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50분은 서울에서 광주까지 KTX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목적지에서 내리면 현대미술의 날카로운 끝에 도착하게 된다. 광주 아트 비엔날레에서 당신이 무엇을 얻어올 수 있을지 그 길잡이가 되어줄 몇 개의 숫자들.
1995
광주에서 이 큰 규모의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시작된 것은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광역시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해갈 문화 콘텐츠를 고민하던 1995년의 일.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17년이 흐른 것은 2회인 1997년과 3회 2000년 사이에 3년의 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비엔날레를 보지 않았던가?’라고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그건 아트 비엔날레와 엇갈려 열리는 디자인 비엔날레다. 베니스에서 미술과 건축 비엔날레가 번갈아 열리듯 광주에서도 미술/디자인 비엔날레가 격년으로 열린다.
92
올해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의 수.
6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세계 비엔날레 사상 최초로 6명의 공동 예술감독 체제를 채택했다. 한국의 김선정을 비롯해 일본 모리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마미 카타오카, 그 밖에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이라크 등 서로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 여성이라는 점이 특징.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다양한 안건을 상정해 원탁에서 의견을 나누는 정치 회담처럼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교환한다는 의미를 담은 전시 테마인 동시에, 예술감독 6명이 서로 협업하고 대화하며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섯 개의 목소리가 오가는 ‘라운드 테이블’이니만큼 마냥 매끄러울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도 짐작할 만한데, 이 점이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다. 여섯 사람이 각기 다른 소주제를 가지고 구성한 전시를 비교하고 공통점을 발견하는 관점은 이번 비엔날레를 재미있게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14
비엔날레 전시관 앞마당에는 탁구대 14개가 설치되었다. 거울처럼 반사하는 소재로 되어 있는 이 탁구대는 네트 부분이 약간의 폭을 두고 두 겹으로 떼어져 있어 마치 DMZ를 연상시킨다. 아르헨티나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작품으로, 탁구를 치고 싶은 관객은 물음표가 그려진 하얀 티셔츠를 입고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있다. 휴전선 같은 경계를 두고 양쪽이 벌이는 공격과 수비, 특히 냉전 시대의 스포츠인 탁구라는 게임의 형식이 남북 분단의 현실에 물음표를 던지는 듯하다.
108
마이클 주의 ‘분리불가’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설치 작품이자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천장에 기와처럼 연결된 구조물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시위 현장에서 전경들이 사용하는 방패다. 그 아래로는 대조적으로 항아리, 대야, 그릇 등 일상의 도구들을 점토 오브제로 제작해 연결해놓았다. 방패가 하필 108개 쓰인 이유는 인간의 어떤 번뇌를 상징하는 것일까?
1500
서도호 작가의 ‘틈새 호텔’ 프로젝트에 쓰인 트럭의 중량(1.5톤). 마치 캠핑 카처럼 차량 안에 객실을 꾸민 이 호텔은 침대와 샤워 시설, TV, 에어컨과 미니 바까지 제대로 갖췄다. 광주 전역을 움직여 다니다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든 이동식 호텔로, 실제 신청을 받아 관람객들의 투숙도 가능하게 운영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새’에 설치되어 시내 전역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는 게릴라 갤러리 역할을 하며, 관객들은 지역의 새로운 디테일과 이야기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에 관심을 두어온 서도호 작가는 광주 곳곳의 버려지고 잊혀진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탁본 프로젝트’로도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있다. 벽면에 종이를 대고 색연필로 문지르면, 건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게 된다. 비엔날레 전시관 외부의 전시 공간인 대인시장의 한 상점에서, 관객들은 이 탁본 뜨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
3,000,000
김범 작가는 ‘12가지의 조각적 조리법’이라는 제목으로 종이찰흙으로 빚은 12마리의 통닭 조각을 내놓았다. 이 작품의 가격이 3백만원. 판매액 전액을 통닭 쿠폰으로 바꿔 지역 복지시설이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나눠준다는 취지로 판매 이벤트가 기획되었다.
100
임수정과 이정재가 주연한 영상 작품으로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초청되어서 화제를 끌었던 <세상의 저편, 2012>는 10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극심한 기후 변화 속에 살아남은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 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이 작품으로 창의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작품에 주어지는 ‘눈 예술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100
비엔날레관에 가면 자전거 100대를 만날 수 있다. 도시에 버려진 자전거들을 말끔하게 수리해 모아놓은 이 프로젝트는 뉴질랜드 작가 스콧 이디의 ‘100대의 자전거 프로젝트: 광주’.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 관람객들이 타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제공된다.
285
작년 3월의 대지진 이후, 일본 작가들의 관심사는 확실히 지역성이다. 모토유키 시타미치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일본 전역을 여행하면서 다리 286개를 촬영한 사진 연작으로 청년 작가상을 받았다.
1572
멕시코 작가 페드로 레예스가 기부받은 총의 수. 그는 총 1,572개를 나무를 심는 삽으로 변형해서 죽음의 도구로부터 삶의 동력을 창조했다.
6PM
매일 저녁 6시, 비엔날레 전시관 외벽에는 아이 웨이웨이의 영상 프로젝트인 ‘언어 프로젝션’이 상영된다. 지난해 디자인 비엔날레에 이어 2년 연속 광주의 앞뜰을 장악한 남자.
21
제니 홀저는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광주를 위하여’라는 프로젝트를 새로 제작했다. 광주 시내의 전광판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똑같이 키워라’ ‘몸이 말을 할 때 들어라’ 등 21개의 메시지가 뉴스와 광고 사이에 뜨게 된다.
66
11월 11일까지 앞으로 66일간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도시 곳곳의 문화 역사적 맥락을 녹여낸 장소특정적 작품이 많다. 1930년대에 지어진 광주극장에서는 영상 상영과 더불어 사진 전시가 열린다. 포트폴리오 공모로 데뷔하는 광주 출신의 조현택 작가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세친구’ 등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조명한 작품을 전시한다. 광주극장 사택에서는 도심 속 잊힌 장소를 일상과 예술로 결합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광주극장 바로 뒷 건물인 사택에는 멕시코 출신의 작가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가 그곳에서 3주간 거주하며 남긴 설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광주 지역의 다양한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대인시장 전시, 사찰이라는 공간에 어울리게 명상적 작업들이 주로 설치되는 무각사 전시도 들러볼 만하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엄삼철