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날 때, ‘내일’이 다가왔음에 감사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인류를 비롯해 전 지구적 위기에 대처해야 할 미래를 떠올리는 오늘. 패션 브랜드들이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에, 선한 영향력이 우리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음에 안도하며.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얼마 전, 밀라노 패션위크에 다녀왔다. 매 시즌 경험하는 패션위크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던 날,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화요일의 정기 휴일도 아닌 월요일에 문을 닫았다. 코로나로 불리는 COVID–19 바이러스의 전염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번 시즌 그 영향으로 밀란의 아르마니가 쇼를 취소했고, 이어서 파리 브랜드 중 일부가 쇼를 하지 않거나 일정을 미뤘다. 2월 28일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지속 가능한 패션의 미래(Sustainable Future for Fashion Showcase)’ 행사마저 연기되었다. 나아가 아르마니는 4월 두바이에서 선보일 크루즈 쇼 역시 11월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버버리는 4월 상하이에서 선보일 F/W 쇼를, 샤넬은 5월의 베이징 공방 쇼를 연기한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구찌의 샌프란시스코 크루즈 쇼도 새로운 날짜와 장소를 고르고 있다고 밝혔고, 프라다의 5월 리조트 쇼 역시 모든 이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예방 차원에서 연기되었다. 뉴욕 패션위크 기간이 아닌 4월의 뉴욕 F/W 쇼를 선포한 랄프 로렌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마린 세르의 프린트 마스크나 흰 샤넬 카멜리아 코르사주를 검정 마스크에 장식한 채 눈길을 끈 스트리트 패션이 눈에 띄었다. 새로운 패션 액세서리가 된 ‘마스크’는 우리의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대변한다. 호주 산불부터 코로나까지, 모든 순환의 원리에서 그 피해는 우리 자신에게 오롯이 돌아왔다. 영화 <컨테이젼>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해보자. 인간의 무분별한 삼림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날아오르며 떨어뜨린 바나나를 돼지가 먹고 그로 인한 바이러스로 죽어가는 인류의 모습은 흡사 현재를 예고한 것 같으니까. 순환의 반작용으로 일어난 바이러스는 이처럼 인류를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그냥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혹은 이전과 다르게 살 것인가.
오늘날 패션이 석유 사업 다음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기사를 접하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다행히 패션계는 변화하고 있고, 그것이 마케팅이든 퍼포먼스이든 좋은 일은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패션의 오명을 벗게 할 자성의 목소리와 의미 있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지금의 패션계. 스텔라 매카트니나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지속적으로 환경 메시지에 목소리를 높여온 디자이너 외에도 마린 세르, 에버레인, 제르마니에, 제로 웨이스트 대니얼, E.L.V.데님 등 의식 있는 다수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이끄는 브랜드가 강렬한 메시지로 미래를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패션계의 이러한 범지구적 노력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열린 F/W 패션위크에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화두로 한 브랜드들의 노력이 유독 눈에 띄었다. 우선 폰다지오네 프라다에서 2020 F/W 여성 쇼를 선보인 프라다는 남성 쇼에 이어 지속 가능한 소재의 사용에 집중했다. 플라스틱에서 얻은 재생 섬유로 만든 소재를 리네아 로사 라인에 접목했고, 패딩에도 사용했다. 한편 디젤이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패션 브랜드들의 글로벌 협약인 ‘패션 팩트(The Fashion Pact)’에 참여한다는 소식과 함께 렌조 로소는 데님의 업사이클링을 선보이는 55DSL 이벤트를 열었다. 2020 S/S 시즌, 아티스틱한 업사이클링 의상을 선보이며 밤비 탈을 쓴 채 피날레 인사를 나눈 마르니의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리소는 이번 F/W 시즌에는 무대마저 재활용 소재로 꾸몄다. 또 존 갈리아노는 메종 마르지엘라 쇼를 통해 빈티지 의상의 ‘재활용’을 통한 업사이클링을 대대적으로 실험했는데, 그는 이를 패션 유산의 ‘복원’ 개념으로 설명했다. 즉 빈티지 제품의 복제를 뜻하는 기존의 ‘레플리카(Replica)’를 확장한 ‘레시클라(Recicla)’를 소개하며, 레시클라 라벨을 부착한 신규 아이템을 직접 선정해 한정판 에디션으로 제안한 것. 또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쇼를 통해 재생 울과 데님, 오가닉 코튼과 나일론, 그리고 리사이클링 충전재를 사용한 R–EA 캡슐 컬렉션을 소개했다. 남성 브랜드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제냐는 #UseTheExisting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존 자원의 재활용을 목표로 미국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앤 패터슨과 협업했다. 제냐 공장의 잔여 원단으로 제작한 수천 개의 리본으로 드라마틱한 무대를 선사한 것.
