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킨백에서 바스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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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디자이너’라는 명찰을 뒤로하고, 박지원은 훌훌 유럽으로 떠났다. 버킨백을 들던 디자이너 박지원은, 새로 당도한 땅에서 시장바구니인 바스켓을 들고 부엌을 무대 삼아 사랑의 테이블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책 <애플 타르트를 구워 갈까 해>에 가지런히 담겼다.

“세상에 음식보다 더 좋은 대사(Ambassador)는 없다.” 책 〈애플 타르트를 구워 갈까 해〉를 쓴 저자 박지원은 말한다. 한국에서 박지원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거다. 패션 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는 2000년대 초반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 ‘지원 박’의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2003년 서울 청담동에 장안의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맛과 분위기로 유명하던 ‘Park’ 레스토랑을 열기도 했다. 서울 패션 신을 주름잡던 그녀는 40대에 늦둥이를 낳은 후 돌연 모든 커리어를 접고 유럽에 정착하여 글쓰기와 사진 작업을 해갔는데, 남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삶 대신 음식으로 사랑을 나누며 자연과 호흡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그녀의 삶은 SNS의 많은 유저들의 마음을 훔쳤다. SNS에 올린 음식으로 쓴 일기,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프랑스 파리, 노르망디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일상을 담아낸 사진은 수많은 ‘좋아요’를 불러일으키다 급기야 책 <애플 타르트를 구워 갈까 해>로 이어졌다. “서울에서 바쁘게 지낼 때만 해도 언제나 한 손에는 버킨백을 들고 있었는데, 유럽으로 이주하며 제 손엔 시장 장바구니인 바스켓이 쥐어졌죠. 서울에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화려하게 살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공허함이 자리했던 것 같아요.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떠났지만 타지에서도 만국 공통 언어인 ‘음식’으로 하나 됨을 느꼈죠. 왜 ‘밥정’이란 말도 있잖아요. 세계 어느 곳이든 부엌을 열면 그 누구와도 마술처럼 쉽게 친구가, 식구가 될 수 있었어요.” 그녀의 말처럼 요리는 그녀 자신을 위한 테라피이자, 타지에서 끈끈한 ‘정’을 느끼는 매개체가 되었다. 책에는 버섯 크림소스를 곁들인 닭가슴살 커틀릿, 로스트비프 로프, 콩나물을 넣은 안초비 크림 파스타 등 다양한 요리 레시피가 등장하는데, 그에 관한 맛깔나는 설명과 알찬 팁보다 요리에 얽힌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가 더 마음을 울린다. “SNS와 책에 쓴 이야기들은 실은 나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특히 이혼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 것 같아요. 저 또한 두 번의 이혼을 겪었지만, 그걸 단 한 번도 흠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사실 이혼은 긴 삶에서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하잖아요. 결코 실패가 아니에요. 마치 손바닥이 뒤집히는 경험과도 같이 사소한 일이죠. 그런 제 생각을 요리와 함께 글로 꾹꾹 눌러 담았는데, SNS로 DM을 보내며 많은 이들이 위로를 얻었다고 말해줬어요.” 그녀는 스스로를 ‘라이프 디자이너’라 소개한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윤택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이에 대한 대답을 요리, 일상, 사랑으로 실천하려고 한다. “지금 가장 손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왕이면 예쁜 장바구니를 드는 거죠. 사실 저는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즐겁게 하기 때문에 맛있는 거죠. 이왕이면 내 맘에 드는 예쁜 장바구니를 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즐겁게 요리해보세요. 그 경험이 당신을 건강한 삶으로 안내할 거예요.”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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