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의 인터뷰.
<더블유 코리아>는 창간 이래 서울과 세계 곳곳에서 쟁쟁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14년의 유산이 쌓였고, 이따금 들춰보는 인터뷰 아카이브는 고이 묻어두긴 아까운 언어로 가득하다. 인터뷰의 한 대목이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지만, 여기 다시 꺼내놓은 그들의 말에서 통찰과 재치를, 긍지와 아픔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엿본다.
아멜리 노통브( Amelie Nothomb) 2005년 6월호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쓴다. 출판하는 책이 1년에 한 권이지, 실제로 쓰는 건 네 권이다. 나는 37세이고, 지금 쓰고 있는 책이 내가 쓰는 54번째 책이다. 그 글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확실히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노동보다 고되다. 그러나 글을 쓰지 않는 것은 그보다도 고통스럽다. 그 래서 쓴다. 나를 움직이는 힘은 내가 직면하는 인생의 고난이다. 고난은 내게 그것 을 극복하려는 에너지를 주고, 나는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매일 글을 쓴다. ”
모든 저서를 자신이 출산한 아기에 비유하는 이 동물적 인상의 소설가는 스스로를 요약하는 한 단어로 ‘허기’를 꼽았다. 세상 모든 것, 특히 사랑에 관해 허기를 느낀다고.
이영애 2005년 7월호
“예전에는 어쩌다 한 대 맞으면 즉각적으로 ‘아’ 하고 반응했다면 지금은 한 템포 쉬고 반응한다. 나를 절제한다. 내 장점이자 단점은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깊은 생각, 자기 절제는 필요하다. 뿌리가 단단하지 못하면 아무 바람에나 쓰러질 수밖에 없는 곳이 연예계다.”
<친절한 금자씨> 개봉을 앞두고 이영애가 5년 만에 심층 인터뷰를 했다. 한도 끝도 없는 명성에 욕심부리기보다 조용히 살고 싶으며 결혼은 꼭 할 거라는 말부터 과거 한 광고대행사가 만든 ‘X-파일’과 루머에 대한 생각까지, 진짜 이영애를 엿볼 수 있었다.
최영미 2005년 8월호
“나는 내 노래를 부르다 가면 그뿐… 나는 내가 나를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그래서 평단과도 거리를 두고 지낸다. 내게 손해될 줄 알면서도. (중략) 첫 소설 <흉터와 무늬>를 쓰며 나는 비로소 나와 화해했다. 나는 내 인생을 비로소 개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사생활이라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번 소설은 내 인생을 걸고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시도했던 모험이며 숙제였다. ”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 단 한 번도 서면 인터뷰라는 형식을 수용해본 적 없는10 년 차 에디터와 ‘인터뷰는 서면으로’라는 원칙을 가진 최영미가 서로 절충안을 내어, 일부는 서면으로, 또 일부는 직접 만나 한 인터뷰로 기사가 구성됐다.
천운영 2005년 8월호
“예전에 천운영은 남자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평론가가 있었다. 내 사진이 실린 책이 출판되기 전의 일이었고, 작품집에 한 편씩 실리는 소설에 첨부된 작은 사진은 쉬 흘려버린 모양이다. 그러던 중 어느 자리에서 그와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천운영이라고 했더니 말 그대로 기겁을 하는 거였다. (중략) 내 소설의 여주인공들이 대체로 추한 외모를 갖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페미니즘을 논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내 글이야말로 완고한 가부장제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도 한다. 생각은 그 사람들 자유다. 그러나 소설을 굳이 여성 소설, 여성 작가의 소설, 이렇게 분류해야 하나? 여성 작가가 아닌, 그저 작가로서의 글이어야 하고, 그렇게 평가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천운영은 여성지와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입맛 당기는 말만 횟감 손질하듯 떠내 기사로 진열했던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 경험 때문이었다. <더블유>가 여성지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천운영은 인터뷰를 승낙했고, 뜨거운 언어의 소유자인 이 소설가와의 인터뷰는 지금 지면에 고스란히 되살리고 싶을 정도다.
