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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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변화하고 쉽게 소비되는 디지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나아가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천천히 옷을 짓고, 옷의 영역을 넘어선 콘텐츠를 가공하며, 탐미적인 시선으로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이든 초, Jaden Cho

(@jaden_cho, 조성민)

브랜드와 디자이너 본인 소개를 해달라.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CA)에서 여성복 석사를 마쳤다. ‘Jaden Cho’는 지난해 런던에서 론칭한 브랜드로, 나의 영어 이름을 따서 이름 지었다. 오트 쿠튀르적 요소를 통해 현시대의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고 매 시즌 새로운 패턴과 텍스처 개발에 힘을 쏟는다.

처음엔 당신의 작업을 보고 플로리스트이자 세트 스타일리스트인 줄 알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서울은 정말 개방적인 도시다.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고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엔 6꽃을 시작으로 대형 세트 제작을 했고, 현재는 브랜딩과 그래픽 작업 등 비주얼 관련 일을 다채롭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계기로 나는 역시 ‘옷을 만드는 사람이구나’라는 평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선보인 F/W 프레젠테이션 콘셉트는 무엇인가? 첫 컬렉션인 2021 F/W 컬렉션은 순간의 감정, 빛나는 찰나를 주제로 반짝이는 자수 장식과 퀼트 디테일이 특징이며, 실크를 활용한 옷이 주를 이룬다. 평소 구호처럼 항상 되뇌는 말이 ‘행복하자’인데, 돌이켜보면 행복은 너무 잠깐 스쳐 가는 순간으로 남아 있더라. 그 찰나의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반짝이고 쏟아지는 꽃과 불꽃 패턴, 빛나는 자수 장식 등으로 텍스처를 개발하고 옷으로 표현했다.

타이틀을 ‘A Bouquet’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꽃은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오브제다. 그 자체로 완벽한 형태라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나에게 늘 도움이 되면서 어떤 면으로는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다. 컬렉션 준비에 들어가면 일단 아주 희미한 점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에 형태와 색을 입히는 작업은 자연과 여러모로 닮았다. 첫 컬렉션인 만큼 그것들의 집합체를 보여주고 싶어서 다양한 색과 소재, 감정, 모양이 합쳐진 하나의 커다란 ‘꽃다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빼곡하게 채운 비즈나 섬세한 장식을 보면 마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아트 피스에서 비롯한 것들이 많은가? 다른 분야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래서 평소 전시장을 자주 찾는다. 그들의 생각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기술력 또한 너무나 놀랍다. 작년 RCA 졸업 작품으로 했던 컬렉션은 애니시 커푸어의 거울 작업에 감명을 받아 수만 개의 은색 스팽글로 텍스처를 만들었다.

당신의 컬렉션에서 꼭 눈여겨봤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 약 3만2천 개의 캐비아 비즈로 가득 채운 꽃다발 베스트 앙상블. 이번 시즌 처음으로 만든 피스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수만 번의 경우의 수를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등과 소매에 데이지꽃 자수가 가득한 더블 코트는 스태프 네 명이 한 달 동안 매달려 완성했다. 많은 재료와 레이어가 한 자수 장식에 결합되었는데, 코트 실루엣을 위해 패턴 수정과 가봉을 다섯 차례나 했다. 한 명이 실크 리본으로 데이지잎을 만들고 한 명은 흐드러진 난초의 줄기를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한 명은 반짝이는 비즈로 만든 데이지를 달았다.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컬렉션의 영감을 얻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설명해준다면? 허공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잡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을 실제화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따른다. 너무 더디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파편이 합쳐지는 때가 온다. 그때부터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런 격차를 줄이는 데 사용하는 방법은 자연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다. 색과 텍스처에서 영감을 받는 편인데 꽃에서 보이는 시각적 요소를 옷에 대입하면 한결 수월해진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참 쓰기 어려운데 꽃에게는 사용할 수 있다. 상대적인 미를 탐구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자연은 언제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예쁜 튤립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어느 드레스보다도 더 대단하다.

디자인하면서 타협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색과 기분. 옷을 딱 봤을 때 보기만 해도 싫은 옷이 있고, 아 좋다 싶은 옷이 있다. 옷을 만들 때 수만 가지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옷을 봤을 때 기분이 좋다면 그 길로 간다. 애매모호해 보이지만 꽤 확실하고 도움이 된다.

