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하는 질 샌더 (유니클로 +J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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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공백을 깨고 유니클로의 +J 컬렉션으로 복귀한 디자이너 질 샌더 Jil Sander와 서면으로 대화를 나눴다. 함부르크에 위치한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시간을 보내는 질 샌더는 고요한 수면 속에 깊이 침잠한 현자 같은 태도로 다음 세대를 위한 강력한 조언을 건넸다.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습니다. 또 성공적인 협업을 축하합니다. 답변을 쓰는 당신은 지금 어디입니까?

Jil Sander 따뜻한 말 감사합니다. 전 지금 볕이 잘 드는 함부르크에 있는 제 아틀리에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합니다.

디자인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거의 1년 가까이 한 장소에서 지냈습니다.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제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 컬렉션으로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낙관적인 전망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10년이 좀 넘어 유니클로와 다시 재회했습니다. 이런 재협업은 흔치 않죠. 소회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처음 +J 컬렉션을 했을 때도 일회성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 더 나은 개선을 원했고, 모든 긍정적인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니까요. +J 컬렉션 같은 모던 유니폼에 대한 비전을 구축하는 데 단계별로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해요. 제 콘셉트를 공유할 수 있는 유니클로와 같은 훌륭한 파트너를 만난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2021 S/S 컬렉션의 가볍고 고급스러운 소재, 산뜻한 색감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셨나요?

팬데믹 상황이 초래한 의도하지 않은 은둔과 정신적 긴장이 가벼움과 진화를 향한 갈망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종이 같은 촉감의 폴리에스테르 실크는 제게 무척 흥미로운 소재였습니다. 전체적인 콘셉트를 가벼운 텍스처를 레이어링하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이 콘셉트로 볼륨과 비율을 가지고 놀 수 있었고, 새롭고 역동적인 실루엣을 완성할 수 있었죠.

그렇다면 당신에게 의복의 기능성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디자인과 기능의 상관 관계랄까요.

만약 당신이 기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착용자를 장식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로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기능은 미학적으로도 만족스럽게 해석될 수 있어요. 저는 +J를 입는 사람이 이 컬렉션의 디테일을 알아가고 실용적으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냥 기능만 강조하는 건 원치 않아요. 새로운 실루엣에 보다 미묘한 방식으로 기능적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을 고른다면 ‘완벽한 핏의 흰색 티셔츠’라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당신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은 변함이 없나요?

오, 셔츠도 좋지만 이번 시즌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실크 블렌드 오버사이즈 파카입니다. 가볍고, 흥미로운 직물로 만들었으며, 매우 편안해요. 야외 산책부터 저녁 행사까지 다양한 상황에 입을 수 있죠.

2012년 <더블유 코리아>가 당신을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당시 눈여겨볼 만한 디자인 포인트로 ‘철저한 프로포션과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모던함’을 꼽았습니다. 이는 지금도 변함없어 보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디자인 철학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디자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어린 시절 가족에게 무엇을 입어야 하고, 입지 말아야 하는지 조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전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에서 자랐어요. 당시는 모든 걸 재건해야 했죠. 어쩌면, 제 주변의 모든 것이 그림판 위에 있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더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나아질 개선의 여지가 있었죠. 패션, 음식, 인테리어 디자인, 건축, 모든 게요. 그때 깨달았죠. 어제 완벽했던 모양이 현재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완벽한 모양과 비율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요. 그 이후로 저는 계속해서 제 특징을 연구하고, 과거의 해결책에 머무르지 않도록 프로토타입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왔습니다.

당신의 고향 함부르크의 도시 풍경과 색을 예찬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는 자연스럽게 창작에 영향을 줍니다. +J 컬렉션에도 영향을 줬을까요?

내 고향의 빛은 매우 엄격하고 결점을 숨기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내 직물의 장점과 단점이 더 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또 독일 북부의 색은 팝아트식 팔레트에 속하지 않죠. 가을, 겨울이 긴 편이고, 이런 자연환경에 가까운 색이 더 발달했다고 봅니다. 자연의 그늘이 사람의 안색에도 더해진다고 믿고요. 개개인에 확고하게 밑줄을 긋는달까요. 이런 팔레트와 디자인은 많은 도시에서 효과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시장과 소비자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Z세대는 윤리적이고 의식 있는 소비를 중요시하죠. 이를 위한 전략이 있을까요?

제 작품의 기본은 항상 내구성 뛰어난 우수한 직물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소재는 내 상징과도 같아요. 물론 재활용과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죠. 인간은 항상 발전과 새로운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왔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존재이며, 긍정적 변화에 활기를 얻어온 것도 분명해요. 제 디자인에 있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구상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분해 가능한 소재는 디자인적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이 분명합니다.

시장이 변했고, 커리어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여성으로서 많이 고민합니다. 패션 산업에서 풍부한 노하우를 가졌을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일의 의미란 어떤 것인지?

궁금한데, 미래에 직업을 찾는 것이 걱정되나요? 혹은 패션에 인생을 바치는 것이 말이 되는지를 고민하나요? 내 경험으로, 패션이 세계화되면서 전위적인 장인 정신과 완성도를 조금 잃은 것은 맞지만, 패션을 향한 관심은 집단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30년 사이 많은 지역이 패션 세계에 입장을 했죠. 앞으로 하이패션의 전형적인 지형도에 속하지 않던 곳에서도 더 많은 디자인 벤처를 만나게 될 겁니다. 패션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고, 세계 곳곳이 패션의 정교한 감수성에 마침내 적응할 거예요. 이것이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소용돌이치는 패션 시장의 변화를 유연하고 진취적으로 마주한다면, 정상을 유지할 수도 있을 테고요. 제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전 디자인을 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할 수도 없어요. 마치 제 본성과도 같죠. 제게 디자인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긍정적인 고민으로 미뤄 보아, 저널리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대답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난 +J의 F/W 시즌, 한국에서도 많은 아이템이 품절됐을 정도로 당신의 팬이 많습니다. 뉴 시즌을 어떻게 즐기라고 말하고 싶으신지요?

다시 한번 레이어드 개념을 강조하겠습니다. 컬렉션을 입을 때, 여러 가지를 겹쳐 입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당신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생길 겁니다

2021 S/S 컬렉션  룩북과 캠페인은 사진가 데이비드 심스, 스타일리스트 조 매케나, 모델 최소라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패션 크루가 모여 촬영했다. 디자이너 질 샌더의 간결하고 현대적인 미학이 돋보이는 컬렉션으로 봄에 어울리는 파스텔 톤 재킷, 하이킹에 적합한 후디 재킷, 고급스러운 블루종 등이 포함된다. 319일, 유니클로 온,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사진
JIL SANDER BY PETER LINDBERGH, COURTESY OF UNIQ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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