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재즈페스티벌의 촘촘한 라인업 사이에서 어떤 무대를 봐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을 위해 이정표를 세웠다.10명의 필자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11개의 공연이 여기 있다.
5월 23일 (토)
칙 코리아 + 허비 행콕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은 내한 뮤지션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여놨다는 점이다. 바우터 하멜과 제프 버넷은 이제 동네에서 가끔 공연하는 인디 뮤지션처럼 느껴지고, 미카마저 점점 익숙해졌다. 페퍼톤즈야 공교롭게도 가는 페스티벌마다 본 것 같고, 그레고리 포터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섭외력으로 봤을 때 역시 익숙해질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이 페스티벌이라고 해도 칙 코리아와 허비 행콕의 합동 공연을 매년 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거장들의 전설의 명곡, 환상적인 연주 같은 건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냥 분위기 좋게 환호하며 즐기기에는 난해한 곡을 꽤 연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우터 하멜과 제프 버넷과 미카와 그레고리 포터를 보고 나서 이분들을 보는 거다. 이런 경험이 평생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나? – 강명석 ( 편집장)
더티룹스
나는 이번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완전 핫한 새로운 슈퍼스타의 반짝거림도 보고 싶고, 현란한 연주 실력에 혀를 내두르며 “이런 XX! 야 이 미친놈들아!” 하고 욕도 하고 싶고(이상하게 너무 잘 하는 걸 보면 욕이 나온다), 재즈의 장르적인 어법이 21세기에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고, 죽이는 비트와 사운드에 몸을 맡긴 채 락페 못지않게 미친 척 춤도 추고 싶고, 심지어 다들 알 만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나게 놀고 싶은데 놀랍게도 한 밴드의 공연에서 이 모든 것이 다 충족될 것 같다. 스웨덴 출신의 3인조 밴드 더티룹스. 완전 기대된다. 연주 영상 처음 보고 진짜 요실금 걸리는 줄 알았다.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 검색 요망. 얘네 유튜브 스타임. – 윤성현 (KBS Cool FM <심야식당> PD)
카로 에메랄드
네덜란드 뮤지션 카로 에메랄드가 한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2013 <무한도전> 가요제’ 덕분이었다. 박명수와 짝을 이룬 뮤지션의 곡이 카로 에메랄드 2집 수록곡 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일면서, 카로 에메랄드는 한순간 인터넷 연예 기사와 SNS를 도배하며 ‘한국에서 가장 핫한 유럽 뮤지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훨씬 전부터 유럽을 사로잡고 있었다. 2010년 발표한 데뷔 앨범인 는 무려 30주간이나 네덜란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웠고, 2집 《The Shocking Miss Emerald》는 영국 차트 1위에 올라 화제가 되었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한 사운드는 <무한도전> 가요제로만 그녀를 알고 있던 한국 음악 팬들에게 레트로 스타일 일렉트로 스윙 재즈의 화려한 매력을 유감없이 선보일 것이다. – 류진현 (C&L뮤직 제너럴 매니저)
막시밀리언 헤커
드라마 OST 때문에 한 가수의 팬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은 왠지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흘러 나오던 ‘I’ll be a virgin, I’ll be a mountain’을 듣고 막시밀리언 해커의 팬이 되었다는 점만큼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막시밀리언 해커를 좋아하는 20대 사람들의 과반수는 분명 나처럼 <커피프린스 1호점>의 애시청자였을 테니까. 무려 2001년에 데뷔한 그의 이름을 드라마가 방송된 2007년에 알게 된 이후, 나는 한동안 mp3 플레이어를 오로지 그의 노래들로 가득 채울 만큼 좋아했었다. 누군가는 그 특유의 음울한 목소리가 싫다고 했지만 나는 마치 긴 한숨들을 모아 멜로디로 만든 것 같은 그 노래들을 사랑했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참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똑같이 어두운 방에서 혼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공연을 앞두고 한 가지 다짐해본다. 이제는 내 고등학교 시절의 OST가 되어버린 곡들을 듣고 청승맞게 울지 않겠다고. –이채린( 피처 에디터)
5월 24일 (일)
베벨 질베르토
흔히 ‘보사노바의 현재’라 불리는 베벨 질베르토의 내한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럼에도 서울재즈페스티벌을 통한 이번 내한이 마치 첫 만남처럼 설레는 건, 그녀가 밟는 무대가 어둡고 제한된 실내 공연장이 아닌 탁 트인 야외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처음 한국을 찾은 2010년, 시기는 막 봄기운이 무르익던 4월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지만 다소 엄숙한 분위기의 공연장과 관객들은 저 먼 브라질에서 날아온 찬란한 태양의 기운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았다. 부드러운 일렉트로닉 보사노바 선율과 5년 만의 새 앨범, 그리고 5월의 공원까지. 마치 거짓말처럼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준비된 기분이다. 보사노바의 아버지 후앙 질베르토의 딸이라거나 그래미상 수상자라는 굴레를 모두 벗어 던진 그녀가 부르는 ‘Chica Chica Boom Chic’이나 ‘Bim Bom’에 맞춰 잔디밭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출 수 있는 호사라니. 상상만으로도 아직 오지도 않은 5월이 그리워진다.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료타 코마츠, 김사월X김해원
