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관장 클라우스 비센바흐의 숨 쉬는 집.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숨 쉬는 집

2021-05-29T15:54:12+00:002021.05.30|FEATURE, 컬처|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관장 클라우스 비센바흐(Klaus Biesenbach)는 LA에 자리한 자신의 집을 생동감 넘치는 현장으로 가꾸었다. 거대한 창고를 개조한 그의 자택은 예술가들을 화상으로초대 하는 창의적 스튜디오로 탈바꿈했고, 동시에 녹음이 짙게 드리운 작은 식물원이기도 했다. 기약 없는 팬데믹 라이프 속에서 예술과 교류하는 방법을 찾은 미술관 관장의 숨 쉬는 집을 들여다보았다.

LA에 자리한 비샌바흐의 집. 미니멀리스트의 집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정제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식물을 사랑하는 그답게 집 곳곳에 관엽식물을 여럿 비치했다.

MOCA 관장 클라우스 비센바흐가 자신의 집을 개보수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초부터다. 그 과정은 다운타운 LA의 산업 지대에 자리한 옛 재봉틀 공장을 가정집으로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공사를 마친 이후, 바센바흐는 근사한 화덕을 갖춘 야외 바비큐 파티장으로 손님을 하나둘 초대했다. 집들이에는 메리 웨더포드, 바버라 크루거, 더그 앳킨, 라파 에스파르자 등 내로라하는 유명 예술가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그중 올해로 85세를 맞는 현대 무용의 거장 시몬 포티는 파티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나중에 자리를 뜨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업적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몇몇 셀레브리티도 비센바흐의 집을 찾았는데 거기엔 가수 리키 마틴과 닮은 사람이라고 자주 오해받는 비센바흐의 오랜 친구, 진짜 리키 마틴도 있었다.

스포츠 스타디움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서쪽으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비센바흐의 집은 미술관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다만 이곳에선 예술품은 찾아볼 수 없다. 책장은 물론 자질구레한 잡동사니조차 없으며, 보통 가정집보다 가구의 개수마저 턱없이 적다. 바퀴 달린 침대, 철제 테이블 2개, 의자 6개, 그리고 전기 자전거가 살림의 전부랄까. “이곳으로 이사하며 제가 주로 한 것은 ‘정리’하는 일이었어요. 타일, 카펫, 패널을 전부 들어냈죠. 영감이 흐르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를 보면 벽, 바닥 등 골조가 있는 그대로 노출돼 마치 텅 빈, 하지만 견고한 공간처럼 느껴지잖아요.” 실제 비센바흐는 이사 후 그가 즐겨 입는 슈트 컬러인 네이비로 벽을 칠하고, 파형강관으로 구성된 헛간 지붕을 반투명 패널로 교체하는 것 외의 개보수 작업을 최소화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빛과 신선한 바람이 가득한 LA적 판타지가 집으로 전환한 것’이라고도 표현한다. “어딘가 트럭을 닮은 듯한, 실용적인 도구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집을 하나의 사회적 공간으로 바라보는 그의 철학에서는 박물관 책임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에게 ‘어울림’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경험했듯,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이 같은 기대가 사라지면서 비센바흐의 거대한 저택은 홀로 재택근무를 하고, 반려동물인 거위 ‘컵케이크’가 일상을 보내며, 야외에 자리한 개인 온실 속 식물들이 느릿하게 자라는 장소가 되었다.

비센바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방문객이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기 꺼려지는 이 시기에 어떻게 MOCA의 목적과 미션을 유지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창조적 딜레마에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그 결과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온라인 비디오 시리즈 ‘#VirtualStudioVisits’를 제작하기로 하면서, 비센바흐의 집은 이 시리즈의 촬영지이자 프로덕션 스튜디오로 탈바꿈했다. 비센바흐의 저택이 그가 말한 ‘어울림’의 현장이자 소셜 미디어의 중심지로 변신한 것이다. 미국에서 이동 제한 조치가 처음 내려진 2020년 봄에 시작해 지금까지 진행 중인 ‘#VirtualStudiVisits’는 비센바흐가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을 통해 유명 아티스트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인터뷰를 나누는 2시간 남짓의 영상 프로그램이다. 각 영상마다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슬라이드 쇼가 포함되어 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디지털 회고전에 참여한 듯한 기분이 든다. 더불어 이 비디오 시리즈는 기금 모금의 노른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미술관은 ‘#VirtualStudioVisits’의 두 번째 시즌 구독권을 판매하기로 나섰다. 그렇게 50명가량이 모여들었고 한화로 약 5억원에 달하는 모금액 50만 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라이브가 종료된 후 해당 영상들은 유튜브를 통해 공유되지만, 라이브 방송 중에는 구독자에게만 시청 권한이 주어지며 프로그램 마지막 순서인 예술가와의 질의응답 특전 또한 구독자만 누릴 수 있다. 오프라인 행사 이후의 프라이빗 디너 초대 행사를 구독권 구매에 따른 특전으로 갈음한 것이다.

