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 8 우승자 펀치넬로 인터뷰.
한국 힙합의 ‘잘 보이는 큰손’인 <쇼미더머니>에서는 해마다 프로와 아마추어, 유명한 래퍼와 덜 유명한 래퍼가 살아남고자 숱하게 뒤엉킨다. 펀치넬로는 그중 가장 조용하고 겸손한 우승자다. 랩을 하지 않을 때는 작은 그림자처럼 머물다가, 랩을 하며 불을 뿜는다. 안 멈춰, 끝까지 질러, 난 멈춘 적 없다고.
<쇼미더머니 8>이 끝난 후 열흘이 지났다. 뭐 하고 보냈나? 쉬고, 술도 좀 마시고, 음악 작업하면서 편안하게 보냈다. 어젯밤에는 소주 두 병 마시고 기절했다.
<쇼미더머니>에서 우승하면 상금과 차량 외에 금반지를 받는다고 들었다. 그 반지를 최종 무대에서 겨룬 영비에게 줬다던데. 그렇다. 차량은 아버지에게 곧 선물로 전달할 예정이고. 반지는 금액으로 치면 5백만~6백만원 정도라더라.
영비는 반지를 선뜻 받던가? 계속 거절했는데 내가 제발 받아달라고 사정했다(웃음). 난 그 친구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그에게 주고 싶었다.
당신은 여느 래퍼들의 태도와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부끄럼을 많이 타고, 상당히 내성적으로 보인다는 것. 힙합계에 펀치넬로, 영화계에는 그런 인물로 원빈이 있다. 원빈… 이거 상당한 갭이 있는데(웃음).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 이게 많이 나아진 거다.
‘중학교 시절 반장 추천을 받았으나 본인이 부담스러워 부반장을 맡겠다고 했다’는 증언이 인터넷에 있더라. 끼가 전혀 없지는 않은데 숫기가 없는 사람은 예부터 부반장이 제격이었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반장을 할 수 있는데 부반장을 한 게 아니라, 반장이든 부반장이든 할 생각도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부반장을 한 거다. 딱히 원한 일이 아니라서 에피소드로 내색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펀치넬로가 랩을 할 때면 ‘다 씹어먹겠어’ 같은 포스를 풍긴다. 과거 당신을 알았던 동창들에게는 당신이 래퍼가 됐다는 사실이 놀랄 일인가? 그렇진 않다. 랩을 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게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올라갈 즈음이다. 그때 처음 가사를 쓰고 녹음이란 걸 해봤다. 주변에서는 내가 랩 하는 걸 다 알고 있었다.
상당히 이른 진로 결정인데? 그때가 몇 년도인가? 지금 스물셋이니까, 딱 10년 전이다. 2009년 즈음.
어떤 래퍼는 스스로 ‘관종’임을 인정하며 요란스럽게 구는데, 당신은 ‘나 잘났어’ 식의 래퍼와는 거리가 있다. 내성적이며 말수도 적은 성향이 힙합을 하면서 좀 변화하는 부분은 없던가? 지금까지는 없었다. 나는 자신감, 자기애 따위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 <쇼미더머니 8>을 거치고 나서 확실히 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쇼미더머니>가 나에게 도움이 됐다. 전보다 자신감이 좀 붙은 걸 느낀다.
<쇼미더머니 8>에서 펀치넬로는 많은 이가 예상하는 우승자는 아니었지만, 손에 꼽히는 실력자로 통했다. 가사를 절어서 탈락했다가 패자부활전으로 되살아나 끝까지 갔고. 패자부활전이라는 게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나를 위한 거구나’ 생각했나? 안 그랬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쇼미더머니 8>을 하는 동안 그즈음이 가장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다. 방송에도 고스란히 나왔다시피 아예 울어버렸으니까.
