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쟁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IP Universe Vol.1

2021-05-26T19:00:45+00:002021.05.27|FEATURE, 컬처|

‘슈퍼 IP를 잡아라.’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의 첫 번째 미션이다. 서로 다른 분야라 생각했던 기업들이 쳇바퀴처럼 맞물려, K-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은 의심할 여지 없이 IP의 시대다. 왜 그토록 중요한가?

 

IP가 화두다.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매니지먼트, 게임 등등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지금 가장 핫한 주제다. IP(Intellectual Property)란 콘텐츠를 기반으로 각종 부가 사업과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재산권’ 묶음을 말한다. 지식재산권은 저작권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지적 능력을 가지고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한 권리’다. 시장성이 있고 훌륭한 콘텐츠 하나가 결국 여러 부가 사업을 낳는 권리이자 그 자체의 힘을 가지게 된다. 온갖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아이돌도, 불멸의 히트송으로 남을 ‘상어가족’을 만든 유아 콘텐츠 브랜드 핑크퐁도 강력한 IP 를 바탕으로 하는 셈이다. 사실 IP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일 잠재력이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정도로 대강 이해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이 용어가 점점 하나의 대명사로 널리 쓰이는 건 창작물에 대한 ‘법적 권리’가 그만큼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IP를 이야기할 때 곧잘 거론되는 용어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국내외 콘텐츠 산업의 규모가 커졌고, IP를 활용하려는 관련 업계는 결국 하나의 씨앗을 통해 무성한 가지를 뻗어 나가는 모양새를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가지들의 합이 고유의 세계관을 이루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는 웹툰과 웹소설 IP를 활용한 시장이다. 단순히 일회적인 영상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기획부터 서로 함께 출발하는 식이다. 웹툰과 웹소설은 좋은 원천 스토리 역할을 할 수 있고, 기존 팬덤을 끌어오기에도 좋다. 자연히 연재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툰의 영향력이 커졌다. 게임회사인 넥슨은 지난해에 ‘글로벌 IP를 확보하는 데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캐릭터와 스토리, 팬들의 충성도까지 담보한 게임 업계야말로 예전부터 IP 활용에 나섰던 대표적 분야다. 분명한 건 IP 를 둘러싼 움직임이 분야별로 각자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서로 얽히고 결합하는 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현재 어떤 분위기 속에 있는지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고 즐기는 것들의 ‘탄생 서사’도 함께 보인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쟁

영화와 드라마가 탄생하는 패러다임이 전과 다른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등은 이제 서로 긴밀히 얽히며 한국 콘텐츠 산업의 지형도를 새로 쓰는 중이다.

“해외에서 긴장해야 한다. 한국 감독들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주로 쓰던 시절에도 경쟁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일종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한국 영화를 주제로 열린 어느 글로벌 온라인 콘퍼런스 현장에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가 해외 학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성공시킨 그가 호기롭게 한국 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을 장담할 수 있는 근거는 첫째, 한국의 웹툰웹소설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과 둘째, 이를 영상화할 수 있는 가성비 높은 한국의 테크놀로지에 있다. 지금 한국의 스토리 비즈니스는 좋은 원천 IP를 발굴해 선점하고 이를 기획개발하는 메커니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는 웹소설 연재 플랫폼 문피아와 <전지적 독자 시점> 극장용 장편 영화 5편 제작에 대한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콘텐츠미디어 그룹 NEW의 제작사 스튜디오앤뉴는 강풀 작가 웹툰 원작의 드라마 <무빙>을, 500억원 이상을 투입해 만들 예정이다.

웹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를 모은 일은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1호점>처럼 십수 년 전에도 있었다. 드라마 <미생>이 나온 것도 어느덧 7년 전 얘기가 됐다. 다만, 그때는 웹툰웹소설 판권을 사서 드라마로 각색하는 정도에서 끝이었기 때문에 콘텐츠 IP의 잠재성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마블의 성공을 지켜보며 본격적인 IP 비즈니스의 필요성을 감지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마블 유니버스가 본격적으로 구축된 이래 마블이 하는 일은 단지 코믹스 원작을 각색해 영화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코믹스, 영화, 드라마, 게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세계관을 확장시키며 그 생명력이 수십 년에 걸쳐 연장됐다. 유관 업계의 자본이 마블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이면서 이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이러한 마블의 방식이 바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다.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다감각형 스토리가 전개되는 양상을 두고 학계에서 쓰는 표현이다. 문화연구자 헨리 젠킨스 MIT 교수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여러 미디어 플랫폼에 걸쳐 전개되며 각각의 새로운 텍스트가 전체에 독특하고 가치 있는 기여’를 한다.

