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적 시선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퀴어적 시선으로 본 아트

2022-06-28T18:41:35+00:002022.03.10|FEATURE, 컬처|

퀴어 아트가 미국 주류 미술계에 진입하면서 재능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주목 받고 있다. 그들의 정체성은 어떤 식으로 작품에 드러나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할까?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을 통해 퀴어 아트의 한 장면을 들여다봤다. 

곁눈질, 쏘아보는 눈빛, 윙크. 역사적으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퀴어적 시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은밀하고 코드화된 비밀스러운 시선 말이다. 지금은 어떨까? 뉴욕 미술계의 신인 아티스트가 선보이는 작품이 전시 오프닝을 하기도 전에 전부 판매되곤 한다. 젊은 미술가들은 갤러리를 찾은 관객이, 또 일반 대중이 성에 대한 퀴어적 욕구와 일상을 숨김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커튼을 열어젖히는 중이다. 사람들은 더는 동성 간의 친밀함이 무언가를 위반하는 것처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퀴어 아트를 둘러싼 화두가 미술계 담론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작이 전시 중인 프레드릭스&프레이저 갤러리에서, 제나 그리본.

“문제는 말이죠, 제가 만든 큰 풍경화를 팔 수 있을까요?” 들라크루아나 쿠르베가 여성의 벗은 몸을 묘사한 것처럼 남성의 몸을 감각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도론 랭버그(Doron Langberg, 36세)는 이렇게 말한다. “미술계에 퀴어적인 내용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풍경화 같은 작품은 잘 팔리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제나 그리본(Jenna Gribbon, 42세)은 작년 가을 뉴욕 첼시의 여러 갤러리에서 2m가 넘는 캔버스에 아티스트 자신의 다리 사이로 금발을 한 자신의 여성 파트너가 벗은 모습이 보이는 작품을 전시했다. 저스틴 리암 오브라이언(Justin Liam O’Brien, 30세)은 자기 남편이 섹스 파티에서 오럴 섹스와 애널 섹스를 동시에 하고 있는 남성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을 그렸고, 앤서니 쿠다히(Anthony Cudahy, 32세)는 남편을 비롯한 여러 게이 남성이 편안한 모습으로 옷을 벗고 있는 장면을 선보였다. 느슨하게 이어진 이 아티스트들은 서로의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고, 서로의 작업실로 찾아가 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함께 춤을 추러 가거나 롱아일랜드 해변에 있는 파이어 아일랜드에서 만나기도 한다. 제나 그리본은 인스타그램에서 DM을 주고받으며 더 많은 동료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는 건 정말 멋져요.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친구 찾기가 더 쉬워졌죠.”

프랫 인스티튜트 시절 커밍아웃을 한 앤서니 쿠다히는 작업할 때 평소보다 자신이 좀 더 과감해진다고 말한다.

2020년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살만 투르.

이들은 상업 갤러리에서 성공하는 한편 미술관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2020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살만 투르(Salman Toor, 38세)는 2022년 4월과 5월, 베이징의 비영리 사립미술관 M우즈와 볼티모어 미술관에서 열릴 전시를 준비 중이다. 도론 랭버그와 몇몇 퀴어 아티스트는 오는 3월 말 보스턴의 현대미술협회(ICA)에서 열릴 8명의 젊은 구상 미술가 단체전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맨해튼에 위치한 미술관인 프릭 컬렉션은 1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살아 있는 역사: 퀴어적 관점과 고전의 대가들>을 통해 젊은 퀴어 아티스트들을 천상의 영역으로 올려주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제나 그리본, 살만 투르, 도론 랭버그, 오지 오두톨라 등의 작가는 베르메르, 렘브란트, 홀바인과 같은 대가들의 작품에 응답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퀴어적 친밀감이 점점 더 상품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마이클 스탐.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이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작품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에 감사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들이 함께 구가한 승리를 조심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우선, 작품이 남김없이 판매된다면 그들은 상업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걸까? “쾌락과 그것에 대한 묘사는 필수적입니다.” 2021년, LA에 있는 슐라밋 나자리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마이클 스탐(Michael Stamm, 38세)이 말한다. “저는 다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적 자유가 자본주의의 확산을 위한 트로이 목마는 아닐지, 즉 퀴어적 친밀감이 점점 더 상품화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그가 LA 전시에서 선보인 회화 중 한 점은 한 쌍의 연인이 사랑을 나눈 뒤 누워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었다. 그림 속 연인은 19세기의 미국 시인인 월트 휘트먼의 시집을 들고 있고, 곁에는 병에 담긴 혈관 확장제가, 테이블에는 난초가 놓여 있다. 그림에 등장한 이 세 사물은 각각 문화적 특권, 성적인 자유, 부르주아적 사치를 의미할 테다. 두 사람은 창문 너머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무심한 모습이다. 그런데 창밖에서는 데이비드 버켈이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있다. 버켈은 지난 2018년 화석연료 소비에 반대하며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트 공원에서 분신자살한 저명한 게이 인권 변호사이자 환경 운동가다. 마이클 스탐은 말했다. “요즘 제가 그리는 모든 그림이 다 판매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 자신에게 이 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저는 그림을 좀 이해하기 어렵게 그리고 있습니다.”

