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과 작별을 고한 마크 제이콥스를 둘러싼 모든 것이 대대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본인의 레이블에 집중하고 있으며, 세컨드 레이블인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를 위해 케이티 힐리어(Katie Hillier)와 루엘라 바틀리(Luella Bartley) 듀오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더욱 견고하게 빛날 그의 제국을 위해 그는 또다시 두려움 없는 항해를 시작하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는 맨해튼 다운타운의 머서(Mercer) 호텔 로비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회전목마처럼 느릿하게 샘솟는 아이디어들, 앞으로의 계획, 판타지, 근심 걱정 등을 응시하고 있다. 지난 10월 루이 비통을 떠나 독자적인 레이블에 집중할 것이라는 뉴스가 공표된 이후로, 여전히 패션계에서는 헤드라인을 통해 그의 소식을 소화해내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그는 옷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능숙한 처신을 보여주었다(그는 2014 F/W 컬렉션에 선보일 프린트와 패브릭 작업에 열중하느라, 슬픔이나 추억에 빠져들 여유가 없었다). “파리에서의 시스템에서 이제 막 빠져나왔어요.” 대수롭지 않게 응답하면서 이리저리 화제를 넘나들며 말하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대화 방식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또 다른 것을 향해 창조적인 에너지를 소진해야 할 순간이에요.” 그는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간다. “이건 늘 느껴온 감정들인데, 소진과 영감 그리고 두려움과 흥분… 숱한 굴곡을 거쳐오면서도 이런 감정들은 수시로, 가까이에서 출몰하죠.”
그러더니 그는 일주일 남짓 휴가 여행을 보낸 세인트 바스(St. Barths) 섬 얘기로 넘어간다. 앞으로 다가올 피로에 대한 예방접종 격인 휴식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지난 4월 50세 생일을 겸해 브라질에도 다녀왔지만, 여행은 정말이지 형편없었어요.” 그는 브론즈빛으로 그을린 뺨을 살짝 일그러뜨린다. “굳이 숫자를 세고 싶지 않아요. 50세! 내가 50이라는 걸 믿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나마 난 50세 중에서 가장 젊다고 되뇌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어요.” 그가 섬에서 렌트했던 곳의 사진을 가리키며 “대리석 바닥의 비치 하우스는 늘 기묘해요. 그렇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사진 속에는 불테리어 애완견 ‘네빌’(인스타그램에서 26,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이 홀을 날쌔게 가로지르고 있다. “적어도 미학적인 측면에서는 아주 흥미로워요.” 하지만 이내 그는 로비를 걸어오는 한 커플에 시선을 빼앗기더니 ‘저기, 저 사람들을 봐요!’라 외친다.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두 사람은 중성적이고 펑키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건 이 커플이 들고 있던 제이콥스의 이름이 새겨진 쇼핑백들. 1997년 이곳에 스토어를 오픈한 이후 이 일대에서 이미 친숙한 광경이긴 하지만, 그는 마치 햇빛을 갈망하는 식물처럼 혹은 어린아이 같은 흥분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내 디자인을 구입하는 사람들이라니!”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얼마나 근사하고 스릴 넘치는 일인가요? 심지어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조차 내 T셔츠를 입고 있죠!” 21년 전에 론칭한 자신의 레이블을 두고서 이처럼 흥분을 표시하는 그의 모습은 ‘무심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패션계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게다가 이미 유명세와 인지도는 물론이고, 끊임없이 기대치를 넘어서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장을 열어온 디자이너로서는 더더욱. 비통에서의 16년간, 그는 자칫 고루해질 수 있는 이 전통적인 가방 브랜드를 패션 지향의 스타일리시한 거대 하우스로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모든 건 그의 강한 열정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게다가 더더욱 놀라운 건, 이렇게 창조적인 과정 중에서 상처받기 쉬운 감정적 굴곡과 실연, 그리고 정신과 상담과 두 차례의 재활 치료까지 받았다는 사실이다. 삶의 드라마는 그의 몸에 마치 지도처럼 33개의 타투로 새겨져 있지만, 그는 일에서만큼은 절대 분별력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디올의 존 갈리아노(2011년 취중 유대인 비하 발언으로 해고된)나 알렉산더 매퀸(2010년 자택에서 사망)과는 달리, 오히려 카오스에 가까운 스케줄을 통해 묘한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물론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 방식을 택해요.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죠.” 