모두들 세르지오 멘데스를 영접하러 가거나 미카와 춤추러 갈 때 나는 료타 코마츠를 만나러 갈 거다. 고상지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료타 코마츠는 반도네온의 젊은 거장이다.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좋아한다면 필수이고 혹여나 몰랐다면 이 공연을 본 후 당신은 반도네온의 들숨과 날숨에 깊이 빠지게 될 것이다. 나머지 한 팀은 김사월x김해원(이들의 공연은 5월 25일 월요일이다). 아니 홍대에서 볼 수 있는 팀을 왜 굳이 여기에서 보느냐고 묻는다면 홍대가 아닌 곳에서 꼭 이 팀을 보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하겠다. 작년 한국 대중음악상 신인상에 빛나는 팀. 그 이야기는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보여줄 음악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이런 후광은 필요 없다. 공연을 안 봐도 좋으니 일단 한번 들어보시라. 결정은 당신의 몫이다. – 박정용 (클럽 ‘벨로주’ 대표)
배드플러스
2004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갔다가 처음 접한 더 배드플러스의 음악은, 피아노 트리오 형식의 재즈 음악은 대체로 이런 것이라고 내가 들으며 쌓아왔던 귀납적 개념을 완전히 부셔버렸다. 박력 넘치는 드럼 연주, 파워풀한 베이스, 강렬한 피아노 타건이 빌 에반스를 날려보내고 키스 자렛을 와장창 무너뜨렸다. 재즈의 얼굴을 한 3인조 헤비메탈 밴드 같았다고 할까?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나 반젤리스의 ‘불의 전차’를 리메이크한 연주는 라디오헤드 음악을 재해석한 브래드 멜다우 못지않게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 젊고 유연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지난 해 새로 나온 앨범을 들어보니 10 년 사이에 그 날뛰던 혈기가 적절히 성숙하고 노련해진 듯해서 다시 만날 그들의 공연에 설렌다. 한편으로는 그때의 배드플러스처럼, 이번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또 다른 몰랐던 팀의 공연이 내 음악적 편견을 깨주기를 기대하면서. – 황선우( 피처 디렉터)
5월 25일
그레고리 포터
그레고리 포터의 목소리는 묵직하다. 그의 몸집만큼이나 말이다. 악기로 치면 더블베이스쯤 되지 않을까? ‘Hey Laura’나 ‘Wolfcry’ 같은 대표곡을 들으며 ‘저음의 보컬이 주는 감동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서울재즈페스티벌 라인업엔 트리오부터 빅밴드까지 다양한 조합의 밴드가 이름을 올렸다. 그 사이에서 보컬 재즈의 힘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그레고리 포터의 공연이 제격일 것이다. 특히, 아직은 재즈가 낯선, 그러나 재즈가 궁금한 관객들에게도 좋은 기회다. 일부 곡들은 팝적인 요소가 많아서 처음 들을 때부터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그레고리 포터가 궁금해졌다면, 그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준 앨범을 공연 전에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 김관 (‘jtbc’ 사회부 기자)
호세 제임스
호세 제임스가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첫 앨범 . 첫 곡인 ‘It’s All Over Your Body’의 드럼 소리가 나오는 순간 이 앨범을 좋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독특한 그루브와 공간감. 재즈 명가 블루노트에서 앨범이 나왔다 해도 이것을 온전히 재즈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호세 제임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재즈를 기본으로 깔되 여기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제대로 펼쳐놓는다. 솔과 록 같은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로킹하거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고, 최근에 낸 빌리 홀리데이 헌정 앨범에선 정갈한 피아노 트리오와 함께한다. 무대 위에서 이 다양한 스타일과 정서와 무드를 한 번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독특한 그루브의 연주와 매력적인 보컬이 이끄는 대로. – 김학선(대중음악 평론가)
카디건스
1990년대 이후의 음악 가운데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00곡’류의 리스트를 추린다면 카디건스의 ‘Lovefool’이 반드시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MTV풍으로 재해석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 삽입되면서 널리 알려진 이 곡은 그 무렵의 삐삐 인사말과 싸이월드 배경음악을 단숨에 평정할 정도로 즉각적인 인기를 누렸다. 왕년의 로미오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잭 니컬슨을 닮은 슈퍼모델 수집가로 환골탈태할 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니나 페르손의 사각거리는 보컬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카디건스를 ‘Lovefool’로만 기억하는 건 다소 섭섭한 일이다. 섬세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데뷔 앨범의 수록곡 ‘In The Afternoon’이나 블랙사바스를 몽롱하게 커버한 ‘Iron Man’은 다시 들어도 썩 세련된 느낌이다. 소문이 자자한 라이브 실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정준화( 피처 에디터)
- 에디터
-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