실험적인 디자인과 실용적인 옷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하나? 우리의 옷은 입고 버스 계단 올라가기 힘들 수는 있어도 택시는 탈 수 있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소비자에게 다양한 룩을 제안하고 싶다. 첫 컬렉션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옷은 어디서 판매하는가? 현재로는 최근 프레젠테이션에서 진행한 프리오더가 전부다. 판매를 서두르려고 하지 않는다. 대량으로 생산하기에는 어려운 피스가 많지만 쿠튀르 피스답게 주문 제작으로 한 벌 한 벌에 집중해 판매하고 있다. 이 외에 더 다양한 라인은 8월경 온라인 웹사이트로 선보일 예정이다.

단가가 높은 방식으로 옷을 만드는데 금전적인 어려움은 없나? 힘이 많이 든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옷들이기에 단순 제작부터 힘들다. 스튜디오 안에서 우리의 작업물은 희망과 즐거움이지만 그것들을 들고 샘플실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진짜 서울의 맛을 보는 느낌이었다. 효율을 따지는 서울의 생산 시스템을 거스르는 옷들이기에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자부심이 생겼다. 아무나 만들 수 없기에 그만큼 더 소중한 피스들이다. 언젠가 모든 제작 과정이 ‘인하우스’가 되길 바란다.

브랜드를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볼 수 있을까? 낭만, 여유, 행복.

코로나 시대의 작업 방식은 어떤가? 작년 초 유럽에 코로나가 무섭게 확산되던 시점에 런던에서 서울로 급하게 스튜디오를 옮겼다. 서울로 돌아온 후 모든 것이 엉망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패션 시계에 맞춰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유럽 쪽과의 세일즈 커넥션이 많이 단절된 상태지만 이 또한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 컬렉션 아이디어를 조금만 알려줄 수 있나? 역시나 다양한 소재가 주를 이룰 것 같다. 이번에는 반짝이는 것보다는 더 평면적이고 그래픽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다.

요즘 당신에게 가장 흥미를 주는 건 무엇인가? 서울 길거리의 사람들. 한강진역 대로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행동, 말투 등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지 모를 정도다.

한킴, HANKIM

(@mynameishankim, 김한)

브랜드와 디자이너 본인 소개를 해달라.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공부했다. 20 S/S 시즌을 시작으로 파리와 상하이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여성복을 바탕으로 현재 다양한 협업 등을 통해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언제인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양한 분야의 실력자들 덕에 조금씩 더 나은 브랜드가 되어가는 듯하다. 브랜드의 가치관을 믿고 함께해주시는 분들과의 협업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될 수 있었고, 그런 활동이 쌓여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번 시즌 콘셉트는 무엇인가? 늦은 밤, 어떤 여성 라이더가 달이 떠 있는 방향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어쩌면 그녀가 달로 무언가를 전달하러 가는 건 아닐까 문득 떠올리며 컬렉션을 구상했다. 바이크를 탄 여자의 포즈, 근육의 긴장 상태 등을 떠올리고 재구성하며, 달에서의 모습도 상상했다.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3D를 접목한 캠페인 영상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영상감독과 컬렉션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위해 스토리텔링을 담았다.

독특한 영상의 출발 지점은 어떻게 되나.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지 궁금하다. 한킴은 모두가 함께 만드는 브랜드다. 영상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다양한 영감과 리서치, 발전 과정을 거치지만 그걸 비주얼화하는 데 많은 분들과 협업해 완성된다. 지난 프리폴과 겨울 컬렉션의 영상은 달나라로 물건을 전달하는 바이크를 탄 소녀를 콘셉트로 정다운 감독, 노상호 작가 그리고 윤상현 감독, 송인탁 실장 등의 협업으로 시리즈 작업이 만들어졌다. 오랜 시간 각각의 디벨롭 과정을 거쳐 아티스트의 개성이 담긴 단편이 하나의 이야기로 매듭지어지고 완성된 시리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컬렉션에서 꼭 눈여겨봤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 모든 컬렉션에는 우리의 문화를 담고자 노력한다. 2021 F/W 컬렉션에서 3D와 비디오 등으로 실험적인 방식을 시도했다면, 이번 2022 S/S 컬렉션은 그 방식에 도자기, 페인팅 등을 덧붙여 오랫동안 기록되고 기억할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컬렉션 영감을 얻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설명해달라. 일상의 경험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챔피언스리그를 보다가 불쑥 난입한 관중에게 영감을 받기도 하고, 조깅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여성의 신체적 변화, 시점, 빛에 의한 컬러의 다양성 등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켜 결과물에 닿도록 한다.