그가 모처럼 치아를 드러내면서 활짝 웃는다. “마돈나가 투어 공연을 할 때마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의 열정이 무엇보다도 잘 드러나는 곳은 자신의 브랜드를 발전시킬 때다. 비통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모로 소모가 컸지만, 그는 한 번도 1993년에 만들어진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에 대한 비전을 놓친 적은 없었다. 단일 매장에서 출발, 200만 달러의 매출을 거쳐 지금은 전 세계 60여 개국에 200개 매장을 둔 매출 10억 달러의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컴퓨터에 얼마나 많은 저장 공간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할 때처럼, 내 에너지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돌아보게 되었어요. 사실 일에 관한 몰입을 떠나서, 묘한 감정이 얽혀 있는 탓에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에 대해선 결코 제3자의 입장이 될 수가 없죠. 결국 향후 얼마나 브랜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느냐가 내게 주어진 일이에요.” 전적으로 마크 제이콥스 레이블에 집중하기 위한 첫 단계는 기업공개(IPO)와 그를 위해, 뉴욕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구축하는 일이다. 올해 말 오픈될 예정인 이 플래그십 스토어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의 부티크들과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 우먼스 스토어, 북마크, 마크 by 마크 포 맨, 아이들을 위한 리틀 마크 등을 포함한 환상적인 마크 랜드(Marc Land)로 구성할 전망이다. 이를테면 2,300달러 코트가 2달러 콘돔과 40달러 레인 부츠 등과 나란히 판매되면서 각 아이템의 가치를 서로 상승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다.
머셔에서 제이콥스는 적갈색 아디다스 트랙 팬츠에 적갈색 스트라이프가 있는 화이트 아디다스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이 룩은 사흘에 걸쳐 그의 유니폼이 되어주었다. 테라피스트의 사무실에서 막 돌아온 그는 ‘최근의 커다란 변화와 전환기에 관련된 두려움과 흥분을 두고 몇 시간씩 얘길 나누었다’고 말한다. “난 그에게 ‘이 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와 ‘이 모든 아이디어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의논했어요. 또 어느 시점에 이르러선 변화가 싫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했고요. 알다시피 난 변화에 양면적이에요. 때에 따라 아주 편안하게 혹은 아주 불편하게 받아들이니까요.” 제이콥스는 새로운 목표와 가능성에 관련된 작업에 들어서는 순간, 현기증이 시작되었다고 털어놓는다. “난 모든 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로고도 다시 디자인해야 하고, 포장 디자인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쇼핑백은 어떤가? 스토어 인테리어는?” 그가 직면한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최근 들어 몇 년간 힘이 빠진 핸드백 비즈니스(회사의 오랜 재정적 초석이었던)와 슈즈 라인을 강화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세심한 관여 없이 디자인 팀에게 백을 만들도록 내버려둔 데다가, 머천다이저들을 통해 디자인 팀이 하는 수많은 일을 전해 들었어요. 그 아이덴티티가 오염되고 희석되고 상실되어버렸죠. 슈즈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에요. 어느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변화를 책임질 사람은 바로 나예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신호탄은 최근의 광고 캠페인으로,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를 새로운 뮤즈로 내세워 포토그래퍼 데이비드 심스(David Sims)가 촬영을 마쳤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난 16년간 처음으로 그는 유르겐 텔러와 작업하지 않았다. “유르겐은 마일리를 촬영하길 원치 않았어요. 그 이유를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에요. 우리가 의견의 불일치를 경험한 건 처음이었고, 아마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좀 더 인내심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가 말을 이어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을 문제 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 모든건 순수하기에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누가 알겠어요?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돌발 행동이 아닌, 위선일 뿐입니다. 어쨌든 내 태도는 ‘원치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나의 선택입니다. 하우스를 정돈하고 새롭게 장식하고, 혁신을 꾀하고… 처음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어요.”