퀴어 아트가 만개하는 현상의 강점 중 하나는 그것이 지닌 ‘다양성’이다. 스탐은 다른 퀴어 아티스트들과 달리 섹스에 대한 노골적 묘사를 피한다. 그는 또렷하고 양식화된, 과장된 인물을 아크릴 물감으로 부드럽게 표현한다. 이따금 그림의 표면에 레이저로 재단한 얇은 합판을 덧붙인다. 카일 던(Kyle Dunn, 31세) 또한 명확하고 단순화된 형태로 인해 디지털로 렌더링한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 게임, 판타지 영역에 등장하는 것 같은 인물을 표현한다. 던은 종종 이것들을 부조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어쨌든 그가 묘사하는 남성들은 옷을 벗고 있지만 섹스하고 있지는 않다. “새침하게 구려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저는 거시기와 엉덩이보다 애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실제 섹스만큼이나 에로틱하죠. 제 작업에서 회화는 환상과 욕망, 또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탐구하는 장소와 같습니다.” 반면 도론 랭버그는 게이 섹스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회화를 그린다. 두껍고 관능적인 붓놀림을 구사한 그 회화들에서 어떤 이들은 작가가 묘사해놓은 내용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 수도 있다. “항문을 애무하는 모습을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 장면에는 여전히 뭔가 전복적인 면이 있거든요. 충격을 안겨주기 위해서 일부러 노골적인 작업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것이 내가 성을 경험하는 방식이어서 그래요. 고상하게 회화를 감상하다 열 받을 사람들을 겨냥한 게 아니에요.” 도론 랭버그는 그가 ‘거시기 초상화(Dick Portraits)’ 라고 이름 붙인 종류의 그림들에서 남성의 허리에서 허벅지 위쪽까지 묘사하기를 즐긴다. 그리고 아무리 심각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외설적인 내용이 아니라 물감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제기한다. 랭버그는 ‘거시기 초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 초상화는 모두 관찰을 통해 그린 거예요. 저는 저 자신의 욕망을 따르려고 하고, 그런 과정이 그림의 표면에서 명확히 보였으면 합니다. 어떤 부분은 빠르고, 어떤 부분은 느리고, 또 어떤 부분에는 정보가 더 많이 담겨 있는 식이죠. 그런 구체성이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 욕망을 인식하도록 이끌어요.”

이들 아티스트 가운데 몇몇은 말로 커밍하웃하기보다 그림을 통해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이 더 용이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리암 오브라이언은 스물네 살의 나이로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할 때까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겼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에 그린 작품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커밍아웃은 그저 ‘나는 게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긴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랍니다.” 그와 달리 앤서니 쿠다히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이미 커밍아웃한 상태였다. “작업을 할 때 저는 좀 더 과감했죠. 현실에서는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았지만요. 저는 미술 안에서 자유를 느꼈어요. 미술이란 자신을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대리물입니다.” 미술은 또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앰버라 웰만(Ambera Wellmann, 39세)은 이렇게 말한다. “회화는 제가 커밍아웃을 할 준비가 되기 전에 상황을 탐색하고 실험을 시작한 공간이에요. 어떤 것을 시각화하고 구현하는 건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잖아요.” 제나 그리본은 롱아일랜드시티에서 남성 동반자 및 아이와 함께 생활한 적이 있고, 최근에는 지하실에 있는 작업실에서 ‘기호를 통한 지적인 다이어그램 회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오픈 릴레이션십’을 지향하는 그녀는 여성과 데이트할 수 있음에도 소외감을 느꼈고, 그런 감정을 작업에 드러낸다. “모든 것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모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인물들이 파편으로 조각나거나 그들이 속하지 않은 공간에 겹쳐졌어요. 내 인생이 아닌 것처럼 혹은 내가 살아야 할 삶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삶을 산 거죠. 하지만 제가 오직 여성과 함께 지내기로 결정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훨씬 덜 힘든 일이 됐어요. 사물은 덜 파편적인 것으로 변했고, 콜라주와 같은 표현 양상이 줄어들었죠.”

