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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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조우하게 된 것, 혹은 낯선 신선함으로 무장한 것. 이번 시즌 스타일링의 관건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균형 잡힌 선택의 연속이다.

다시 내게로

뉴밀레니엄 이후 패션계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실루엣이나 아이템은 없다’는 명제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하이패션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기존에 있는 것들을 재조합, 해석하여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디자이너와 함께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진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히피 트렌드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번 시즌은 잊혀진 과거의 스타일이 다시 재조명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먼저 솔리드 컬러 팬츠 수트가 돌아왔다. 무릎에서부터 퍼지는 벨보텀 팬츠나 와이드 팬츠, 여기에 같은 색의 재킷을 입는 스타일인데 발맹과 에밀리오 푸치, 구찌, 막스마라 등에서 멋스러운 컬러 수트를 발견할 수 있다. 상하의가 같은 색으로 워싱된 데님 룩, 소위 ‘청청 패션’은 끌로에와 펜디, 스텔라 매카트니 등에서 제안했고, 하늘거리는 실크 소재에 강렬한 프린트를 여러 가지 섞은 맥시 드레스를 레이어링 없이 하나만 입는 ‘스카프 드레스’ 스타일링은 살바토레 페라가모, 로베르토 카발리, 지암바티스타 발리와 데렉 램 등 70년대를 테마로 한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타일 전체를 꾸미는 것이 과하게 느껴진다면 특정 아이템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켜볼 것. 생로랑의 프티 스카프와 플랫폼 슈즈, 소니아 리키엘의 마이크로 미니 쇼츠는 특정한 아이템만으로도 스타일 전체를 좌우하는 키 포인트로 활용되고 있다.

미지의 세계로

분명히 트렌드를 따르고 있지만, 무대에 올라온 결과물 자체가 특정 시대의 복사판처럼 보이지 않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경우, 우리는 디자이너의 모던한 선견지명에 즐거운 감탄을 하게 된다. 특히 이번 시즌은 70년대와 90년대의 레트로 테마가 큰 흐름을 이끈 가운데 새로운 스타일링으로 해법을 찾아낸 디자이너가 많았다. 군대 전용의 카키색 소재로 볼륨감 넘치는 이브닝 룩을 만든 마크 제이콥스, 펜슬 스커트와 사파리 점퍼 같은 이질적인 아이템을 섞어 쿨 아미 룩을 만든 사카이, 유니폼 재킷과 중세 장식을 뒤섞은 NO. 21 등은 시즌의 주요 테마인 밀리터리 룩을 전에 없던 스타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예다.

유도복 팬츠와 끈으로 클린 룩을 만든 마르니, 이와 비슷하지만 원색의 가죽을 섞어 신선한 구조주의를 선사한 로에베, 사이클 쇼츠에 드레시한 롱 코트를 덧입힌 발렌시아가, 레이서 탱크와 스커트를 붙여 레이디라이크 룩으로 변모시킨 알렉산더 왕, 프로엔자 스쿨러, 겐조, 캘빈 클라인은 모두 스포티즘을 하이패션으로 승화시킨 케이스. 마지막으로 70년대 히피 무드를 보머 재킷이나 배기팬츠와 같은 스트리트 아이템에 접목시킨 드리스 반 노튼, 오리엔탈리즘을 대표하는 자수와 펀칭 등과 같은 기술을 긴 슬랙스와 바 재킷 같은 전형적인 서양 아이템과 뒤섞어 시대와 장소가 모호한 룩을 만든 디올과 셀린의 작품은 왜 현대 패션의 패권이 이들의 손에 쥐어졌는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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