이 픽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진전속 작가까지, 이들의 황홀한 라인업을 목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프리즈 서울로 향할 이유는 충분하다. 앞서 래리 가고시안이라는 살아 있는 전설적 미술상을 소개했지만, 사실 우리는 결국 미술 작품을 보며 갤러리스트가 아니라 아티스트를 기억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