김희선 2005년 12월호
“거의 10년 만에 하는 인터뷰다. 데뷔 이래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항상 나의 진심이 곡해되는 경우에 당하곤 했다. 워낙 솔직한 성격이어서 솔직히 대답하다 보면 기자는 나름대로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만 써버리는 나쁜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인터뷰에 대한 피해 의식이 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항상 손해보고 당한 기분이 든다.”
김희선은 당시 서면 인터뷰를 고집했고, 그 이유가 이 대목에 나와 있다. 그러나 2018년경 <더블유>와 호탕하게 인터뷰한 김희선을 보면 그간의 세월과 변화가 실감난다.
디타 본 티즈( Dita Von Teese) 2007년 5월호
“중요한 건 내가 정말 원하는 스타일대로, 나를 가장 나답게 꾸미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해도 내 취향이 아니라면 소용없다. 내 취향을 정확하게 찾고,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Mac의 에이즈 캠페인을 위해 내한한 모델 디타 본 티즈는 헤어 메이크업과 의상을 완벽하게 갖추고 무대에 설 때, 자신이 예술품이 된 듯 자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노메이크업 상태에서도 너무나 디타 본 티즈 자체였다.
장한나 2007년8월호
“이건 직업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음악가로 사는 거예요.”
첼리스트이자 지휘자 장한나는 ‘연주자의 하루 24시간은 통째로 음악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음악이 인생 자체이기 때문에 개인과 음악인으로서의 생활을 분리할 수 없다고. 배우들이 ‘마냥 화려해 보이는 이 일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하는 것과 비교된다.
이나영 2009년 11월호
전형적인 여배우는 그럼 뭔가? 진짜 전형적인 여배우가 있긴 하나? ‘여배우’라는 말의 뉘앙스가 웃긴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농담의 소재로 종종 사용하기도 한다. 트레이닝복 입고, 커다란 배낭 메고 다니긴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한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차원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요즘은 아닌 것 같은데, 아직도 내가 사차원인가?”
에디터가 이나영에게 전형적인 여배우와 다르다고 하자 대뜸 이나영이 그 말을 받아 되물었다. 그러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도, 작품에서 엿보이는 감성은 메이저나 오버그라운드의 것이 아닌 그에게서 발견되는 의외성이 모두 오해는 아닐 것이다.
보아 2010년 9월호
“연예인이란 직업은 매 순간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직업인 것 같다. 미국에 가서도 일본에 있을 때도 한국에 있을 때도 늘 외롭다. 그 외로운 일을 오래해왔다. 일이 좋아서 하는 것 같다. 사실 세상에 안 힘들고 안 어려운 직업이 있을까? 그것을 즐기느냐 안 즐기느냐의 차이다. 즐기지 못했다면 이렇게 길게 못 했을 거다.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나는 복 받은 거다. 내 일을 통해 모든 사람이 만족하고 나 자신도 행복을 느끼니까. 그런 거 다 생각해보면 외로움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데뷔 10주년의 이 프로페셔널이 외로움에 관해 한 말은 모든 연예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정석의 결론 같다.
강수연 2011년 4월호
“어릴 때는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됐어’ 그랬어요. 마흔 될 때까지는 절대 안 한다고. 그때는 나이 먹을수록 기회가 없어지는 걸 상상도 못 한 거지. 멋 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이 맞는 거 같아. 점점 생각도 많아지고 눈에 보이는 것도 많아져서 힘들어지니까. 이제는 결혼도 하고 싶은데 너무 늦게 그 생각을 한 거야, 신경질 나… 이럴 줄 알았으면 오랜 애인이라도 하나 둘 걸 그랬나봐(웃음). 이렇게 시행착오가 많아, 산다는 게. 친구도 많고, 좋아하긴 하지만 그거로는 안 채워지는 절대적인 빈 공간이 있어. 혼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사람의 감성이 드라이해져요. 그건 정말 경계해야 할 부분이거든.”
