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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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첫 쿠튀르 컬렉션. 더없이 쿨한 진화가 여기 있다. 

지난 7월 7일, 한국 시간으로 오후 6시 30분경,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가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첫 쿠튀르 쇼가 시작되었다. 발렌시아가의 창립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패션 업계를 떠난 1967년 이후의 첫 쿠튀르 컬렉션이자 하우스 역사로는 50번째 쿠튀르 컬렉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지난 2020년 가을/겨울 시즌에 공개되어야 했던 컬렉션은 전대미문의 유행병으로 인해 취소되었고, 1년 동안 새롭게 디자인을 수정해야 했다. 발렌시아가 하우스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 자신의 브랜드 베트멍을 떠나기로 결정한 뎀나. 정돈되지 않은 날것의 실루엣과 독보적인 형태감이 주 무기인 디자이너가 선보이는 쿠튀르란 어떤 모습일까. 그가 어떻게 하우스의 유산을 지켜내는지, 얼마나 획기적이고 예술적인 쿠튀르 디자인을 선보일지, 그리고 레디투웨어와 어떻게 다를지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되었고, 기다려온 시간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후디와 운동화를 디자인하는 사람의 범주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디자이너로서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컬렉션에 등장한 총 63벌의 룩. 여기엔 창작자로서의 뎀나가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경력 중 가장 큰 시험이자 도전이었을 뎀나 바잘리아의 쿠튀르는 그동안 선보였던 기성복 컬렉션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다. 그의 뮤즈라 칭해도 손색없을 화가이자 모델인 엘리자 더글라스가 빨간색 카네이션을 들고 시작을 알렸고, 후디와 데님이 이변 없이 등장했으며, 러시아의 젊은 남성들이 즐겨 입던 트레이닝 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의상이 뎀나의 쿠튀르에 담겨 있었다. 웨어러블한 쿠튀르를 상상했다는 그의 의도를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하지만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크 타이, 포플린 셔츠 그리고 가죽 장갑 등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아이템에 이니셜 C.B. 수공예 자수를 더했고, 영국 새빌로의 상징이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테일러 회사 헌츠만(Huntsman)과 협업했다. 날카롭게 각진 어깨와 슬림한 펜슬 스커트. 트위스트 레이스 및 튤 드레스, 오페라 글러브 및 파카, 원형과 완벽히 매칭하여 핸드 프린팅한 폴카 도트 패턴의 실크 시폰, 산둥실크 기퓌르의 장식적 엠브로이더리, 메탈릭 실크 자카드, 비딩과 시퀸 같은 아이코닉한 발렌시아가 쿠튀르 디자인을 직접적으로 참고하기도 했다. 피날레 직전에 등장한 꽃자수 가운은 재클린 케네디를 위해 제작한 아카이브에서 영감 받아 완성했다.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레이시와 협업한 챙이 넓은 모자는 아카이브 재해석의 화룡점정이었고, 피날레의 마지막을 장식한 베일로 가려진 웨딩 룩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마지막 디자인 중 하나로 마치 뎀나 바잘리아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협업을 보는 듯했다. 뎀나는 쿠튀르 컬렉션인 만큼 숙련된 장인 정신과 저명한 쿠튀르 아틀리에 및 제조사와 손잡고 마감과 커팅, 그리고 디테일에 집요할 만큼 집중했다. 그렇게 실현한 완성도는 자신의 쿠튀르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수많은 추측과 의구심을 해소하는 완벽한 한 방이었다.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예전 쿠튀르 쇼를 상기시키는 것은 비단 의상만이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쿠튀르 쇼를 참관할 이들의 시선이, 모든 감각이오롯이 옷이라는 존재에 집중하도록 정적을 택했다. 무슈 발렌시아가가 그랬듯이 말이다. 몇 시즌 동안 밴드 람슈타인나 루폴의 음악과 함께해온 발렌시아가의 런웨이는 그 어떤 음악도 없이 진행되었다. 관객들의 조심스러운 카메라 셔터 소리와 목청을 가다듬는 소리, 그리고 모델들의 걷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을 뿐이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오리지널 살롱을 새롭게 꾸며내 깨끗하고 정돈된 듯한 분위기의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빨간색카네이션이 관객들의 의자에 부착되어 있었다.

지오바나 바타글리아.

벨라 하디드.

마틸드 피노.

복면을 쓰고 나타난 카니예 웨스트.

발렌시아가의 CEO 세드릭 샤르비와 안나 윈투어, 에드워드 에닌풀.

바베스 드장과 카린 로이펠트.

아야 나카무라와 뎀나 바잘리아.

“오트 쿠튀르는 창의성의 자유를 상징해요.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발렌시아가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감출 수 없을 정도예요. 저는 오트 쿠튀르가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이 패션 업계에 부흥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뎀나가지난 몇 년간 발렌시아가에서 그만의 디자인 언어로 확립한 모든 것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봐왔다. 트리플 S 스니커즈로 팬들을 열광시킨 그가 이제자신을 포함한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고서 자신만의 오트 쿠튀르 쇼를 선보인다. 쇼가 끝나고 말끔히 차려입은 뎀나가 프레스와 디너를 즐기는 장면이 소셜 계정을 통해 중계되었다. 그는 ‘다음’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유로운 창의성을 상징하는 쿠튀르 컬렉션은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또 다른 미래를 그리는 장이었다. 뎀나바잘리아는 그의 방식대로 긴 시간을 가로질러 과거의 유산에 미래를 그려넣었고,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그의 격렬하고 고귀한 자유를 목격했다.

패션 에디터
김민지
사진
COURTESY OF BALENCI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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