앰버라 웰만 역시 모국인 캐나다에서 어떤 남성과 10년에 걸쳐 관계를 유지했다. “저는 이성애적인 삶에 꽤나 헌신적이었어요. 정말 지루했답니다. 심지어 그와 헤어진 후에도 제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을 작품 속에서는 가려놓았어요.” 그녀는 여성의 형상을 한 도자기들을 그렸다. 여성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신체를 다루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사유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그 작품들을 보면, 경험을 통제하려는 강력한 욕망이 보입니다.” 하지만 웰만은 캐나다에서 큰 미술상을 받은 뒤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그곳이 안겨주는 익명성을 받아들였다. “제 그림은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변해버렸답니다.” 그녀가 묘사하는 ‘도자기로 만든 여성의 신체’는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에서처럼 에로틱한 여성들로 변했다. 그녀는 2021년 뉴뮤지엄 트리엔날레에서 선보인 약 9m 길이의 역작에서, 소용돌이치고 모호한 형상으로 가득한 해변의 한가운데에 도기질의 배수구를 묘사했다. 자신이 걸어간 탈출 경로를 암시한 것이다.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 도론 랭버그는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 3학년 때,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스라엘에서 기록한 자신과 친구의 섹스 비디오를 연필 드로잉으로 묘사했다. “제가 제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작업은 성적인 주제를 통해 진정으로 시작됐어요.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그림을 그릴수록 작업이 더 좋아졌던 것 같고, 반응도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트랜스젠더인 내시 글린은 말한다. 퀴어 아티스트들의 페인팅에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새로운 게 있다면 ‘우리가 자본을 얻고 있다’는 점이라고.

트랜스젠더인 내시 글린(Nash Glynn, 29세)은 더 극적인 돌파구를 겪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화상을 그렸지만, 터프츠 대학교 미술 박물관 학과에서 비디오와 퍼포먼스 작업을 하면서 자화상 그리기를 그만뒀다. 졸업 이후에는 상황이 변했다. “성전환 과정을 시작했고, 따라서 매우 직관적으로 붓을 집어 들었습니다. 깊은 생각 없이 자라다 보면 종종 성찰이 필요할 때가 있죠.” 글린은 자신의 가슴과 음경을 드러내는 누드화를 그린다. “제 뮤즈는 저 자신이에요. 취약함은 약점이 아니라 힘입니다. 이것 외의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하기도 하고요.” 그녀는 일부러 미술사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지던 것들을 다룬다. 백인 남성 작가들이 그린 여성 누드화라는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권을 가진 창조자’로 여길 필요가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러한 아티스트 중에는 서양 미술의 주요 작품에서 발판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파키스탄의 라호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살만 투르는 20년 전 미국에 도착한 뒤 미술관의 그림을 열심히 모사했다. 피에트로 롱기와 앙투안 와토와 같은 로코코 시대 화가들에 매료되어, 로코코 회화를 차용한 제스처와 붓질을 더해 남아시아 사람을 묘사한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스스로 ‘그다지 깊이 있지 않은 단순한 그림’이라고 부르는 작업을 통해 일상적 가정 환경 속에 있는 자신의 게이 친구들을 묘사하며 과거의 구속에서 벗어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묘사에 유창해지고 난 뒤에는 내 안에서부터 뭔가가 확 쏟아져 나왔어요.” 그렇게 별 깊이가 없었다는 그 ‘쉽기만 한 그림들’이 휘트니 미술관 전시로 이어졌다.

팬데믹 기간 중 집에 갇혀 지낸 리암 오브라이언은 미술 관련 서적을 잔뜩 그러모았다. 가장 최근에 열린 전시에서는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재미있게 비튼 작품을 선보였다. “저는 게이들의 애정이나 욕망을 미술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아주 많았어요.” 그가 작업한 한 작품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아기 예수의 탄생’에서 아기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자신의 남편으로 바꾼 것이다. “피에로는 자기가 살던 세계를 배경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묘사했어요. 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그림을 그리던 피에로처럼 브루클린에서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벽화 형태로 완성되지 않고 밑그림으로만 남아 있는 미켈란젤로의 ‘카시나의 전투’는 강에서 목욕하는 병사들을 묘사한 작품이다. 오브라이언은 ‘카시나의 전투’에 등장하는 것 가운데 동성애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모습(물 위로 솟아오른 두 손)을 자신의 화폭으로 가져온 적도 있다. 아직 그 그림을 완성했는지는 모르겠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스파 캐슬(미국의 찜질방 체인점) 같은 목욕탕을 그런 구도로 묘사하고 싶어요.”

