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시카고. 일관성 없는 건축의 도시, 그리고 모더니즘 건축과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으로 정의되는 도시. 지금 두 도시에서 열리는 건축 비엔날레를 돌아보고 왔다.
시카고는 ‘도시’라는 단어와 떼놓을 수 없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고층 빌딩이 처음 태어난 곳이다. 여전히 백인보다 다른 인종이 더 많이 살며, 오바마 전 대통령이 경력을 쌓은 시민운동의 도시이자,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도시이기도 하다. 인구 270만 명 규모의 시카고에 비해 서울은 꽤나 안전하고 거대한 도시인 것 같다. 100여 년 전 시카고에서 탄생한 고층 빌딩은 서울 시내 곳곳에 숲을 이루듯 무리 지어 있고, 이제는 한국식 건축의 상징이라 해도 모자람 없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 역시 도시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시내의 오래된 상가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자리를 잡고 있으며, 지금은 보존과 재개발의 기로에서 갈등 중이다. 모더니즘 건축과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이 시카고를 정의한다면, 웬만해선 일관성을 찾을 수 없는 무작위적인 건축의 혼종이 서울을 관통한다.
9월 19일에 시작해 2020년 1월 5일까지 계속되는 ‘시카고건축비엔날레’는 올해가 세 번째다. 주제는 <…And Other Such Stories(…그런 또 다른 이야기들)>. 1893년에 생긴 옛 시카고 공공 도서관 건물을 주 전시장으로 삼아 시내 전역의 다섯 군데 공간에서 진행된다. 9월 7일에 시작해 11월 10일까지 이어지는 두 번째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는 <집합도시(Collective City)>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시작으로 서대문 돈의문박물관마을까지, 여섯 군데 장소가 전시 무대다. 태평양을 건너 10,000km가량 떨어진 서울과 시카고는 비슷한 역사와 ‘건축’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그러나 두 도시의 건축 비엔날레 전시는 이름을 제외한 많은 것이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건축비엔날레가 막을 내리기 전에 하루쯤은 시간을 내 전시를 볼 만하다. 비엔날레 관람을 구실 삼아 주 전시관이 있는 동대문 DDP에서 출발해 을지로와 청계천을 거쳐 서대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이 도시의 삶과 시간에 대해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걸어가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그 길에서는 서울의 건축이 지닌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어, 더할 나위 없는 ‘건축적 시간’을 보내기 좋다. DDP는 미래적인 건축 설계로 알려진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작이며, 마지막 장소인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양 도성 안에 생긴 첫 번째 마을이 도시 재생을 거쳐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바뀐 곳이다. 생각해보자. 지금의 시카고를 있게 한 고층 빌딩 건축은 1871년 3일간 벌어진 대화재의 복구와 재건 과정에서 탄생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1950년부터 3년간 벌어진 한국전쟁과 그 후 끊임없이 진행된 개발, 재개발을 통해 형성됐다. 이런 두 도시에서 2년에 한 번씩 건축에 관한 전시를 만드는 것, 이런 전시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시를 관람한 뒤, 좋은 도시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런 또 다른 이야기들>을 주제 삼은 시카고건축비엔날레의 큐레이터들은 시민의 목소리를 빌려 전시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전시는 도시의 매끄러운 겉모습에 가려진 여러 이야기를 은근슬쩍 꺼내어 보여준다. 전시가 시작되는 옛 공공 도서관 로비에 세워진 파빌리온은 총기 사고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시카고 시민들이 직접 녹음한 이야기와 그들을 추억하는 작은 오브제들이 놓인 아카이브다. 비엔날레의 나머지 역시 건축과 삶의 관계를 둘러싼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예컨대 서도호는 런던의 한 공공주택에 있는 모든 집을 3D로 스캔해 거대한 화면 위로 옮겨 영상 작업 형태로 보여주고, 브라질의 주거권 시민단체 FICA는 전시장 꼭대기 층에서 ‘윤리적 건물주’의 조건을 살펴보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서울에서 진행 중인 <집합도시>는 <…그런 또 다른 이야기들>과는 좀 다르다. 아마 서울의 도시 풍경은 잘 구획된 직선 도로가 교차하는 시카고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80여 개 나라와 도시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건축가를 초대한 <집합도시>에서는 도시와 건축에 대한 온갖 아이디어와 제안, 실제로 벌어지는 숱한 프로젝트를 압축적으로 훑어볼 수 있다. DDP에서는 영국영화협회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20세기 중반의 도시 개발 홍보 애니메이션을, 위성 전시가 벌어지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서울 시내의 오래된 시장들이 거쳐온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건축 연구와 시민운동, 예술 작업을 겸해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렌식 아키텍처’는 테러리스트들이 파괴한 문화유산을 지역 주민들이 간단한 장비를 활용해 3D로 스캔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천안과 청주의 도시 재생을 홍보하는 사진과 영상을 보여준다.
<…그런 또 다른 이야기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빌려 슬쩍 드러내 보여주려 했던 도시의 맨얼굴이, 서울에선 <집합도시>를 이루는 여섯 개 전시장 사이사이, 그러니까 서울 시내의 도시 풍경에서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 있다. 물론 하염없이 서울 시내의 거리를 걷는다고 해서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장에 빼곡히 놓인 건축가들의 제안과 아이디어에서 전시장 밖 서울의 복잡한 도시 풍경에 대한 단서를 얻어야 한다. 이렇게 전시장에서 단서가 주어진 이야기들, 미처 다 끝마치지 못했거나 왠지 생략된 이야기들을 비엔날레 전시가 이뤄지는 다음 전시장으로 향하는 서울 시내의 거리에서 찾아내보자. 그게 건축 비엔날레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의미다. 적어도 비엔날레가 열리는 2년에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좋은 도시를 위한 산책이 될 것이다.
- 글
- 박재용(큐레이터, 통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