마크 제이콥스는 뉴욕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그의 모든 에너지와 아이덴티티는 뉴욕과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다. 반면 런던은 그의 또 다른 확장된 비전이 존재하는 곳으로, 다소 추상적이었던 변화가 최근 들어 이곳에서 좀 더 구체적인 리얼리티를 띠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그는 런던 디자이너 케이티 힐리어(Katie Hillier)를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2000년 론칭한 이후 보다 합리적 가격대의 스트리트 패션을 표방한 이디퓨전 라인은 회사 의류 수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이콥스 역시 전체적인 크리에이팅은 관장하고 있지만, 세컨드 라인의 직접적인 책임은 힐리어에게 맡겨졌다. “힐리어는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이름이에요.” 제이콥스는 변신을 선언하여 새로운 바통을 물려준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를 두고서 이렇게 말한다. 맨해튼 스프링 스트리트의 마크 제이콥스 오피스에서 빠져나와, 힐리어는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 디자인 스튜디오를 런던으로 이전하는 방법을 택했다. 스튜디오는 쇼디치의 19세기 스쿨하우스 안에 있으며, 인근 거리엔 젊은 힙스터들이 넘쳐나고 방글라데시 요리점들이 들어서 있다. 얼핏 보아도 인터내셔널 브랜드의 본사와는 거리가 먼 느낌으로 바람이 잘 통하는 치장 벽토 벽면의 룸들과 헤링본 바닥 등을 비롯해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우연히 발견해주길 바라는 개념주의 아티스트의 로프트 같다. “뻔한 공간은 식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발 머리에 체구는 작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힐리어가 말한다. 12월의 비 내리는 오후,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가을 쇼의 뮤직을 선별할 미팅을 준비 중이었다. “블로그든지 인스타그램이든지 페이스북이든지, 그 어떤 것이든지 사람들은 빠르게 지루함을 느끼곤 해요. 그들을 흥미롭게 만들려면 패션과 브랜드에 있어서 뭔가 차별화되는 요소를 등장시켜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를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녀는 뉴욕을 처음 방문하던 때가 기억난다고 한다. “원하는 매장에 들러 마음껏 둘러보던 기쁨을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에서도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스토어에서 자유로이 쇼핑하면서 백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오는 것이죠. 우린 그 생동하는 에너지를 다시 찾길 원해요.”
힐리어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루엘라 바틀리(Luella Bartley)와 팀을 이루었고, 이로써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 디자인 디렉터 듀오가 완성되었다. 루엘라 바틀리는 2009년 경기 침체의 희생양이 되기 전까지 수많은 컬트 추총자를 거느렸고, 특유의 예측 불가한 감수성으로 기대를 모은 디자이너다. 이번 영입을 통해 그녀가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에 불러일으킬 긍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작업 방식이 될 거예요.” 바틀리는 사우스 잉글랜드의 콘월로부터 스피커폰으로 대화에 참여했다(그녀는 오랜 파트너인 데이비드 심스와 휴가 여행을 보내고 있었다). “런던 중심부의 작은 사무실은 정말이지 근사한 느낌이에요.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여전히 즉흥적인 감각을 발휘할 수 있어요. 이동도 쉽고, 정리정돈도 쉽고… 대규모라면 그 안의 요소들을 공식화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죠.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계속 관찰해야 하고,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처음의 순수성이 유지되는지도 끊임없이 체크해야 하니까요.” 회사의 전체적인 미학과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새로운 톤을 만들어내야 하는 가을 컬렉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힐리어와 바틀리는 많은 시간 끝없이 논의했다. 무드보드에는 <키즈>로 데뷔한 어린 시절의 클로에 세비니부터 <로얄 테넨바움>의 귀네스 팰트로나 그라피티로 가득한 통로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춘기 스케이터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이미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컬렉션은 모터사이클, BMX, 일본 만화 등을 레퍼런스로 젊은 여성을 매료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자선 행사에서 일찌감치 빠져나와 비상계단에서 와인병을 나눠 마시는 소녀들을 생각해보라. “다시 한번 더 유쾌해질 것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약간은 보이시하면서도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을 강조했죠.” 바틀리가 설명한다. “마크 걸의 매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자이너 룩으로 치장하지 않는 것이에요. 아마도 전통적인 일본의 헤어 액세서리에 모터사이클 셔츠 그리고 아름다운 실크 드레스를 매치할 수도 있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우린 패션 컬렉션에서 흔히 보이는 드레싱과는 다른 방법을 택하려 애썼어요.”
