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 페로탕 부스에서 만날 수 있는 타바레스 스트라찬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아트 이슈 02 – 타바레스 스트라찬(Tavares Strachan)

2022-09-05T15:54:20+00:002022.08.24|ART + JEWELRY, 컬처|

흑인 탐험가를 기억하기 위해 알래스카에서 채굴한 얼음덩어리를 전시하고, 놀랍도록 존재감이 지워진 역사 속 이야기들을 기록한 백과사전을 만들며, 삶과 존재에 대한 고찰을 담은 우주를 재현하는 작가. 프리즈 서울의 페로탕(Perrotin) 부스는, 아시아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타바레스 스트라찬(Tavares Strachan)의 작품들로만 꾸려진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지역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상업적인 것과 비상업적인 것의 경계가 흐려져 구분하기 힘든 지금, 아트페어 역시 이 모든 경계가 뒤섞인 거대한 공간이 되었다. 쇼핑몰에 들어갈 땐 입장료를 내지 않지만, 판매를 전제로 한 작품을 보러 가는 아트페어는 입장료가 저렴하지 않다. 티켓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는 아트페어가 단지 ‘작품 쇼핑’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110개 갤러리가 각자의 부스에서 야심 찬 전시를 펼친다. 서울에서 만날 새로운 고객을 향한 작품 세일즈에 힘을 쏟는 갤러리는 물론, 아트페어에 참가하면서도 판매보다는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는 갤러리도 있다. 페로탕은 후자의 경우다. 최근에야 서울에 지점을 마련한 여러 글로벌 갤러리보다 한발 앞선 2016년 서울에 상륙한 갤러리 페로탕은, 서울에서 열리는 첫 번째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오직 한 작가를 소개하는 데 부스 전체를 할애한다.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 이름, 타바레스 스트라찬. 해외에서는 미술 전문지는 물론 패션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청하는 작가이지만, 그가 아시아권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 프리즈 서울자리가 처음이다.

‘Self-Portrait as a King Oba’(2022). 213.4×213.× 5.1cm. 작가 자신을 14세기 나이지리아 왕국의 오바 왕에 빗댄 신작이다.

‘SELF-PORTRAIT AS A KING OBA’(2022), OIL, ENAMEL, AND PIGMENT ON ACRYLIC; TWO PANELS, EACH : 213.4 X 106.7 X 5.1CM, OVERALL : 213.4 X 213.4 X 5.1CM.

“관객은 친절하게 몰아치는 소용돌이(Friendly Vortex)를 보게 될 겁니다.” 타바레스 스트라찬에게 줌(Zoom) 인터뷰를 청하고 서울의 밤과 뉴욕의 아침에 마주 앉았을 때,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일 솔로 부스에 대해 그가 한마디로 요약해준 표현이다. “유럽이나 영미권이 아닌 곳, 아시아에서 제 작품을 소개하는 건 몇 년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일이에요. 페로탕의 대표 에마뉘엘 페로탕은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 방송국처럼 일을 하죠.” 에마뉘엘 페로탕은 이번 프리즈 서울이 아시아 관객에게 새로운 음악을 들려줄 좋은 기회라고 여긴 듯하다. 스트라찬은 그러한 ‘선곡’에 화답하며 자기 작품으로 이뤄진 ‘작은 우주’를 만들어 보여주려 한다.