올해 그는 저택에 자리한 온실을 배경으로 아티스트들에게 팬데믹 라이프에 관한 조언을 듣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MOCA모닝스’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상에서 비센바흐가 가진 파급력(그는 약 30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그의 타고난 인터뷰 실력이 뒷받침되면서 이 15분짜리 방송은 단숨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출연해 총 시청자 수 약 4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VirtualStudioVisits’와 ‘#MOCA모닝스’는 전 세계적으로 예술계의 맥을 지탱해주는 대화가 지속되게 해줄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국경이 여전히 닫힌 이 시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대리 여행의 만족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스튜디오 방문 프로젝트는 그 누구도 전염병의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미술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예술가들의 활동 반경이 좁아졌으니 저희가 예술가가 있는 곳을 찾아가기로 한 거죠. 어느 날엔 랜선을 통해 프랑스 교외에 위치한 카미유 앙로의 부모님 댁에서 카미유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방콕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줌 인터뷰를 진행했고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스튜디오에서 스크린 너머로 그를 만났죠. 특정 지역에 머무는 동시에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매력적이에요.” MOCA 관장직을 위해 LA로 이주하기 전 비센바흐는 10년간 뉴욕 모마 PS1에서 경력을 쌓았을 뿐 아니라 프란시스 알레이스, 요코 오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같은 예술가들을 대변하고, 허리케인 샌디의 여파로 대두된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비센바흐는 뉴욕에 있는 동안 살림이 거의 없는, 침실 1개가 딸린 맨해튼 그랜드 스트리트의 새하얀 아파트에서 주로 지냈다. 틀에 박힌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는 비센바흐의 태도는 뉴욕 생활 훨씬 이전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그는 어느 날 작은 오두막이 있는 온실에서 지내고 싶다며 가족과 함께 살고 있던 집을 박차고 나섰다. “자라면서 항상 제가 어딘가 동떨어져 있다는 기분을 느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종종 숲으로 긴 여행을 떠나곤 했죠. 온실에서 하루를 오롯이 지새운 적도 많고요.”

유난스러울 정도로 물건과 거리를 두는 비센바흐의 태도는 자연을 향한 그의 극진한 애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센바흐는 온갖 종류의 야자수를 비롯한 식물을 마치 사람처럼 여기며 보살피고, 필요한 경우 식물의 거처를 실내로 옮겨주기도한다. “제가 키우는 식물 하나하나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제가 직접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고, 가지치기를 해주었거든요.” 비센바흐는 4년 전 뉴욕에서 데려온 이집트 거위, ‘컵케이크’를 부화시키기도 했다. “알은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어요. 완충재에 잘 싸서 택배로 보내준답니다. 거위든 야자수든, 이 팬데믹 시대에 저와 함께하고 있는 것들에 감사함을 느껴요. 커다란 것을 이루어가는 작은 것들에게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이 저의 일상이랍니다.” 최근 비센바흐는 자신의 저택을 처분하고 목초지를 새로 장만할 궁리를 펼치고 있다. 시내와 떨어져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을 그리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한때 LA의 한 국유림으로 떠난 여름 산악 여행의 즐거웠던 경험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고 비센바흐가 말한다. “저는 창이 난 작은 오두막에서 살고 싶어요. 외부 공간까지 소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작년 한 해의 혼란스러운 시간이 잦아들고 세상이 점차 희망적으로 바뀌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예술인으로서의 타계책을 찾은 비센바흐의 정신은 되새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