오피셜로 활용되는 계정 외에 @printbyhankim도 있다. 어떤 성격의 계정인가. 프린트를 다루는 본인만의 방식도 궁금하다. 프린트바이한킴은 오피셜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격식 없이 풀어낸다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프린트는 보통 빛에서 시작한다. 빛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포터리바이한킴’이라는 이름 아래 도자기를 제작하는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오는 8월에는 피크닉 내 공간에서 새로운 라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디자인하면서 타협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충분한 리서치(Research)와 디벨롭(Development)을 통해 우리만의 이야기를 담기.자신의 브랜드를 세 단어로 정의한다면? 몸(Body), 빛(Light), 이야기(Story).

당신의 가장 대표작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 아직 성장 중인 브랜드이고, 히스토리를 가질 만큼의 작업이 쌓인 브랜드는 아니기에, 항상 가장 최근에 만든 작업이 제일 만족스럽다. 매 시즌 더 나은 작업과 결과물을 내려 노력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어떤 아이템을 제안하고 싶나? 먼저 갖고 있는 아이템과 스타일링하기 좋은 프린트 톱이나 트라우저. 지속 가능한 소재를 이용하여 제작한 아이템도 많아 새로운 옷을 찾을 때 좋은 제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17년 런던의 졸업 작품전에서 선보인 옷을 보면 실험적인 룩이 많았다. 패션과 쇼의 판타지적 측면과 실용적인 옷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하나? 두 번의 졸업 쇼 당시, 고민이 많았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나 자신의 코어를 찾는 데 집중했다. 당시의 나는 가장 꿈꾸던 세상을 디자인했다면, 현재는 그러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입는 레디투웨어를 만드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판타지가 있고, 한킴이 그 판타지 중 일부를 채워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코로나 이전과 이후 작업 방식에 달라진 점이 있나? 지금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작업의 다양성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피지컬적인 소통을 넘어 이제는 간접적으로 즐길 만한 콘텐츠 생산에도 힘을 쏟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 플랫폼을 운영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나?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를 경험케 하는 또 다른 세상이다. 새로운 세상이기에 여전히 많은 것이 낯설고, 배움을 통해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믿고 공감하며 함께할 때 우리는 더욱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한킴의 옷은 어디서 구매할 수 있나? 오프라인은 아데쿠베와 롯데 엘리든에 입점되어 있고, 온라인은 레디 투 웰니스, EQL과 오피셜 홈페이지다.

다음 컬렉션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달라. ‘Jump(점프)’. 어떤 한 소녀가 제자리에서 뛰는 모습이 시작점이 되었다. 감정 상태와 시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이해되고 보여질 것 같다는 상상력으로 컬렉션을 만들고 있다. 컬렉션의 이야기를 옷과 디지털 콘텐츠 등의 결과물로만 보여줘야 하는 아쉬움이 컸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고 공감하기 위해 전시도 준비 중이다. 8월 말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것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컬렉션으로 구현되는 과정과 그 판타지를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시 피지컬 쇼가 활성화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있나? 파리와 상하이에 가서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싶다.

어떤 브랜드이자 디자이너로 남고 싶은가? 어떤 한 문화의 일부가 된다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누구나 꿈꾸는 판타지의 한 조각을 ‘한킴’의 문화, 즉 옷을 통해 실현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

요즘 가장 매료된 것은? 도자기, 페인팅, 점프.

라카지, La cage

(@acage_official, 박상은, 이원희)

브랜드와 디자이너 본인 소개를 해달라. 라카지는 ‘새장’ 을 의미한다. 케이지 안은 현실에서 타협하며 사는 세계이고, 밖은 다양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이런 안과 밖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허물어내는 브랜드를 지향한다. SADI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박상은과 이원희로 구성되어 있고, 올해 졸업과 동시에 브랜드를 만들었다. 졸업 쇼에서 선보인 의상 네 벌이 전부였고, 이번 시즌 컬렉션을 통해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딘 셈이다.

이름이 알려진 계기가 있나? 사실 우리 이름이 알려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매체의 커버 사진에 블랙핑크 로제가 입어 조금 화제가 된 적은 있다.

첫 컬렉션인 이번 시즌 콘셉트는 무엇인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도 알려달라.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매혹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주제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 무모할 정도로 젊음을 탐닉하며, 우울함도 즐길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다. 포장하지 않은 자유로움, 정제하지 않고 털어내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

컬렉션의 영감을 얻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설명해달라.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편이다. 다양한 창작물, 특히 사진, 필름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작가의 터치가 많이 들어간 작품보다는 온전히 대상을 작가의 시선으로만 바라본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 작품들에서 받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실루엣을 만들고 그러한 이미지에 맞는 콘셉트를 구상한다.

