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샤넬이라는 여인의 일대기이자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방대한 아카이브, 그리고 패션이 20세기 문화와 어떻게 교류하며 자양분을 얻어왔는지를 목격하게 해주는 장. 10월 5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컬쳐 샤넬- 장소의 정신> 전시 얘기다.
삶을 흔히 여행에 비유하지만, 가브리엘 샤넬에게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그 여행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단선적인 행로가 아니라 여기에서 저기로, 또 다른 곳으로 끝없이 움직이며 영감을 흡수한 다음 그것들이 자신을 통과해 무언가로 맺히게 만드는, 창조의 여정이었다. 이 매력적인 방랑자의 영혼이 머물렀던 10개의 장소를 들여다보고 시퀀스들을 연결할 때 비로소 샤넬의 ‘정신’은 별자리처럼 이어져 빛을 낸다. <컬쳐 샤넬- 장소의 정신> 전시는 방대한 물량의 의상과 사진, 그림과 스케치, 사료 아카이브 속에 관객들을 사로잡아 시공간을 뛰어넘게 만든다. 출발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밀밭. 시골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샤넬은 땅과 성실한 노동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캉봉가 아파트 곳곳에 꽃 대신 밀다발을 꽂아둘 만큼 풍요로움과 번영의 상징인 밀을 사랑했던 애착은 밀이삭 자수가 들어간 블랙 오간자 드레스, 밀 모티프를 금실로 수놓은 레이스 드레스 등으로 나타난다. 이후 그녀가 자란 나의 책상을 공개합니다 제이크루(J.Crew)의 프레지던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45세의 제나 라이온스(Jenna Lyons)는 동시대 쿨한 여성을 상징한다. 그녀는 뉴욕에 위치한 오피스에서 디자인과 매장 인테리어, 마케팅 캠페인부터 다른 브랜드, 아티스트, 조향사(제이크루는 이달에 처음으로 향수를 출시할 예정이다) 등과의 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감독한다. photo by FLOTO & WARNER 오바진의 고아원에서는 흑백의 금욕적인 수녀복, 십자가를 비롯한 성당 전례용품, 아치를 사용한 수도원의 건축 양식 같은 것들이 샤넬의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이렇게 대과거와 과거 시제를 오가며 샤넬이라는 인물에게서 어떤 창조의 폭발이 벌어졌는지 유추해보는 일이야말로 이 전시가 주는 즐거움이다. 파리 만국 박람회와 벨 에포크, 물랭루즈 카바레, 해변의 휴양 도시 도빌과 비아리츠, 여행을 떠난 베니스…. 샤넬의 삶을 좇아가는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여행의 종착지는 결국, 파리 캉봉가 31번지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샤넬이 평생 모아온 가구와 책, 오브제로 가득 차 있고 친구들과 교류를 나누었으며 패션쇼가 열린 그녀의 성이자 동굴, 은신처 말이다.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지만, 샤넬이 머물렀던 장소의 정신은 브랜드의 유산이 되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 에디터
-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