한국 영화  드라마 업계에서는 언젠가부터 기존의 투자 방식과 수익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영화 제작비의 대부분을 극장 수익에서 보전받는다거나, TV 광고 수익과 해외 판매에 의존하는 비즈니스로는 시장의 변화에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획에서 실제 개봉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리지만 극장에서의 성적은 1~2주 안에 판가름 나고, 시청자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드라마 제작비는 매 해 상승하지만 광고 시장은 더는 TV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작품 릴리스 당시에만 생명력을 갖는 것은 제작자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을 일이다. 자연스럽게 제작 스튜디오들은 극장 영화만을, 드라마만을 고집하지 않게 됐다. 이들은 웹툰웹소설 IP를 폭넓게 살피며 극장 영화, TV 드라마, OTT 시리즈까지 다각적으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첫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2017년 하반기부터 웹툰 IP를 발굴해 기획, 개발해온 아이템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영화 <승리호>는 조성희 감독이 만든 IP를 중심으로 웹툰 및 게임 업계와 손잡아 신규 자본을 끌어들이고, 기획 단계부터 웹툰 및 게임 제작을 같이 논했던 프로젝트다. <승리호>의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는 마블 세계관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 덕에 불안정한 콘텐츠 업계에서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신과 함께- 죄와 벌>이 <신과 함께- 인과 연>의 성공까지 견인했던 것처럼, IP 자체가 유명해지면 흥행에 대한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잠재성 있는 아이템을 선점하려는 콘텐츠 업계의 IP 확보 전쟁은 더 뜨거울 전망이다. 다만 IP 비즈니스가 네이버와 카카오라 는 양대 공룡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은 신중히 지켜볼 일이다. 네이버엔 네이버웹툰이, 카카오에는 카카오페이지가 있다. 네이버웹툰은 웹툰과 웹소설이 영상물로 확장할 수 있게 연결하는 스튜디오N을 설립해 <타인은 지옥이다>, <여신강림>, <스위트홈> 등을 성공시킨 바 있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김고은 주연의 실사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극장 영화로 각기 제작된다. 김다미와 최우식 주연의 <그해 우리는>은 드라마와 웹툰으로 동시 기획 제작될 예정이다. 웹툰 <이태원 클라쓰>, 웹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웹툰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이 영상화된 후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을 지켜본 카카오페이지는 IP 비즈니스 회사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조정한 후 영화 <승리호>에 직접 투자했고, 카카오M은 스타 크리에이터 및 제작사, 배우 매니지먼트사를 공격적으로 영입했으며, 두 회사는 3월 4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합병됐다. 올 초 네이버가 외부 법인 투자로 역대 최대인 6500억원을 들여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하자, 최근 카카오는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와 웹툰 플랫폼 타파스 경영권을 인수했다. 두 회사가 장르물에 특화된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를 놓고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매체를 통해 흘러나왔다. 원천 IP 탄생부터 이들을 다른 매체로 연결하는 브리지 회사, 제작과 유통까지 모두 동일한 대기업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여기엔 많은 IP를 보유하고 있지만 영상 제작 능력이 부재하고, 기술은 있지만 더 다양한 원천 스토리를 필요로 하는 사업자들을 연결한다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두 거대 IT 기업이 콘텐츠 시장을 지배하는 미래는 다양성 측면에서 그리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

더불어 IP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관 구축이다. 여러 매체에 걸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 혹은 나중에 확장될 것을 염두에 둔 이야기와 독립적인 내러티브로 의도된 이야기는 현저하게 다른 사고 틀을 갖고 짜인다. 모두가 세계관 구축에 열을 올린다면, 독립적으로 완결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콘텐츠는 어떻게 빛을 볼 수 있을까. 거대 프랜차이즈가 북미 영화 시장을 장악한 것처럼 한국 역시 거대 프랜차이즈 상품이 아니면 크게 흥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면 어떨까. 기존 방송국 편성에서 OTT 중심의 몰아보기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자본의 선택을 받는 IP’란 어떤 종류의 것들이겠냐는 질문도 던질 수 있겠다. IP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콘텐츠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최근 산업의 지각 변동은 단지 업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에 국한된 이야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웹툰과 웹소설, 드라마와 영화는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글 | 임수연(<씨네 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