‘남성이나 여성 한쪽이 아니라 둘 다인 모습의 여성’을 묘사하는 것이야말로 퀴어적 시각이라고 말하는 오지 오두톨라.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앨라배마주로 이주한 토인 오지 오두톨라(Toyin Ojih Odutola, 36세)는 자신만의 신화를 창안했다. 프릭 컬렉션 전시에서 오두톨라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응답하는 약 2m 높이의 초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 전시를 위해 오두톨라는 ‘동성 간의 관계만 허용되는 사회’를 상상해봤고, 주제 면에서는 어느 정도 완곡하게 퀴어함을 표현할 것이라고 한다. “제가 묘사하는 여성은 힘과 세심한 수용력을 모두 발산합니다. 그녀는 남성이나 여성 한쪽이 아니라 ‘둘 다’인 모습이죠. 저는 그렇게 느껴요. 그게 바로 퀴어한 시각이죠.”

게이들의 그림 그리기라는 ‘숨겨진 역사’는 젊은 퀴어 아티스트들을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2019년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전시 <젊고 매혹적인 자들(The Young and Evil)>은 1930년대와 40년대, 50년대에 걸쳐 서로 연관된 뉴욕의 게이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소개했다. 그 전시에서는 폴 캐드머스, 파벨 첼리체프, 조지 플랫 라인스, 재러드 프렌치, 조지 투커 등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성적으로 노골적인 그 작품들은 아티스트들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공개적으로 전시될 수 없었다. 리암 오브라이언, 살만 투르 등은 그 전시에 사로잡혔고, ‘우리 모두에게 정말로 중요한 전시였다’는 소감을 전했다. 자신들보다 앞서 살았던 미술가를 발견하는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미술가와 관계를 맺는 일과 마찬가지로 자신감을 북돋는 일이다. 트랜스젠더인 내시 글린은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퀴어 아티스트들의 페인팅에는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가 자본을 얻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섹슈얼리티는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유색인에게는 자신이 속한 인종이 퀴어성만큼 중요한 것일 수 있고, 그들의 과제는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저는 회화 및 제가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성장한 경험과 1970~80년대에 일어난 게이 남성 해방 운동의 진정한 계승자로 사는 일 사이에 선을 긋고자 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매년 뉴욕의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아파트에서 파키스탄의 라호르까지 여행하는 살만 투르의 말이다. “두 가지 경험을 모두 아우를 수 있게 한계를 설정하려는 겁니다. 그림 속 세계에서 그 둘이 공존하게 하는 거예요. 두 가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건 오직 환상과 비유 안에서만 가능하죠.”

아시안이자 퀴어인 소수자로서 백인 아티스트들과의 간극을 말하는 사샤 고든.

사샤 고든(23세)에게 ‘성적 지향’은 가장 두드러지지 않는 자기 표현의 요소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아시안이고, 퀴어인 데다 몸집도 큰 편이에요. 그런 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보았어요.” 그녀가 가장 명확한 모범으로 삼는 것은 중국 미술가 웨민쥔이다. 웨민쥔은 캐리커처로 묘사한, 화려한 색상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작가다. 고든은 이와 유사한 작업을 하는데, 어린 시절의 장면을 재구성해 자신의 현재 모습에 힘을 실은 (종종 옷을 벗고 있는) 버전을 배치한다. “소수자 입장에서는 어떤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제 그림은 아주 혼란스럽거나 요란하고, 기괴하며 이상한 모습으로 가득해요. 백인 아티스트들은 이렇게 옷을 벗은 몸을 보는 것이 왜 그렇게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작품은 그저 ‘충격적인’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요.”

오지 오두톨라는 퀴어성이라는 개념이 섹슈얼리티를 초월해 지배적인 권력 관계에 도전하고 균열을 내려 한다고 믿는다. “제 그림이 노골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에로틱하길 바랍니다. 또 흑인의 신체라는 자부심이 흑인이 취급받은 역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하고요. 제가 만드는 모든 그림에는 ‘퀴어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녀는 최근의 드로잉 작업에서 비뚤어진 원근법과 패턴으로 이뤄진 흔적들, 검은 배경에 흰색과 회색 분필과 파스텔을 활용한 점을 짚는다. “그런 방법이야말로 작품을 시작하는 아주 강력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검은 배경에 놓인 흰색은 작품 안에서 하나의 재료로서 어떻게 작동할까요? 저는 이런 점이야말로 이미지를 퀴어적으로 바꿔놓는 거라고 생각해요.”

퀴어적인 관점은 ‘무엇’을 보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지의 문제다. 만약 이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섹스와 일상에 대해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또 관습적으로 믿는 다른 것들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그들은 기뻐해 마지않을 것이다. 오지 오두톨라는 말한다. “퀴어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제 생각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퀴어하다’는 것에는 이제 제한이 없잖아요. 퀴어가 되기 위해서 꼭 자신을 LGBTQ라고 밝히지 않아도 되고요. 퀴어함은 우리가 내린 여러 가지 정의를 넓히고, 그것을 더 유동적이고 덜 복잡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은 바로 여기에 존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