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의 시선으로 포착한, 놓치면 안 될 2013년 봄/여름의 네 가지 트렌드.
MONOCHROME CHIC
봄의 화사한 컬러감을 기대하며 혹한을 견뎌온 사람들에겐 유감스러운 트렌드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번 봄/여름의 핵심 컬러는 블랙과 화이트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의 봄/여름 컬렉션을 통틀어 블랙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 일색의 룩은 대부분의 주요 브랜드에서 제안하고 있고, 올 화이트 룩 역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이번 시즌 모노크롬 컬러 플레이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블랙과 화이트가 어우러져 그래픽적인 대비미를 강조하는 스타일링이다. 끌로에, 제이슨 우, 랄프 로렌,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컬렉션에서는 모두 블랙과 화이트로 나누어 상·하의를 배치하는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블랙과 화이트가 차지하는 면적에 따라 몸의 프로포션이 달라 보이는 효과가 인상적이었다. 짧은 화이트 상의에 긴 검정 하의를 매치하면 시선을 위로 올려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반대로 하의에 화이트를 매치하는 경우는 길이가 짧은 편이 키가 커 보인다. 한편 같은 피스 안에서 블랙과 화이트가 수직적 배치 아래 그래픽적 느낌을 강조하는 경우는 루이 비통이나 마이클 코어스, 알렉산더 왕, 질 샌더,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에서처럼 어깨나 다리, 혹은 미드리프를 커팅하여 맨살을 어느 정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여성스럽고 섹시한 이미지를 준다. 스트라이프나 체커보드 패턴과 같이 규칙적인 무늬일수록 다른 패턴을 뒤섞거나 아우터로 패턴이 차지하는 면적을 줄여버리면 겨울옷처럼 답답해 보일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ORIENTAL COUTURE
잘 파는 데 일가견에 있는 뉴욕 디자이너들이 아무리 요란하게 팡파르를 울려도, 패션계는 밀라노의 프라다 쇼가 열리기 전에는 시즌 트렌드를 섣불리 논하지 않는다. 이번 컬렉션에서 프라다는 60년대와 일본이 혼재된 우아한 쇼를 펼쳤고, 이후 밀라노와 파리의 다른 디자이너들에게서도 이 흔적이 여럿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특급 트렌드로 불리는 오리엔탈 스타일은 한동안 맨즈웨어 스타일이 유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반되는 요소가 적절히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인데, 여성의 부드러움과 내면의 강인함, 동양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가 절묘하게 혼합된 새로운 ‘드레스업’ 룩이다. 아무래도 쇼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런웨이에서는 마치 시대극의 여주인공처럼 과도하게 스타일링한 것이 많았지만 하이더 애커만, 랑방, 아퀼라노 리몬디, 다미르 도마 컬렉션의 예와 같이 입체적인 조형미와 평면적인 요소가 만나 마치 종이로 만든 듯 가벼운 볼륨감을 선사하는 정도만으로 이 무드를 돋보이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할 것. 형태감 있는 기모노 슬리브나 기하학적인 페플럼, 동양의 전통 문양을 프린트한 가벼운 코트류는 드리스 반 노튼, 에트로, 에르메스와 에밀리오 푸치 등에서 공히 발견할 수 있는 주요한 아이템이다. 평면적인 드레이핑으로 가능하면 실루엣을 납작하게 표현하는 것, 그리고 더치스 새틴과 같은 고급스럽고 빳빳한 느낌의 소재, 소박하지만 정교한 약간의 크래프트 장식, 이 세 가지 외의 다른 요소는 극히 단순하고 모던하게 표현하는 것이 오리엔탈 룩을 즐기는 노하우다.
RUFFLE EFFECT
오트 쿠튀르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반면, 프리 컬렉션의 상업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짐에 따라 봄/여름, 가을/겨울 등 정규 편성 컬렉션이 오트 쿠튀르적인 판타지를 일부 포함하게 되었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논한 바 있다. 여기서 비롯된 현상 중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전체적인 컬렉션의 테마나 실루엣, 컬러 등 큼직한 요소보다는 쿠튀르에서 자주 사용되는 세부 장식이나 이를 만드는 기법만이 레디투웨어에 주로 적용된다는 점인데, 이런 손맛 넘치는 장식적 요소들은 룩을 더욱 즐겁게 만드는 반면, 가격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라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이번 시즌에는 특히 러플 장식이 그 양날의 검이 된 주인공이다. 개더나 플레어로 옷 가장자리에 주름을 잡아 만드는 러플은 휘몰아치는 곡선의 모양 자체가 매우 여성스러우며, 컬러와 면적에 따라 경쾌하고 스포티한 캐주얼 피스부터 우아한 이브닝 가운에 이르기까지 활용도가 높은 장식이다. 지방시와 구찌, 끌로에는 모두 네크라인에서 어깨와 소매까지 깊게 떨어지는 에지 라인을 따라 러플을 배치한 우아한 드레스를 선보였고, 발렌시아가, 가레스 퓨에서는 과감하게 러플만으로 헴라인을 구성한 비대칭 롱스커트로 이국적이면서도 모던한 요소를 균형감 있게 표현했다. 러플을 허리 부분에 이용해 만든 페플럼 실루엣의 상의는 아크네와 버버리 프로섬, 마르니 컬렉션에서도 등장해 지난 시즌의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며, 러플을 좀 더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피터 필로토나 이자벨 마랑, 사카이 컬렉션처럼 작은 크기의 러플로 장식한 캐주얼한 아이템을 고르면 된다.
SPLICE MULTILAYER
이번 시즌의 ‘드레스다운’, 즉 스트리트 스타일은 한층 더 고급스러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발렌시아가의 모터사이클 가죽 재킷이 등장한 이후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스타일이 ‘비싼’ 방향으로 결합되는 추세인데 이번 시즌은 미래와 원시가 뒤섞이고 재구성된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에르메스, 스텔라 매카트니, 가브리엘 콜란젤로 컬렉션에서 보듯이 카디건 같은 느낌의 박시한 재킷, 티셔츠나 튜닉, 셔츠, 골반 즈음에 느슨하게 걸치는 스커트나 무릎길이 정도의 원피스 드레스 등 아이템 자체는 일상적인 스포츠웨어인데, 실루엣과 독특하게 커팅된 패턴 등을 통해 미래적 느낌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몇 시즌간 지속되는 트렌드인 소재와 컬러의 믹스 매치 역시 이 스타일을 통해서 빛을 발하고 있는데, No.21, 프린 등의 컬렉션에서 볼 수 있듯 원시적인 스네이크나 파이톤, 페이턴트 가죽에 화려한 색으로 염색을 하고 이를 새틴이나 면, 혹은 다른 가죽 등에 이어 붙인 패치워크 플레이는 스트리트 룩을 대번에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프로엔자 스쿨러나 로다테처럼 이그조틱 가죽을 니팅, 혹은 파고팅 기법(소재와 소재의 사이에 공간을 두고 실로 엮어 커팅된 듯한 느낌을 주는 바느질 기법)으로 패치워크한 피스들은 오트 쿠튀르의 정교함에 비견될 정도며, 데렉 램과 에르뎀, 펜디에서는 프린트 느낌의 화려한 퍼와 가죽, 시스루 느낌의 니트를 패치워크해 럭셔리함은 살리고 계절감은 모호하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포토그래퍼
- jason Lloyd-Ev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