당신의 컬렉션에서 꼭 눈여겨봤으면 하는 게 있나? 눈여겨보기보다는 첫인상 자체로 브랜드를 인식했으면 한다. 브랜드 고유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색감을 한눈에 보고 그런 표현을 위해 들어간 요소들을 천천히 탐미하길 원한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을 알려달라. 튜브톱 드레스. 이번 시즌 선보인 구조적인 디테일을 통해 우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강인함과 섹슈얼한 무드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준 아이템이다.

디자인하면서 타협하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는 상업성이 주는 현실적인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점에서 이미 타협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옷은 상업적 예술이기에 입고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완성도에 신경을 쓴다.

룩북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구상하는가? 우린 기교가 섞인 사진보다 담백하게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좋아한다. 그래서 순간의 감성을 가장 잘 담는 포토그래퍼를 선정했다. 모델 조안이 보여주는 와일드함과 그걸 담아내는 손지민 작가의 담백한 시선이 우리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주었다.

졸업과 동시에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오프라인 시장보다 온라인 시장이 각광받는 현재가 오히려 우리 같은 작은 브랜드가 넓은 시장으로 나가기 좋은 환경이 되어주었다. 당분간 오프라인 시장이 회복하기 전까지 SNS를 통해 우리 이름을 더 알리고 싶다.

옷은 어디에서 구매할 수 있나?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컬렉션 피스와 컬렉션의 DNA를 가진 커머셜한 피스를 함께 구성할 예정이다.

피지컬 쇼가 활성화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있나? 옷을 보여준다는 것은 항상 설렌다. 옷을 보여주는 방식도 무척 다양한 시대인데, 런웨이 쇼보다는 프레젠테이션이 우리의 아이디어에 더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협업을 통한 프레젠테이션!

협업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 도자기나 유리 공예 등 공예 작가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 완전히 다른 장르의 사람들과 형태와 텍스처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당신의 브랜드를 어떻게 향유하기를 원하는가? 천천히 보고 오래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휴대폰 갤러리 속 아카이브로, 누군가에겐 특별한 날에 떠오르는 옷장 안의 옷으로 보관되었으면 한다.

오피셜 인스타그램에 적혀 있는 문장, “I was never going to become anything but myself”가 브랜드를 대변하는가? 정말 그렇다. 패티 스미스의 말을 인용한 이 문장은, 어떻게 포장해도, 포장되어도 나는 나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인데, 브랜드 방향성 자체가 트렌드나 유행보다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기에 많이 와닿았다.

요즘 가장 관심을 끄는 일은? 옷에서 다트같이 기본적인 구조를 이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연구하는 작업.

어떤 디자이너로 남고 싶은가? 사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브랜드를 바라진 않는다. 그냥 누군가에게 나만 알고 싶은 그런 브랜드이자 디자이너로 오래 기억되고 싶다.

차명, chamyung

(@cha_myung, 차명은)

브랜드와 본인 소개를 해달라. 내 이름 앞 두 글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새로운 여성상을 탐구하고 제안하며 현재의 관심사와 생각을 차명이라는 브랜드에 반영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패션이라는 분야의 경계선을 넘고 싶은 욕구가 크다. 한계가 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니까.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언제인가? 지난해 ‘The Disobe-dient’ 컬렉션 일부를 ‘1 Granary(글로벌 패션 교육 플랫폼)’에서 소개한 일이 계기가 된 듯하다. 2년 전에 완성한 작업이 1년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2021 F/W 시즌 콘셉트는 무엇인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도 알려달라. 타이틀이 ‘A Journey of Seeking Comfort (편안함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작년 휴학을 위해 런던에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하면서 잘 쉬는 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개인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편안함을 갖는 것이 정신적인 휴식에도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체감한 시간이었다. 몸의 빈 공간들을 채워주고 지탱해주는 일상의 물체들, 특히 베개나 소파, 의자 같은 요소와 몸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드레이핑 과정을 거쳐 컬렉션을 완성했다. 롱필로가 몸을 감싸는 형태와 구조에 중점을 두고 착용하기에도 시각적으로도 평온함을 주는 피스를 만들고 싶었다.

아트 피스를 연상시키는 볼륨감이 눈에 띈다. 이번 작업의 독특한 실루엣이나 디테일은 주로 직접 관찰한 것을 드로잉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작업 과정에 필로나 소파와 같은 요소를 많이 반영해서 볼륨을 표현하다 보니 오브제처럼 보이는 피스가 많이 나온 것 같다.