뉴욕에 도착하기 전, 제이콥스는 런던 스튜디오의 바틀리와 힐리어를 방문했다. 처음으로 공간과 디자인을 살펴본 후, 두 디자이너와 함께 회사의 비전에서부터 글로벌 감각과 아이디어 등에 관련된 얘기를 나누었다. “그건 도처에 뉴욕이 존재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그가 말한다. “런던, 파리, 밀라노 거리 곳곳에 말이에요!” 런던 스튜디오를 다녀온 후 영감을 얻은 그는 파리에서 하이엔드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을 기획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흔히들 내가 파리엔 비통을 위해서만, 그리고 뉴욕엔 마크 제이콥스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여겨 왔어요. 하지만 파리에도 마크 제이콥스 사무실이 있고 얼마든지 새로운 가능성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파리의 마크 제이콥스! 경계를 허무는 아주 근사한 방법이 될 거라 생각해요.”
힐리어와 바틀리는 제이콥스가 도착한다는 사실에 초조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의 패닉 상태였어요.” 힐리어가 회상한다. “’그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만일 그가 몽땅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바틀리는 ‘처음 디자인 일을 시작 했을 때 제이콥스와 이렇게 가까이 작업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제이콥스의 작업실을 둘러보면서 그의 열정과 감수성에 강력하게 매료됐다. “예전엔 일종의 단절 상태가 계속될 거라 생각했어요. 마크의 신화를 듣고 접하면서도, 진짜로 연결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니까요. 여기 앉아서 그와 함께 촬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회사에 갖는 열정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제이콥스와 함께 있는다는 건 진짜 파워풀하고 매력적인 일이에요.”
머셔에서 커피 브레이크를 가진 지 며칠 후, 제이콥스는 뉴욕 헤드쿼터의 7층에 자릴 잡고 있었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불을 밝힌 채 핸드백 팀과 미팅을 마쳐가는 중이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그야말로 소용돌이 속에 있는 듯 정신없이 분주했다고 한다. 미팅이 계속되다가 어제 저녁엔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집에서 홀리데이 파티가 있었고, 이날 저녁엔 세인트 바스행이 예약되어 있다. 하지만 제이콥스는 아이스 커피를 단숨에 비운 후, 호기심과 초점을 잃지 않은 채 지난 1년간 스토어에 나오지 못했던 백들을 훑어본다. 소진 상태일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외과수술이 필요한 듯 백들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지퍼에 달린 가죽 술 장식의 크기부터 무게 그리고 크롬 손잡이나 스터드 장식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디테일을 짚어내고 있다. “오늘 하루는 정말 힘들 거예요.”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오버사이즈의 안경 너머로 사다리꼴의 핫 핑크 백이 지나치게 투박한 것인지 혹은 충분히 투박한 것인지를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다.
3시간 후, 제이콥스의 집중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제발 날 여기서 꺼내줘요’라는 시점에 도달했어요.” 그는 가죽 광택이 더 매트해야 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아야 하는지에 매달리는 대신에, 애완견과 해변을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고 털어놓는다. “다들, 오늘 아침의 일을 수영장에까지 가져가고 싶진 않겠죠!” 제이콥스는 디자인 팀을 향해 놀리듯이 농담을 던진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수영복을 반드시 찾아내길 바랍니다. 섬에도 에르메스 부티크가 있으니까. 그리고 루이 비통도!” 그는 여전히 백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내가 돌아왔을 때, 그러니까 주말에 다시 일을 합시다!‘로 마무리한다.
그는 잠시 눈을 감은 채 마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듯이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이게 내 인생의 가장 고된 시간일까요?” 제이콥스가 물어온다. “아, 맞아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시간일지라도 미칠 듯한 순간은 늘 이유를 갖기 마련이에요. 그게 바로 창조적인 과정이라서 그런 거죠. 늘 신선해야 한다! 뭐, 좋은 말이지만, 신선함과 올드함이 반드시 겹쳐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는 아까보다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미소를 띠운다. “올드함과 똑같아지는 순간, 바로 지루함이 찾아오는 것이죠!” 글 | David Amsden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정진아
- 포토그래퍼
- Steven Mei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