강수연은 일과 영화, 사랑과 삶에 대해 여러 키워드의 이야기를 했지만 결혼에 관해 말한 이 대목이 유독 ‘쿨한 언니의 솔직한 조언’처럼 느껴진다. 깊이나 내면의 표현은 어린 나이엔 나올 수가 없기에 배우라면 늙어야 한다고 말하던 강수연이다.
공효진 2011년 3월호
“전 운명론자예요. 작품이 실패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해요. 굉장히 긍정적인 편이에요. 타고난 성격인 것 같아요. 공부 잘하고 싶어서 한때는 열심히 해봤고, 피아노부터 시작해서 뭘 많이도 배웠어요. 그런데 끝까지 파고드는 지구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여기까지 했으니까 된 거야, 이렇게 포기가 빠른 편이에요. 그런데 연기는 예외예요. 지구력이라기보다는 정신력이 강하지 않나 싶어요. 그게 체력으로 나타나니까 다들 놀라요. 촬영할 때는 엄살을 못 떨겠고 스스로 정신이 안 놓아져요.”
<더블유>가 초대한 네 명의 게스트 에디터가 각자 만나고 싶은 셀렙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후, 저마다 잘하는 형식으로 그 결과물을 선보였다. 공효진을 김종관 감독이 만났다. 감독은 공효진의 인상적인 말들을 추려, 공효진의 클로즈업이 흐르는 짧은 영상을 완성했다.
이자벨 위페르( Isabelle Huppert) 2011년 7월호
“카메라 앞에서 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의 진실성을 늘 염두에 두고 조심하면 서 생각한다. 늘 진실된 것을 카메라 앞에서 표현하고 표현되도록 하기 위해서 신경 쓴다. 연기에 있어서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연기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 한 가지를 묻자 그가 말했다.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서늘하고 예리한 자상을 입히는 이 배우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자벨 위페르 : 위대한 그녀> 사진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요시모토 바나나( Yoshimoto Banana) 2012년 6월호
“내가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을 깊게 들여다볼수록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일로도 사람이 죽어버릴 수 있구나, 새삼 깨닫고 충격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정도로 약한 인간이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자주 떠올린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는 걸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결국 내 소설은 삶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나기 전, 에디터와 모든 스태프는 멸균실의 연구원들처럼 마스크를 써야 했다. 심한 독감에서 간신히 회복 중인 바나나가 이웃 나라에서 온 손님들에게 혹여 바이러스를 옮기진 않을까 염려해서다.
김수자 2012년 10월호
“우리 몸이 보따리다. 이 작업을 해오면서 결국 우리 몸이 가장 복잡한 보따리다, 라는 인식을 가졌다. 처음에 내가 주목한 것은 보따리의 형식이었다. 이불보, 즉 2차원적 평면인 캔버스를 가지고 매듭을 묶으면 3차원적인 조각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안에 내가 썼던 헝겊 조각을 넣어서 좀 더 미적인 추구를 했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보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여성의 정체성, 서구 사회에서 의 한국과 한국 여성에 대한 인식, 위치 같은 것에 눈을 돌리게 된 거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보따리가 갖는 형식적 측면뿐 아닌 리얼리티를 더 생각하게 됐다. 단순히 아름다운 오브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그대로 담는 그릇으로 다루게 되었다고 할까. 그때부터 보따리 안에다 색색의 조각 천을 넣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헌 옷을 넣게 됐다.”
‘보따리 작가’ 김수자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작업하는 자신의 삶 또한 보따리로 비유한다. 무언가를 이고 진 채 유랑하듯 사는 우리 삶에 대한 은유와 매듭을 통해 2차원에서 3차원 조각이 되는 이불보의 형태적 특성이 만나,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이 완성됐다.
패티 스미스( Patti Smith) 2013년 2월호
“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예술을 창조하겠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걸 감수하고 늘 긍정적이어야 했다. 물질적인 것은 포기했으며 꿈에만 초점을 맞췄다. 쉽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갖고 있는 것 대신 선한 행동과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겨라. 당신의 휴대전화는 당신이 아니다. 정신과 마음, 그게 바로 당신이다.”
누구보다 뜨거운 젊음을 누린 이 뮤지션에게,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청춘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 피처 에디터
- 권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