전위적인 형태와 실루엣에 매료된 이유가 있나? 특정 이유를 꼽기는 힘들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여성복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성의 신체 볼륨이 주는 풍성한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한데, 그 위에 구조를 짓는 일이 내가 주로 하는 일인 것 같다.

컬렉션의 영감을 얻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설명해달라. 영감의 시작은 주로 현재 가장 관심 두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현재 가장 핵심적인 관심사를 A라고 표현한다면, A’ A’’ A’’’ A’’’’.., 그리고 A, B, C, D.. 이런 형태로 생각을 확장한다. A에서 파생된 B와 C가 또 다른 B’ B’’ 로 C’ C’’로 확장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확장된 생각, 단어, 추상적 개념을 2D 혹은 3D 형태로 비주얼라이징하고 그 과정에서 확장된 아이디어들이 점차 좁혀지면서 구체적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이 나의 전반적인 디자인 과정이다. 비주얼라이징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마다 개성과 직관이 개입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구조나 형태에 대한 생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과정이 깊이 있고 명확해질수록 나의 디자인 결과물 또한 독창적이고 뚜렷해진다.

당신의 컬렉션에서 눈여겨봤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 그냥 자유롭게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이번 컬렉션의 시작이 팬데믹 상황에서 ‘나는 잘 쉬고 있는지’,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이었기 때문에 작업물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휴식과 평온함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다.

자신의 브랜드를 세 단어로 정의한다면? 관습을 깨는 실루엣, 크리에이티브 컨스트럭션, 신여성(여기서의 ‘신’은 앞으로 생겨날 새로움이다, 나도 아직 모르는 새로움).

디자인하면서 타협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데 첫째는, 작업에 대한 내적인 확신. 스스로 ‘아, 이거다’라고 하는 순간이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 그 순간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두 번째는 옷의 미적 균형. 예를 들어, 하나의 룩을 완성할 때 실루엣, 형태와 구조, 피스의 크기, 길이, 디테일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 핵심만 남기려고 한다. 이것도 내적 확신에 대한 연장일 수 있겠다. 한마디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들어야 한다. 내 마음속에 피어나는 어떤 ‘적당한 만족감’에 타협하지 않는 것.

실험적인 디자인과 실용적인 옷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하나? 지금은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과 내 가능성을 가장 자유롭게 실험하는 단계이기에 실용적인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욕구보다는 내 생각을 어떻게 옷으로 표현해낼지가 주된 고민이다. 이 질문은 도전적인 작업을 하는 신진 디자이너에게는 평생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디지털 시대에 플랫폼을 운영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나? 요즘은 가상인물로 이루어진 계정이 존재할 만큼 운영자의 의도대로 자신 혹은 작업물조차 포장하기 쉬운 디지털 세상이지만 솔직하게 작업을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정제된 사진 외에도 러프한 피팅이나 디자인 프로세스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담는 아카이브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계정 프로필에 있는 ‘currently on a journey of exploration’은 아직 대학원에 재학 중인 나의 완성되지 않은 상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표현한 문구다. 여러 시도를 통해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목표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 두렵지 않다.

내년 컬렉션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리서치를 진행 중이다. 내년 3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는 공개하고 싶지 않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작업 방식에 달라진 점이 있나? 지금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확실히 디지털 기기의 활용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MA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해 2D 작업을 종이에 직접 프린트하고 그리는 방식보다 아이패드로 작업하고 저장하는 방식을 많이 활용하고, 그걸 토대로 화상채팅으로 작업 과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이번 텀에서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3D 작업 (드레이핑과 패턴 메이킹 텍스타일 익스페리먼트 등등) 은 실제 머티리얼을 이용해 직접 작업한다. 가장 예민하고 정확한 건 내 눈과 손인 것 같다.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는 스킬이 늘었다는 것도 코로나 이후의 변화다.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더 진실된 것, 실재를 보고 싶어 하고 원하는 것 같다. 실재를 경험하는 데에는 정지된 이미지보다 영상이 구체적 전달력을 갖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분야를 막론하고 커졌다. 최근 영상 제작과 편집에도 관심이 커졌다. 멀티플레이어가 되어가고 있다.

피지컬 쇼가 활성화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있나? 옷은 언제나 그 옷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움직임과 애티튜드가 더해져 그 매력이 증폭된다. 다양한 인물로 구성된 런웨이 쇼를 열고 싶은 희망이 있다.

어떤 브랜드이자 디자이너로 남고 싶은가? 현재도 중요하겠지만 다음이 기대되는 디자이너이고 싶다. 그럴듯한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진짜를 탐구하고 성장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다음이 궁금한, 그리고 그런 점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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