스트라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프리즈 서울을 말하기 전에, 우선 뉴욕에 작업실을 둔 스트라찬의 작업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묻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1979년생인 타바레스 스트라찬은 그가 태어나기 불과 몇 년 전에야 수백 년에 걸친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바하마 태생이다. “어릴 적엔 용돈을 벌려고 건물에 페인트칠 고치는 일을 했죠. 정해지지 않은 방식으로 칠하는 게 무척 좋았어요.” 그렇게 물감 다루는 법을 익힌 스트라찬은 카리브해의 여러 섬에서 펼쳐지는 ‘준카누(Junkanoo)’ 연말 축제에 푹 빠졌다. 식민지 농장의 아프리카계 노예들이 떠나온 고향을 기리는 준카누에선 화려한 옷과 가면으로 꾸민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행진을 벌이는데, 어린 시절 그가 접한 준카누는 시 낭독, 역사 교육, 스토리텔링, 춤, 요리가 한데 섞인 일종의 ‘하이브리드’ 혹은 ‘종합 예술’이었다. 스트라찬의 작업은 바로 그런 준카누 축제처럼 한 가지 장르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바하마 대학에서 화가로 훈련받았고,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는 유리 공예를, 예일 대학교에선 조각을 전공했다. “회화, 조각, 드로잉, 퍼포먼스… 깔끔하게 구분된 분류가 있더군요. 그런 위계 따위가 어떻든 상관없죠. 제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Black Star Line’(2018). 213.4×213.4×5.1cm. 작가가 별을 관찰하며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한 경험과 천문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한 ‘갤럭시’ 연작.

‘BLACK STAR LINE’(2022), OIL, ENAMEL, AND PIGMENT ON ACRYLIC; TWO PANELS, EACH : 213.4 X 106.7 X 5.1CM, OVERALL : 213.4 X 213.4 X 5.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스트라찬은 ‘결국 모든 건 누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는지에 달린 일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를 복구해낸다. 그것은 한 가지 목소리로만 이뤄져 있지 않으며, 손쉽게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로만 드러나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에 선보인 ‘우리가 가진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 사이의 거리(The Distance Between What We Have and What We Want)’(2005-2006)가 그랬다. 2005년, 스트라찬은 북극의 알래스카에서 4.5톤 크기의 얼음덩어리를 채굴한 뒤 다음 해 여름 자기 고향인 바하마로 운송했고, 이를 태양열로 가동되는 투명 냉동실에 넣어 전시했다. 굳이 북극의 얼음을 카리브해의 뜨거운 섬으로 실어 보낸 건 ‘북극 탐험을 둘러싼 역사에서 목소리를 잃은 한 흑인 탐험가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흑인 탐험가였던 매슈 헨슨은 무려 1909년, 백인 탐험가와 함께 북극점에 도달했지만, 하인 취급을 맞으며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오랫동안 잊힌 삶을 산 끝에 주차장 관리인으로 생을 마쳤다. 이 놀라운, 그러나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존재인 매슈 헨슨은 스트라찬의 작업을 통해 ‘이야기’로 되살아났다.

‘Encyclopedia of Invisibility(walnut #4)’(2018). 역사 속에서 잊힌 인물, 사건, 장소 등등을 되살려내 기록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INVISIBILITY(WALNUT #4)’(2018), LEATHER, GILDING, ARCHIVAL PAPER, WALNUT, FELT, ACRYLIC, ENCYCLOPEDIA BOOK : 29.2 X 22.9 X 10.2CM, BOOKSTAND : 75.6 X 73 X 43.8CM, BONNET : 45.7 X 73 X 43.8CM, PHOTOGRAPHY: JURATE VECERAITE.

