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수장이 바뀌면 가장 먼저 가방이 바뀐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뀌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가방도 바뀌었다.
‘다니엘 리’는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가방 이야기는 잠깐 접어두고, 옷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그가 만든 보테가 베네타를 처음 본 건 2019 스프링 컬렉션이었다. 그의 컬렉션 중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건 디자인도, 색도 아니고 바로 ‘길이’였다. 무릎을 아슬아슬하게 살짝 넘는 스커트와 쇼츠의 길이. 개인적으로 옷을 만들 때 어디에서 끊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 각하는 사람으로서, 0.5cm의 차이 안에서 모던함과 올드함의 운명이 갈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잘라낸 팬츠와 스커트의 길이는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함 그 자체였다. 가방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길이’로 나를 매혹시킨 다니엘 리의 가방을 실제로 보았을 때, 놀랍게도 룩을 보며 ‘길이’에서 느낀 그 감정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었다.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백, 맥시 까바(The Maxi Cabat)는 오버사이즈 백으로 가로 46cm, 세로 68cm의 크기다. 일반적인 체구의 여성이 어깨에 걸치면 상체를 가릴 만한 크기의 백이라고 생각하면 가늠하기 쉽겠다. 빅 백의 포인트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과감한 크기임을 잘 아는 세련된 눈을 가진 사람이 분명했다. 브랜드의 상징이자 유산인 인트레치아토 장식이 전면에 들어간 형태는 묵묵히 클래식을 드러내고, 압도적인 가방의 크기는 모던함을 말하는 매력적인 백이다.
두 번째 백 파우치(The Pouch)는 가장자리에 부드러운 주름이 잡혀있는 둥근 모양의 클러치다. 무심하게 집어들 수 있는 얼핏 만두처럼 생긴 이 클러치는 ‘팝’한 컬러의 선택이 무척이나 과감하게 느껴진다. 고가의 악어가죽 클러치에 핫 핑크색을 과감하게 대한 것도, 유서 깊은 브랜드에서 쉽게 쓰지 않는 눈이 시린 연두색 클러치도 신선했다. 심지어 이 백의 작은 버전인 미니 사이즈 파우치 20은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 이 지점에서도 앞서 말한 ‘길이’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이보다 조금만 더 크거나 작았으면, 덜 매력적이었을 테고, 덜 모던했을 테니 말이다. 보테가 베네타의 비범함을 유난스럽지 않게 품은 이 두 종류의 뉴 백이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크기가 유난스럽게 커도, 컬러가 ‘팝팝’ 튀어도 전혀 요란스럽지 않으며, 심지어 차분하고 묵묵하게만 느껴지는 이 미스터리한 감정. 대체 뭘까?
- 패션 에디터
- 김신
- 포토그래퍼
- 김지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