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브리즈번에 가면 뭐가 있지?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고, 바다를 시내에 그대로 옮겨놓은 인공 해변이 있고, 이 도시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장소인 W 호텔도 있고.
브리즈번은 시드니와 멜버른에 이어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수도 캔버라와 시드니가 호주 동남쪽에, 브리즈번은 퀸즐랜드의 주도로 정확히 호주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누군가는 브리즈번이라고 하면 유학과 어학연수를 떠올릴 것이다. 시드니보다 물가 저렴한 도시를 찾아 뻗어나간 한국인의 저력 때문인지, 한국엔 항공사 한 군데에서 운영하는 브리즈번 직항이 일찍부터 있었다. 이곳은 시드니에 비하면야 심심한 도시다. 심심함의 다른 말은 여유로움쯤 될까? ‘호주 제3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압도적인 크기의 시드니에 비하면 아담한 수준인 브리즈번에서는(그래도 서울보다 아홉 배나 크다) 여행으로 며칠 머무는 것보다 차라리 몇 달 살아보는 쪽을 택하고 싶다. ‘선샤인 스테이트’로 불리는 퀸즐랜드의 태양 아래, 광활한 한강보다 폭이 좁아 경외감 대신 친근감이 드는 브리즈번 강변의 문화를 즐기고, 어느 얌전한 도시에든 반드시 존재하는 흥미로운 장소를 종종 찾아내며 유유자적 살 수 있다면.
브리즈번강을 코앞에 둔 자리에 문을 연 W 호텔은 단 며칠이나마 머물러본 이 도시에서 가장 활력이 느껴진 장소다. 파티와 이벤트가 있을 때는 인파로 북적이고, 그 안을 채우는 사람 수가 많지 않을 때는 공간의 생기가 사람을 심심하지 않게 달랜다. 직항으로도 10시간은 걸리는 먼 호주의 도시에서 문득 서울을 떠올린 이유는 지난해 사라진 광장동의 W 호텔이 떠올라서다. 호텔에는 자거나 먹기 위해서만 들르던 이도 트렌디한 디제이 공연과 우바에서 열리는 파티로 이끌던 그곳이 새삼 아쉽다. 호주에서 현재 W 호텔이 시드니도, 그 어느 곳도 아닌, 브리즈번에만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브리즈번에 관해 구글링으로 발견한 의외의 정보 하나. 지난 1년 동안 호주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 유일한 도시가 바로 브리즈번이라고 한다. 이유는 시드니 같은 대도시와 달리 성장 잠재력이 높은 도시라는 점 때문. 럭셔리 호텔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브리즈번에 W 호텔이 착륙한 우연을 거기서 찾아도 될까?
W 호텔 브리즈번은 과거 W 호텔 서울보다 디자인 면에서 젊고 발랄하다. 우선 강렬한 원색과 형광색이 호텔 전체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서울에 ‘우바’가 있었다면, 이곳 1층에서는 낮에는 애프터눈 티, 밤에는 술을 즐길 수 있는 ‘리빙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객실에는 호주 원주민이 사냥 무기로 사용하던 부메랑 모양을 본뜬 테이블과 디자인 가구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믹스바가 있고, 나무로 만든 대형 새장이 객실에 안착한 듯한 옷장과 드럼통에서 영감을 받은 욕조가 농담처럼 재치를 더한다. 호텔 곳곳에 보이는 크고 작은 파인애플 모형, 새와 꽃 패턴은 아열대 기후인 지역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풀’ 대신 ‘웻 데크(Wet Deck)’라는 명칭을 가진 수영장은 기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널찍한 그래픽과 색감으로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업되는데, 밤이면 디제이 부스가 가동하는 풀사이드 라운지로 변신한다. W 호텔 브리즈번에서 객실을 포함한 호텔 전체에 중요한 요소로 반영된 것은 바로 브리즈번강이다. 브리즈번을 가로지르는 강은 그 모양이 아주 구불구불해서 ‘스네이크 리버’라고도 한다. 로비의 철판 벽을 비롯해 곳곳에 펼쳐진 유려한 곡선, 복도에 깔린 카펫과 여러 벽에 형상화된 물방울 때문에 이 호텔이 강의 기운을 등에 업고 건축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W 호텔 맞은편, 그러니까 다리로 강을 건너면 사우스뱅크라는 동네다. 브리즈번 여행자라면 사우스뱅크는 꼭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근은 관광지를 방문하는 이방인보다는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는 도시 주민의 모드로 찾을 때 더 어울릴 곳이다. 강변을 따라 레스토랑 건물과 야자수가 늘어선 공원 길이 있고, 이질적이게도 사원과 대학교 건물까지 있는데, 걷다 보면 제법 널찍한 인공 해변이 펼쳐진다. 실제 해변의 고운 모래를 퍼 와 화이트 샌드 비치로 조성한 이 인공 해변은 ‘스트리트 비치’다. 시민 공원에 마련된 작은 해변은 브리즈번강과 나란히 위치하는 셈인데, 강 건너에 늘어선 고층 빌딩가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해서 도시 속의 해변 느낌이 한껏 난다. 그곳을 지나면 W 호텔 객실 전망으로도 보이는 회전관람차 ‘휠 오브 브리즈번’, 각종 장르의 공연 포스터가 도열한 퀸즐랜드 퍼포밍 아트 센터(QPAC)와 퀸즐랜드 시어터 컴퍼니에 이른다. 한국으로 치면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 옆에 작은 해변이 자리한 상황이니 사우스뱅크는 이국적인 동네다.
여행자 중에는 호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해변 도시, 골드코스트로 가는 김에 그곳과 차로 약 1시간 반 거리인 브리즈번에 하루 정도 머무는 경우도 있다. 골드코스트가 시와 시로 이뤄진 거대 휴양지라면, 브리즈번 시내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모턴(Moreton)섬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모래섬이다. 이 긴 섬에 하나 있는 리조트인 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에서 몇 년 전 예능 <런닝맨> 촬영도 진행됐다. 리조트에는 밤마다 돌고래 무리가 찾아온다. 30여 년 전 리조트 오너와 직원들이 우연히 발견한 암컷 돌고래에게 먹이를 준 이후, 새끼를 낳은 그 돌고래가 자식과 ‘크루’를 대동하고 규칙적으로 리조트를 찾았다고. 이제 돌고래 무리는 리조트 측에서 ‘돌고래 먹이 주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는다. 돌고래들은 나름 셀렙이라 신선한 생선만 받아 먹고 금방 사라지는 편이다. 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 근처에는 난파선 구역(Tangalooma Wrecks)도 있다. 수십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는 난파선들 사이로 누구는 스노클링을 하고, 누구는 난파선에 올라가 다이빙을 한다. 다소 기괴하고도 애처로운 바닷가의 풍경이지만, 특별한 해변임에는 틀림없다. 브리즈번이 시드니보다 심심하다고 했던가? 이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굵고 짧은 관광지 투어보다는 잔잔하게 도시의 공기에 동화되는 쪽의 여행이 어울리겠다. 얌전하고 단정한 인상을 가진 상대는 알아갈수록 의외의 얼굴을 보이는 법이니까.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RALF TOO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