‘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살 수 있다(We are entirely free to live differently).’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이 말이 희망으로 들리는가. 과연 우리가 이전과 다르게 산다면 디스토피아로 향하던 급행열차를 막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희망으로 패션을 진두지휘하는 이가 있다. 다름 아닌 환경과 여성을 소리 높여 지지하며, 2001년부터 모든 컬렉션에 가죽과 깃털, 퍼의 사용을 지양했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지난해 9월 22일, 밀란 패션위크의 마지막 밤을 수놓은 ‘그린 카펫 패션 어워즈(Green Carpet Fashion Awards)’에서 개척자 상을 수상한 그녀는 2020 S/S 컬렉션을 포괄하는 슬로건으로 조너선의 소설 <We are the Weather>에 나온 이 문구를 룩과 액세서리에 프린팅했다. 얼마 전, 파리에서 선보인 스텔라 매카트니의 F/W 컬렉션은 #Cruelty–Free를 외치며 동물 탈을 쓴 모델들을 런웨이에 등장시켰고, 이전보다 높은 비중의 비건 가죽을 사용했다. 이태리 브루넬로 공장 등에서 자체 개발하고 생산해낸 비동물성 및 PVC 무함유 소재, 비동물성 양가죽과 시어링 등 친환경 소재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지속 가능한 미래’ 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발렌시아가 2020 F/W 쇼에서 물이 범람하고 불길이 솟구친 듯한 쇼장과 홍수에 잠긴 프런트로를 선보인 무대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초, 호주 산불로 피해 를 입은 코알라를 돕기 위한 채러티 컬렉션을 론칭하고, 지난 연말 마이애미 아트바젤 기간에는 폐기된 발렌시아가 의상을 모아 업사이클링 소파를 선보 이는 등 ‘가능성’의 문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다. 얼마 전 영화 <기생충>이 우리에게 삶의 공간을 통해 느끼는 사회 계층의 문제를 다뤘다면, 발렌시아가 유튜브에 최근 공개된 2020 S/S 발렌시아가 캠페인 영상은 여기에 미래와 환경 이슈를 더한다. ‘뉴스룸’ 이라는 재미있는 설정 아래 미래에 있을 법한 환경 문제를 비롯해 정치, 사회면까지 우리가 직면한 이슈를 흥미롭게 다룬 것. 또 발렌시아가는 환경을 넘어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깊은 관심을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아 퇴치를 목표로 하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수익금의 일부를 전달하는 캡슐 컬렉션도 선보였는데, 이는 2018년 쇼에서 처음 선보인 ‘Saving Lives Changing Lives’ 구호를 앞세운 캠페인에 이은 것이었다.