프리즈 서울 내 타바레스 스트라찬의 솔로 부스에선 책 모양의 아름다운 오브제와 과거를 노스탤지어로 기리는 듯 보이는 회화 작품이 관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Invisibility)’은 인종이나 성별 등의 분류 탓에 역사에서 잊힌 인물, 사건, 장소, 사물 등을 일별하고 되살려낸 작품이다. 작가가 1만7,000여 가지 이야기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레이아웃과 논리대로 정리하고 종합한 것이다. 타바레스가 지난 10년간 작업한 이 작품과 더불어 프리즈 서울에서는 다른 두 연작도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백과사전’에서 파생한 ‘인비저블(Invisibles)’, 그리고 만다라 같은 상징적 요소를 통해 삶과 존재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갤럭시(Galaxy)’ 시리즈다. 모두, 보이는 것 이면의 의미를 생각지 않고 보기엔 아까운 작품들이고, 그간의 작업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모르고 보기엔 꽤 긴 시간에 걸친 이정표들이다. 한마디로 타바레스 스트라찬은 지금껏 관객이 시간을 들여 ‘경험하는’ 형태의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현재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일하는 작가지만, 미술학도 시절부터 2010년대 말까지 거의 20년간 소속 갤러리 없이 작업을 지속했다. 너무 이른 성공이 작가에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며 그가 말을 잇는다. “덕분에 미술 시장 밖에서 나만의 언어를 충분히 연마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작업하던 시기, 그는 놀랍도록 존재감이 지워진 역사 속 인물과 기억을 만나 ‘이야기꾼’이 되었다. 그가 만든 작업에는 과거로부터 온 듯 뵈는 이미지가 다수이기에 혹여 그의 작업이 노스탤지어적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큰 오해다. 그가 과거를 돌아보며 꿈꾸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를 조형하기 위한 새로운 이야기들이니까. 스트라찬은 이것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Simone’(2015-2016). Ø 177.8×2.5cm. 역사 속 사건들의 요소를 시각화한 ‘인비저블’ 연작 중 하나다.

‘SIMONE’(2015-2016), COLLAGE, PIGMENT, GRAPHITE, VINYL, ENAMEL, AND MOAB PAPER, MOUNTED ON SINTRA, ACRYLIC, Ø 177.8 × 2.5CM, PHOTOGRAPHY: TOM POWELL IMAGING.

‘Theory of Man(Galaxy Mandala)’(2022). Ø 179.1×5.1cm. ‘갤럭시’ 연작 중 처음 공개하는 신작. 만다라 같은 상징적 요소를 통해 우주를 재현하고, 삶과 존재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THEORY OF MAN(GALAXY MANDALA)’(2022), OIL, ENAMEL, AND PIGMENT ON SINTRA AND MOAB, POWDER COATED STEEL FRAME, Ø 179.1 × 5.1CM, PHOTOGRAPHY: TOM POWELL IMAGING.

그가 생각하는 작품이나 예술 활동의 경계는 어떠할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백과사전’은 문자 그대로 타바레스식 진짜 백과사전이다. 그가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 경과 함께 바하마에 설립을 준비 중인 ‘오쿠(OKU)’는 4,600여 제곱미터 규모의 교육 시설이자 문화 시설이다. 공공 재단으로 운영될 ‘오쿠’는 캐리비안 지역 어린이들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기능하며 디아스포라 연구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스트라찬에겐 이 모든 게 하나의 활동이다. “서양 미술사의 정본(Canon)은 다른 존재들을 배제하면서 이뤄졌어요. 모두를 포용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목록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요즘 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관계를 흥미롭게 살펴보는 중이에요. 식민지 무역이나 경제를 살펴보면 그 둘이 다양한 차원에서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거든요.” 어떤 소재나 인물을 탐구하고 있는지는 아직 밝힐 수 없다지만, 그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에선 아시아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전에, 올해 진행 중인 전시 3부작부터 마무리해야 한다. <깨어남(The Awakening)>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5월 뉴욕 매리언 굿맨 갤러리에서 시작된 3부작은 오는 10월 파리 페로탕과 매리언 굿맨에서 각각 <환한 대낮에(In Broad Daylight)>와 <완전한 어둠 속에서(In Total Darkness)> 전시로 이어진다. 아침에서 시작해 낮과 밤으로 이어지는 3부작이 하나의 순환 주기를 마치면, 그는 2023년엔 한 권의 책으로 이야기를 모을 예정이다. 어쩌면 프리즈 서울에서 만나게 될 ‘친절하게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 작품들은 작가가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준비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선택한 단서들일지 모른다. 이 작가의 작품을, 드디어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