재작년 <쇼미더머니 6>에 출연했을 때를 기억한다. 펀치넬로가 랩 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듣고 싶었는데, 어느 시점에 기권하고 사라져버렸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서 녹화를 중단하고 떠났다고 소개됐다. 혹시 그때 얘기를 조금 더 해줄 수 있을까? 녹화에 참가하는 시기에 어머니의 암이 발병했다. 촬영장에서 대기하며 폰을 보고 있는데 형에게 연락이 와서 알았다. 내가 걱정할까봐 말을 안 하고 있다가 그래도 소식을 전하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이제 말 한다며 연락한 거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 후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신다.
이번에 우승한 후 처음 부모님을 대면했을 때 뭐라고 하시던가? 사실 아직까지 못 뵈었다. 얼굴을 못 보겠더라. 뭐랄까, ‘기뻐하실 테니 나도 좋지만 이거 뭔가 낯간지러운데?’라는 점에서. 물론 통화는 나눴다. 울었다고 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효도한 거 같아서 기쁘다. 기쁨은 기쁨이고, 여전히 낯은 간지럽고.
재작년을 생각하면 한번 시작한 일을 끝맺지 못하고 퇴장한 것에 아쉬움이 컸겠다. 그 외 <쇼미더머니>라는 서바이벌 방송에 다시 도전한 큰 이유가 있나? 나를 도와주는 형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나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패자부활전 이후 몇 번 ‘이거 하기 싫다’는 생각이 잠깐 들 때도 있었는데, 영채널, 우기, 엘로, 밀릭 등등 프로듀서 형들을 생각하면 이내 괜찮아졌다. 희한하게도 내가 사는 집 옆집에 엘로 형, 아랫집에 우기 형이 산다. 영채널 형, 빅원이라는 래퍼도 같은 건물에 산다. 의도한 건 아닌데 힙합인이 많이 모이고 있는 오피스텔이다.
그중 밀릭은 이번에 프로듀서 자격으로 출연해 같이 작업했다. 서바이벌을 치러야 하는 당신에게 그가 프로듀서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 몰입하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고. 무대 위에서 몰입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여러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이 제일 인상적이어서 자주 곱씹었다.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의 ‘잘 보이는 큰손’이 된 지도 오래다. 주변에 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나? 출연을 말렸다던가. 전혀 없었다. 내 주변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거 다 돈 벌려고, 잘 되려고 나가는 방송인데, 그게 가능해지게끔 깔린 판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기회의 장을 욕할 필요는 없다.
웅얼거리는 멈블랩이나 싱잉랩을 하는 래퍼, 타격감 있는 래핑으로 소리부터 사로잡는 래퍼, 독창적인 가사와 분위기로 인장을 새기는 래퍼 등등. 여러 유형의 래퍼가 있다. 펀치넬로는 무엇에 가중치를 두나? 글쎄, 이렇다 할 건 아직 없지만 누군가 내 음악을 들었을 때 신선하다고 느낄 만한 사운드를 내려고 한다. 그리고 듣는 이가 압도당하게끔 하고 싶다. 이 두 가지를 나의 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작업 한다.
이를테면 비와이가 프로듀싱하고 행주와 함께 부른 ‘마그마’에서 ‘안 멈춰 끝까지 질러 난 멈춘 적 없어’라고, 두 눈을 치켜뜰 때. 그런 순간들이면 펀치넬로와 ‘압도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간 당신의 믹스테이프를 찾아 들어보니, 목소리 자체나 랩을 뱉는 방식이 처음부터 압도적이지는 않았더라(웃음). 맞다, 두 번째 믹스테이프를 낼 때쯤 톤이 막 잡히기 시작했다. 변성기처럼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변한 건 아니고, 색깔을 찾고 싶어서 내 나름 톤에 대해 이것저것 연구하고 시도했다. 그리고 원래 메탈이나 록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그마’의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요즘 그런 스타일의 곡도 만들고 있다.
