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가 아시케나지는 패션계의 철학자 후세인 샬라얀에게 드미 쿠튀르 라인을 의뢰했다. 협업이 대세인 패션계에서 가장 기묘한 커플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건 나만의 공이라 할 수 없어요.” 후세인 샬라얀이 특유의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우린 지금 파리 샹그릴라 호텔에 앉아 있다. 샬라얀이 디자인한 비오네 드미 쿠튀르 컬렉션은 오늘밤에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다. “맞아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매우 정확했죠.” 한 차례의 발작적 기침 끝에 비오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가 아시케나지(Goga Ashkenazi)가 끼어든다. 그녀는 비오네의 소유주로, 브랜드의 룩과 분위기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비즈니스까지 책임지고 있다. 쇼를 앞두고 밤샘 작업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심한 감기가 든 상태였다. 얼핏 쉽게 매치가 되지 않는 커플이지만, 아시케나지는 작년 가을 샬라얀을 비오네의 드미 쿠튀르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고용했다. 런던 북부에서 자란 터키 키프로스 출신의 내성적인 디자이너(43세)는 우리가 흔히 ‘옷’이라 부르는 것들의 한계를 깨뜨려왔다. 무대 위에선 모델들이 망치로 설탕유리 드레스를 깨뜨리는가 하면, 비행기 부품으로 만든 레진 드레스에서부터 서클 스커트로 변신하는 접이식 탁자 테이블에 이르기까지, 그가 선보이는 디자인은 극도의 개념주의적, 건축학적 실험성으로 가득하다. 반면 카자흐 출신의 아시케나지(34세)는 밀라노, 파리, 로스앤젤레스 등지를 오가는 사교계 명사이자 영국 앤드루 왕자의 친구, 그리고 경매 도중에 무심코 친구인 제니퍼 로페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가 얼떨결에 회화 작품을 낙찰받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샬라얀과 아시케나지는 고용 문제가 성사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처음 만났다가, 즉석에서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제 두 사람은 마치 잘 차려입은 머트와 제프(만화 주인공인 키다리와 땅딸보)처럼, 만담 형식으로 얘기를 주고받는 환상의 콤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두 번째 미팅에서 샬라얀은 아예 스케치 더미를 들고 나타났다. “수트케이스에 넣어 왔어요. 그녀가 디자인을 궁금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것이었죠.” 아시케나지는 “그런데 진짜 많았어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나하나 짚으
며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또 이것도 하고!’를 연발했죠.” 확실히 앞길은 아주 험난해 보였다. “스케치북 이야기라면 기억나는 게 또 하나 있어요.” 아시케나지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한다. “맞아요, 그녀가 내 스케치북에 낙서까지 해놓았어요. ‘누가 내 스케치에 낙서를 해놨어?’라 묻자, 다들 ‘고가가 그랬어요!’라 했죠.” 샬라얀이 염려스러운 건, 비오네의 키친에는 요리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샬라얀과 아시케나지는 의외로 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는 패션을 미래로 끌어당기는 테크놀로지의 힘을 믿고 있고, 그녀는 마들렌 비오네가 보여준 정교한 바이어스 컷과 칼주름 등의 실험 정신을 당대 최고의 혁신이라 여기고 있다. 이런 이유로 레이블을 위한 샬라얀의 첫 번째 컬렉션이 나선형 계단, 전기 와이어, 패턴 커팅 페이퍼, 케이블을 활용한 주얼리 등 인더스트리얼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쉽게 납득할 만한 일이다. 다행히 그 결과는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흐르진 않았다. 거미줄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짜임의 오간자 드레스를 시작으로 건축적인 사무라이 슬리브 장식의 드레스에 이르는 18벌의 드레스는 마들렌 비오네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바이어스 커팅의 오간자 칼럼 드레스는 동심원 모양으로 아름답게 퍼지되, 진부하지 않았다. 홀터 드레스에는 아름다운 비즈 장식이 달려 있었고, 라인은 태양광을 연상시키는 직선으로 쭉 뻗다가도 묘하게 불규칙적인 플리츠를 형성했다.
모든 컬렉션 룩은 다양한 사이즈로 만들어지며, 3~4차례 피팅을 해야 하는 기존 쿠튀르 의상들과는 달리 단 한 번만으로도 테일러링이 가능하다. 또 피팅을 포함한 컬렉션 아이템은 약 4백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전통적인 오트 쿠튀르에 비하면 굉장히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이는 판매를 더욱 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난 세일즈룸에서도 일하고 있어요.” 아시케나지가 말한다. “비즈니스는 늘 흥미를 끌어당기거든요.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조언하는 편이에요. ‘그 옷이 마음에 든다면 바로 지갑을 열고, 그렇지 않으면 단호하게 돌아서야 해!’ ” 글 | Alexandra Marshall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정진아
- 포토그래퍼
- KIM WESTON ARNOLD, DYLAN DON
- 스탭
- STYLING / MARI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