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 별로 즐기는 여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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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시체스, 영국 세븐시스터스, 이탈리아 포지타노, 한국 양양

스페인 시체스 – 정준화(<W Korea> 피처 에디터) 

바르셀로나에서 며칠을 보낼 계획이라면 하루, 혹은 반나절 정도를 투자해 근교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시체스에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서 열차로 30~40분만 달리면 청량하게 시야를 씻어주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여름이 되면 시체스의 해변은 그을린 몸을 당당하게 드러낸 여행객들로 북적거리곤 한다.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적절한 곳부터 누드 비치, 게이 비치까지 성격에 따라 무려 17개 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으니 누구든 취향과 목적에 맞는 바다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도시가 비교적 한산해지는 가을에 방문을 했는데, 그 고즈넉한 풍경에도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시체스는 길고양이의 천국이기도 하다. 거리뿐만 아니라 해변에서도 여러 마리를 목격할 수 있었는데 낯선 이방인 앞에서도 크게 경계하는 기색이 없다. 굳이 사람을 겁낼 필요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곳곳에 자리 잡은 박물관을 찾아 다니는 것도 시체스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마리셀 뮤지엄, 카우페라트 뮤지엄, 로맨틱 뮤지엄 등 이 대표적. 통합 홈페이지에서 관련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가을이 되면 시체스에 가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난다. 매년 10월 초 SF, 호러, 스릴러 등의 장르물에 집중하는 시체스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휴양지의 오래된 극장에서 낯설고 과감한 상상력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올해 일정은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영국 세븐시스터스 – 목정욱(사진가) 

런던에서 지낼 무렵 가끔씩 서부 해안에 자리한 웅장한 백악질 절벽인 세븐시스터스를 찾곤 했다. 일곱 개의 높은 봉우리가 자매처럼 사이 좋게 늘어서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던가. 어쨌든 검은 자갈로 뒤덮인 해변과 하얀 절벽의 대비는 꽤나 기이하고 강렬하다. 하루를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풍경이다.

런던에서 세븐시스터스까지 가는 방법은 이렇다. 일단 빅토리아 역에서 브라이튼 혹은 이스트본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그리고 버스로 환승을 하면 되는데 브라이튼에서는 1시간, 이스트본에서는 15분이 소요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하차한 뒤 벌링갭 로드를 따라 도보로 한참 초원을 가로질러야 바다에 닿을 수 있다. 물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하는 산책은 수고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 있는 한여름에도, 몸을 제대로 못 가눌 정도의 시린 겨울에도, 언제나 이곳에는 기이한 고요가 감돈다. 먹먹한 심정을 부추기기도 하고, 개운한 기분이 들게도 하는 엄청난 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거나 그냥 누워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 번쯤 혼자 가볼 것을 권한다.

세븐시스터스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영화로는 조 라이트의 <어톤먼트>가 있다.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비(제임스 맥어보이)가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바로 이곳 해변이다.

이탈리아 포지타노 – 김준용(네이버 라인 디자이너)

포지타노는 아말피 해변의 절벽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리스에 산토리니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포지타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기대 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찾았던 이곳은 내가 다녀본 그 어느 여행지보다 큰 영감을 주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들과 이태리 남부 특유의 색감과 문양은 지나치게 상업화된 관광도시의 풍경들과는 전혀 다른 여행의 기쁨을 안겨준다.

차가 다니는 대로에서 해변까지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길은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그래도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 갑작스레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면 짜릿 하기까지 하다.

베스파 한 대를 빌려서 아말피 해변과 포지타노 길을 누비고 싶은가? 일단 냉정하게 자신의 운전 실력을 따져봐야 한다. 가파르고 좁은 일 차선 도로이고 급커브가 많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행복한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요즘 인기가 높은 에어비앤비로는 포지타노에서 숙소를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이 호텔이고 저렴하지도 않다. 그런데 돈을 아끼려다가 산 쪽에 위치한 숙소를 예약하면 해변과의 거리가 상당해지고, 포지타노에서 꼭 만끽해야 하는 아름다운 뷰를 놓칠 수 있으니 참고할 것.

포지타노의 해변은 크게 둘로 나뉜다. 바다를 바라본 상태에서 좌측은 경치가 탁 트여서 대체로 사람이 북적댄다. 반대로 우측의 해변은 입구가 좁고 해변도 협소하기 때문에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나는 단연 후자를 추천한다. 겨우 20~30미터 거리 차이가 날 뿐인데 샤워, 음식, 선베드 등을 절반 가격으로 누릴 수 있는 데다 훨씬 조용하고 여유로운 편이다.

포지타노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 버스와 페리가 있다. 버스를 택할 경우 아찔한 해안 절벽을 스릴 넘치게 감상하려면 반드시 우측 좌석에 앉아야 한다. 자리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나름 치열하니 탑승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것.

유명한 포지타노의 레몬으로 만든 슬러시를 하나 사들고 페리를 타는 것도 이곳에서 꼭 해봐야 할 경험.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는 배 위의 선베드에 누워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있으면 일정을 며칠 더 연장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한국 양양 – 신규철(사진가) 

해운대의 엄청난 인파에 질색한 경험이 있다면 강원도 양양의 동호 해수욕장을 대안으로 삼아도 괜찮겠다. 혼자, 혹은 연인끼리 찾아가면 막막하게 푸른 바다를 전세라도 낸 듯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나 역시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간이의자를 하나 들고 찾아가 해변에서 한참 음악을 듣거나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 뒤 돌아 오곤 한다.

특히 좋아하는 경치 하나. 양양공항 뒷길에서 동호 해수욕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차량도 거의 다니지 않아 한적하다. 여기서 보는 바다가 정말 근사해서 혼자 구경하기 아까울 정도.

해변의 경치와 바닷바람을 실컷 즐기다 출출해지면 지역 맛집으로 꼽히는 오산횟집으로 향한다. 막장을 푼 뒤 섭과 미나리, 계란 등을 풀어서 끓인 섭국의 감칠맛이 특별하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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