여름에 발표한 싱글 ‘23’은 부드럽고 차분한 미디엄 템포다. 거기 이런 가사가 나온다. ‘참 많이도 버렸지 참 많이도 버리고 또 버티면서 지냈네 어린놈이 티는 안 내면서 자길 숨기길 잘해 고생 참 많이 했어.’ ‘어린놈’이 무슨 고생을 그렇게 했나? 엄마도 아프셨고, 속해 있던 회사도 사라졌고. 불과 얼마 전까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주 우울한 채로 보냈다. 정신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즈음 만든 음악에 그런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10대 때도 랩 하는 시간이 많았고, 지금도 거의 종일 음악 작업을 하며 보낸다고 들었다. 거기서 운동선수나 클래식 악기 전공자의 삶이 떠올랐다. 묵묵하고, 인생이 온통 음악으로 차 있는 사람의 이미지.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자기 바깥과 여러 접점을 가지면서 뭔가를 인풋 삼아야 할 필요는 없나? 딱히 연습이나 훈련을 한다는 개념으로 음악에 임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게 재밌어서 그렇게 산다. 가사를 쓸 때는 늘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낸다. 굳이 밖에 나가서 누구를 만나거나 어울리지 않아도 내 안에서 감정의 변화가 꾸준히 생기니까 그걸 포착한다. 좋아하는 거라면 게임과 술 정도? 술은 소주를 선호한다. 음악 외에 뭘 잘하는지 물어보면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뭔가? 트렌드라는 게 있고, 그게 계속 바뀌거나 업그레이드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걸 따라잡고 연구해야 하는 점이 쉽지 않다.
요즘 힙합 트렌드는 뭘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대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어디에 어느 정도 기준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맞추는 게 맞는 일인지도 헷갈리고. 최근까지는 별생각 없이 그저 신나기만 해도 되는 음악이 트렌드였지 않나 싶다. 내용에 신경 쓰기보다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점 자체에 집중한 곡들 말이다.
그저 신나는 바이브. 펀치넬로는 그런 스타일과도 어울리나? 그럼. 아주 좋아한다 그런 거.
당신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가장 펀치넬로답다고 생각하는 곡 세 개만 꼽아준다면? 우선 가장 최근 싱글인 ‘23’. 나 자신에게, 혹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곡이다. 그리고 내면의 사이코 같은 면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Absinthe’. 압생트라는 술을 마셔보지는 않았고 그 느낌만 음악으로 풀었다, 마시면 죽을 수도 있다길래(웃음). 마지막은 딘과 함께 부른 ‘Piss On Me’. 내 곡은 아니고 투트리플엑스(2xxx!)라는 형의 앨범에 실린 곡이다. 곡의 분위기는 전혀 무겁지 않은데 가사에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앞으로 계속 유지하고 싶은 태도가 있다면 뭔가? 거짓된 경험은 곡으로 풀지 말자는 것. 여태 늘 그래왔다. 내가 겪고 생각하고 느끼는 점들에 대해서만 가사로 쓴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갈 것이다. 그 외에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음악과 사람이 모두 멋있다고 느끼는 대상이 요즘 있나? 최근 발견했다, 그런 사람. 영비가 그렇다. 이번에 <쇼미더머니>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그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사람이 좋더라. 생각하는 것도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데다 음악까지 잘하다니. 볼 때마다 레벨업된 모습을 보여준다.
<LIME>과 <ordinary.>라는 미니 앨범 두 개와 싱글들 외에는 피처링 경력이 잦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앨범 세 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우선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이야기를 푼 <ordinary.>의 연장선에 해당하는 앨범을 하나 더 만들려고 한다. 또 하나는 그동안 내가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음악을 담은 앨범. 트랩 기반의 다소 센 느낌을 담은 음악이 될 거다. 마지막 하나는 영비와 가볍게 얘기해본 건데… 좋아하는 바가 비슷한 거 같아서 간단하게라도 프로젝트성 음악을 발표하면 어떨까 싶다. 구체적인 상이 있는 건 아니고, 뜻이 통해서 대화 중에 툭 나온 거다.
열세 살 때부터 힙합이라는 걸 하면서 자신감이 없었다는 펀치넬로가 이 길에 들지 않았다면… 유명해진 김에 과거의 누군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고등학생 때 어떤 선생님. 내가 음악 한다니까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더니 아이들 앞에서 비꼬듯이 핀잔 줬지. 대학 안 가면 음악으로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잘 지내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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