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서체 디자이너들이 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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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서체, 여섯 봄.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하는 서체 디자이너 6명이 <더블유>에 서로 다른 모양의 봄을 써서 보냈다. 

서체 | 이파리  디자이너 | 함민주 

“현재 개발 중인 ‘이파리’는 어느 날 패턴을 활용한 글자를 고안하다 떠올리게 된 서체다. 패턴과 글자를 함께 연출하여 다층적인 레이어의 서체를 실험하고 있다. ‘이파리’로 쓴 글자 위 물결치는 패턴을 볼 때면 종종 삭막한 겨울을 보내고 피어난 식물의 잎과 닮았다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 

함민주 베를린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입 디자이너. 2020년 독일의 타입 디자이너 마크 프롬베르크와 함께 스튜디오 ‘하이퍼타입’을 설립했다. 2015년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예술학교에서 타입미디어 석사 과정을 이수한 후 로마자와 한글 문자에 집중하여 작업하고 있다. 

 서체 | 칼국수  디자이너 | 한동훈 

“봄의 따뜻한 기온과 꽃잎이 흩날리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2015년 디자인한 서체 ‘칼국수’로 봄을 표현해보기로 했다. 하나의 서체이되 라이트, 미디엄, 볼드로 두께를 달리해서. ‘칼국수’는 형태적으로 인간의 손글씨 흔적이 강하게 남은 서체 ‘휴머니스트 산세리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받침이 있는 글자의 경우 부분적으로 중성과 종성이 붙어서 흘려 쓴 듯한 효과가 나도록 디자인했다. 형태상 특징이 뚜렷하기 때문에 짧은 표제에 사용할 때 서체 특유의 리드미컬함이 극대화된다.” 

한동훈 산돌커뮤니케이션, 박윤정앤타이포랩에서 서체 디자이너로 근무했으며, ‘Tlab월광포르테’, ‘Tlab레트로라이프’, ‘Tlab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기업 전용 서체와 일반 판매용 서체를 디자인했다. 2021년 에세이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으며, ‘어떤 기호나 글자를 그리더라도 위태롭거나 부실하지 않은 단단한 선을 지행한다’는 디자인관을 지향한다. 

서체 | 아슬랑  디자이너 | 김현진 

“아슬랑’은 조선시대 궁체 흘림 구조를 바탕으로 한 세로쓰기 서체다. 우연히 학생 시절 복도에 전시된 어느 수업의 과제물을 보고 구상하게 됐다. 궁체 흘림체로 쓰인 자료를 연필 같은 필기구로 따라 써보는 과제물이었는데, 본래 붓글씨였던 글자들을 날카로운 펜촉의 필기구로 필사해 남은 얇디얇은 뼈대와도 같은 형태가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런 ‘아슬랑’은 흘림체 구조이다 보니 어딘가 구불구불 자라나는 식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봄, 식물의 줄기나 뿌리가 성장하며 화분 속 공간을 찾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슬랑으로 봄을 표현해봤다.” 

김현진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타입 디자이너로 근무했으며, 현재 1인 스튜디오 ‘팟’(POT)을 운영하고 있다. ‘POT’은 Pretty Odd Type’의 약자로 ‘낯설지만 아름다운 조형의 글자를 탐험하자’는 디자이너의 다짐을 담은 이름. 2021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에 작품 ‘글자굿’으로 참여했으며, 글꼴 ‘AG 최정호 민부리 Std’의 디자인에 참여한 바 있다. 

서체 | 됴웅  디자이너 | 하형원 

“1921년 고서점 ‘한남서림’이 간행한 국문 고전소설 <됴웅전(조웅전)>을 바탕으로 2017년 세로쓰기용 반흘림 서체 ‘됴웅’을 출시했다. 원본 글자 고유의 분방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여러 글자를 잇달아 쓴 글줄 형태로 조판했을 때 본연의 매력이 살아난다. ‘됴웅’은 디자이너로서 가장 처음 만든 한글 서체였다. 2017년 봄 ‘됴웅’을 처음 세상에 공개했을 무렵을 떠올리며 분방한 느낌의 ‘봄’을 써보았다.” 

하형원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주로 레터링 기반의 그래픽, 로고 타입을 디자인하고 공간 브랜딩 작업을 겸하고 있다. 방각본 계열의 세로쓰기 서체 ‘됴웅’, 잡지 <FDSC.txt> 1호를 위한 서체 ‘FDSC.txt’ 등을 디자인한 바 있다. 

서체 | 기하  디자이너 | 채희준 

‘기하’는 올해 2월 뮤지션 장기하의 첫 솔로 EP <공중부양>의 출시에 맞춰 제작한 서체다. 장기하의 음악 철학이 서체에서도 느껴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을 바탕으로 특유의 운율을 만들어내는 것이 장기하가 가진 아이덴티티라 생각했고, 그의 음악에서 나타난 특유의 억양을 서체로 보여주고자 했다. ‘기하’로 텍스트가 조판된 모습을 보면 어딘가 따스한 온도가 느껴지는 듯하기도 하다. ‘기하’는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처음으로 협업해 작업해본 서체였다. 타입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모험이었다고 할 수 있는 ‘기하’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봄’을 써봤다.” 

채희준 글자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형태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서체를 제작하는 디자이너. 서체 ‘청월’, ‘청조,’ ‘초설’, ‘고요’, ‘신세계’, ‘탈’, ‘고요 라운드 ’, 클래식’, ‘기하’를 출시했다. 

서체 | 옵티크  디자이너 | 노은유 

‘옵티크’는 2017년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예술학교 재학 당시 졸업 전시 작품으로 고안한 서체다. 한글과 로마자를 위한 다국어 글꼴 디자인으로, 각 문자 고유의 쓰기 도구인 한글의 붓, 로마자의 넓은 펜촉으로 쓴 글꼴의 특징에 착안해 디자인했다. 한창 ‘옵티크’를 작업하던 당시를 떠올리면 2017년 헤이그의 봄, 작업실 뒤뜰 벤치에 누워 구름의 움직임을 보며 지내던 시간이 떠오른다. 이번 ‘봄을 쓰다’를 위해 구상한 작업에는 이러한 과거의 파편들을 담아보기로 했다. 작업물은 두 이미지가 결합한 형태를 띠는데, 우선 왼쪽 이미지는 검은색 바탕과 ‘옵티크’ 서체로 쓴 글자 ‘봄’, 쉼표로 이뤄져 있다. 어두웠던 겨울을 벗어나 곧 봄을 맞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고 쉼표를 찍음으로써 무언가 불안전한, 또는 남은 이야기가 있음을 암시하고자 했다. 한편 오른쪽 이미지는 하늘 사진 위 글자 ‘봄’과 함께 마침표를 새겨 비로소 완전한 봄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봤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힘든 시국이 지나가고 하루빨리 아름다운 봄 하늘을 다시 되찾자는 소망을 표현해봤다.” 

노은유 서체 디자인 회사 ‘노타입’을 운영하며 ‘옵티크’, ‘소리체’ 등을 출시했다.2 021년 한글날에 발표된 네이버 화면용 폰트 ‘마루 부리’를 디자인했으며, 2019년 <2019 타이포잔치,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에 참여했다. 최근 이주희 디자이너와 ‘기후위기폰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한글날 발표를 앞두고 있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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