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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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프레젠테이션과 2020 F/W시즌, 첫 런웨이 쇼를 선보인 프랑스의 신예 디자이너 보라미 비귀에(Boramy Viguier)와 만났다. 2019 LVMH 어워즈 쇼트리스트에 선정되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고딕풍의 음울한 색채와 스포티한 요소를 현대적이고 매끄럽게 결합한 자신의 컬렉션을 두고 ‘패러독스’라 말한다.

첫 번째 런웨이 쇼를 축하한다. 어째서 지금인가? 브랜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번에  든 기회가 맞아떨어져 하게 됐다. 쇼에서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하고 준비할 시간도 필요했다. 그 과정을 거쳐 지금껏 해온 컬렉션이 축약되고, 구체화되었다. 증권가 유니폼에 관심이 있었는데, 파리 증권거래소 건물에서 쇼를 할 기회가 생긴 것도 쇼를 연 이유 중 하나다. 이때다, 하는 느낌이 왔다.

쇼를 준비한 경험은 어땠나. 장소가 멋있었다. 나는 룩의 스타일링을 머릿속에 먼저 그린 상태로 작업을 한다. 이번 쇼도 마찬가지인데, 쇼에서 어떤 걸 보여줄지보다 스타일링 고민을 더 한 것 같다. 나머지는 퍼즐을 맞추듯 진행했다. 앞서 언급한 유니폼에 종교 의상의 아우라도 섞고, 길이와 레이어링을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음악도 마찬가지. 4개월 동안 군가나 종교 음악을 많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쇼의 무대를 어떻게 만들지, 또 어떤 룩을 만들지 고민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요즘 쇼는 전통적 의미보다 여러모로 확장된 기능을 하고 있지 않나. 중점을 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내 쇼가 열리는 장소에 들어설 때 사원이나 교회 같은 종교적인 장소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길 원했다. 그런데 쇼를 펼친 장소가 프랑스 증권 시장의 심장인 곳으로 종교적 분위기와는 상반된 곳이지 않나. 그런 역설(패러독스)도 나를 자극시켰다.

여러 가지 영감을 하나로 융합하는 게 흥미롭다. 스타일링은 내 머릿속의 이상을 실현하는 핵심 과정이다. 여러 레퍼런스를 나만의 방식으로 믹스하는 것이다. 근데 다들 그렇지 않나? 난 밀리터리 룩도 좋아하고, 스포츠웨어, 일상복은 물론 종교 의상도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바는 이 모든 레퍼런스가 한 룩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내 옷 중 긴 케이프를 보면 야외 운동할 때 입는 옷 같기도 하고, 포켓 장식에선 유니폼적인 요소도 느껴지고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들어있다. 일차원적인 건 재미없다. 기능적인 의복 또한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스타일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지난 시즌은 타로카드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많았고, 이번 시즌은 장교복이나 유니폼처럼 좀 더 딱딱한 애티튜드가 느껴졌다. 발전시킨 과정은 어땠나? 정반대의 것이 서로 잘 어우러지는 작업을 시도했다. 이번 시즌에도 타로카드 이미지를 활용했다. 이를 군인의 옷이나 유니폼과 만나게 하고 소통하게 하는 식으로. 이를테면, 한 벌의 옷에 종교에 관련된 네 가지 요소와 군복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이런 장치가 나에게 영화처럼 느껴진다.

지난 시즌 장식적으로 사용한 주사기, 마스크는 무엇에 대한 은유인지 궁금했다. 작년 겨울 룩북에서 보여준 것 말인가. 얼마 전, 병 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고마운 장소인 반면, 우울한 느낌도 주지 않나. 병원식도 맛이 없고. 병원이라는 장소가 주는 패러독스를 표현하고 싶었다. 의사나 간호사가 입는 유니폼도 눈여겨보았는데,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주사기를 든 사람들을 매일 보니 공포 영화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당신의 미적 기준이 남달라 보인다. 나에게 미적 기준이란 아름답지만 꼭 이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화가는 아름다움을 언어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거라 생각한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패션만의 언어가 있다. 영화에 빗댄다면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름답다 느껴진달까.

2020 F/W

2020 F/W

2019 F/W

이번 시즌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피스는 무엇인가? 긴 밀리터리 트렌치코트다. 내가 주머니가 많은 실용적인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 보이는 슈트도 너무 좋다. 슈트는 재단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옷이다. 테크닉적으로 도전이었다.

옷에 스포티한 요소가 많아서 말인데, 실제로 운동을 하나? 수영을 약간 하지만 내 친구들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그 정도로 운동한 다고 말할 수 있냐고 엄청 놀릴 거다(웃음). 요즘은 술, 담배를 더 가까이하지만. 운동. 해야지.

남성복 기간의 다른 쇼도 지켜보았나? 혹시 특별한 감상을 일으킨 쇼가 있었다면? 물론. 크레이그 그린은 내가 학생일 때 일하던 브랜드인데, 지금은 규모가 훨씬 커졌지만 당시엔 아주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프라다도 챙겨 봤다. 많이 보진 않지만 대여섯 개 정도는 본다. 배울 점이 많으니까.

랑방 출신이라고 들었다. 거기선 무엇을 배웠나? 루카스 오센드 리버(랑방 옴므를 14년 동안 이끈) 밑에서 일했다. 그는 나에게 패션스쿨과도 같은 사람 이었다. 5년간 그와 일했는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옷의 가장 깊은 곳까지 말이다.

28세에 브랜드를 론칭하고, 2019 LVMH 어워즈 쇼트리스트에 선정되기까지 모든 것이 빠르고, 순탄해 보인다. 거대 패션 하우스와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음, 대답 한다면 정신적인 도전 아닐까.

혹시 옷을 입히고 싶은 사람이 있나? 뮤즈라던가. 만들 때 특정인을 생각하고 만들지 않지만, 굳이 꼽자면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 의 팬이다. 스포츠웨어, 웨스턴 스타일 등 모든 스타일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인 것 같다. 물론 연기도 끝내주게 잘하는 사람이 고!

이제 쇼가 끝났으니, 당분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또 일할 것이다. 휴가는 없다. 그냥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스타일을 풀어내고 싶다. 컬렉션이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냥 끊임없이 일하는 편이다. 이제 집에 가서 쉬고, 내일도 일할 것이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김형식
파리 통신원
이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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