10년 전 한 선배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인즉, 미래의 오염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 갈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논리였다. 지금 일곱 살 딸, 60대 부모님과 함께 코로나 사태 속에 살아 가고 있는 내겐 그 당시 선배의 선언이 때때로 옛 노랫가사처럼 아련히 귓가에 맴돈다. 그런 면에서 마린 세르 쇼에 등장한, ‘가족’이라는 관계를 암시하는 모델들의 워킹은 뭉클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가장 핫한 라이징 디자이너로 각광받고 있는 마린 세르의 화두는 언제나 ‘미래’로 향해 있다. 그녀는 파리 컬렉션을 통해 업사이클링과 퓨처 웨어를 선보이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강렬하게 그렸다. 아이코닉한 초승달 패턴으로 인기를 얻은 룩에서 나아가 쇼에 어린이 모델을 등장시키고, 마스크 패션으로 암울한 미래적 패션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희망을 찾는 걸까. 최근 선보인 2020 S/S 시즌 캠페인 이미지는 종말론 이후 네 곳의 지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의 습관적인 안일함에 경종을 울린다. 생존을 위해 모습이 변형된 미래의 여성이 등장하고, 기계 꽃이 피어나며, 물을 빼앗긴 잃어버린 낙원의 풍경이 펼쳐진 것. 고도화한 기계 문명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적막한 현실을 미리 응시하게 하는 마린 세르의 캠페인은 이토록 아름답고 슬프다. 한편 로로피아나가 선보인 3부작 다큐멘터리 필름에는 척박한 몽골 대자연의 풍광이 담긴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감독 뤽 자케와 공동 제작한 영상에는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진귀한 소재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간다. 로로피아나는 재생 가능한 캐시미어 섬유를 얻기 위해 자연의 생명 주기를 살핀다. 속털이 자연스럽게 빠지는 시기에 털을 빗어서 섬유를 수집하는 것이다. 가장 순수한 섬유인 캐시미어를 얻기 위한 지속 가능한 노력과 몽골의 염소와 허약한 생태계를 보호하겠다는 브랜드 의 윤리적 신념도 영상에 함께 담았다.
‘미니멀리즘’이 사회 전반적인 화두로 떠오른 지난 해, 동명의 다큐멘터리와 한 옷장 정리 해결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다. 사실 패션의 환경 이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처럼 대량 생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좋은 옷을 오래 입는 일’ 자체가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브랜드의 좋은 의상을 선택적으로 구입하고, 잘 관리해서 오래 즐거움을 느끼는 현명함과 세심한 노력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가치 소비에 집중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어필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75%가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제품이라면 비싼 값을 주고라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한 조사 결과는 지속 가능한 미래에 그린 라이트를 켠다. 이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브랜드들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친환경 소재 개발이다. 최근에 유네스코와 해양 보호 관련 협약을 맺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Sea Beyond’를 진행한 프라다는 대대적인 ‘리나일론 (Re–Nylon)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펼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협업한 영상에서 나일론을 쏟아내는 차량의 폐섬유들이 하늘에 흩날리는 이미지로 깊은 인상을 남긴 프라다. 낚시 그물, 방직용 섬유 폐기물 등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 및 정화 공정을 통해 섬유 생산 업체 아쿠아필과 협업하여 새로운 재생 나일론 ‘에코닐(Econyl2)’을 개발했다. 품질의 손상 없이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 리나일론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나일론 제품 생산을 2021년 말까지 중단하겠다고 밝혔기도. 그러니 조만간 프라다의 모든 리나일론 백에는 브랜드의 전통적인 삼각형 로고와 함께 ‘재생’과 ‘순환’을 의미하는 로고가 더해질 것이다.
에르노는 최근 지속 가능한 친환경 프로젝트를 특징으로 하는 ‘Herno Globe’를 선보였다. 패브릭의 84%는 재활용 나일론과 지퍼, 버튼으로 구성되며, 충전재는 친환경적 제조 과정을 통해 수급된 다운 소재를 사용했다. 또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친환경 염료를 사용했다. 양파와 같은 유기농 재료들은 노르스름한 색상을 내는 데 쓰였으며 보라색은 포도, 회색과 검은색은 대나무 숯, 초록색은 올리브, 파란색은 푸른 나뭇잎으로 만들어졌다. 또 브랜드 이름부터 환경에 대한 의식이 깃든 대니얼 실버스타인의 ‘제로 웨이스트 대니얼 (Zero Waste Daniel)’. 그의 컬렉션은 비영리 단체인 ‘Sure We Can’과 협력해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다루며,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다른 디자이너들이 쓰레기 매립지에 버리려고 한 고순환의 직물 찌꺼기로 옷을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가죽 액세서리를 주요 아이템으로 선보이거나 SPA 브랜드라는 타이틀로 눈총을 받은 브랜드들 역시 새로운 변화를 감행해 호응을 얻고 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젊고 지속 가능한 캡슐 컬렉션인 ‘42 Degrees’는 옥수수 등의 유기 섬유로 만든 깔창과 첨단 소재 폴리머에서 얻은 비화학적인 공정의 실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켰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멀버리는 탄소 중립 공장에서 친환경 가죽과 재활용 소재 실로 만든 포토벨로 백을 선보였다. 가죽 무두질 공장에서 만든 헤비 그레인 가죽은 식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만들어진 것. 더구나 이 백을 구입한 모든 고객들에게 멀버리의 평생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며, 포토벨로 백의 수익금 전액은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월드 랜드 트러스트’에 기부된다. 이어서 올해 선보인 멀버리의 환경 친화적인 ‘M 컬렉션’ 역시 혁신적인 재생 나일론과 지속 가능한 면 소재로 제작되었다. 한편 ‘순환 혁신’을 핵심으로 하는 H&M의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S/S 컬렉션도 눈길을 끈다. 이전 컬렉션에서 사용하고 남은 재활용 글라스 비드 장식과 버려진 포도껍질과 줄기를 재활용한 혁신적인 비건 레더 소재인 비제아™ (VEGEA™) 등 다채로운 업사이클링 소재가 특징이다.
