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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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덤을 파는 여성, 그녀에게 남겨진 음악. 단편 영화 <그녀에게>의 사운드트랙이 들려주는 어느 시린 소리가 여기 있다.

영상감독 이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다. 조바른이 감독하고 이와가 시네마토그래퍼로 참여한 단편 영화 <Vibration>은 한 늙은 남자가 부인의 유품을 정리하다 침대 밑 깊숙이 숨겨진 분홍색 딜도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에서 ‘윙윙’ 진동하며 존재감을 발하던 딜도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노인이 거리를 배회하며, 또는 어느 숲길을 전전하며 마주친 풍경의 구도와 색감이었다. 이후로도 이와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2017년 뉴저지 필름 페스티벌에서 상영한 실험적 단편 <오후의 인사>, 청각 장애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단편 <들리지 않는 편지> 등 그의 영상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동일한 감상이 스치곤 했다. 건조한 듯 물기 짙고, 가슴 깊은 곳에 우물을 만드는 화면. 지난 8월 첫 상영을 치렀으며 김모아, 백현진이 주연한 단편 <그녀에게>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행한 일이 계속돼 스스로의 인 생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영화는 무대 위 그녀의 삶이 진짜였는지, 그저 한 편의 연극이었는지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7인치 바이닐로 제작한 <그녀에게> 사운드트랙이 발매됐다. 아름다운 곡들이다. 송영남이 작곡한 ‘The Gravedigger’, ‘Talk to Her’ 두 곡으로 구성됐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장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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