나아가 패션 산업 환경을 바꾸려는 의지도 눈에 띈다. 우선 구찌의 2020 S/S 컬렉션은 지속 가능성을 향한 패션 브랜드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구찌는 ‘탄소 중립화(Carbon Neutral)’를 선언하며 컬렉션을 통해 배출된 CO2 배출량을 만회하기 위해 쇼에 참석한 관중 수에 해당하는 나무를 심는 글로벌 산림 보존 지원 사업 ‘REDD+’를 공개했다.이를 통해 2018년을 기준으로 44만125톤에 달하는 이산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성과를 내기도. 동시에 브랜드의 사업 활동을 비롯해 매장, 사무실, 창고 등의 재생 에너지 비중도 확대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45,800톤 감소할 예정이다. 또한 전 세계 핵심 생태계 보존 및 복원을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S/S 시즌 쇼장에 160그루가 넘는 나무로 숲을 재현한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그녀는 패션이 단순히 환상을 전하는 쇼가 아닌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임을 선포했으며, 최근 디올 하우스는 루브르 박물관과 협업해 향후 5년간 파리의 튈르리 정원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편 네타포르테는 넷서스테인의 2020년 확장을 기념하며 환경에 미치는 요소를 최대한 고려한 광고 캠페인을 공개했다. 맥퀸 플라워와 함께 재활용 꽃과 재료로 작업하여 폐기물을 줄이는 동시에 버려진 꽃에 두 번째 생명을 불어넣어 만든 플로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아가 네타포르테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모든 패션 촬영에 여행을 최소화할 것, 최대한 자연광을 사용할 것, 외주 제작사에 촬영 현장에서 플라스틱과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자제할 것 등을 요청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내일>은 감독 시릴 디옹과 프랑스 여배우 멜라니 로랑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찾아 떠난 여정을 담았다.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작품의 제목은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막연한 미래(Future)가 아닌 바로 내일(Tomorrow)이 우리의 앞날, 혹은 마지막 날이 될 수 있기에. 2100년에 지구와 인류의 멸망을 예고한 한 리포트를 접한 그들이 ‘내일’을 바로 세우기 위해 희망의 증거를 수집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신 재생 에너지, 경제 및 교육 방면에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할 당시 멜라니 로랑은 임신 중이었고, 그들은 궁극적으로 후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서 ‘오늘’의 이러한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미래인 ‘내일’ 역시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으로도 출간됐다.
일상의 혁명이 필요한 오늘, 2016년 LA에서 스텔라 매카트니와 나눈 인터뷰는 우리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되새긴다. “나는 늘 생각해요. 왜 나는 일을 이렇게 힘들게 할까. 하지만 금방 깨닫곤 하죠. 난 쉽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요. 물론 아직 어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진 않았어요.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걸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를 위해선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 자신감, 용기가 필요하죠.”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오늘도 그 약속을 실천 중이다. 사실 언제나 미래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해왔지만 적어도 과정을 통해 확실성에 접근해왔다. 그것이 바로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순환’ 관계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패션도 지속 가능 움직임의 주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샤넬이 올해 안에 완공할 예정인 ‘19M’이라는 이름의 공방 공동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대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라는 체 게바라의 말은 이러한 패션 혁명가들에 의해 실천되며 내일을 꿈꾸게 한다.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 아트워크
- 허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